여행을 가다. 오사카, 두번째

2017-08-28 15: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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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13.12.19(목) ~ '13.12.21(토)


- 아침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지하철 패스 하나를 사는데 말이 안통해서 혼났다. 근데 이 패스 솔직히 손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러게 잘 써야지.



24시간동안 사용할 수 있는 오사카 시영 지하철권이다. 800엔을 줬는데, 상당히 가격이 애매하다. 지하철을 한 번 타는데 150 ~ 200엔 사이가 필요하니 다섯 번은 넘게 타야지 소위 말하는 본전을 뽑을 수 있다. 지하철 너댓 정거장 거리는 발품을 파는 것이 더 익숙한지라 과연 저 지하철 패스가 나에게 쓸모가 있는 놈일까 꽤나 고민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유용했던 듯 하다. 본전을 뽑기 위해서 괜히 지하철을 더 자주 탔는지도 모를 일이다.


- 우메다는 던전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린다. 정신이 거의 반 나마 나가버렸다.



그 복잡함과 번잡함으로 나름의 악명이 꽤나 높은 우메다역은 출입구만 백개가 족히 될 듯 하다. 지하에서 길을 찾아가고 싶은데 받아든 것은 땅 위의 지도이다. 어떻게든 도움이 될까 하여 손에 쥐고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택도 없다. 돌고 돌아 같은 장소를 세 번 째 마주하였을 때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아니할 수 없었다.


- 인포메이션 센터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도착한 초밥집. 은 영업 시간이 아니다.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돌아보다 들어온 어느 초밥집. 그냥 일본 초밥집은 다 맛있는 것 같다.


'시장스시'라는 오사카의 초밥집이 물의를 일으키며 한동안 시끄러웠다. 언제나처럼 미리 학습하는 자세 따위 전혀 갖추지 않은채로 당도한 오사카 땅이었기에 시장스시라는 곳이 있는지, 유명한지 따위 몰랐던 것은 지나고 보면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스시라는 곳의 존재를 알게된 이후로도 가본 적은 없지만) 위의 사건을 필두로 하여 '혐한'과 관련된 좋지 않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는데, 굳이 나의 중한 시간과 돈을 써가면서 험한 꼴을 당할 이유가 있을까. 굳이 일본이 아니더라도 좋은 곳은 세상에 많다.



찾아 갈 수는 있다. 신기하게도 몸이 기억한다. 아쉽게도 주소라던가 상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회사에 있을 때 나와 함께 일하던 선배 한 분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셨다. 일본에 가면 뭘 먹으면 되나요 여쭤볼 때마다 100엔 스시집을 가라고 무심하게 말씀하시던 것이 기억난다. 물론 지금의 여행기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의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서 돌이켜보면 지극히 맞는 말이었다.


- 오늘은 날이 차다. 오사카에도 겨울이 온다. 점심은 아주 만족스럽다. 오늘은 조금 더 먹어봐야지. 했지만 다섯 접시 이상은 도저히 무리다.


정말로 그러하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일본에서도 그랬다. 다섯 접시면 초밥 열 조각인데, 그 이상을 먹어본 기억이 없는 듯 하다.



- 한큐 투어리스트 패스를 사서 가와라마치로 가는 기차를 탔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는데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몸뚱아리만 남아 혼은 어디 멀리 가버렸나보다.



간사이 지방의 주요 도시인 고베, 오사카, 교토를 잇는 한큐 전철을 1일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한큐 투어리스트 패스. 700엔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가성비가 좋다. 오사카 주유패스나 간사이 스루패스는 일정에 따라 생각보다 유용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패스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돈값을 하는 녀석이기 때문에 오사카에 갈 때마다 반드시 애용하는 패스 중 하나이기도 하다.


