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서 만난 우크라이나의 맛

트래블러스 하이
2019-01-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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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19.01.06(일) ~ '19.01.17(목)



여행에는 저마다의 떠나는 목적이 있겠으나 그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한 가지의 공통된 즐거움이 있다면, 역시나 맛있는 음식을 만나는 경험일 것이다. 그것이 의도한 것이었든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것이든, 나는 훌륭한 음식과 함께하는 것이 그곳에서의 시간을 더욱 다채롭게 기억하는 한 가지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에서 돌아올 때 마다 가장 먼저 정리하고 글로 남기는 것 역시 지난 여정에서 먹은 것들이다.


2주에 가까운, 꽤 긴 시간을 보낸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하노이라는 도시 자체가 워낙 맛있는 음식이 많은 동네이다. 매일 매일이 다음 끼니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었으니 여행이 즐거움으로 가득했음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렇게 무수한 맛의 향연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기억하고 싶은 만큼 훌륭한 경험을 선물해 준 곳이 있었으니, 바로 서호의 동쪽에 위치한 식당 '버드모'이다.



버드모(Budmo)


주소 : 61 Tô Ngọc Vân, Quảng An, Tây Hồ, Hà Nội

지도 : https://goo.gl/maps/g8NLa9L4FE22

시간 : 10:00 ~ 22:30 (토, 일, 월, 화 영업 시간 변동 가능)



조금은 뜬금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은 베트남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중앙아시아 음식이 웬말인가 싶겠지만, 버드모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건너온 다양한 요리들을 맛 볼 수 있다.


서호를 한바퀴 둘러보는 동안 구글 지도 위에는 무수히 많은 식당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수가 너무나도 많아서 눈으로 훑는 것 만으로도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런 와중에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식당이 있었으니, 바로 이곳이다.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2주에 가까운 시간을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으니 현지 음식은 의도하지 않아도 차고 넘치게 먹게 될 것이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중앙 아시아의 음식이 궁금하기도 하였고, 가끔의 일탈은 여행의 즐거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지난 경험의 발로이기도 하였다.



하늘이 열린 중정을 중심으로 마련된 자리들은 공간을 아낌없이 할애한 덕분에 시원스럽다.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로 건너간 꼬치구이 음식인 '샤슬릭'을 기다리며 둘러본 버드모의 면면은 정신없이 계속된 여정에 하나의 쉼표를 찍는 듯 하였다. 나는 그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양고기로 만든 샤슬릭이 가장 비싸지만, 그나마도 만 오천원 남짓 한 가격이다. 만원이 넘어가는 요리를 찾기가 쉽지 않으니 부담없이 마음껏 시켜도 지갑 걱정을 크게 하지 않을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사람의 심리이지만 그런 덕분에 조금 더 큰 즐거움이 더해졌다.



구운 야채로 이곳에서의 한 끼를 시작하였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지라 조금의 언짢은 기류가 흐르는 와중에 식탁에 올려진 접시 하나, 그나마도 오이를 구워준 것인가 싶어 그간의 언짢음이 분노로 승화하려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가장 오른쪽의 오이로 생각한 녀석은 가지였다. 그런데 가지가 왜 그렇게 맛있는건지. 대단한 간을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 녀석은 정말 맛있었다. 아무리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그것을 감안할지라도 저 가지는 맛있다. 너무 맛있다.



빗나간 예상이 즐거움으로 치환된 덕분에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겼다. 그러다보니 금새 두번째 음식이자 오늘의 주인공인 샤슬릭이 식탁 위에 오른다.


양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모름지기 맛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한 입 가져가기가 무섭게 나는 버드모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게 되었다. 내가 시킨 것은 돼지고기 샤슬릭 한가지였지만 이곳에서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샤슬릭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에.



중앙 아시아 음식의 특징인가보다. 소금을 제외한 그 어떤 간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맛있다. 쉬지 않고 입으로 가져가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볼수록 매력적이고, 씹을수록 마력이 느껴진다.


12일 남짓한 하노이 여행은 본디의 목적이 출장이었기 때문에 꽤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그렇게 만난 그 누구 하나 붙잡고 이곳을 가보라고 추천하지 않은 적이 없다.




먹는데에 완벽하게 몰입하던 중이어서 마지막을 장식한 양배추 스튜는 제대로 찍은 사진 한 장 없었다.


고수 향이 그윽한, 식감이 살아있는 양배추가 듬뿍 담긴 토마토 수프의 맛이라고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술을 잔뜩 마신 다음 날 해장을 위해서 먹어도 충분히 훌륭할 것 같았던 양배추 스튜 한 접시 덕분에 마지막 한 입 까지 든든하고 편안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과 함께하는데 술이 빠져서는 안된다. 이곳에 아마 유일한,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술의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다는 점. 시기를 잘못 맞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메뉴판에 존재함에도 빈 병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술이 무척 많았다. 아마 조금 더 맛있는 술과 함께였다면 훨씬 즐거운 한 끼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것이 조금 아쉽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하여 나는 다음 하노이 여정에서도 반드시 이곳을 들릴 예정이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의 즐거운 식도락의 향연이 막을 내렸다. 빈 접시를 지켜보는 마음이 이렇게 아쉬운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마도 홍콩의 Tequila on Davis 이후로는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직 이곳의 면면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만날 기회가 많을 것이다. 부디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나의 사업이 조금 더 번창하여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일이 더 많아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노이의 밤은 분주하지만, 고요하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라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어딘지 모르게 남는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어 호안끼엠에 들러 맥주 한 잔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이렇게 완벽한 기승전결이 있을까 싶었던 버드모와 함께한 저녁. 나는 이런 시간을 선물받았음에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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