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유후인, 가족여행하며 먹은 것들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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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19.02.28(목) ~ '19.03.05(화)



계절은 마치, 동쪽에서 떠올라 아침을 만들고 창가로 드는 볕처럼 찾아오는 듯 하다. 스미는 한기가 아직은 매서웠던 2월 말의 한국이었건만, 일본의 거리를 걷는 곳곳에는 금방이라도 망울을 활짝 피워낼 것 같은 꽃나무들로 가득하다. 일종의 숙원사업과도 같았던 해외로 떠나는 가족여행, 아버지께서 동행하지 않은 것이 아쉽기는 하였지만 좋은 음식과 즐거운 경험이 가득한 와중에 즐거움만을 담아올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여서 더 행복했던 후쿠오카와 유후인에서 먹고 즐긴 것들이다.


1. キャラバン コーヒー(CARAVAN COFFEE)


주소 : 1591 Yufuinchō Kawakami, Yufu, Oita

지도 : https://goo.gl/maps/U4g6JuK4B812

시간 : 09:30 ~ 18:00


동생의 강력한 주장과 추진에 힘입어 료칸을 찾아 유후인에 발걸음하게 되었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을 것 같았던, 값비싸고 훌륭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호사도 누리게 되었으니 동생의 성은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이 카페에게서 아쉬운 점을 찾아내고자 한다면, 유후인에 있다는 것 말고는 뭐가 더 있을지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1970년부터 시작된 이곳 커피의 역사는 장소를 옮긴 적 없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듯 하다. 한 자리를 반 백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키는 것이 어디 만만한 일이겠는가. 이것 만으로도 다른 사족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싶다.



칠십을 훌쩍 넘어보이는 노부부께서 운영하는 이 공간의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기품있게 내린 흔적들로 가득하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에 뿔테안경을 쓴, 빨간 나비넥타이가 인상적이었던 주인 할아버지의 주변으로는 그야말로 '멋짐이 폭발한다'. 이 공간을 지금까지 가꿔오신 노신사처럼 나는 과연 멋지게 늙을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금새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진 것은 아마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얼마나 커피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분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대단한 노력이 필요치 않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이 자리를 지켜왔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은은한 향을 발산하는 수납장 안에 고이 모셔진 찻잔 중 그 어느 하나 같은 모습과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이 없다.



커피 맛이야 말해 무엇하랴. 혹시 유후인에서 호사를 누릴 기회가 있다면, 한 번 즐겨보시라.



우베에서 발견한 카페 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찾아가기가 녹록지 않다는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부디 노부부께서 건강하게, 오랫동안 이 자리를 계속 지켜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찾고 싶은 곳이기 때문에.


2. 心


킨린 호수 분점

지도 : https://goo.gl/maps/YUenrqMkqez

시간 : 10:30 ~ 18:30 (화요일 휴무)

유후인 본점

지도 : https://goo.gl/maps/QDZu1nreN9w

시간 : 11:00 ~ 21:00 (목요일 휴무, 16:00 ~ 17:30 재료 준비 시간)


한 끼 해결하려고 아픈 다리 부여잡아가면서 멍하니 핸드폰만 보고 서서 언제 불러줄 지 모르는 점원을 기다리는 일이 나의 취향은 아니다만, 가족끼리 온 여행은 조금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유후인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발견한 이곳의 본점에도, 킨린 호수로 가는 와중에 발견한 분점에도 길게 늘어선 인파의 행렬이 줄어들 생각을 않는다.



평소였다면 '배고파서 숨넘어가는 와중인데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짧은 탄식 한 번 하고 지나갔을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이야기의 전개가 살짝 다르게 흘렀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조금 전에 말한 것 처럼 가족 여행은 조금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 그 첫번째 이유이고, 더 중요한 것은 유후인에 마땅히 먹을만 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유후인이라는 공간 자체가 이 식당으로 향하는 거대한 깔때기가 아닐까 싶다. 뭐가 있나 싶어 돌고 돌다보면, 종국에는 이 식당의 문턱을 나도 모르게 지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유후인에서 가장 맛있는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식당, 이름도 한 번 들으면 잊기가 더 힘든 '심' 되시겠다.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메뉴를 내어준다. 이곳의 장점은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돌솥밥만 같아라. 선택지는 세 종류의 돌솥밥이 전부이니 고민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어 좋을 뿐 아니라, 마침 우리는 딱 세 명이었기에 고민의 여지조차 남지 않아서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주문과 동시에 내어주는 기본 찬은 엄청 화려하거나 푸짐하지는 않지만 나름 정갈하게 담겨 나온다. 대단한 맛이 있는건 아니지만 계란말이의, 잠시나마 개안하게끔 하는 달콤함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별도로 주문 할 수 있는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가능했다면 이것만 따로 시켰을지도 모르겠다.



