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만들다. 여덟

트래블러스 하이
2017-09-07 12:46:24
조회수 21

일사천리


가방을 만드는 과정은 커녕 미싱이 돌아가는 모습조차 한 번 본적이 없던 때, 나는 마침내 어딘가에 있을 가방 만드는 공장을 찾아야 했다. 세상 어딘가에 차고 넘치는 가방 공장에서는 지금 이순간에도 수만개의 가방이 쏟아져 나오고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남 얘기였다. 의류를 만드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디자이너와 생산 공장을 연결해주는 어플리케이션도 시중에 나와있던데 가방은 눈을 다섯번은 넘게 씻고 찾아봐도 그런 것 따위는 없다. 나에게 딱 맞는 가방 공장을 점지해주세요 아무리 바라보아도 온 우주가 나서서 나의 소원을 들어줄리 만무하였다. 소위 말하는 '답이 없는' 상황을 마주한 그때의 심정은아마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받아든 배치고사 성적표를 보았을 때와 비슷했으리라.


이따금 찾아오는 이상고온현상에 가끔씩 짜증이 밀려오던 2016년의 어느 봄날이었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아는것이 단 하나도 없었던지라, 뾰족한 수는 커녕 끝이 닳고 닳아 뭉툭해진 몽땅연필같은 수 조차도 마땅찮다. 결국은 내가 믿을 것은 네이버와 다음.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검색창 하나 뿐이었다. 인터넷으로 물건 사는 것 조차도 가끔은 불안하기 그지없을 때가 있는데, 내 가방을 만들 공장을 인터넷으로 찾는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일까 싶었지만, 도저히 떠오르는 수가 없었으므로.


'가방 공장', '가방 생산', '가방 봉제' 등등, 마치 저인망 어선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참치를 낚아 올리듯이 '가방'과 '공장'이 들어가는 온갖 검색어들을 모조리 넣어본다. 만 모조리 허탕. '잊혀질 권리'를 법제화 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국회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세상이 되었을 만큼 우리네 삶은 정보의 과잉에 너무나 익숙해져있지만 인터넷 세상에서 가방을 만드는 공장은, 완벽하게 잊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만큼 쉽사리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카페 이름에서 풍기는 아우라부터가 남다르다.


'본 카페는 제조공장과 유통업체, 창업을 시작하시는 모든 분들이 공유하고 거래하며 함께 발전을 하기 위해 시작된 카페입니다'


비록 이름은 투박하였으나 생긴 취지 이상의 몫을 능히 해내고 있으리라 짐작이 되는, 무려 회원수 61,688명을 자랑하는 '한국봉제공장' 카페. 슬며시 둘러보니 우리나라에서 천과 재봉틀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다 모여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될 만큼 나에게 필요한 정보와 지식,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곳이었다. 이곳은 망망대해, 끝이 없는 정보의 바다에서는 섬과도 같은 곳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아주 빠르게 샘플을 제작하는 공장들을 찾기 시작한다. '가방'이라고 검색어를 입력하기만 하면 가방 만드는 공장들의 일감을 찾는 글이 수두룩하게 쏟아졌다. 상호와 연락처, 주소지를 다이어리에 옮기고 보니 꽤나 그럴듯한 가방 공장 리스트가 하나 만들어졌다. 나는 그 리스트를 내심 뿌듯하게 생각했다.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자식놈을 잉태한 것 같아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기만 했다. 말 그대로,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뭘 아는게 있어야 어떤 공장이 나의 가방을 잘 만들어줄 수 있는지 검토도 하고 고민도 해볼텐데, 아무것도 아는게 없는 나는 그 리스트를 놓고 고민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한 군데 전화를 걸어 무작정 찾아가본다. 성남에서 가방을 만드는 작은 공장이었다.


직접 그린 가방의 도면을 들고 처음 대면한 자리. 왜 가방을 만들게 됐냐는 상투적인 물음부터 시작하여 약 두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사장님의 가방 인생 역정을 듣고 있노라니, '가방의 신'이라는 것에 이데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 앞에 앉아있는 이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후의 모든 것은 그야말로 일사천리. 일정 조율은 물론 그 자리에서 샘플 비용까지 입금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공장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모든 일을 진행하면 큰일이 난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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