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에서 먹은 것들

트래블러스 하이
20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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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19.06.07(금) ~ '19.06.26(수)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합친 것보다 조금 더 큰 면적의 조그마한 섬나라. 그나마도 땅덩어리의 7할을 덮고 있는, 때로는 3천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빽빽하게 심겨진 콩나물 시루처럼 살아가는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용' 이라는 칭호를 꿰차기도 했던 네 국가 중 하나인, 작지만 약하지 않은 나라. 강산이 세 순배 바뀌는 시간 만큼의 단절이 이곳을 꽤나 먼 나라로 느껴지게끔 하지만 여튼 중화민국은 그런 나라다.


일 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스치듯 떠나온 것이 아쉬웠던지라 조금은 넉넉하게 시간도 들여서. 대만의 남쪽 하늘을 가로질러 가오슝 공항에 내려앉은 비행기는,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부지런히 바퀴를 구른 기차의 꽁무니를 좇아 타이페이의 활주로에서 다시 날아올랐다.



타이페이



어릴적 같은 동네에 살던 어느 형네 집에는 아주 커다란 부루마블이 있었다. 조그만 밥상 따위에는 올려둘 엄두조차 나지 않을만큼 굉장히 큰. 반으로 접었다 펼 수 있게 만들어진 딱딱한 종이에 매끈하게 인쇄된 말판은 우리집에 있던 조그마한 부루마블의 그것과는 고급스러움에서 비교를 불허했다.


나는 두살이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을 좋아하고 곧잘 따랐다. 바로 앞 동에 살았던지라 노래 한 곡 들을 새도 없이 가까웠던 형의 집.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들겼다.


사칙연산을 갓 깨우친 정도의 어린 나이였지만 반복된 학습을 통해 숙달한 덕분에 나는 부루마블에 꽤 능했다. 도시를 사고 파는 것에는 나름의 규칙과 철학(?)이 있었고, 수많은 경험으로 담금질이 된 끝에 전략이라 부를만한 것도 몇 가진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나름의 규칙 중에는 모든 도시 중 가장 저렴하고 투자 대비 수익도 소소했던 타이페이를 절대로 사지 않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5만원이었고 그만큼의 가치를 하는 도시'


조금은 어처구니 없지만 나이가 들고서도 타이페이는 내게 부루마블로 말미암은, 그런 막연한 감상으로만 남아있는 도시였다.



두어번 다녀왔으니, 이 도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5만원으로 기억되는 도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5만원의 도시, 타이페이에서 먹고 즐긴 것들이다.



1. 等一個人咖啡


주소 : No. 1, Lane 44, Yishou Street, Wenshan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16

지도 : https://goo.gl/maps/BPBjgXgaeZHDmPdz5

시간 : 11:00 ~ 19:00 (주말에는 09:00 ~ 20:00)



대만 영화를 좋아하고, 즐긴다. 어떻게 이런 재료를 가지고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싶은 것이 참 많다. 그런 덕분에 대만을 찾을 때 마다 영화 속 배경에 나를 옮겨다 놓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이곳은 'Cafe waiting love'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이 카페를 만들었으니 이곳의 이름 역시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이곳은 충분히 발걸음 할 가치가 있다. 장소의 면면이 스크린 속 모습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 하다.



영화 속에 한 발을 딛은 듯, 그런 감상이 스며드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이곳의 카스테라는 땅콩이 굉장하다.


카스테라를 즐기고 땅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땅콩이 정말이지 굉장하다.



북적거림과 거리를 두는 곳에 위치한 덕분에 이곳을 둘러싼 모든 것의 표정이 평화롭다. 이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커피를 딱히 즐기지 않더라도 이 공간은 조용히 즐길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 집 앞에 이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언저리에 자리한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막 시작한 친구가 부러운 이유가 딱 한가지 있다면 바로 이곳이 있음으로 말미암을 것이다.



2. 단수이 대왕 카스테라


주소 : Zhongzheng Road 어느 곳에나

지도 : https://goo.gl/maps/1qCwJCJE2p5C4pti7

시간 : 11:00 ~ 20:00 (주말에는 09:00 ~ 20:30)



주걸륜과 계륜미를 알고 있다면, 그리고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부를 수 있다면 아마 이곳의 존재 역시 모를리 없을 것이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속 계륜미와 주걸륜이 닿기 위한 108 걸음, 그녀가 걸었던 자취를 좇아 온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단수이.



대만해협으로 향하는 물줄기의 종착이자 누군가에게는 주걸륜이 나고 자란 곳으로 더 익숙할지도 모르는 이곳 단수이. 특별할 것 없는 조그마한 항구마을이지만 우리에게는 의도치 않게 꽤나 익숙한 곳이 되어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이름은 한 번 쯤 들어봤을 카스테라의 존재로 말미암음이다.



유행하는 것에 상당히 둔감한 덕분에 한국이 광풍에 휩싸였던 시기에 이 녀석을 직접 먹어보지는 못하였다. 그것이 아쉬웠던지라 본고장에서라도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주머니 사정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정말 기특하다. 딱 그만큼 기특한 녀석이다.


모든 호기심이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잖은가.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보며 의자에 걸터앉아 한 입 씩 집어넣으면서, 내가 카스테라를 좋아하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3. Redpoint Brewing Co. Taproom


주소 : No. 132, Section 2, Fuxing South Road, Da’an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6

지도 : https://goo.gl/maps/RyxXnHzGenr61ixe8

시간 : 17:00 ~ 00:00 (주말에는 익일 오전 2시까지)



대만에는 맛있는 것들이 차고 넘친다. 먹을거리, 마실거리 가릴 것 없이 입을 즐겁게 만드는 만물의 향연이 이곳에서는 일상이다.


