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대마도에서 만난 맛집들

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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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18.12.13(목) ~ '18.12.14(금)


한 달 전 후쿠오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곧 대한해협에 접어든 창 밖의 풍경, 오른편으로는 흐릿해지는 부산의 윤곽과 그 반대 급부로 선명해지는 일본이 교차한다. 만남과 이별이 동행하는 순간의 발 아래에는 대마도가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뒤의 나는 그 순간의 땅 위를 딛고 섰다. 한 해의 끝자락에 대마도에서 먹은 것들.



워낙 끊임없이 이 녀석의 존재를 알리는 표지를 만난 덕분에 꽤나 흔한 녀석인줄 알았건만, 나름 천연기념물이란다. 사방 천지에서 위험을 알리는 표지를 발견한 것은 이 녀석의 출몰이 잦기 때문이 아니라 워낙에 귀한 녀석임에 기인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1. 중화요리 키류켄

주소 : Otsu-1838 Kamiagatacho Sasuna, Tsushima

시간 : 11:00 ~ 22:00 (월요일 휴무, 14:00 ~ 17:00 재료 준비 시간)



규슈 100선에 빛나는 대마도의 숨은 원석, 비록 타베로그 기준으로는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곳이지만 그렇기에 더 기대가 되는 중화요리집, 키류켄이다.



히타카츠에서 서쪽으로 약 12km 가량 떨어진 '사스나'라는 동네에 위치한 이곳은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한 이유를 갖춘 동네도 아닐 뿐더러, 키류켄의 존재를 알고 이곳을 찾을지라도 과연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는 것인가 생각이 들게 할 만큼 마을의 생김새가 지나치게 범상한 덕분이다.



그렇다. 그 존재가 지나치게 범상하였다. 그런고로 별 생각없이 이곳을 찾은 나에게 키류켄은 그 소소한 한끼의 즐거움을 경험할 기회를 내어주지 않았다. 재료 준비시간의 존재를 모르고 무턱대고 찾아온 것이 화근이었다. 주인 어르신의 우렁찬 인사를 대신하여 나를 맞이한 것은 무섭게 가라앉은 적막이었다.


라면과 교자가 특히나 훌륭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이 큰 매력이기에 무척 궁금한 곳이다. 비록 나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였지만 부디 나를 대신하여 이곳을 찾아주는 분이 계신다면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이미 달성하고도 남은 것이라, 감개가 무량하기 그지 없을 것 같다. 혹 호기심이 동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월요일과 함께 오후 두시부터 다섯시까지의 재료 준비시간은 피할 수 있도록 하자. 부디 저 시간만큼은 피할 수 있도록 하자.



허기진 거리에 홀로 서서 맞는 바람은 유독 시리고 아프다.



2. 캇포레 (かっぽれ)

주소 : Otsu-919 Kamiagatacho Sasuna, Tsushima

시간 : 알 수 없음 (그러나 타 영업장의 재료 준비 시간에도 식사 가능했음)



몇 번의 감사를 표하는지 모르겠다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사스나 경찰서 관계자 분들께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한국으로의 무사 귀환은 고사하고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생면부지의 땅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로 말 한마디 통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지만, 경찰서 직원 분들의 하해와 같은 성은에 힘입어 찾게된 이곳의 이름은 '캇포레'.



벽면 한 쪽을 가득 메우는 유리창 너머로 가늘게 빛을 발하는 전등의 존재로 말미암아 간신히 이곳이 식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변변히 간판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일본의 유명 작가인 '시바 료타로'가 찾은 식당으로 나름의 명성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국민 소설가'라는 수식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일본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인 그의 방문이 사장님 내외에게도 꽤나 큰 영광이었는지 캇포레에는 '시바 정식'이 있다. 허나 그런 사실을 알았을리 만무한 나에게는 강아지의 이름을 한 귀여운 정식 정도로 여겨졌고, 역시 귀여운 것은 최고이기 때문에 시바 정식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시바 정식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재료가 소진되어 돈까스 정식만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 어차피 돈까스밖에 주문 가능한 음식이 없다면 굳이 메뉴판을 내어주실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는 하다만, 마침 일본 현지 방식의 돈까스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를 지나는 중이라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일본에서 맥주의 맛을 놓고 왈가왈부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 맥주는 훌륭할 것이다.



