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다. 베트남 하이퐁, 마지막

트래블러스 하이
2018-11-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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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퐁, '18.10.15(월) ~ '18.10.17(수)



간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아침이 밝았다. 그렇게나 가혹한 여정의 다음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친구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었다.


숙소의 덕을 봤다고 해야할지 마땅히 표현할 길이 없다.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데다가 가격까지 합리적이었고 평점과 투숙객들의 평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열쇠 달린 문이 있고 그 안에 침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남긴 평가 혹은 좋지 못한 의도로 공들인 작업물의 결과물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바퀴벌레와 모기를 벗삼아 함께한 하룻밤은 도저히 견딜만한 수준이 되지 못했다. 웬만해서는 잠자리를 가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이 트자마자 출소하는 장기수처럼 그곳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간밤의 사정은 친구 역시 다르지 않았는지 둘 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피곤에 찌들어 정신이 반 쯤 나가버린 몸뚱아리를 이끌고 힘겹게 목적지로 향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순조롭다면 한 번 쯤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굳이 번거로움을 마다하고 섬까지 찾아온 것은 이런 끔찍한 환경파괴의 현장을 목도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계획대로라면 이곳은 이번 여정에서 담아낼 마지막 사진의 배경이 되어야 했을 곳이건만, 이 섬을 찾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나 다름없는 깟바섬 남부의 모든 해변은 리조트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처참하게 파헤쳐지고 있었다. 사유지는 아니었을 것 같고, 분명히 정부의 재산이었을 것인데 이런 공사를 하도록 허가해준 정신나간 공무원은 누구였으며 이런 공사를 하겠다고 나선 정신나간 기업은 대체 어디인건지. 할말을 잃게 만드는 광경에 나와 친구는 아침부터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산더미에 조금 못 미치는 짐꾸러미가 말 그대로 짐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의욕도, 체력도 완전히 고갈된 우리에게 더 이상의 촬영은 무리였다. 이 사진을 끝으로 오늘 하루 더이상 가방은 뷰파인더에 담지 않으리, 굳은 결의와 함께 비장한 셔터 소리가 허공을 가늘게 가로질렀다.



워낙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어댔다. 떨어진 혈당은 요란한 경보음을 울려댔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식당을 찾아 힘겨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위생 상태와 자식들로 보이는 종업원들의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다행히도 음식은 맛있었다. 첫술을 뜨기 위해 숟가락을 잡은 손마저 가늘게 떨렸지만 위장을 채워가는 탄수화물의 구제로 말미암아 혼미했던 육신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베트남은 아이스크림이 맛있다. 비록 원하는 성취를 온전히 이루지는 못했지만 아침 식사가 훌륭했던 덕분에 한껏 기분이 고조된 나는 초콜렛이 아낌없이 발린 아이스크림으로 그 방점을 찍었다.



이제 아무렴 좋았다. 어차피 더 고민해봐야 사진은 나오지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깟바섬이 더 머무를만한 곳도 아니었다. 우리의 과제는 최대한 빨리 깟바섬을 벗어나는 것, 마침 하이퐁으로 향하는 쾌속선의 출항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저 조각배를 타고 순찰을 하는 것이 주요 일과중의 하나인 것인지, 배를 정박시키고 줄을 동여매는 공안의 손놀림이 무척 능숙하다.



밤에 내린 고요함은 아침을 깨우는 한적함으로 이어졌다. 조용히 밀려들어온 파도가 방파제를 만나 흩어지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우고 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배는 손님을 싣기 위해 부두에 정박했다. 곧 출발함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고, 반나절 남짓했던 깟바섬과의 짧은 만남도 이렇게 이별을 고하였다.



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비록 여정의 끝을 향해가고 있다고 하지만 어찌됐든 오늘 하루는 이 많은 짐을 온 몸에 포도송이처럼 달고 다녀야한다. 아무리 나의 소중한 밥줄이라지만, 그럼에도 자꾸 한숨이 나오려는 것은 몸이 먼저 반응하는지라 어찌 할 재간이 없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이 구름을 품은 하늘, 우산을 들기는 커녕 있는 짐마저 온전히 간수하기가 힘든데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바깥에 나가서 달리는 배를 경험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이 배에는 없다. 속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거리낌없이 달려온 쾌속선은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어제의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쉽게 열리지 않는 하늘이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지만 다행히 푸른 빛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동네를 거닐어보았다.



이 거리에는 옷가게가 아주 많이 늘어서있다. 여행이랍시고 변변하게 즐긴 것이 없었던 탓에 그것이 친구에게 미안했는데, 친구는 이 거리에 있는 모든 옷가게를 빠짐없이 둘러보았다.



더이상 가방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쥐어짜내어 나올 것이 얼마나 될 것이며, 이렇게 지친 몸과 마음으로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대신 마지막 하루를 위해 남겨진 카메라의 저장 공간은 친구와 풍경을 담기 위해 고스란히 쓰여졌다.



