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에서 먹은 것들

트래블러스 하이
2020-02-02
조회수 596

탄자니아, '19.12.05(목) ~ '19.12.18(수)



일생에 한번은 세렝게티 땅을 딛고 서봐야지, 간혹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뤄질 꿈이려니 하면서 그저 품고만 있었던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지구 반대편의 어딘가는 물리적인 거리는 물론이거니와 마음으로도 참 아득한 곳이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도로 하나를 마주한 곳에서 병역특례요원으로 회사를 다니던 대학 동기 형이 있었다. 일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가끔 마주치고는 했는데, 형이 출퇴근을 위해 매일 몸을 실은 버스의 배차간격이 워낙에 짧았다. 그 빽빽하게 허락된 시간 동안에는 몇 마디 사는 이야기가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전부였다. 따로 시간내서 술 한 잔 하는게 뭐 그리 어려웠나 싶지만, 아마도 우리는 어차피 또 볼건데 생각하며 굳이 서로의 저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나는 가방을 만들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떨어진 점들을 하나씩 잇는 것 같았던 우리의 대화는 더 이상 계속되지 못했다.



'사람 일 모른다', 가끔은 무책임하다 싶기도 한 말이지만 상투적으로 쓰이는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시간이 흘러 동기 형은 병역특례를 마치게 되었고, 곧 탄자니아로 날아가 코이카 단원이 되었다. 지구 지름 만큼을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끊어졌던 대화는 그렇게나 먼 거리를 사이에 둔 후에야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함께 할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넉넉하면서 이렇게 먼 거리를 날아올 수 있는 이들이 마땅찮아 고민이란다. 그때가 10월이었으니, 약 두 달 뒤의 일이었다. 형은 곧 다가올 방학을 맞아 세렝게티를 갈거라고 했다.


기대하지도 않았고 누구 하나 등 떠미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비행기로는 스무시간 남짓을 날아야하고 시차로는 여섯시간이 나는, 멀고 험하다는 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적도 어드메의 땅에서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살면서 본 적 없는 지평선에 걸리는 석양은 엄숙했고, 삼각돛을 단 조그마한 목선이 인도양의 파도를 가르는 잔지바르의 바다는 그림같았다. 그런 탄자니아에서 2주간 원없이 먹고 즐긴 것들이다.


므완자



빅토리아 호수를 곁에 두고 탄자니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많아 'Rock city'라는 별명을 가진 도시. 동기 형이 과학 선생님으로 일하는 중학교가 있는 도시. 그런 덕분에 우리의 여정이 시작된 곳이기도 한 도시.


혹여나 탄자니아에 여행을 와 본 적이 있는 이들에게도 아마 이 도시의 이름은 생소하다. 세렝게티에서 가깝다고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아루샤에서 그 여정을 시작하기에 머물 일이 없다. 누군가 킬리만자로에 가고자 마음먹는다면 비행기를 빼놓고는 엄두가 나지 않을 거리에 있으며, 비행기로 두 시간 남짓이 걸리는 휴양지 잔지바르는 말 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공사를 위해 파견 나오신 건설 근로자 분들과 소수의 코이카 단원을 제외하면 한국인을 만나기조차 쉽지 않은 동네이다.


나는 그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탄자니아를 다녀온 이들에게마저도 자랑할 거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니,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싶어서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열심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점심 시간이 가까워온다. 정수리 바로 위에 솟아올라 사정없이 내리꽂는 볕도 피할 겸 하여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이곳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볕이 좋은 나라들이 으레 그렇듯이 탄자니아 역시 과일이 훌륭하다. 아끼는 기색 없이 푸짐하게 채워주는 이 녀석들은 맛도 물론이거니와 가격도 착하기 그지없다. 가장 뒷편에 위치한 갈색을 띈 녀석은 '타마린드'라고 하는 것이다. 조금은 시큼하면서 생소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익숙한 맛이다 싶었더니, 돈까스 소스로 많이 쓰이는 우스터 소스의 주된 재료라고 한다.