주인 내외의 손길로 분주해진 주방에서는 기름이 끓는 소리가 바삭하다. 곧 이어 상 위에 쟁반 하나가 오른다. 아직 입으로는 가져가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두께에 미소가 슬며시 번진다.



저작운동을 방해하는 질깃함과 퍽퍽함은 없으니 충분히 맛있는 한끼로 손색은 없다. 고기가 입에서 녹을리는 만무하다만 식도로 향하기까지 씹는 횟수가 많지는 않으니 그에 준하는 수준이라고 과장을 조금 보탤수는 있을 것 같다. 다만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미 뿌려진 채로 내어지는 소스의 간이 상당히 강하다는 점인데, 일본어에 능통한 분들이라면 따로 준비를 부탁드려도 될 듯 하다.


큰 기대를 품을 만한 이유를 찾아보려고 노래 한 곡의 시작과 끝, 그 사이의 시간을 할애해보았지만 딱히 건진 것은 없다. 굳이 발품까지 팔아가며 찾을 이유는 없는 듯 하지만 혹여나 지나가는 길에 '사스나'라는 표지를 발견하였다면 그때는 한 번 들러볼 수 있도록 하자. 어차피 근처에 마땅한 식당도 없다.



3. 야에식당(八重食堂)

주소 : 8 1 8 Kamitsushimacho Hitakatsu, Tsushima

시간 : 10:30 ~ 20:00 (일요일 휴무)



대마도가 작은 섬인 아니라지만 그것이 규슈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인데 그런 곳에 100선으로 꼽히는 음식점이 두 군데나 있다. 그 권위에 조금의 의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것은 대마도 분들의 솜씨가 좋은 것에 연유하는 것이라 생각을 하기로 했다. 여튼, 히타카츠의 또 다른 규슈 100선, 야에식당이다.



이 동네에서는 제대로 된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는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마치 네이버 키워드 광고를 통해 유입된 손님이 구매 전환으로 이어지는 것 만큼이나 희귀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제대로 된 간판을 갖춘 이 식당은, 적어도 히타카츠에서 만큼은 흔한 곳이 아니다.


물론 그 간판이 온전히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면 간판 아래의 문을 통해야 한다고 알고 지냈던 그간의 통념을 과감히 파괴한 이곳에서 나는 간판의 존재 의의에 대해 상당히 오랜 시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각이 좁은 렌즈를 통하였다고는 하지만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쯤하면 이곳에서 팔지 않는 음식이 무엇인지를 찾는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그런 덕분에 무언가를 선택해야하는, 긴 시간과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 과정이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너무 고생스럽게 점심을 먹은 탓이었는지 속이 불편하였다. 저녁 한 끼 만큼은 제대로 차려놓고 이것저것 경험해보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여력도 되지 않았고, 그러고픈 생각도 딱히 들지 않았다. 말끔한 상태에서 이곳을 영접했으면 했는데 여러모로 아쉬운 저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술 한 잔이 빠질수는 없다. 차가운 물에 희석한 보리 소주를 시켜보았다. 지난 후쿠오카 여행에서 마신 고구마 소주에 조금은 실망을 했던지라 쉽게 결심이 서지는 않았지만 도전의 대가는 상당히 달콤하였다. 과하지 않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게 입안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향은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순간에도 긴 여운을 남기었다. 이 날의 경험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덕분에 나는 곧 떠날 가고시마 여행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소주 양조장을 찾아가볼 생각이다.



밥과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일본 음식들이 으레 그러하듯 입에 넣는 순간 소금기가 가득 밀려든다. 소주 한 모금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지만 자꾸 물잔에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잡내 없이 잘 구워진 고기는 충분히 훌륭하였다. 하지만 온갖 종류의 자극이 혓바닥을 괴롭히는 통에 입 안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약간의 흠이었다.



워낙에 다양한 음식을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야에식당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히타카츠 주민이라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큰 기대는 없지만 무얼 먹어야할지 고민이 된다면, 적어도 어느 식당으로 향할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야에식당은 그 질문에 있어서만큼은 모범해답이 되어줄 것이다.



4. 히데요시(ひでよし)

주소 : 835 Kamitsushimacho Hitakatsu, Tsushima

시간 : 정보 없음 (20:00까지 하는 듯 하였으나, 유동적인 듯)



노부부가 운영하는 이 식당의 이름은 히데요시이다. 이름이 어째 마음에 들지 않는다. 히데요시라니. 이 불편한 이름의 기원을 찾아 헤매던 중 노부부의 이름에서 히데, 요시 두 글자씩을 따왔다는 설을 발견하였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래나 저래나 그 이름이 주는 첫 인상의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아마도 화장실을 고칠 생각이 영영 없어보이는 이곳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마도에서 이틀간 머무르며 찾은 곳 중 가장 깊은 인상을 주는 식당이었다. 여러모로.