- 교토로 가는 지하철 안은 평화롭다. 일본 영화에서 보던 시골 풍경이 밖에 펼쳐진다. 객차 승무원은 영화에서 보던 차림 그대로이다. 니바라키시 역에 열차가 섰다. 다리를 다친 듯한 여중생이 다리를 절며 열차 안으로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먹구름을 배경으로 머리 위에는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일본의 도시 개발 과정이 흥미로운 것은 시가지가 개발되는데 주요 철도 회사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도시의 거점과 거점을 잇는 철로를 건설한 후 이를 통한 수익 확대를 위해서 일본의 많은 철도 회사들은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과 같은 소비 기반 시설을 역사 가까운 곳에 건설하였다. 한큐 전철의 주요 거점 역사 가까운 곳에는 항상 '한큐 백화점'이 있는 것이 그 이유이며, 일본의 유명한 백화점 중 상당수가 주요 철도 회사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 역시 그 이유이다. 비단 그 뿐 만은 아니겠으나, 도시와 도시를 잇는 기차를 이용하다 보면 주요 도시의 시가지들이 철로를 중심으로 하여 확장이 된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왜 그런것일까 궁금증을 가지게 되어 조금 공부를 했었는데, 상당히 재미있는 사실이다.



가와라마치에서 멀지 않은 교토의 전통시장이다. 아케이드 시설을 잘 갖춰놓았으며 매우 깔끔하여 장을 보기 좋게 잘 꾸며놓았다. 올해 초에 이 시장에서 정말 맛있는 소고기 호빵을 발견하였는데, 다시 찾아가려 하니 도무지 어디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너무나 아쉬운 일 중 하나이다.


- 한국에서도 만나기 힘든 흙바닥의 공원을 교토에 와서 만났다. 오밀조밀하면서 그리 시끌벅적하지 않다. 그렇다고 전원촌은 아닌, 그런 동네다.



어딜가나 파란색의 우레탄 바닥으로 교체를 하는 통에 우리나라의 놀이터에서는 이런 흙바닥을 보기가 참 힘들다. 높이 솟은 현대식 건물과 일본의 전통을 그대로 담은 가옥들이 공존하는 와중에 아기자기한 공원을 만나고 나니 괜시리 따뜻한 마음이 일었다. 그네에 앉아서 그 파란 하늘을 잠시간 품에 담아보았다.


- 벌써 가츠라다. 급행이라 역들을 마구 지나쳐간다. 네명이 마주 앉아가는 자리. 내 맞은 편 여자는 고개를 떨구고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더니 이내 잠에 빠져든다. 내 옆의 아저씨와 그 맞은 편 여자는 핸드폰을 가지고 놀기 바쁘다. 내 옆 아저씨는 포코팡을 하고 있는데, 일본에서도 꽤나 인기가 있는 듯 하다.



급행 열차라서 쉬지 않고 시원스레 달려간다. 교토로 가는 길에 만난 이 낯선 풍경들도 돌아오는 길에는 꽤나 정겨운 그것이 되어있었다.


- 우메다 역에 와서 Herbis 플라자에 들러 기념품을 받았다. 그리고 문제의 차를 사러 돌아다녔다. 한큐, 한신백화점을 다 뒤졌는데.. 없다. 도무지 없다. 체했는지 속이 영 좋지 않다. 푸드코트의 음식 냄새에 구역질이 올라오려 했다.


문제의 차는 '맥심 라즈베리 파르페'를 일컫는 것이다. 일본에 오기 전에 여자친구가 먹어보고 싶다하여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백화점의 식료품 코너나, 편의점이 보일 때 마다 들러서 찾아보았으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기를 넘어서, 눈물이 날 만큼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문제의 차가 야속하기만 하다.


- 난바로 가려고 탄 지하철. 1번 선로로 내려가다가 '하마터면 반대로 갈 뻔 했네..' 스스로를 안도하며 발길을 돌린 2번 선로. 그게 반대 방향이었다. 허탈함의 웃음이 너털 너털.. 그래도 덕분에 앉아간다. 저녁을 먹고, 고베를 '찍고' 돌아와서, 니폰바시를 가봐야겠다.


꼭 저렇게 여행객 티를 한 번은 내고 돌아와야 직성이 풀리는 듯 하다. 홍콩에서도 그러했고 일본에서도 그러했고, 반대로 가는 지하철은 어김없이 나를 괴롭힌다.



- 백화점에서 백엔에 팔기에 산 크림빵. 딸기잼과 진짜 딸기(!)가 들어있다. 일본의 빵은 웬만하면 맛이 있는 듯 하다.


한큐백화점 지하 식품코너에서 산 빵이었다. 정확히는 세금을 포함하여 105엔. 정말 맛있었다. 크림 자체가 맛있었을 뿐 아니라 빵 속에 들어가 있는 딸기도 매우 싱싱했다. 적어도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는 않는구나 생각이 들어서, 즐겁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다.


