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중에서 먹은 것들

201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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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19.06.07(금) ~ '19.06.26(수)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합친 것보다 조금 더 큰 면적의 조그마한 섬나라. 그나마도 땅덩어리의 7할을 덮고 있는, 때로는 3천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빽빽하게 심겨진 콩나물 시루처럼 살아가는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용' 이라는 칭호를 꿰차기도 했던 네 국가 중 하나인, 작지만 약하지 않은 나라. 강산이 세 순배 바뀌는 시간 만큼의 단절이 이곳을 꽤나 먼 나라로 느껴지게끔 하지만 여튼 중화민국은 그런 나라다.


일 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스치듯 떠나온 것이 아쉬웠던지라 조금은 넉넉하게 시간도 들여서. 대만의 남쪽 하늘을 가로질러 가오슝 공항에 내려앉은 비행기는,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부지런히 바퀴를 구른 기차의 꽁무니를 좇아 타이페이의 활주로에서 다시 날아올랐다.


타이중



인연더러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라 한들 들은 채나 할까. 혹시 예고와 함께 찾아오려나 싶어 상상을 해보면, 왠지 단어가 가진 매력을 빼앗아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행간도 아니고 일상에서 그런 의미를 담아낼 수도 없다. 하지만 타이중을 생각할 때 마다 나는 인연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팔자에도 없던 대만과의 인연이 타이중에서 시작되었으니, 나는 덕분에 대만이라는 나라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일년 하고도 삼개월이 필요했다.



일년 만에 찾은 것이었으니, 바뀐 것은 많지 않았다. 외장이 다듬어지지 않았던 신축 역사는 마침내 온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그렇지만 한낮의 축축한 공기도,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도 여전했다.


굳이 변한 것을 찾아본다면 이곳은 이제 대만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는 것 정도. 이제 이곳은 가오슝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되었다.



한달이 조금 안되는 동안 대만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그 감회가 유별했다. 그 타이중에서 먹고 즐긴 것들이다.


1. 新老夫子牛排

주소 : No. 196-3, Zhongxiao Road, South District, Taichung City, 대만 402

지도 : https://goo.gl/maps/7ASC1mTs411vsy937

시간 : 17:00 ~ 익일 01:30 (토요일은 22:30까지)



대만의 장바구니 물가는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갖가지 식재료들에 붙은 가격표를 보고 있으면 내가 지나온 매장 입구가 혹시 한국으로 향하는 차원문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식당에 붙은 가격표를 볼 때마다 종종 놀라게 된다. 이런 곳이라면 주방 없는 집에 살아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지난 기억을 잊지 못해 타이중에 닿자마자 가장 먼저 발걸음을 향하였다. 아마도 충효야시장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발길이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선, 적어도 지금의 한국에는 없을 것 같은 특이한 스테이크를 경험할 수 있다.


달궈진 철판에는 온기가 가실 새가 없다. 시원하게 끓는 소리를 내며 익힌 고기 한 덩이를 둥그렇게 말아낸 면발 위에 얹어준다. 두껍지는 않지만, 손바닥 펼친 만큼은 된다. 이 한 접시를 위해 필요한 천원 짜리가 여섯장이 되지 않으니, 왜 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이런 데가 없는가 싶어 올 때 마다 아쉽다.



뷔페에서 본전 뽑겠다고 되지도 않는 용을 써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한 무더기 쌓인 야채는 몇 번을 가져다먹어도 괜찮다. 땅콩의 고소한 향이 스며있는 양념과의 조합이 절묘한 덕분에 끝없이 입으로 가져가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기분이 우울할 땐 우리 모두 고기앞으로 가자. 혹시 이곳 어드메를 걷고 있다면 바로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이곳은 구름 한 점 없는 아주 쾌청한 고기앞이다. 절대적으로 훌륭하다.


2. 칭징저훠궈(輕井澤 公益店)

주소 : No. 276號, Gongyi Road, West District, Taichung City, 대만 403

지도 : https://goo.gl/maps/ykCVaTkvaPR2cYW67

시간 : 11:00 ~ 익일 01:00



강동6주를 돌려받은 고려의 문신 서희와 거란의 장수 소손녕 간의 담판을 모르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절묘한 언변 덕분에 고려는 칼부리 한 번 맞대지 않고 거란을 물러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발해의 영토였던 강동의 6주까지도 수복할 수 있었다.


나는 훠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정도를 두고 무관심과 적대심을 양 끝으로 한 어느 사이에 점을 찍으라 한다면, 나는 아마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방점을 놓을 것이다. 그 정도로 훠궈를 좋아하지 않는다. 절대로 지갑을 열고싶지 않은 음식 중 하나인 것이다.


