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대로 랜선 여행. 대만의 수제 맥주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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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대로 살아가는 여행 가방 장사꾼의 여행 이야기

'그런대로 랜선 여행'입니다.


5. 대만의 수제 맥주





맥주 한 캔 사려고 편의점에 다녀왔다. 진지함에 엄중함을 더한 추위가 거리에 잔뜩 내려앉았다. 두 뺨을 스치는 바람은 에는 수준을 넘어 살가죽을 찢어발기는 듯 하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집으로 돌아와 맥주캔을 땄다. 고난을 이겨내고 쟁취한 맥주는 역시나 만족, 언제나 대만족. 사실 세 캔 째다. 그래도 어김없이 만족.


그러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따뜻한 남쪽 나라 대만에서 마시던 수제 맥주 한 잔이.



맛있는 맥주가 많은 나라다. 경상도보다 조금 큰 면적에 인구는 우리나라 반도 안되는데 맛있는 맥주가 참 많은 나라다.


그런 맥주 덕분에 대만에서 맞이한 저녁은 언제나 즐거웠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차피 흥청거리는건 매한가지다만 조금 더 맛있는 맥주로 달아오른 취기에는 왠지 값어치가 있는 것 같았다 (?)



여행을 기억하는 저마다의 방법이 있을테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술이 중요하다.


2018년 봄이었다. 여자친구가 갑자기 링크를 하나 들이밀었다. 뭔가 싶어서 봤더니 15만원짜리 비행기 표가 튀어나온다. 항공권에도 1+1 행사가 있다는걸 이때 처음 알았다. 두 명에 30만원, 일본이 아닌데 15만원짜리 비행기 표라니. 일단 여권부터 챙기고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한다.


대만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대만에서는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맥주집인 '장먼 브루어리'와의 인연 역시 그렇게 시작됐다.



쌉싸름한 홉의 향이 가득한 IPA가 매력적이다. 참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있지만 페일 에일을 잘 만든다. 물론 공부는 잘하는 사람이 그냥 다 잘한다고, 이 집 역시 모든 맥주를 맛있게 만든다.


그래도 IPA 한 잔 추천하고 싶다. 맥주계의 범지구적 지식in 'untappd'에 따르면 대만에서 가장 잘 나가는 맥주의 대부분은 IPA이다. 이 집의 IPA 역시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한 잔에 만원 가까이 하기 때문에 무작정 권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에일 종류를 좋아하면 시도해서 나쁠 건 없다. 혹시 시도했는데 나쁘다면 죄송합니다.



본적은 타이베이에 두고 있지만 웬만큼 큰 도시라면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다. 가오슝과 타이중, 그리고 타이베이, 마지막으로 홍콩.


?


웬만큼 큰 도시의 하한선이 좀 높았다. 대만 제 1, 2, 3의 도시.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서 직항 노선이 있는 도시들에만 위치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대만 여행을 어디로 가든 우리는 장먼의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뜻이다.



가오슝에서 항구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도 좋다. 한 여름의 사우나같은 더위를 피해 밀어넣는 맥주 한 잔도 굉장하다. 언제 마셔도 즐거운 장먼의 맥주다.


개인적으로는 평일 오후에 거리를 지나가는 회사원들을 바라보며 타이중 장먼에서 마시던 맥주 한 잔이 가장 좋았다.


개꿀. 평일 오후에 가면 1+1. 레알 개꿀.


물론 이제는 꿈도 희망도 다 사라졌다. 언젠가 돌아오겠지만 일단 지금은 없다. 1+1도 사라졌다. 이제는 2+1이다. 가격도 올랐는데.



그렇지만 꿈과 희망은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원피스가 왜 아직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순위 최상위권에서 골수까지 우려먹고 있겠는가. 언제나 손에 잡히면 그것은 꿈도 아니고 희망도 아니다. 이곳의 맥주가 그리워서라도 나는 내일의 내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꿈과 희망의 몽유도원이자 지상낙원이 하나 더 있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일 없이 흥청거리고 싶다면 여기 만한 곳이 없다. 당신의 삭신에게 무한한 만족과 심심한 위로를.



타이베이 송강난징 역에서 별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레드포인트 브루어리'다.


역시나 맛있는 맥주가 있다. 어김없이 맛있는 IPA가 있다. 그리고 환장하게 맛있는 맥앤치즈도 있다.


주인장이 서양 사람이다. 아마 미국 사람인 것 같다. 이 집의 수요일에는 '미국지야'라는 이름의 행복한 시간이 흐른다. 몇 가지 종류의 맥주 1리터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원 없이 마실 수 있다. 정말 이름 잘 지은 것 같다. 맛있는 나라의 밤이면서 미국의 밤이라니.


어쨌든 서양 사람이 만드는 진짜배기 서양 음식이라서 서양의 맛이 한가득이다. 고향의 맛을 찾는 서양 사람들이 뭔가에 홀린 듯 여기로 발걸음 하는걸 보면 분명히 나쁘지 않은 서양의 맛을 재현하고 있는 곳이다.


동양에서 즐기는 가장 서양에 가까운 서양 사람의 맛. 그런데 정말 맛있는 맥주를 얹은. 여기는 그런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먹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맥앤치즈를 못 먹은지 2년 반이나 지났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이 시국은 나쁜 시국이다.



참 기분 좋은 저녁이 매일 이어지는 대만의 밤이었다. 날이 추워지면, 그래서 따뜻한 남쪽 나라가 생각날때면, 그리고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 날이면, 대만에서 마신 맥주 한 잔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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