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다. 베트남 하이퐁, 첫번째

2018-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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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퐁, '18.10.15(월) ~ '18.10.17(수)


이것은 여행을 가장한 출장 보고서, 출장을 빙자한 여행 일기.


올해는 베트남 출장이 유난히 잦다. 내 가방을 생산하는 공장을 국내에서 베트남으로 옮긴 탓이다. 올해 5월에 처음으로 베트남 땅을 밟아본 이래, 나는 반 년도 안되는 시간 만에 베트남 입국 도장을 세 번이나 찍었다. 그 덕에 팔자에도 없을 것 같았던 베트남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유는 많다. 매일 아침 세면대에 떨어지는 머리카락 개수 만큼이나 차고 넘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를 꼽자면 나는 여행을 목적으로 베트남 땅을 밟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여전히 혼자서 일하는 개인사업자다. 출장비는 회사의 지출이긴 하지만 비용의 출처는 당연히 나의 개인 계좌다. 본전 뽑을 생각만 눈앞에 아른거리고 일만 해도 시간은 늘 모자라다. 여행 같은 사치를 부릴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도 언감생심이다. 설령 모든 것을 기록했다고 한들 큰 의미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재미를 추구하려고 노력해 봐야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출장 결과 보고서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지난 두 번의 출장 끝에 남은 기록은, 흡사 불타버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잿더미 속에서 건져 올린 잔해보다 비루하다. 하지만 이번 여정은 조금 다르다. 기록을 목적으로 떠난 최초의 출장이자 여행이다. 덕분에 베트남 여행기의 마수걸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호치민이나 하노이, 다낭 혹은 냐짱과 달리 하이퐁은 영 생소한 동네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애초에 여행으로 갈 만한 이유가 딱히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혹여나 누군가 하이퐁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물어 온다면 내 머릿속에는 가장 먼저 물음표부터 생길 듯하다. 하롱베이 정도를 권유할 수는 있겠으나 하롱베이는 하노이에서도 충분히 갈 수 있을 만한 거리다. 어디에서든 마음 먹기 나름이니 못 즐길 건 없다. 하지만 해안 경계 대대에서의 하루를 체험하고 싶은 것이 아닌 이상 오래 머무르기는 적합하지 않은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이퐁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 가방이 생산되는 공장이 하노이나 호치민으로 옮겨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인구 160만이 넘는 베트남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북부 지역의 모든 물동이 모이는 항구의 도시, 거기에 더해 LG전자의 꽤나 큰 생산 법인이 있는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이곳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매일 아침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일곱 시 즈음에 날아오르면 열 시를 전후로 하여 하이퐁 공항의 출입국 심사대 직원과 아침 인사를 나눌 수 있다. 전날 공항에 가야 한다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출장객 입장에서는 고맙기 그지없는 일정이다.



아침 시간에 하늘을 나는 것에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쏟아지는 잠을 막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 안에서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이 장점은 그 무엇보다 반가운 것이다. 네 시간 반에 가까운 비행 시간에서 오는 중압감을 덜어줄 수 있는 좋은 위안거리가 된다.



비엣젯 항공은 공짜 기내식도 없고 AVOD도 없고 뭐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내가 지불한 값에 해당하는 것은 나를 하이퐁으로 실어나르는 의자 하나가 전부다. 그런 덕분에 아무 고민 않고 다시 구름 아래로 내려와 착륙 준비로 부산할 때까지 눈만 붙이고 있으면 된다.



새로 만드는 가방의 샘플을 확인하고 그 녀석의 사진을 찍는 것이 이번 출장의 목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가방을 가지러 가야 한다. 커피 한 잔 제대로 마실 시간도 없이 공장 사장님께서 보내 주신 차를 타고 공장으로 향한다.



공항에서 40분 가까이를 가야하니 결코 가깝지는 않다. 하이퐁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하노이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한적한 시골 마을, 내 가방이 만들어지는 공장이 있는 곳이다.