딱 세 종류의 솥밥이 있다. 닭, 소, 장어. 그간 계속된 여행으로 피로가 누적되는 와중이었는데 시기적절하게 원기를 보충할 수 있는 한 끼를 만나게 된 셈이었다.


한 그릇에 25,000원을 넘어가니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니다만 그런 만큼 푸짐하게 내어준다. 일본 특유의 간장 맛이 살아있지만 워낙에 익숙한 맛이다. 아마 한국 사람이라면 누가 경험하더라도 맛있다고 할 만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대를 했던 장어였건만 그 기대를 살짝 엇나간 듯 하다. 질긴 것 없이 부들부들한 식감은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가끔씩 은은하게 밴 간을 뚫고 올라오는 바다의 향이 조금 아쉽다. 이 녀석의 출신이 바다인지, 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튼 비린내가 조금씩 느껴진다. 돌솥밥이라고 한다면 으레 누룽지를 만드는 것이 그 당연한 수순일텐데, 그 순간 비린내는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날뛰게 된다. 아쉽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니 우리는 소를 먹는 것이 옳습니다.


소를 드십시다. 소. 맛있는 소.


여기를 한 번 더 찾고싶은 이유를 굳이 찾고자 한다면 나는 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할 것 같다. 빛깔이 워낙에 진하기에 간이 너무 강하면 어떡하나 생각을 하였지만 그 수위 조절을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 절묘하게 해내는 것 같다. 결론은 이 소 하나만큼은 정말 맛있다는 것이다.



즐거운 여행에는 맛있는 음식이 함께하는 것이 당연지사. 찾기가 쉽지는 않은 곳이기에 또 만날 일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좋은 음식과 함께여서 즐거웠던 유후인에서의 하루였다.


3. Sushi Dokoro Ichifuku

주소 : 7-27 Komondomachi, Hakata-ku, Fukuoka

지도 : https://goo.gl/maps/HZEx69r3RBK2

시간 : 18:00 ~ 익일 01:00 (화요일 휴무)



한동안 초밥 생각을 완벽하게 지워버릴 만큼의 끔찍한 초밥을 만난 곳이 후쿠오카였지만, 가족과 함께 일본까지 건너왔는데 초밥 한 번 먹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애 첫 오마카세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얼핏 지나치면 식당인지도 모를 이곳의 이름은 '스시 도코로 이치푸쿠'. 나카스카와바타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조그마한 초밥집이다.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 싶었는데 첫번째 후쿠오카 여행 간에 묵었던 숙소와 같은 구역에 위치한 곳이었다. 여튼,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덕분에 예약을 하려고 미리 식당을 찾았더랬다. 그런데 왠걸, 사장님께서는 꽤나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신다. 아주 약간의 한국어도 함께. 그러니 혹 예약을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고민 않고 다이얼을 돌려도 될 것 같다.



식당은 매우 소담하다. 예닐곱 명 남짓 앉으면 꽉 찰 것 같은, 일자로 된 탁자가 전부다. 덕분에 조용한 분위기에서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고 즐겁게 한 끼 즐길 수 있다. 사장님은 인심 좋은 웃음이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는데, 아마도 영화 범죄도시와 극한직업에서 한 번 씩 만나뵌 적이 있는 분인 듯 했다.



처음으로 영접하는 오마카세인데 생맥주가 빠질 수 없다. 이날의 저녁에도 어김없이 함께하였다.



대장정의 서막은 몇 점의 회로부터 시작되었다. 맛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초밥이 맛있는 곳이면 당연히 회도 맛있지 않겠는가.