우리나라 면적의 7할 만큼이 되는 커다란 호수를 곁에 두고 있는 도시인만큼 생선이 유명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중에서도 틸라피아가 유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회로 먹기도 한다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것을 제외한 모든 방법으로 이 녀석을 요리해서 먹는다.



참 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탄자니아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청도에서 살다가신 할머니 댁의 정취를 느끼게 되는 구석이 있었다. 이곳의 틸라피아는 어딘지 모르게 할머니께서 해주신 추어탕을 닮아있다.




입을 즐겁게 했으니 눈이 즐거울 시간, 하나의 바위가 산을 이룬 정상에 올라 호수 아래로 잠기는 해를 보는 경험에는 감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참이 있다.



그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 이런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기도 한다.



저녁을 먹기 위해 도심을 조금 벗어나기로 했다. 택시로 20분 가량을 달렸으니, 이곳에서는 꽤나 먼 거리를 움직인 뒤에야 도착하였다. 오늘의 저녁은 바다를 닮은 호수를 곁에 두고 있는 꽤 고급진 숙소가 책임질 것이다.



혹시나 므완자를 다시 찾을 일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면 나는 삼시세끼를 전부 이곳에서 해결할 생각이다. 이곳의 음식은 정말이지 이 사진 한 장이라도 건질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만큼 넋을 놓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군생활은 끝났으나 PTSD 비스무리하게 사회로 들고 나온 것이 있다면, 그곳에서 카레를 싫어하게 되었고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히 생각하건데 이곳의 요리사님은 그 케케묵은 지병과도 같은 것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일 것이다.



세렝게티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까지 열 네시간을 날아가야 하고, 탄자니아까지는 세시간을 더해야 한다. 그런 고생 끝에 탄자니아 땅을 밟았다고 해도 므완자로 향하기 위한 일곱시간의 기다림이 남아있다는 것은 소소한 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행기표를 결제함에 있어서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하고픈 말은 많은데 비루한 글빨로 풀어내기가 도저히 무리다. 비행기보다 빠르고 안전한 교통수단의 출현은 왜이리 더딘것일까, 이 몸뚱아리를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에 실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한 분의 운전사와 한 분의 요리사께서 동행하는 사흘간의 일정. 그런 덕분에 매 끼니가 성탄 전야에 선물꾸러미를 열어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야영을 했으니 근사하게 잘 차려진 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별로 중요한건 아니다. '내가 세렝게티에서 지나가는 사자 옆에서 밥을 먹어봤다' 한 마디 할 수 있으면 된거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밥까지 맛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텐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던 카레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었다.



안녕히 계세요 세렝게티.


꿈보다 짧았던 이곳에서의 3일은 끝이 났지만, 여전히 많은 가야할 곳이 남았다.



낮게 깔린 높이 솟은 구름을 벗삼아 부지런히 달리는 끝에는



세렝게티와 이별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머지 실성해버린 한 남자와,



이 대륙의 가장 높이 솟은 봉우리, 킬리만자로를 벗한 도시인 모시가 있다.


모시


첫번째 예비군 훈련을 받던 해의 일이니 벌써 8년이 다 되어간다. 동원 훈련을 받아야 했기에 대구에 위치한 50사단에 입소를 하였고, 2박 3일의 훈련을 마치고 나온 손에는 교통비 명목으로 쥐어진 얼마 안되는 돈이 들려있었다.


그 돈으로 무얼 할까 고민을 하던 중에 대구에서 꽤 전통이 있다는 어느 카페를 찾게 되었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께 원두를 선물할 요량이었다. 허나 커피를 즐기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나에게는 좋은 원두를 골라낼 만 한 눈썰미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익숙한 이름들 사이에서 아무거나 하나를 골라잡은 다음 그것이 어머니의 입맛에 맞기만을 바랄 뿐이었는데, 그렇게 한 봉다리 쥐고 나온 것이 킬리만자로였다.


커피의 원산이라 알려진 에티오피아만큼의 명성은 아니겠지만, 탄자니아 역시 커피에 있어서 한 자리 차지하고 거들먹거릴 만큼은 되는 나라라고 한다. 그리고 그 명성이 태동하고 일궈진 바탕에는, 킬리만자로를 곁에 둔 모시가 있다.