- 여자친구가 구해달라는 차는 난바에서도 볼 수 없다. 대체 어딨는걸까? 킨류라멘에 도착. 크게 맛있는지는..



원래 고베를 가려 했지만 그럴 힘은 물론, 시간도 나지 않는다. 도톤보리로 다시 돌아와 킨류라멘을 먹어보았다. 왜 크게 맛있지 않다고 적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맛있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기 때문인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게 라면을 만드는 듯 하다. 조금 짜다는 느낌을 받기는 하였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 타코야키를 샀다. 오늘은 먹는날!



도톤보리 강변을 따라 타코야키 가게가 즐비하다. '돈키호테'라는 유명한 잡화 상점이 있는데 그 바로 옆에 있는 곳이다. 잘생긴 게스트하우스 주인분의 추천을 받아서 찾게 된 곳. 500엔이니 그리 저렴하다고 생각이 되지는 않지만, 정말 맛있었다. 올해 초에 오사카에 갔을 때도 들렀는데 그새 많이 유명해졌는지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리는 것이 꽤나 고역이었다. (그 전에도 유명했는데 내가 운이 좋아서 한가한 시간에 갔던 것일지도 모른다)


- 난바의 돈키호테에서 문제의 차를 구할만한 단서를 찾았다. 제발 우메다 역에는 있기를..!!


돈키호테는 정말 별에 별 것을 다 판다. 당연히 그 차가 있겠지 싶었는데, 정작 '라즈베리 파르페' 맛은 찾을 수가 없다. 친절한 매장의 직원분께서 우메다의 돈키호테에는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마땅히 방법이 있지 않기에 우선 가보기로 한다.



아무리 차를 찾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하지만 현란한 총천연색으로 무장한 이 간판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글리코'라는 과자회사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구리코상'이라는 캐릭터였다. 무려 8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 매장 발견! 제발!



난바에서 우메다까지 걸어가는 동안 스무 군데가 넘는 편의점을 모두 들락날락 거렸을 것이다. 그 어디에도 없었기에 결국 우메다에 있는 돈키호테까지 발걸음이 닿게 되었다. 여기에도 없으면 포기하자는 생각으로 그 문을 열어젖혔다.



내가 먹을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적지 않은 수가 진열대에 놓여져 있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장바구니에 옮겨담았다.



이것이 바로 그 문제의 '맥심 라즈베리 파르페'. 여담이지만 생각보다 크게 맛있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그렇게 고생하고 사다준 것이 아까워서 3년이 지난 지금도 한 봉지를 먹지 않고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고이 보관하고 있다.


- 오사카 시청 강변은 불빛 축제가 한창이다. 모두 즐거워 보인다. 연말의 설렘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2013년!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조금은 창백한 하늘에 걸린 둥그런 달을 바라보는 순간의 감회가 유별하다. 2013년은, 나름의 곡절이 많았던 시간을 무사히 지나 학교를 졸업한 해이기도 했고, 사회에 발을 딛기 위해서 조심스레 나아가는 과도기이기도 했다. 지금도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를 처음 알게되어 만나게 된 것도, 그 어느때보다 많은 고민과 선택이 밀도있게 스쳐간 것도 2013년이었다. 그런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그야말로 '시원섭섭'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


- 오늘은 불금. 크리스마스 전 마지막 불금. 불타오르지 않는게 이상한 밤이다. 모두들 한 잔씩 걸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우메다 근처의 가는 곳마다, 지하철마다 사람으로 터져나간다. 오늘은 금요일 밤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설렘과,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두근거림이 용광로처럼 끓어 넘치는 우메다의 거리. 그 거리를 거니는 나 역시도 흥분되는 마음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 오사카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간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은데, 너무 피곤하다. 얼른 자야지. 이제는 현실로 돌아가 내 생활에 충실할 때. 앞으로도 열심히 살자꾸나.



그야말로 하루종일 온 거리를 쏘다닌 탓에 허리 아래에 있는 것이 누구의 다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쏟아지는 잠을 애써 모른체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사카의 겨울을 지나는 숙소 로비의 붉은 빛깔마저 따뜻함이 감돈다. 그 어느때보다 훈훈함이 온 몸을 감싸고 도는 기분좋은 겨울밤.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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