간만에 뵌 사장님과 안부를 나누고 새로 만들어진 가방을 확인하였다. 비슷한 종류의 가방을 이미 한 번 양산한 경험이 있으신 덕분에 요구한 사항이 모두 반영된 가방이 한번에 나올 수 있었다. 생각한 것과 다른 가방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면 이곳에 온 의미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은근히 노심초사 하였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장님과 점심을 함께 하고, 지체없이 숙소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택시를 탈 생각이었으나 다행히도 공장 사장님의 선심 덕분에 편하게 하이퐁 시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직원 친구에게 팁을 쥐어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오전 내도록 일이랍시고 한 것은 기장님이 운전하시는 비행기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다가 공장 직원 분이 운전하시는 자동차 의자에 궁둥이를 붙인 다음 사장님께 인사 한 번 드리고 가방 한 번 확인한 뒤 식당에 가서 콩국수를 먹기 위해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던 것이 전부였지만 피곤이 몰려왔다. 내심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풀어진 마음처럼 침대에 늘어지고 싶었지만 이렇게 파란 하늘을 그냥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이퐁 길거리에는 주인 없이 배회하는 개들이 많다. 딱히 사람을 의식하지도 않고, 무서워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귀찮은 존재라고 인식을 하면 했지.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녀석들의 길 건너는 솜씨가 아주 수준급이라는 점이다.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도로 위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길을 건너는 강아지를 한마리 찾도록 하자. 그 뒤꽁무니만 쫓아다닌다면 당신은 안전할 수 있다.



베트남은 호수가 많은 나라이다. 정말 많다. 하노이에는 크고 작은 호수가 수백 개라는데,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하이퐁도 그 수가 결코 적지 않다. 당장에 구글 지도를 켜고 하이퐁이라고 검색을 해보면 스무 개 남짓한 호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다. 숙소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이 호수도 그 중 하나인데, 면적으로 줄을 세우면 하이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어가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다.



피곤에 반쯤 절여진 몸을 구태여 이끌고 나온 것은 다음날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이역만리 타향일지언정 아무데서나 셔터를 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조금이라도 더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동네를 둘러볼 필요가 있었다. 얼마나 긴 여정이 될 지 모르니 연유 커피 한잔으로 모자란 당분을 충전하면서 심기일전해 본다.



베트남 길거리에는 우리가 '반미'라고 부르는 샌드위치를 파는 노점이 정말 많다. 탄수화물 덩어리 사이에 고기쪼가리를 아낌없이 끼워 놓은 것이니 만큼 맛이 없기가 더 힘든 이 녀석은 가격마저 소담하기 그지없다. 평소에 고기를 잘 먹지 못하는 것에 한이 맺혀 있다면 아쉬운대로 반미 노점이 보일 때마다 하나씩 사먹어 보도록 하자.



갑작스레 추위가 찾아온 한국의 변덕 덕분에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패딩을 입고 있었건만, 베트남의 달력은 아직도 세 달 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반팔과 반바지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숙소는 하이퐁 오페라 하우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자세히 볼 필요도 없이 동양의 것이라 하기에는 이질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건물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에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월남전이라는 길고 큰 전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는 아직도 살아남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역사의 기록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리고 하이퐁의 가장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오페라 하우스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이번 출장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가장 큰 공은 단언컨데 곳곳에서 발견한 골목길들의 차지일 것이다. 결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겨운 곳곳의 분위기가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사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왜곡 없이 포착할 수 있는 것도,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이름 모를 수많은 골목길 덕분에 가능했다. 누가 봐도 외국인인 내가 그들 앞에 나타난 것에 의문을 가지기는 했으나, 그 누구 하나 적대하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적 없었다. 덕분에 나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훨씬 생생하게 뷰파인더 너머로 담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한국에 1,100개가 넘게, 서울에만 500개 가까운 매장을 가지고 있으며 '길바닥에 널렸다'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 스타벅스가 맞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스타벅스를 만나는 감회는 한국에서 만날 때의 그것과는 꽤나 다르다. 이곳은 베트남에 서른 개도 채 되지 않는 매장 중 하나이자, 하이퐁에서는 유일한 스타벅스 매장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원두 생산량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고 그들만의 커피 문화가 너무나 공고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굳이 스타벅스가 아니더라도 베트남에는 맛있는 커피가 많이 있다. 현지의 한가닥 한다는 커피 체인과 비교하면 가격 면에서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나밖에 없으니 장사가 안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내가 현지인이라면 과연 얼마나 자주 이곳을 찾을까 생각하니 스타벅스의 비교 우위에 물음표가 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숙소를 오페라 하우스 근처로 찾은 것도, 하이퐁을 벗어나 다른 장소를 찾지 않고 시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마음 먹은 것도 이 구도 하나가 있음으로 하여 가능했다. 우연하게 발견한 한 장의 사진이 그 발단이었는데 온갖 단서들을 조합한 끝에 마침내 사진으로만 보던 땅 위에 설 수 있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는 말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곳에서 조금은 체감할 수 있었다.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그저 기찻길을 벗하고 있을 뿐 이곳은 하이퐁에서 꽤나 땅값이 비싼 동네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생경한 모습인데, 놀랍게도 이곳을 가로지르는 선로들은 아직도 현역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기찻길 위를 한가로이 노니는 닭들이 행여 불안해 보인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저 놈들은 줄탁동시 이후의 삶을 기차와 함께 해온 노련한 녀석들이다.