일본의 꽤나 많은 식당에서 기본 찬으로 내어주는 이 녀석이 이곳에서도 등장하였다. 유자향이 담긴 오징어. 맥주와의 조합이 꽤나 훌륭하기에 정신없이 먹어치웠는데 동생의 입맛에는 영 아니었나보다.



사장님께서 대구라고 하셨던 것 같다. 아마 이 식당을 다시 한 번 더 찾을 이유를 찾자면 고민 없이 이것을 택하겠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맛인데 상상해본 적 없는 새로운 재료에 입혀낸 음식들이 오마카세가 진행되는 와중에 종종 등장하였고, 그것이 무척 신기하였다. 이 역시 그러했는데, 무어라 표현을 하기가 힘들다. 그냥 먹어봐야 된다. 일단 나와 동생, 어머니 모두의 쩍 벌어진 입은 다물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양송이 스프. 이 소라에는 양송이 스프 맛이 난다. 꽤나 공을 들여서 만들었을 것 같은 정성스런 양송이 스프의 맛이. 근데 그게 소라의 식감에서 느껴지는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팔딱거릴 만큼 신선하다'는 흔한 수사를 문자 그대로 경험하게 되면 어떨지는 상상해 볼 이유도 없고, 그런 적 역시 없었는데,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되었다. 일단 이 새우는 달다. 무척 달았다. 분명히 신선하고 맛있는 새우였다. 단지 첫 만남이 조금 당황스러웠을 뿐이다.



한 시간 남짓 되는 시간동안 꽤나 많은 종류의 음식들이 내 앞을 스쳐지나갔지만 먹는데 정신이 팔린 탓에 많은 것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이 계란말이를 끝으로 오마카세는 막을 내렸는데, 5,500엔 정도 되는 돈으로 누릴수 있는 호사 치고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아주 저렴한 가격은 아니기에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종류의 음식은 아니다. 아마 오마카세를 또 경험하고자 마음먹게 된다면 다른 식당을 찾고 싶은 생각도 하게 될테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배우 진선규를 닮은 선한 미소의 사장님과 살아 움직이는 새우는 한동안 계속 생각이 날 것 같다. 덕분에 맛있는 한 끼 잘 먹고 갑니다.


4. 그리고 다양하게 먹은 것들


제대로 차려진 밥상을 꽤나 많이 받은 여행이었지만, 간단하게 해결한 저녁 역시 많은 이번 여행이었다. 절대로 빠지지 않는 패밀리마트의 함박 스테이크와 '빙결'이라는 이름을 가진 과일맛의 탄산주, 그리고 새롭게 경험한 여러가지의 편의점 음식들 덕분에 매일의 저녁을 나름 즐겁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 오야꼬동은 4,500원 정도 하였으니 그리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식당에서 파는 것 같이 구성이 알찼다. 이것 저것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바구니에 하나씩 담다 보면 식당에서 먹는 것이나 별 반 차이 없는 비용을 매일 지불해야했지만 매일 저녁이 푸짐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날은 처음으로 패밀리마트를 외면하고 세븐일레븐과 인연을 맺은 날이었다. 덕분에 좋은 교훈을 얻게 되었다. 사람 인연은 함부로 끊어서도 안되고, 쉽게 맺어서도 안된다. 패밀리마트의 PB 상품이라고 하는 저 탄산주를 발견했다는 것은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평일 점심이 되니 길거리에서 도시락을 팔고 계신 분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하나 사들고 바로 옆의 공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도시락의 이름은 분명 '카라아게 도시락'이었는데, 카라아게를 뺀 나머지는 모두 맛이 훌륭했다.



마지막날 저녁은 '홋토못토'라고 하는 도시락 가게의 가장 인기있는 녀석과 함께했다. 아마 이 녀석은 한솥도시락의 치킨마요 정도 되는 입지를 가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적어도 여기에서만큼은 한솥도시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저 계란말이가 없었다면 나는 이 도시락을 비워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이 7천 원이라니, 이런 돈까스를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다면 하루에 한 번 씩 찾을 용의가 있는데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없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여러모로 야무지게 먹고 즐긴 가족여행이었다. 동생과 나 모두 큰 마음 먹고 지갑을 열었는데, 역시나 돈을 쓴 만큼의 보람이 있다. 앞으로는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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