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에서 먹은 것들

트래블러스 하이
2019-05-30
조회수 134

간사이, '19.04.17(수) ~ '19.05.09(목)



한 달 가까이를 유람했다. 짧은 다리 벗삼아 두 바퀴를 부지런히 굴려가며. 느릿하게 나아가는 자전거 만큼의 속도로 양 옆을 스치는 간사이 지방의 풍경을, 차고 넘치게 두 눈에 담고 왔다. 시베리아에서 건너온 차가운 손님을 몰아내고 주인이 되었을 봄은 아직 안방을 내어줄 생각이 없는 듯 했고, 아침 저녁으로 살며시 식어드는 공기가 살갗에 닿는 서늘함은 그 증거가 되어주었다.


부지런히 즐겼고, 부지런히 즐거웠다. 2010년대를 보내는 마지막 봄의 간사이, 그 중 고베에서 먹고 즐긴 것들이다.



1. 스테이크 랜드


주소 / 지도 / 시간 : 체인점이므로 구글지도에 '스테이크랜드' 검색 후 참조

홈페이지 : http://www.steakland.jp (일본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구글의 기계번역을 사용하도록 하자)


 ※ 체인점이라기보다는 별관 개념의 점포가 몇 군데 있는 것 같다. 대부분 고베 산노미야역 근처에 위치하여 있으니 찾기도 어렵지 않을 것. 다만 점포별로 영업시간이 상이하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여 점포 셔터를 붙잡고 통곡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한국으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사실이 한가지 있는데, 먹고 즐긴 것들의 기록을 상당히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많은 시간 자전거를 벗삼은 탓에 잔뜩 주린 배가 셔터에 손가락 가져갈 틈 조차 쉬이 허락을 하지 않은 탓인가 싶은데, 그것보다는 워낙 즐거운 시간을 보낸 덕분에 사진 따위는 아무렴 뒷전이 되어버린 경우가 더 많았다.


명패제작을 주업으로 하는 곳인가 싶은 착각을 부르기 딱 좋은, 이곳 스테이크 랜드가 그러했다. '소'와 관련된 온갖 상들은 다 받아본 것 같은 위용의 이곳은, 맛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보장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나의 눈과 귀는 물론 마음까지도 덩달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평소에도 소를 그닥 즐기지는 않으니 일본에서라고 다를 이유는 없었다. 다만 고베에 왔으니 방명록에 이름 석 자는 남겨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찾은 이곳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이들은 물론이고, 제대로 한 끼 경험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준비도 제대로 되어 있는 곳인지라 조금은 이른 점심 시간이었음에도 앉을 자리 찾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생고기가 한 장의 스테이크로 변모하는 과정은 온전히 눈 앞에서 펼쳐진다. 기다림의 시간이 결코 지루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이다.



핏기가 가시는 흔적만 남긴 채 접시에 안착한 한 무리의 소고기, 그 중 한 덩어리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자마자 짧은 탄식이 새어나온다.



대단한 관심이 없는 만큼의 지불용이가 있었던 덕분에 가장 저렴한 것으로 한 접시 받아들었는데,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만오천원을 조금 넘어서는 돈을 쓰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나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는데, 고작 오천원 더 쓰는게 그렇게 어려웠나 싶은 생각이 들어 아쉽고 또 아쉬웠다.


아마 이곳을 또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고베라는 도시에서만큼은 스테이크라는 음식에 호기심이 생긴 이상, 더 맛있는 어딘가를 찾아내어 경험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처럼 스테이크에 별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훌륭한 관문이 될 수 있고, 부담없이 시도해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추천을 하기에도 무난하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쉴새없이 올라오는 여행자들의 경험담이 그것을 차고 넘치게 증명하고 있다.



2. 카페 에덴


주소 : 4-chōme-2-13 Minatochō, Hyōgo-ku, Kobe, Hyogo

지도 : https://goo.gl/maps/4wVSrdh3UU9iabH27

시간 : 08:00 ~ 18:00 (일요일은 16:00까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기대가 너무 없는 채로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되면 기쁨을 넘어 당황을 하게 되는, 그 상황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삭제되는 때가 말이다.


제대로 된 사진을 남겨오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을 하다보니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다만, 변명이긴 하나 거짓은 아니다. 나는 정말로 한 잔에 4천원도 되지 않는 커피에 정신이 팔린 탓에 제대로 된 사진을 한 장도 남기지 못할 뻔 했으니 말이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가게 문을 열고 한 발 딛으면, 카페보다는 다방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법한 공간이 눈앞에 나타난다. 가게 사장님과 함께 세월을 보냈을 탁자와 의자들은, 수많은 이들이 피워낸 담배연기를 시간의 흔적 만큼 머금었다. 한 쪽 벽면에는 배우로 보이는 이들과 사장님이 함께 찍은 사진이 빼곡하다. 해가 중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명은 음침했고, 앉은 자리는 흠잡을 데 없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한 분위기가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운 시간동안 경험한 수없이 많은 커피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곳을 택할 것이다. 딱히 많은 표현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혹여나 누군가 고베에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이 글의 마지막을 향해 스크롤을 더 내리는데에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 시간에 이곳으로 걸음을 향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훨씬 값진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3. 육갑목장 아이스크림(六甲牧場カフェ Motomachi Stand)


주소 : 2-chōme-1-13 Motomachidōri, Chūō-ku, Kobe, Hyogo

지도 : https://goo.gl/maps/fjXXkwV1Li1cfgbM6

시간 : 10:00 ~ 18:00



아마 이것은 지극한 팬심의 발로, 그렇지만 고베를 찾은 다음에야 난킨마치를 피해갈 확률이 영에 수렴하는 것을 알기에 부담없이 끄적여보는 것.