보통내기가 아니다. 대체 기원을 알 수 없는 이 끔찍한 혼종은 누가 잉태한 것일까.



사장님 내외가 한글 공부를 하고 계신 것은 아닐테고, 글씨체가 모두 다른 것을 보면 손님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정성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부디 메뉴판에만 공을 들이는 분들은 아니어야할텐데, 약간의 걱정을 안고 주문한 것은 나가사키 짬뽕.



다정한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고압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사시미 정식이 개인적으로는 무척 궁금하였는데, 밑줄까지 그어가며 주문을 하지 말아달라는 두 분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위생 상태가 훌륭한 곳은 아니다. 딸리는 일손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되지만 지난 손님 상이 치워지는데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활짝 트인 주방 너머로 주인 내외의 모습을 편하게 볼 수 있으니 음식에 대해서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다만 당장 내 옆에 놓인 빈 접시가 기약없이 방치되어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썩 달갑지는 않다.



이 녀석을 한 끼 식사로 먹어본 적이 있었는가 싶다. 술안주가 아니고서는 메뉴판에서 본 적도 거의 없는 듯 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마도에서 먹은 모든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육수는 충분히 진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깔끔하다. 아낌없이 들어간 해산물과 고기는 의외로 조합이 훌륭하다. 음식에 대해서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좋은 재료를 썼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입 안에서 씹히는 모든 것의 식감이 신선하다.



속이 완전히 편해진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커진 눈으로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워냈다. 언제 대마도를 다시 찾을지 기약은 없다만 혹 이 거리를 다시 찾게 된다면 어느 식당의 문을 열어젖힐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때는 반드시 사시미 정식을 먹어보아야겠다.



5. 포에무 빵집(パンのポエム)

주소 : 833 Kamitsushimacho Hitakatsu, Tsushima

시간 : 08:00 ~ 18:00 (일요일 휴무)



한 분의 노모께서 운영하는 이곳은 아마도 히타카츠에서 하나밖에 없는 빵집이다. 거대한 규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화려한 매대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고양이가 어물전 못 지나친다고, 무언가에 홀리듯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이곳은 스파게티빵과 야끼소바빵으로 이름이 잘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시간이 늦은 탓이었는지 그저 날이 아니었던 것인지, 안타깝게도 그 녀석들은 이미 새로운 주인을 만나 매대를 모두 떠나간 듯 했다. 수중에 남은 돈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선택한 것은 메론빵 하나와 모닝롤을 닮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 하나.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먹는 조식이다. 조금 더 맛있는 조식. 생긴것만큼 정직한 맛을 가졌다. 모닝롤처럼 생긴 빵에서는 모닝롤의 맛이 난다. 그 안에 들어있는 잼에서는 잼의 맛이 난다. 함께 먹고 있으니 잼을 바른 모닝롤의 맛이 난다. 그렇다. 이것은 잼을 바른 모닝롤이다.



굳이 이곳까지 와서 이 녀석을 먹을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이 녀석 역시 한마디로 정의가 되는데, 쿠키가 되다 만 소보루빵이다. 특별한 맛이 없을 것 같아보이는 외관처럼 그 어떤 특별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찾는 것만 찾는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동네 빵집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데에는 야끼소바빵과 스파게티빵의 지분이 9할 이상일 것이다. 그 녀석들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아냈다면 그 특별함의 이유를 경험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 혹 히타카츠를 찾는 분들이 계시다면 나를 대신해 야끼소바빵을 꼭 드셔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워낙에 조그마한 시골 동네인지라 대단한 것을 기대하고 찾는다면 많은 실망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를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거라고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만.


선택이라는 것이 무의미할만큼 식당의 수도 많지 않고,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도 많지는 않다. 하지만 한국인 관광객이 있음으로 하여 유지가 되는 식당들이 많은 만큼 우리 입맛에 맞게 각색이 된 음식들이 상당히 많은 듯 하다. 대단한 성공을 바라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처참한 실패를 경험하기도 쉽지 않으니 혹 대마도를 가게 된다면 어느 식당이 되었든 부담없이 문을 열어젖혀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보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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