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만들다.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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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


'대체 얼마나 더 멍청한 짓을 해야 원하는 가방을 손에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제대로 된 가방을 향한 여정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고작 하나 만들었을 뿐인데, 이거 과연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의심이 되기 시작한다.

아마 제대로 정신이 박혀 있었다면 위와 같은 의심을 수백번은 하고도 남을 일이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방을 처음 받은 당시에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미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가방은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기에 살짝 고장이 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 나의 중추신경계에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어찌됐건 나는 가방에 대한 첨언을 부탁한다는 구실로 부지런히 주변 사람들을 귀찮게 하며 '예쁘다'는 반응을 구걸하고 다녔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내가 받을 상처를 염려하여 마지 못해 '괜찮네'라는 말을 건네는 수준에서 그 난감한 상황을 지혜롭게 타개하였으나 그 와중에도 나의 정신나감에 대해 조금 더 심각한 수준으로 걱정하면서 직언을 아끼지 않은 친구들이 있었다. 국내 유명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는 고향 친구 역시 그 중 한명이었는데, 실물을 직접 본 친구는 생각보다 괜찮네. 라는 말과 함께 한마디를 덧붙여 상황을 정리했다.

'근데 이거 이대로 팔거가?'


봐도 봐도 화가 난다.


크로스백은 못생겼고, 그 윗부분의 휑한 공간은 가방이 어설퍼보이게 하는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으며, 옆주머니의 주름은 흡사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 세대의 노스텔지아가 진하게 묻어난다. 결론은 안 예쁘니깐 이대로 팔면 너는 필시 망할 것이다.

약 두시간에 걸쳐 이뤄진 친구의 감상평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저 정도가 될 듯 싶은데, 그 넘치는 관심 덕분에 조금이나마 문제점을 인지하게 되었지만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나사가 두 개 쯤 빠져서는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방문하게 된 신설동의 어느 부자재 매장. 그 곳에서 나는 마침내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아직도 정말 많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 사장님께서는 가방의 품질에 대한 혹평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보강재가 꼼꼼히 채워지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 마감 역시 깔끔하지 않으며,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파카링'이라고 불리는 원단이 우는 현상마저 너무 심하다는 등의 수많은 지적이 끝이 없이 이어졌다. 디자인은 차치하고 대체 50만원을 주고 만든 가방의 퀄리티라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말씀에 드디어 나의 정신도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샘플 작업의 시세가 20~30만원 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때였는데, 화가 나는 것은 둘째 치고 나는 대체 뭘 한 것인가 자괴감과 함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제대로 호구 잡혔구나 싶어 샘플 작업하는 곳을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 할 무렵, 내 머릿 속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 듯이 이어지는 사장님의 한마디. '이미 패턴도 나와 있으니 샘플사 바꾸는게 쉽지는 않을거에요. 한 번 더 만드는건 그 공장에서 해보고, 안되면 다른데를 찾아봐요.'


내 피같은 돈을 그 공장에 만큼은 절대로 더 갖다 바치고 싶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몇군데 샘플실을 급하게 알아보았지만 사정이 여의치가 않다. 대부분의 업체가 일감이 차고 넘쳐 너무나 오래 기다려야 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다고 마땅히 깨달은 것도 없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느 공장에 간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알면서도 속을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임을 직감한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멀고도 힘들게만 느껴졌다.

백만원 쯤 버리는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