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다. 베트남 하이퐁, 첫번째

트래블러스 하이
2018-11-04 21:46
조회수 26

하이퐁, '18.10.15(월) ~ '18.10.17(수)


이것은 여행을 가장한 출장 보고서, 출장을 빙자한 여행 일기.


올해는 베트남 여행(?)이 유난히 잦다. 기록이랍시고 제대로 남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올해 5월 베트남 땅을 처음 밟아본 이래 5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입국 도장을 세 번 찍었으니, 한 달 반에 한 번 꼴로 찾은 것이다. 그것은 생산 공장을 국내에서 베트남으로 옮긴 것에 연유하는데, 덕분에 팔자에도 없을 것 같았던 베트남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덤이다.


'여행을 가다'의 소제목으로 베트남을 붙이기까지 반 년이나 걸린데에 늘어놓을 변명거리는 멀리서 찾지 않아도 매일 아침 머리를 감고 나면 세면대에 흩어지는 머릿카락 갯수 만큼이나 차고 넘친다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이것이 단 한번도 여행을 목적으로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 다닐때야 마음에 안드는 출장일지라도, 평소에 엄두도 내지 못하는 비싼 숙소와 좋은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소소한 위안거리라도 삼을 수 있겠지만, 여전히 혼자서 일하고 회사 비용이 고스란히 내 개인 계좌를 털어가는 형편에는 사치도 그런 사치가 없다. 일만 하기도 빠듯한 마당에 기록으로 무언가를 남길 시간도 마땅찮았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혹여 그것을 이곳에 그대로 옮긴다 하여도 아마 결재선을 모두 타고 올라가기까지 한 번 제대로 읽히지도 않을 출장 결과 보고서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고로 지난 두 번의, 여행을 빙자한 출장의 끝에 남은 기록은 흡사 불타버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잿더미 속에서 건져올렸을 잔해만큼이나 비루한 것이었다. 그나마도 이번 출장이 사진 촬영이라는 목적을 겸하지 않았다면 아마 마수걸이는 요원한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호치민, 하노이, 다낭, 냐짱은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할 뿐 아니라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한데 하이퐁은 영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애초에 여행으로 갈만한 이유가 딱히 없는 곳이다. 혹여나 누군가 하이퐁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물어온다면 하롱베이를 경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 정도는 해줄 수 있겠으나, 하롱베이는 하노이에서도 충분히 갈 수 있을만한 거리일 뿐 아니라 강안 경계 대대에서의 하루를 체험하고 싶은 것이 아닌 이상 오래 머무르기도 마땅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이퐁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 가방이 생산되는 공장이 하노이나 호치민으로 옮겨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인구 160만이 넘는 베트남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자 북부 지역의 모든 물동이 모이는 항구의 도시, 거기에 더해 LG전자의 꽤나 큰 생산 법인이 있는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이곳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매일 아침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일곱시 즈음에 날아오르면 열시를 전후로 하여 하이퐁 깟비 공항에서 출입국 심사대 직원과 아침 인사를 나눌 수 있으니 출장 가는 입장에서는 고맙기 그지없는 일정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전날 공항에 가지 않으면 그 기가 막힌 일정의 묘를 체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아침 시간에 하늘을 나는 것에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쏟아지는 잠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 안에서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이 장점은 네 시간 반에 가까운 비행 시간에서 오는 중압감을 덜어줄 수 있는 좋은 위안거리가 된다.



비엣젯 항공은 공짜 기내식도 없고 AVOD도 없고 뭐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내가 지불한 값에 해당하는 것은 나를 하이퐁으로 실어나르는 의자 하나가 전부다. 그런 덕분에 아무 고민 않고 다시 구름 아래로 내려와 착륙 준비로 부산할 때 까지 눈만 붙이고 있으면 된다.



별다른 일정이 없는 하루였지만, 그것은 오전 일정을 잘 마무리하였을 경우의 이야기다. 새로 만드는 가방의 샘플을 확인하고, 그 녀석의 사진을 찍는 것이 이번 출장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일단 가방을 가지러 가야했다. 커피 한 잔 제대로 마실 시간도 없이 공장 사장님께서 보내주신 차를 타고 공장으로 향한다.



공항에서 40분 가까이를 가야하니 결코 가깝지는 않다. 하이퐁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하노이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한적한 시골마을, 내 가방이 만들어지는 공장이 있는 곳이다.