습관처럼 커피를 마시지만 여전히 큰 관심은 없고 아는 것도 빈약하다. 탄자니아가 커피로 명성이 있다는 것 역시 이 도시에 도착해서야 알게된 사실이다.



나름 시가지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 카페는 모시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장소이다. 쉴 새 없이 계속된 여정 탓인지 유난히 피곤이 몰아친 하루였는데, 이곳에서 잠시 쉼표를 찍어간다.



언젠가 자기 몫을 다 하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였겠지만 지금은 안락한 노년의 삶을 보내고 있는 듯 하였다. 전원만 연결하면 언제든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지만 적어도 우리가 이곳을 찾은 동안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나 찾는곳에 굳이 발품을 파는게 달갑지 않을 수는 있지만, 가끔은 그리해도 좋은 곳이 있다. 적어도 나에게 이 카페는 그렇게 발걸음 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는 곳이다.




한 숨 돌릴 때 쯤 발견한 사실이 한가지 있었다. 탄자니아에 와서 닭이 아닌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인데, 괜스레 궁금증이 생겼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사람은 이럴 때 활용하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코이카 단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기 형을 부추겨 근처에 위치한 식당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본다.



현지인들이 즐겨마시는 '꼬냐기'라는 술을 기분좋게 걸치고 있으니 주문한 음식들로 한 상이 차려진다.


므완자에서 경험한 기시감이 여기에서도 재현된다. 어째서인지 한국의 맛을 담고 있는 이 녀석은 그 어떤 조리법의 변용 없이 한국으로 가져다 놓아도 팔릴 것 같은 익숙함이 있다. 무슨 맛인지 상상이 된다면, 그 상상이 바로 현실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역시 무슨 맛인지 알 것 같다. 상상하는 그대로라고 말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 말인 즉, 맛이 없을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존맛탱




길섶으로 늘어선 나뭇가지 틈새로 따뜻하게 부서지는 한낮의 볕으로 기억될 이 도시를 언젠가 다시 찾게 되겠지요. 그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또 만나요 모시!



이 비행기는 잔지바르로 떠납니다.


잔지바르



우리집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컴퓨터를 갖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큰 맘 먹고 신용카드를 건네셨고, 양판점 영업사원께서는 인심 쓰듯이 나의 손에 게임 하나를 들려주었다.


'대항해시대 외전'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주인공들의 사연을 풀어가는 게임인데, 비행기 한 번 타본 적 없고 한국 땅 너머를 생각할 기회조차 흔치 않았던 나에게는 앉은 자리에서 대양을 누빈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그 충격이 꽤 대단했는지 나이를 먹어서도 이 게임을 향한 관심은 식지 않았고, 그것이 온라인 게임으로 나왔을 때에는 내가 기숙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한스러울 수 없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았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가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대학을 여태 아쉬워하며 애꿎은 게임 탓을 아직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잔지바르는 내게 어린 시절로 기억되는 게임 속에서 만나던 도시였다. 물론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도시를 오고가는데다가 인도로 향하는 길목에 가끔씩 스쳐가는 곳이니만큼 대단한 애착이나 애틋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니터 안에서만 만나던 도시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은 충분히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다.



즐거운 마음에 흥을 더하려면 역시나 술만한 것이 없다.


코끼리가 좋아하는 마룰라 열매를 재료로 만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원산의 '아마룰라'는 우리나라에서는 맛보기가 힘드니 이곳에 발걸음 하였다면 경험 삼아서라도 한 번은 마셔볼 만하다. 혓바닥의 분해능이 워낙 낮은지라 깔루아나 베일리스와 무엇이 다른지 분별하지는 못하지만 공통된 특징은 맛있다는 것. 마이쪙



그리고 이것도 마이쪙



사면이 바다인 만큼 경험할 수 있는 해산물의 수준도 상당하다.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기에 저렴하지 않은 축에 속하는 물가임에도 한국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딱 잘라 반으로 나누고 거기에다가 얼마를 더 빼면 이곳에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될테다. 결론이 무어냐 하면, 이런데에서는 먹을 수 있을 때 뭐든 먹고 봐야된다는 것이다.