아마 유일하다. 한 시간이 넘는 대기는 기본이거니와 그것이 훠궈로 말미암은 것임에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이곳에 올 때 마다 나는 서희와 마주앉은 소손녕의 기분을 헤아리고는 한다.



그냥 해본 소리다. 강동 6주 담판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찾는데에도 시간 많이 걸렸다.


여튼, 그럴 정도로 훌륭하다는 말이다. 지나치게 하고싶은 말을 두괄식으로 전개해 버려서 딱히 할 말도 더 남지 않았다. 얼마 안한다. 이거 한 접시에 9천원이다.



이것도 포함해서. 야채 더미 한가득에 소고기 한 접시가 9천 원이다.



MRI로 뇌를 촬영하면서 이런 저런 훠궈 사진을 보여준다면, 내 대뇌피질은 아마 이곳 냄비 안에 끓는 재료들의 자태에만 반응을 할 것이다.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흐뭇하다.



마이쪙. 존맛탱.


그 유명하기가 워낙 유별해서 타이중에 발걸음 해본 이들 중에 이곳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남녀노소, 국적을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3. 老夫子牛肉麵

주소 : No. 193之1號, Section 2, Shuangshi Road, North District, Taichung City

지도 : https://goo.gl/maps/ALNYjR7nYZaXmAH69

시간 : 11:00 ~ 21:00 (일요일 휴무)



정말이지 저 푸른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한마리의 연어가 된 타이중에서의 여정이었다.


고만고만한 와중에 군계일학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미식을 탐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뛰어남의 정도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베이구에 위치한 이곳은 나의 생각을 대변하는 완벽한 근거가 되어준다.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은 것이 아마도 유일한 아쉬움이다. 까만 것은 글씨요 흰 것은 바탕이지만 뜻이 통하지 않으니, 눈 가리고 돌려돌려 돌림판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볶은 가지였으면 했지만 오늘의 돌림판은 아쉽게도 실패.



베트남에 분짜가 있다면, 이곳에서는 우육면이다.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섬의 곳곳에서 적지 않은 수의 우육면을 접하였지만, 적어도 나의 입맛에 이보다 맛있는 것은 아직 없다.


두루두루 훌륭하지만, 이곳 우육면은 큼지막하게 썰어낸 고깃덩어리가 방점을 찍는다. 나는 왜 아직도 여기가 미슐랭에서 별을 받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심사관들이 생각보다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4. 咖啡罵哥(Cafe Muug)

주소 : No. 295號, Section 3, Sanmin Road, North District, Taichung City

지도 : https://goo.gl/maps/uNAt2epAqczuBjau6

시간 : 11:00 ~ 18:00 (일요일 휴무, 토요일 13:00 시작, 목요일 14:00 시작)



이 카페를 경영하는 사장님께서는 예를 숭상하고 전통의 가치를 무척 중요시 하는 분이 틀림없다.



거기에 더불어 인스타그램을 위해 카페가 갖추어야되는 미덕이 무엇인지도 상당히 잘 이해하는 분인 것 같다.



라떼를 시킨 것은 실수였다. 화장실이 급했던 탓에 앞뒤를 가릴 새가 없었고, 가게 문을 열어젖힘과 동시에 가장 유명한 것으로 부탁한다는 외마디만 남긴 채 나는 화장실 문짝만을 보고 질주했다.


인간의 위대한 발견은 때로는 실수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아마, 이번 타이중 여정에서 얻은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이다.



먹기가 좋은데 보기에도 좋다. 맛만 있어도 충분한데 보기에는 더 좋다.



고즈넉함의 정수를 담은 듯한 간판과는 달리 북유럽의 어느 가정집을 옮겨놓은 듯 하다. 달을 향한 아폴로 11호의 항해 도중 흘러나왔을 것 같은, 우주를 노래하는 것 같은 몽환적인 음악이 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이곳의 사장님은 멋과 맛을 제대로 아는 분이다. 혹시나 머지 않은 시일에 카페를 창업할 계획이 있다면 이곳을 들러보도록 하자. 당신의 카페가 흥할 운명이라면 분명한 영감을 얻어오게 될 것이니 말이다.



이곳을 찾은 것이 불과 두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진다. 지난 기억 속에 남은 감정을 그대로 끄집어낼 수 있어서 기뻤고, 그럴 수 있게 그 자리에 남아주어 무척 고마웠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친구로 남게 될 것 같은 이곳의 이름은, 타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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