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지나는 3월의 홍콩

트래블러스 하이
20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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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19.03.09(토) ~ '19.03.13(수)



터를 잡고 살아보지 않는 이상, 헌 계절을 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 여행을 제외한다면 여섯 번의 입국 도장을 받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억하는 홍콩은 깨끗한 하늘과 포근함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다.



처음 밟아 본 홍콩 땅, 무심코 들이쉰 공기는 무겁고,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것이 2013년의 겨울이었으니 그로부터 5년 반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알지 못했던 홍콩의 봄, 일곱 번째 만남 끝에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다.



일곱 번째 회합의 시작이 그리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미리 찾아본 홍콩의 날씨는 구름을 가르는 빗금이 잔뜩 그어져 있었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추적이는 소리와 빗방울을 벗삼아 나는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음 날 아침의 하늘은 어딘지 모르게 일말의 희망을 건넬 듯 하면서도 나의 손을 쉽사리 잡아주지 않았다.



되려 우산을 사야하나 고민을 하게 만드는 빗발이 조금이나마 품었던 희망을 함께 씻어내릴 뿐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헛된 희망 대신 맛있는 완탕면 한 그릇이나 하는 것이 낫습니다.


하늘의 마음은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위장을 어떻게 즐겁게 만들지는 내 의지로 가능한 것이니, 괜한 기대는 접고 맛있는 것들이나 잔뜩 찾아다녀본다.



맛있는 것을 찾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정말 맛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청힝키'라는 이름의 간판을 달고 있는 이 만두집에서 정말 재미난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쪄낸 만두의 아랫 부분만 다시 튀겨낸 덕분에 바삭함과 촉촉함을 한 번의 저작행위만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번 홍콩 여행에서 발견한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훌륭했다.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오는 행복은 그 크기가 유별한 법 아니겠는가. 간만에 찾은 센트럴, 소호를 걷다보니 땅바닥을 적시는 빗방울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한다.



이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해야 할 일이 밥을 먹는 것인지, 식료품을 고르는 것인지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시선을 잡아끈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다만 들어갈 엄두가 쉬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 아쉽다.



2년의 시간이 길다면 긴 것일테고, 짧다고 생각하면 그리 느낄 수도 있을테다. 나는 아마 후자에 조금 더 가까웠나보다. 간만에 만나는 이곳의 풍경이 바로 어제 만난 것 처럼 익숙하고, 따뜻한 덕분에 거리를 걷는 나의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두 다리에게는 잠깐의 휴식이 필요했다. 턱을 괴고 앉아 멍하니 바라본 창 밖으로는 눈으로, 사진으로, 혹은 영상으로, 어떤 식으로든 그들이 딛고 선 공간과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내려는 사람들의 행렬로 분주하였다.



새로운 만남이 있으면 예고없이 찾아오는 이별도 있기 마련이다. 기념품처럼 아직도 집에 잘 모셔두고 있는 이곳의 케찹이 그리워 다시 찾았건만, 'Big Fernand'라는 이름의 햄버거집은 조금 어이없게도 위생당국의 철퇴 한 방에 불과 한 달 전에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



아쉬운 마음을 가눌 도리가 마땅찮아 정처없이 떠돌고 있는데, 층고가 높고 탁 트인 전망의, 통유리가 둘러진 창가를 따라 한 무리의 미어캣처럼 인파가 빼곡하다. 어딘지 모르게 후끈한 공기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고 말았는데 영 생경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아는 F1 차량과는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 싶어서 찾아보았더니, E-PRIX라는 이름의 전기차 경주 대회의 2019년 5라운드가 열리고 있는 현장이다. 아무리 배기량이 작아진 터보엔진이 F1의 로망을 앗아가버렸다고 해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건 어떤 연유인지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다.



귀를 찢어놓을 듯한 배기음의 부재가 약간 아쉽기는 했으나, 영상으로만 만나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진귀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느릿 느릿하게 굽이진 길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시야에서 사라지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은 여간 장관이 아니다. 덕분에 내 유튜브 계정의 추천동영상에 F1 영상들이 더 자주 고개를 들이밀게 된 것은 덤.



이번에는 전기차였다면, 언젠가는 루이스 해밀턴과 세바스티안 페텔을 두 눈으로 직접 볼 날을 고대하며, 안녕히 계십시오.



진귀한 경험이 있어 즐거웠던 오늘의 저녁은 사랑해 마지않는 데낄라 온 데이비스에서 그 방점을 찍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잘 먹겠습니다.



이곳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홍콩에 올 때 마다 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 생각을 다시 할 수 있음에 감사하였다. 이 곳의 그 무엇도 변하지 않았음에 기인하였기 때문에.



집으로 가는 지하철역의 한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 광고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다. 뭔가 싶어 찾아보니 '아미피디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전 세계에는 현재 방탄소년단의 지난 자취를 저장하고 있는 퍼즐 조각이 2,080개가 흩어져 있다고 한다. 방탄의 팬덤인 '아미'들이 4주의 시간 동안 이 조각들을 찾아서 문제를 풀고, 하나로 합쳐내는 작업을 해야하는데, 이것은 그 중에 199번째 조각인 것이다.