지는 해가 식탁을 조금씩 노란 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하고, 기분 좋은 취기가 더해지니 그야말로 더 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주지육림이 따로없다.



그렇게 따갑게도 내리꽂던 한낮의 볕은 수평선에 가까워오며 낮아진 밀도로 따뜻하게 바다 위에 부서지기 시작한다.



두 눈으로 직접 담아낼 수 있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수 밖에 없었고,



인도양 아래에 잠기는 순간의 어둠을 비집고 나와 만들어낸 빛의 장막을 한동안 숨죽여 바라보았을 뿐이다.



매일 저녁 이곳을 찾았다. 즐길 수 있을 때 원없이 즐겨야한다는 소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경주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맛있는 저녁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될테다.



덕분에 매일 저녁이 행복으로 가득 빛났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월이 쏟아지는 해변에는, 짙게 가라앉은 어둠만큼 고요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만이 공간을 메운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올려다 본 하늘에는 이렇게나 많은 별들과 은하들이 부지런히 일주를 하고 있었다.



길지 않은 여정이라 생각은 했건만 그 마지막을 향해가는 순간을 마주하는 아쉬움이 여간한 것이 아니다.



능귀에서의 첫날부터 눈여겨보던 곳이 있었는데 가는 마당이 되어서야 찾게 되었다. 탄자니아에서 적지 않은 수의 음식을 경험하면서 생각한 것이 하나 있다면, 원하는 것이 생선이라면 무엇을 시키던지 간에 후회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땅에서 난 고기가 아쉽다는 것은 아니다. 더 맛있는 고기와 조금 덜 맛있는 고기가 있을 뿐.



흔하디 흔한 식당 중 하나였다면 굳이 이런 수고로움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곳은 후식이 유별나다. 한 입 베어 무는동안 두 번의 불연속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부지런히 씹어 삼키는 경험이 꽤나 즐겁다. 워낙에 먹는데 관심이 없는 놈인지라 마땅한 비교대상조차 떠오르지 않으니, 직접 드셔보시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진정으로 여정의 막바지를 향해간다. 능귀에서 스톤타운으로 옮겨왔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탄자니아와도 작별의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잔지바르는 오래전부터 세계를 무대로 교역을 해온 곳이며, 그중에서도 인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발자취가 유난했던 곳인지라 그들의 음식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내 생에 탄두리 치킨을 처음 경험하게 된 곳이 아프리카라는 것을 합리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튼 이곳은 분명 현지인이 경영하는 식당이 맞는 듯 하다.



대부분의 인도인들이 카레를 먹겠지만, 그들이 만든다고 그 모든 것이 맛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잠시간 잊고 있었던 PTSD를 다시금 떠올릴 뻔 한 순간이다. 허나 이것은 아마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테고, 동행한 형들은 괜찮게 즐겼던 듯 하니 호기심이 생긴다면 한 번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스톤타운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인 루크만의 바로 옆에 위치하였으니, 학을 떼게 만드는 그곳의 대기열을 피하고 싶다면 이곳은 나름 괜찮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그랬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참기름을 잔뜩 바른 약식을 먹는 듯 한데, 식감이 떡을 닮았다.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간식인데 한국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생각이 난 녀석이고,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들어가는 재료들이 한국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것들로 보였는데, 만드는 법을 배워올 걸 그랬나 싶다.



유독 이슬람인들의 비율이 높은 곳이다. 매 끼니 어찌 잔칫상처럼 차려놓고 먹기만 하겠는가. 돌아가는 순간을 목전에 두고야 그들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밥상을 시도해보았다.



혹시 시도할 생각이 있다면 반드시 닭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 탄자니아에서의 마지막 끼니가 아련하게나마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감히 말하건데 이 한 접시의 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곰곰이 되짚어보니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 투성이고 매 순간이 그리움으로 꽉 차버렸다.


언젠가 분명히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현실의 내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 아쉬운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아마도 꽤나 오랜 시간을 탄자니아에서의 시간을 그리워하며 지내게 될 것 같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잘 있어요. 탄자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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