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함께한 간사이에서 먹은것들

트래블러스 하이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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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19.04.17(수) ~ '19.05.09(목)



딱히 의미가 없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공간의 제약 없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언제 어디서든 쳇바퀴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혹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그 절차로는 노트북 전원 한 번 누르는 것이 전부이니 그야말로 껌 한 통 사는 것 보다 간단하다. 누구의 일상이 숨가쁘지 않겠냐만, 언제나 쳇바퀴를 지고 사는 일상에 익숙한 나는 적어도 여행의 순간 만큼은 느린걸음의 관찰자가 되고 싶다.


불과 지난주까지 나는 일본에 있었다. 쳇바퀴 대신 자전거 바퀴를 부지런히 굴리면서. 가끔은 기차에, 때로는 버스에 몸을 실은 바깥의 풍경은 스치듯 흐른다. 하지만 느리게 구르는 자전거 바퀴 곁을 지나는 그것은 조금 더 긴 시간을 자리에 머무른다. 그리고 그 풍경의 조각들은 조금 더 선명한 잔상을 여정의 주변으로 흩어가며 서른의 가는 봄 속에 박제되었다.


자전거와 함께한 간사이에서의 시간에 낭만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고민의 여지 없이 그렇다고 하겠지만 인후에서 시작하는 소화기계통이 같은 대답을 할지는 조금 의문이다. 기대처럼 되지 않는 것이 훌쩍 떠나는 여정의 재미라고 하지만, 의외의 연속이 지나쳤던 덕분에 혓바닥 만큼은 일감이 딱히 없는 와중에 심심한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작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순간은 사지가 고생스러운 날이다. 거처를 옮겨야 하니 가져온 짐을 모두 짊어져야 하고, 다음 목적지와의 조우를 위해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생이 과하니 입이라도 심심하지 않게 달래줘야 할텐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 입지선정의 식당들이 있어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주린배를 움켜쥐는게 일상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고된 여정의 연속, 무얼 먹을까 하는 고민은 꽤나 고급스런 사치였다.



사치도 여유가 있을 때나 부리는 것 아니겠는가. 간사이 공항을 빠져나와 오사카로부터 시작하여 나라와 교토를 거쳐 히메지까지 계속된 여정에서 그런 일말의 여지는 거의 허락되지 않았다.



정말 한결같은 끼니의 반복이었다. 아마 나의 일본어가 조금 더 능통하여 이 식당에서 제공하는 회원 적립을 할 수 있었다면 몇 단계의 등급 상승은 어렵지 않게 가능했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소와 돼지, 쌀에게 정말이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녀석들이 없었다면 편의점에서 대충 고른 도시락이 주차장 구석 한 켠을 식탁 삼아 매일 끼니에 올랐을테니 말이다.



사실 무얼 먹을가 하는 고민은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장이 제일의 반찬이라, 흔해빠진 교자 전문점의 4천원짜리 볶음밥도 그 순간만큼은 고든 램지가 각잡고 차려낸 한 끼로 훌륭하게 둔갑하니 말이다.



이렇게 가끔 회전초밥집이라도 발견하는 날은 그야말로 축제나 다름없다.



포유류가 아닌 다른 것을 입에 가져갈 수 있는 몇 안되는 순간이다. 생각보다 많이 맞이할 수 있었던 기회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자전거와 함께하였지만 가끔은 자전거를 내려놓고 더 느린 걸음으로 도시의 곳곳을 탐험하기도 하였다.


어느 여행이 그렇지 않겠는가. 새로운 맛을 찾아다니는 것 만큼 재미가 쏠쏠한 것도 없다. 그것이 가끔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더라도 말이다. 이 지나치게 건강한 맛의 오렌지주스는 '아름다운 맛'과는 꽤나 거리가 있었지만 그것도 나름의 경험이고 재미이다.



물론 경험과 재미보다는 맛이 조금 더 우선한다. 예기치못한 기쁨으로 선물처럼 찾아오는 순간들 역시 없지는 않았는데, 고베에서 만난 '육갑목장'이라는 이름의 이 아이스크림은 그 행렬의 선봉에 서기에 모자람이 없다. 고베에 다시 한 번 가야되는 이유가 있다면 나는 주저않고 이 아이스크림을 꼽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히메지는 고베로 돌아갈 채비를 마친 아침에 향기를 더해준 이 커피 한 잔으로 기억된다. 마지못해 받아든 한 모금, 단숨에 세 잔을 내리 비웠다. 숙소의 여행객 한 분이 직접 내리고 내어주신 이 한 잔과 함께한 시간은 비록 찰나였지만, 그 여운은 아직까지도 선연한 자취를 그리고 있다.



참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히메지이다. 한 봉지에 2천원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큼한 치즈가 가득찬 이 빵 역시 그 기억의 한 조각이다.



빵 공장에서 갓 만든 빵을 파는 빵집이라니, 이렇게나 환상적인 광경이 또 어디있겠는가. 덕분에 고베로 돌아오는 길이 허전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무리 피곤에 지친 날들이 계속된다고 해도 마시는 즐거움을 완벽히 배제할 수는 없다. 가끔은 오는 내일에 허락된 휴식을 핑계삼아 취하기도 하였다.


빵은 맛있고 사케도 맛있는 것이니 그 둘의 조합 역시 훌륭하다. 그 술상이 해가 중천에 뜬 와중에 차려진 것이니 더할 나위 없음은 말 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저녁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지만 그런 덕분에 가끔의 일탈이 즐거울 수 있었다. 네 달 째 자전거와 함께 세계를 유람하고 있다는 스위스 출신의 친구와, 프랑스에서 건너와 이미 한 달 넘는 시간을 일본에서 보낸 친구. 그들과 함께한 고베의 저녁에 오른 음식들은 식료품 가게에서 급하게 공수한 것들이었지만 그런게 대수겠는가. 시간을 공유할 매개가 되어준 것으로 이 녀석들은 그 임무를 차고 넘치게 완수하였다.  



무엇보다 가고시마에서 먼 길 달려 이 자리에 함께한 소주가 있었으니,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마음에 아쉬움이나 후회 같은 것은 전혀 없었으니 제대로 누리고 온 한 달 남짓한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떠나는 날을 보내는 마음이 아무런 감상에 잠기지 않은 채일 수는 없다. 이미 반주 삼아 두어 잔의 하이볼을 비워냈지만 편의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일상의 돌아가는 쳇바퀴에 다시 몸을 맡긴지도 벌써 일주일이 되어간다. 차라리 경기를 했으면 싶었을 정도로 지겨웠던 덮밥의 달짝지근함도, 육갑목장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마다 두 손에 잔뜩 흘러 매번 느껴야했던 끈적함의 기억도 벌써 조금씩 희미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마 언젠가는 다시 그리워질 때가 오겠지. 그때는 조금은 가벼운 차림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간사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겠다. 자전거는 정말이지 너무나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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