나는 아이스크림을 정말이지 사랑한다. 이번 간사이 유람에서도 예외는 없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나는 총 스물세개의 아이스크림을 먹어 없앴다. 총 23일의 일정이었기 때문에.


폴바셋의 아이스크림을 처음 베어물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돈을 참 많이 벌어야겠구나 생각을 했었다. 조금은 사악한 가격으로 말미암아 가계 재정에 적지않은 부담을 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고베에 와서 나는 조금 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아이스크림은 한국에서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고, 나는 이걸 먹기 위해서 고베를 더 자주 가고 싶어졌다.


고베 직항 노선이 취항하는 것은 언제쯤 실현 가능한 꿈이려나.



4. 라멘 타로(らぁめんたろう)


주소 / 지도 / 시간 : 역시나 체인점이므로 구글 지도에 아래의 상호명을 검색하자

らぁめんたろう


※ 워낙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것이 일본의 라면이다보니 큰 기대는 내려놓는 것이 조금이나마 이곳을 찾았을 때 식사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일본의 라면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더 표현에 엄밀을 기하자면, 일본 정통의 맛을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대부분의 라면을 싫어한다. 가고시마에는 '라멘 코킨타'라고 하는 꽤나 유명한 라면집이 있다. 구글지도 평점은 물론이거니와 타베로그에서도 그 맛을 인정 받은 곳인데, 제대로 된 일본식이라는 것이 그 주된 평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좋아한다. 라면을 제외한 모든 음식이 훌륭하기 때문에. 그 정도로 나에게는 일본의 라면이 입맛에 맞지 않다.


소금을 들이붓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인지 거꾸로 포대자루에 물을 탔나 싶을 정도로 짠맛이 강한 것이 그 이유인데, 가고시마에서 된통 당한 이후로는 쉽사리 라면이라는 음식을 입에 데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를 멈추지는 않는다. 사람의 취향과 입맛이 한결같을 수는 없을테고, 일본의 수많은 주방장님들 중에도 비교적 나와 입맛이 비슷한 사람이 존재할테니 말이다.



수많은 우연의 중첩이 만들어낸 발견이었다. 하필 그 시간에 배가 고플 줄이야, 하필 눈앞에 보인 것이 이곳일 줄이야, 이상하리만치 바로 옆에 자리한 돈까스 집에 눈이 가지 않았던 것은 왜였는지.


아무리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별나게 맛있는 것에는 눈이 뜨이게 마련이다. 돼지를 우려낸 육수는 적당한 기름기와 함께 적당히 구수한 향을 머금었다. 약간의 긴장을 가진 채 한 모금 목구멍으로 밀어넣으니 단맛이 입에 퍼진다. 세상에나, 짜지 않은 일본 라면이라니.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만큼 기쁜 순간이다.



특이하게 김치를 내어준다. 다만 이것 역시 달다. 아마도 라면 국물이 달았던 것 역시 이 김치에 기인했던 것 같다. 한국 본토의 맛을 생각한다면 물음표가 무수히 그려질 수 밖에 없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하루에 하나씩 먹어야 하는 것은 단 것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명으로 얹어주는 돼지고기의 부실함 정도가 아닐까 싶다. 분명 맛이 없는 것은 아닌데 어딘지 모르게 씹는 재미가 없다. 조금 더 굵직하고 큼직하게 썰어줬다면 입안에 퍼지는 돼지고기의 향취를 원없이 느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감안하여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고, 짠맛에 굴복하여 중도에 낙오하는 것 없이 한 그릇을 즐겁게 비워낼 수 있었다.


참고로 한국의 색깔이 묻어있는 일본의 라면 중에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것은 나가노역 뒷편에서 먹었던 된장 라면인지 간장 라면인지 모를 무엇이었다. 차슈가 정말 기가 막힌데, 혹시나 나가노에 갈 일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한 번 들러봐도 좋을 것이다.


라멘 미소야(Ramen Misoya)


일본에서 라면을 먹을 때 마다 거듭된 실패로 인해서 의기소침해진 분들이 있다면, 이곳은 그 지친 심신을 달래는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점이 고베 도처에 다양하게 있으니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고베는 맛있는 음식이 많은 동네이다. 바다를 벗하여 평온함이 있고, 매 끼니의 식탁에는 즐거움이 충만하였던 덕분에 이곳에서의 시간은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감사합니다 고베. 덕분에 입이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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