그런고로 맥주도 훌륭하다. 동네마다 이름있는 양조장 하나씩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듯 한데, '빨간 점'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 역시 그 훌륭함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 중 하나이다.



메뉴판에 새겨진 숫자에 부지런히 그날의 환율을 곱하다보면 한국에 온 듯한 착각에 잠시나마 빠질 수 있다. 타이페이 답지않게 용맹한 가격에 잠시 당황을 하였지만 아무렴, 결과는 모든 과정을 상쇄하는 법이다.



이곳을 찾을 계획이 있다면 미리 속을 조금 비워두는게 좋을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지갑을 열 것인지만 고민을 하면 되기 때문에.



4. 阿城鵝肉(Acheng Goose)


주소 : No. 105號, Jilin Road, Zhongshan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4

지도 : https://goo.gl/maps/shHEfUR7UtTMhcCWA

시간 : 11:30 ~ 21:00


내가 다닌 학교에는 '오리 연못'이라 불리는 연못이 하나 있었다. 물이 고여있는 곳이라면 어느 학교나 그러하듯이 입수와 함께 에이즈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 걸릴 수 있다는 영험함을 간직한 곳이었는데, 이름만으로 충분히 연유할 수 있듯이 이곳에는 오리와 거위들이 무리지어 살았다.


우리는 농담삼아 그 연못의 터줏대감인 오리와 거위들을 교수님 다음 가는 서열로 극진한 대우를 하고는 했는데, (아마 농담 아닐지도 모른다) 그 농담처럼 대우하던 것이 습관이 된 이유인지 나는 거위를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졸업한지도 오래되었고, 더 이상 접시 위에 올려진 이 음식을 보면서 연못가에서 괴성을 지르며 나에게 맹렬히 돌진하던 그 녀석들을 떠올리지 않는다.


사실 그런건 별로 중요치 않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이 거위는 무진장 맛있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이곳을 찾는 이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시원찮은게 무엇인지 찾는 것이 더 힘들 정도로 이곳의 모든 음식은 훌륭하다.



대만을 여행하며 가장 즐거웠던 것은 메뉴판을 보며 실패를 두려워하는 순간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푸짐하게, 기분좋은 한끼를 선물받고 싶다면 이곳은 아마 반드시 찾아야 하는 장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오리연못의 그 녀석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런다고 이곳의 거위 음식이 기가 막히게 훌륭하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5. 树榣(수요)


주소 : 224 대만 New Taipei City, Ruifang District, 佛堂 巷28號

지도 : https://goo.gl/maps/i9FpJTeuFK9m13rt7

시간 : 확인되지 않음



먼길을 날아와 타이페이 땅을 밟았는데, 이곳을 찾지 않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대만해협을 건너 조그만하게 옮겨진 불야성, 센과 치히로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지우펀을 말이다.



내리는 비가 점점 기세를 더해가고 있었지만 산어귀를 휘감고 끊이지 않는 골목을 헤치고 가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그 만남의 과정이 조금은 갑작스러웠던 덕분에,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나는 더욱 선물처럼 여기게 되었다.



한 발 짝 떨어져서 음미하는 것에 익숙하다거나, 그것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곳은 지우펀이라는 장소를 즐기기에 가장 완벽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밀려드는 인파의 어수선함도 없고, 그들이 빚어내는 부산스러움도 이곳에서는 남의 이야기가 된다.



마치 구한말의 청나라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공간의 고즈넉함에는 포근함이 묻어있다. 놓여진 그 무엇 하나 세월의 흔적을 품지 않은 것이 없는데, 그냥 조용히 바라보다 보면 혹시나 시간이 역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슬며시 스치기도 한다.



차를 한 잔 시키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기를 다시 찾을 것이다.



포근한 공간에 조용한 어둠이 스미었다. 조금씩 창가를 두드리고 가는 빗줄기만 있어도 충분하다. 가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가 아쉬운 탓에, 핸드폰 액정에 얼굴 묻어둘 틈을 허락하기가 쉽지 않다.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더 붉어진 홍등이 까맣게 잠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이 광경을 언제 다시 마주할 수 있을지 몰라 한동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유명한 곳을 찾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테고



밀려드는 인파에 자연스레 휩쓸려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깃드는 어둠으로 지우펀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우연하게 만나게 된 그곳의 존재가 있은 덕분이다.



6. 星夜(Starry night Bar)


주소 : 號地下, No. 76, Chang'an West Road, Datong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3

지도 : https://g.page/Starrynightbar?share

시간 : 19:00 ~ 00:00 (주말에는 익일 오전 2시까지)



여행이 막바지로 향하는 아쉬움을 달래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는 조용한 곳을 찾아 숨어들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아마도 이곳은 그런 나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닐까 싶을 만큼 은폐를 위해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


간판조차 변변한 것이 없어서 이곳이 과연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 맞는지조차 헷갈린다. 반 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서 내려가다보면 마치 나를 위해서 준비된 사적인 공간의 문을 열어젖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된다.



이곳의 밤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닉값



아쉬움에 몸을 담그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은 딱히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입구로 향하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고, 당황스러울 뿐이다.



바쁜 와중에 흩어져있던 당신의 여행은 아마 이곳에서 차곡차곡 조각을 맞추어 완성될 것이다.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 저녁을 이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에 나는 그것이 참 감사했다.




할 말이 더 필요치 않을 것 같다. 나는 조만간 가족들과 함께 다시 대만을 찾을 예정이다. 앞으로도 자주 찾고 싶은 대만이 지금의 모습처럼 오랫동안 예쁘게 남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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