지는 해가 애처로운 이별을 고하고 있다. 지평선을 반쯤 걸친 볕이 조금은 부드러워진 어느 늦은 오후, 나는 지금 하이퐁에서 가장 큰 교차로이자 가장 사랑해 마지 않는 포장마차가 있는 곳에 당도하였다.


처음 하이퐁에 왔을 때 이곳에 선 감상은 자세히 묘사를 하기가 힘들다. 그야말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축구장 너덧 개를 합쳐 놓은 것 같이 넓은 공간에 그 흔한 횡단보도 하나가 없다.



하이퐁에 오면 항상 가는 노상 포차가 한 군데 있다. 그곳은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 정도 어려 보이는 형제가 꾸려 나가는 곳인데, 동생으로 추측되는 친구는 유시민 작가의 유년기를 쏙 빼닮았다.


아마도 한국인 중에 이곳을 나만큼 자주 찾는 이가 없는 탓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내가 현지화가 잘 되었다고 한들 베트남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들은 이제 나를 기억하는 것 같다. 낮과 밤의 교대식이 있기 전에 이곳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고, 근 한 달 반 만에 찾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로 자연스레 나를 맞이하여 주었다.



특이하게도 삶은 땅콩을 내어 준다. 고향이 포항인 나에게는 익숙한 음식이지만 한국에서도 흔한 음식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 삶은 땅콩을 이역만리 타향에서 만날 수 있으니,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지만 반갑기 그지없다.


별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보리차 내어주듯 맥주를 한 잔 내어 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받아드는 맥주는 하이퐁 지역에서 생산되는 생맥주인데, 단언컨데 내가 살면서 먹어본 맥주중에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하다. 정확하게는 두 번째로 맛있는 맥주이지만 언제든 접할 수 있는 맥주 중에서는 가장 맛있다. 첫 번째로 맛있는 맥주는 사실상 공장에 직접 들러서 먹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가 어렵다. 언제나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나에게 조금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이곳에서 한정 없이 망중한을 즐겼을 것인데, 여전히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두 잔의 맥주와 몇 줌의 땅콩을 털어 넣고는 자리를 나선다. 단돈 600원. 엔도 아니고 달러도 아니고 위안도 아니고 싱가폴 달러, 호주 달러, 캐나다 달러, 유로도 아니다. 육백 원. 한국 돈으로 맥주 두 잔에 천 원이 안되는 가격이다. 우리 친구들 비오는 날에도 쏟아지는 비맞아 가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하다. 한국에서 콜라 한 캔 사먹을 돈이면 여기에서 맥주가 너덧 잔이니 부지런히 찾아주도록 하자. 안주도 싸고 맛있다. 깟비플라자 바로 대각선에 있는, 유시민 작가를 닮은 잘생긴 청년이 있는 포장마차이다.



한 숨 돌리고 나니 중천에 뜬 해가 반나마 그 모습을 감췄다. 집으로 향하는 오토바이들의 엔진 소리로 꽉 찬 하이퐁 거리는 적막이 깃들 틈을 단 한 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스타벅스에 잠시 들러 망중한을 즐기고 나니 어둠이 짙게 내려 앉았다. 낮과 밤의 풍경이 이토록 다른 것은 익숙치 않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 중 하나이다. 아무리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 싫다 하지만 쉬이 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낮에 먹은 콩국수 이후로 변변하게 밀어 넣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리 곳곳의 셔터 내리는 소리가 뱃속의 적막을 깨웠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밤 늦게 문을 연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숙소 근처에서 한 곳을 찾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잔뜩 뱃속에 털어 넣고도 만 원이 나오지 않은 것은 이곳이 하이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약재 향이 가득한 생선 요리는 의외로 입맛에 잘 맞았는데, 고된 하루로 지친 심신을 가득 달래주는 듯하다. 제대로 된 가방을 받아든 것에 한시름 놓기는 했다만 진정 중요한 일들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 무거운 짐을 받아든 채 내일을 기약하는 마음이 내심 울적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시킨 생선 한 마리가 그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빈 틈 없이 가득 찬 배를 두들기며 하이퐁의 첫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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