이 동네 사람들에게 오토바이는 일상이다. 헬멧을 쓰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이것을 위반하였을 때 물게 되는 벌금이 워낙에 크기 때문에 감히 어기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잘 없다고 한다.



절대로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겠다는 일념으로 단단히 무장한 친구에게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마음에 드는게 없으면 어쩔 수 없지'라고 말을 하면서 십리에 가까운 거리를 쉬지 않고 걸었으니,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면 그 결과는 꽤 참혹하지 않았을까 싶다.


천만 다행으로 그런 일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완벽에 가깝게 옷에는 관심이 없는 내 눈에도 괜찮아 보이는 코트가 지나가는 행인들을 맞아주던 어느 옷가게에서 친구는 파인애플도 아니고 꽃도 아닌 무언가가 매달린 티셔츠 하나를 마침내 사고야 말았다. 그 녀석은 50만동에 가까운 가격표가 붙어있었으니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한국에 돌아와 그것이 6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친구는 뒤늦은 환호성을 지를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한 벌의 옷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남김없이 불태운 자리에는 그저 앉고싶고, 쉬고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하였다. 택시의 힘을 빌려 '반카오'라는 이름의 한인 거리로 향한다.



이 거리에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MYA TEA'라는 이름은 카페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만 정작 이곳이 북적이는 것은 어둠이 내린 이후이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손에는 한결같이 맥주가 쥐어져 있다.


그런고로 이곳은 언제 와도 좋다. 낮에는 한가로이 나의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좋은 곳이고, 저녁에는 북적거리는 속에서 함께 흥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의 코코넛 커피는 참 훌륭하다. 물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무얼 골라도 '맛있다'를 연발하게 된다만 이 코코넛 커피는 그야말로 눈을 뜨게 한다.



이곳을 찾기 직전에 받은 마사지가 그리 시원하지 않았다고 불평불만을 하는 친구 덕분에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그걸 만회하고자 사용한 회심의 카드 같은것이었기에 내심 긴장을 했다만 다행히 친구 역시 매우 만족스러운 눈치다. 이곳은 인스타그램을 위한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진 장소다. 라는 평을 하였으니 업력이 결코 적지 않은 날카로운 감각의 재능있는 디자이너에게 받은 평가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



올해만 세번째 찾는 하이퐁인데 정작 현지 음식은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베트남 어딜 가도 길가에 널리고 널린 것이 분짜라고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적어도 하이퐁에서만큼은 아니었다. 대체 그것은 어느 지구의 베트남 이야기였을까 항상 의문이 있었는데, 하이퐁 경험이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세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분짜를 영접할 수 있게 되었다.



튀김기에서 꺼내는 것을 깜빡했는지 타다가 만 것 같이 생긴 넴은 어딜 가나 그런 모양새고, 언제 먹어도 특별한 맛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유독 넴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만, 그것을 내어줄 바에야 고기나 몇 점 더 얹어줬으면 하는 것이 분짜를 시킬 때 마다 하는 솔직한 생각이다.


이곳의 넴 역시 그런 운명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숯불향 그득한 잘 구워진 고기와 새콤한 맛 가득한 소스의 조합은 언제나처럼 훌륭하였다.



분짜는 언제 어디서 먹어도 입이 즐겁다.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접시는 한 그릇도 남지 않게 야무지게도 먹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한 하이퐁에서의 여정이 마침내 끝을 향하고 있다.



식사를 끝내는데 결코 오래 걸리는 음식이 아니라서 식당에서 보낸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하이퐁의 하늘은 어둠이 내려앉을 태세를 조금씩 갖추고 있었다.



빈손으로 가기는 섭섭하니 어김없이 빅씨마트를 들린다. 가득 찬 배를 진정시킬 겸 조금 걸었는데, 그 사이에 어둠은 훨씬 짙어졌다.



찾지를 못하는 것인지, 정말 이곳 밖에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이퐁 시내를 둘러보면서 이보다 큰 대형 마트를 만난 적은 한번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이곳 말고는 딱히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없다. 수중에 남아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계산기까지 두들겨가면서 남은 잔고를 야무지게 털어내었다.



결코 길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알뜰하게 사용한 지난 3일의 시간이었다. 만족스러운 가방도 받아들었고, 좋은 사진도 수없이 많이 남길 수 있었다. 비록 일에 치이는 것이 꽤나 힘겹기는 했지만 친구와 보낸 시간들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 짧은 시간은 어느새 지나간 일이 되었고, 작별의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어느 때보다 많은 수확이 함께했던지라 작별하는 마음이 유난히 더 아쉽고, 또 아쉽다. 다시 이곳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테지만 이번 여정의 잔상은 꽤나 오랫동안 여운을 남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아쉬운 마음에 이것 저것 부지런히 뷰파인더 안에 담아본다.



물론 진하게 남은 여운과 별개로, 쌓이고 쌓인 일거리로 말미암아 나와 친구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반나마 영어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 비행기에만 몸을 실으면, 정말 끝이 보인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이퐁. 곧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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