간만에 뵌 사장님과 안부를 나누고, 새로 만들어진 가방을 확인하였다. 비슷한 종류의 가방을 이미 한 번 양산한 경험이 있으신 덕분에 요구한 사항이 모두 반영된 가방이 한번에 나올 수 있었다. 생각한 것과 다른 가방이 눈앞에 놓여있었다면 이곳에 온 의미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은근히 노심초사 하였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장님과 점심을 함께 하고, 지체없이 숙소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택시를 탈 생각이었으나 다행히도 공장 사장님의 선심 덕분에 편하게 하이퐁 시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직원 친구에게 팁을 쥐어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오전 내도록 일이랍시고 한 것은 기장님이 운전하시는 비행기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있다가 공장 직원 분이 운전하시는 자동차 의자에 궁둥이를 붙인 다음 사장님께 인사 한 번 드리고 가방 한 번 확인한 뒤 식당에 가서 콩국수를 먹기 위해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던 것이 전부였지만 피곤이 몰려왔다. 내심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풀어진 마음처럼 침대에 늘어지고 싶었지만 이렇게 파란 하늘을 그냥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이퐁 길거리에는 주인 없이 배회하는 개들이 많다. 딱히 사람을 의식하지도 않고, 무서워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귀찮은 존재라고 인식을 하면 했지.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녀석들의 길 건너는 솜씨가 아주 수준급이라는 것이다.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도로 위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길을 건너는 강아지를 한마리 찾도록 하자. 그 뒤꽁무니만 쫓아다닌다면 당신은 안전할 수 있다.



베트남은 호수가 많은 나라이다. 정말 많다. 하노이에는 크고 작은 호수가 수백개라는데, 하이퐁은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 수가 결코 적지 않다. 당장에 구글에서 지도를 켜고 하이퐁이라고 검색을 해보면 스무개 남짓한 호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숙소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이 호수도 그 중 하나인데, 심지어 면적으로 줄을 세우면 하이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어가지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다.



피곤에 반쯤 절여진 몸을 구태여 이끌고 나온 것은 다음날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이역만리 타향일지언정 아무데서나 셔터를 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조금이라도 더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동네를 둘러볼 필요가 있었다. 얼마나 긴 여정이 될 지 모르니 연유 커피 한잔으로 모자란 당분을 충전하면서 심기일전해본다.



베트남 길거리에는 우리가 '반미'라고 부르는 샌드위치를 파는 노점이 정말 많다. 탄수화물 덩어리 사이에 고기쪼가리를 아낌없이 끼워놓은 것이니만큼 맛이 없기가 더 힘든 이 녀석은 가격마저 소담하기 그지없다. 평소에 고기를 잘 먹지 못하는 것에 한이 맺혀있다면 아쉬운대로 반미 노점이 보일 때 마다 하나씩 사먹어 보도록 하자. 



갑작스레 추위가 찾아온 한국의 변덕 덕분에 비행기에서 내릴 때 까지 패딩을 입고 있었건만, 베트남의 달력은 아직도 세 달 전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반팔과 반바지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숙소는 하이퐁 오페라 하우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노이에도, 하이퐁에도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 자세히 볼 필요도 없이 동양의 그것이라 하기에는 이질감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건물은 프랑스로부터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에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월남전이라는 길고 큰 전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는 아직도 살아남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역사의 기록들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그리고 하이퐁의 가장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오페라 하우스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이번 출장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가장 큰 공을 돌리자면 단언컨데 곳곳에서 발견한 골목길들의 차지일 것이다. 결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겨운 곳곳의 분위기가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사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왜곡 없이 포착할 수 있는 것도,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이름 모를 수많은 골목길 덕분에 가능했다. 비록 누가 봐도 외국인인 내가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에 의문을 가지기는 했으나, 그 누구 하나 적대하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적 없는 하이퐁 사람들 덕분에 나는 기대했던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훨씬 생생하게 뷰파인더 너머로 담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한국에 1,100개가 넘게, 서울에만 500개 가까운 매장을 가지고 있으며 '길바닥에 널렸다'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 스타벅스가 맞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스타벅스를 만나는 감회는 한국에서 만날 때의 그것과는 꽤나 다르다. 이곳은 베트남에 서른개도 채 되지 않는 매장 중 하나이자, 하이퐁에서는 유일한 스타벅스 매장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원두 생산량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발전한 커피 문화가 너무나 공고한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굳이 스타벅스가 아니더라도 베트남에는 맛있는 커피가 많이 있다. 그렇다고 스타벅스가 타국에 비해서 많이 저렴한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현지의 한가닥 한다는 커피 체인과 비교하면 가격 면에서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나밖에 없으니 장사가 안될리 만무하지만 내가 현지인이라면 과연 얼마나 자주 이곳을 찾을까 생각하니 물음표가 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숙소를 오페라 하우스 근처로 찾은 것도, 하이퐁을 벗어나 다른 장소를 찾지 않고 시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마음 먹은 것도 이 구도 하나가 있음으로 하여 가능했다. 우연하게 발견한 한 장의 사진이 그 발단이었는데, 온갖 단서들을 조합한 끝에 마침내 사진으로만 보던 땅 위에 설 수 있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는 말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조금은 체감할 수 있었다. 온전히 체감하기가 힘들었던 것은 그저 기찻길을 벗하고 있을 뿐 이곳은 하이퐁에서 꽤나 땅값이 비싼 동네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생경한 모습이었는데, 놀랍게도 이곳을 가로지르는 선로들은 아직도 현역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기찻길 위를 한가로이 노니는 닭들이 행여 불안해 보인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저 놈들은 줄탁동시 이후의 삶을 기차와 함께 해온 노련한 녀석들이니 말이다.