기획사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기획을 실행으로 옮겨내는 그 치밀함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 순간이다. 일을 하려면, 이렇게 제대로 해야한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그리고, 비로소 홍콩에 봄이 찾아왔음을 만끽하게 되었다.



이렇게 잘 포장된 초콜릿 상자 더미에도 봄의 빛깔이 내렸다.



건물 사이를 맴돌다 길을 잃고 곁으로 스치는 바람이 따뜻하다. 아무리 올려다 보아도 한 점 없는 구름에, 그리 높지 않은 고도를 지나는 한낮의 볕은 따갑지 않게 땅 위에 잘게 부서진다. 영락없는 봄이다. 홍콩에도 봄이 있었다.



이런 날씨를 그냥 허비하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다. 봄을 물어온 하늘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부지런히 드나든 홍콩인데, 이렇게 맑게 씻은 모습을 눈에 담기는 처음이다. 초침이 흐르는 것 조차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참으로 열심히 홍콩의 봄을 눈에 담아내었다.



비록 혀가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위장은 만족하였고 눈은 만족하였으니 그걸로 됐다. 모든 시도가 성공으로 귀결되면 얼마나 좋겠냐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나이도 되었다.



연락선을 타고 침사추이로 건너오니, 옆에는 올려다보기도 쉽지 않은 거대한 배가 닻을 내리고 섰다. 나는 언제 이런 배 한 번 타보려나.



한국에서도 만나기 힘든 하늘의 빛깔과 공기의 포근함이 홍콩에 내렸다. 이런 날은 카메라의 초점이 닿는 그 어느 곳이든 작품이 된다.



온기라고는 찾아본 적이 없는, 층고가 낮은 이 동네의 아파트에서 따뜻함을 느낀다는게 참 흔한 일이 아닌데. 옮긴 시선을 거두고 싶지 않은 날이다.



그냥,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좋은 날이다.



눈에 담은 풍경이 차고 넘친다고 배가 부를리는 만무하니 쌔빠닥에 기름칠 한 번 해야 쓰겄다. 한국에 둥지를 튼지가 오래지만 이상하게 인연이 없었던 셰이크셱과의 첫 만남을 홍콩에서 처음 경험하는 따뜻한 볕 아래에서 맞이하였다.


대체 밀크셰이크에 감자튀김을 찍어먹는 정신나간 발상은 어떤 모지리가 한걸까 항상 의심을 하고는 했었는데, 깨어있지 못한 무지몽매의 소치는 다름아닌 나였던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 앞에 놓여진 밀크셰이크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흘린 눈물로 말미암아 소금기를 더해만 갔다.



한 무리의 한량들을 싣고 물수제비처럼 파도를 가르는 이 녀석의 종착은



야트마한 구릉에 조용한 바람이 머무는 곳, 라마섬이다.



이 섬 안에서 내연기관이 바퀴를 굴리는 수단은 이 녀석이 유일한 듯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소한 모습에 과연 제대로 구실이나 할까 싶었지만, 피스톤이 쉴 새 없이 뱉어내는 경박한 소음은 연막이었는지 시멘트 포대를 잔뜩 싣고도 제 몫을 거뜬하게 해낸다.



여기에는 분명히 동물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집주인이 살고 있을 것이다.



펭차우도 가보았고 청차우도 경험해보았으니 그 다음이 라마섬인 것은 나름 자연스러운 수순이기는 하다만, 그것과 별개로 반드시 이곳을 와야하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마음 속의 따거, 주윤발 형님의 나고 자란 곳이 바로 라마섬이다. 그래서인지 섬을 걷는 곳곳에는 그와 함께한 이들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발전소를 배경삼아 펼쳐진 해변의 풍경이 무척 이채롭다. 자리를 펴고 누워 봄의 볕을 즐기는 이들도 간간히 보인다. 여기가 천국이다.



가는 걸음을 계속 하다보니 지나온 자취가 조금씩 발 아래에 잠긴다. 한 눈에 담아본 이곳의 모습은 그저 평화롭고, 또 평화롭다.



두 시간 남짓을 걸으니 아랫마을에 도착하였다. 해는 조금씩 고도를 낮추어 산 중턱 어드메를 지나고 있었고, 우리는 다시 돌아가는 배를 기다렸다.



지는 해가 마천루에 새겨놓은 잔상이 참 아련하다.



트랜스포머에서 분명 본 것도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악을 추종하는 무리같이 느껴지는 것은 고정관념일까.



누군가에게는 식상한 일상의 연장일지 몰라도 손님에게는 이곳을 찾을 이유가 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에 유난히 밝게 빛나는 홍콩의 밤이다.



날이 갈수록 봄은 진지함을 더했다. 몇 시간 뒤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웻랜드에 위치한 숙소에 묵었으면서 웻랜드를 가지 않는건 어쩐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의 시간을 쪼개어 떠나는 날의 아쉬움을 달래본다.



잘 있으렴, 곧 다시 만나자꾸나.



5일의 여정 중 세 끼를 함께한 식당 상하이 라오라오. 이 녀석이 있음으로 하여 고민의 시간이 줄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이다.



안녕히 계세요 봄의 홍콩! 언제가 될는지 모르지만 계절이 바뀌는 어느 날 다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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