지는 해가 애처로운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지평선을 반 쯤 걸친 볕이 조금은 부드러워진 어느 오후, 하이퐁에서 가장 큰 교차로이자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 않는 포장마차 골목이 있는 곳에 당도하였다.


처음 하이퐁에 왔을 때 이곳에 선 감상은 자세히 묘사를 하기가 힘들다. 그야말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기 때문인데, 한눈에 봐도 축구장 너덧개를 합쳐놓은 것 같이 넓은 이 공간에 그 흔한 횡단보도 하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고 한 번 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나 역시 지금은 잘 적응해서 가로지르는 것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하이퐁에 오면 항상 가는 노상 포차가 한군데 있다. 그곳은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살 정도 어려보이는 형제가 꾸려나가는 곳인데, 동생으로 추측되는 친구는 유시민 작가의 유년기를 쏙 빼닮았다.


아마도 한국인 중에 이곳을 나만큼 자주 찾는 이가 없는 탓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내가 현지화가 잘 되었다고 한들 베트남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들은 이제 나를 기억하는 것 같다. 낮과 밤의 교대식이 있기 전에 이곳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고, 근 한 달 반만에 찾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로 자연스레 나를 맞이하여 주었다.



특이하게도 삶은 땅콩을 내어준다. 나는 고향이 포항인 덕분에 익숙한 음식이지만 한국에서도 만나기 쉬운 음식은 분명히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삶은 땅콩을 이역만리 타향에서 만날 수 있으니,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지만 반갑기 그지없다.


이곳에서는 별 말 없이 자리에 앉아있으면 보리차 내어주듯 맥주를 한 잔 내어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아무 말도 않고 있으면 저 맥주를 찾는구나, 하고 으례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그렇게 받아드는 맥주는 하이퐁 지역에서 생산되는 생맥주인데, 단언컨데 내가 살면서 먹어본 맥주중에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하다. 정확하게는 두 번째로 맛있는 맥주인데, 첫번째로 맛있는 맥주는 스텔라 아르투아 공장에서 10분이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의 실시간으로 공수되는 생맥주를 먹은 것이니 논외로 치자면 언제든 접할 수 있는 맥주 중에는 가장 맛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에게 조금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이곳에서 한정없이 망중한을 즐겼을 것인데, 여전히 해야할 일이 남아있다는 것에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두 잔의 맥주와 몇 줌의 땅콩을 털어넣고는 자리를 나선다. 단 돈 600원. 엔도 아니고 달러도 아니고 위안도 아니고 싱가폴 달러, 호주 달러, 캐나다 달러, 유로도 아니다. 육 백 원. 한국 돈으로 맥주 두 잔에 천원이 안되는 가격이다. 우리 친구들 비오는 날에도 쏟아지는 비 맞아가면서 부지런히 일하는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하다. 한국에서 콜라 한 캔 사먹을 돈이면 여기에서 맥주가 너덧잔이니 부지런히 찾아주도록 하자. 안주도 싸고 맛있다. 깟비플라자 바로 대각선에 있는, 유시민 작가를 닮은 잘생긴 청년이 있는 포장마차이다.



한 숨 돌리고 나니 중천에 뜬 해가 반나마 그 모습을 감췄다. 퇴근 시간이 되어 오토바이 엔진의 실린더 소리로 꽉 찬 하이퐁 거리는 적막이 깃들 틈을 단 한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스타벅스에 잠시 들러 망중한을 즐기고 나니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낮과 밤의 풍경이 이토록 다른 것은 익숙치 않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 중 하나이다. 아무리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 싫다 하지만 그것을 쉬이 끊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낮에 먹은 콩국수 이후로 변변하게 뱃속에 넣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거리 곳곳에 셔터 내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 덕분이었다. 생각보다 밤 늦게 문을 연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숙소 근처에서 한 곳을 찾을 수가 있었다.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어보겠다는 심산으로 이것 저것 시켰는데, 제대로 된 한끼가 되기는 하였다. 워낙 많이 시킨 덕분에.



이렇게 잔뜩 뱃속에 털어넣고도 만원이 나오지 않은 것은 이곳이 하이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약재의 향이 가득한 생선 요리는 의외로 입맛에 잘 맞았는데, 고된 하루의 지친 심신을 가득 채워주는 듯 하였다. 제대로 된 가방을 받아든 것에 한시름 놓기는 하였다만 진정 중요한 일들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 무거운 짐을 받아든 채 내일을 기약하는 마음이 내심 무거웠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시킨 생선 한마리가 그런 나를 위로해주었다. 빈 틈 없이 가득 찬 배를 두들기며 하이퐁의 첫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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