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다. 제주도, 첫번째

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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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17.02.22(수) ~ '17.02.24(금)


거의 십 년 만에 제주도를 다녀 왔다. 텐바이텐에서 '제주여행'을 주제로 기획전을 진행 중인데 내 가방도 참여를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상세페이지를 다시 한 번 살펴 보던 중, 조금 민망할 정도로 여행지에서 찍은 제품 사진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간만에 여행도 하고 제품 사진 촬영도 할 겸 해서 길을 나서게 되었다.


워낙에 갑작스러웠던지라 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 적당히 소셜커머스를 뒤적거려서 적당한 날짜와 적당한 가격의 비행기표를 고르고, 그나마도 숙소는 비행기가 뜨기 하루 전날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예약을 했다. 차를 빌리고 싶은 마음에 동생에게 조심스레 렌트 얘기를 꺼내 봤다. 하지만 나의 면허증이 취득한 지 9년째 장농에서 나올 생각을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동생은 제안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리하여 결정된 제주도 도보 여행. 적당한 올레길을 하나 택하여 걸어 보기로 하였다. 십 년 전, 제주도의 해안 도로를 따라 두 다리가 부러져라 자전거 페달을 구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만 해도 이십대 후반에는 운전대를 잡고 제주도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주인을 잘못 만난 가여운 두 다리는 이 나이 되도록 쉴 틈이 없다.


출처 : 제주올레길 공식 홈페이지


지도를 펼쳐 놓고 어느 길을 따라가면 좋을지 고민을 해보고 싶었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차가 없는 자에게 허락된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씩 지워 나가다 보니 남은 것은 다섯 곳도 되지 않는다. 이 정도라도 남은 게 다행이려나. 그 중에서도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사실상 하나, 숙소가 있는 애월항에서 가장 가까운 16코스 뿐이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한 주 내도록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하늘이 갑자기 잔뜩 찌푸렸다. 귓전을 스치는 바람도 심상치가 않은 것이, 과연 오늘 무사히 제주도 땅을 밟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집을 나서자마자 지연이 되었다는 문자로 핸드폰이 요란하다.



끝없이 요란하였다. 오늘 제주 땅을 밟을 수 있을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천만다행으로 두 번의 연착 후 더 이상의 문자는 없었지만 내가 몸을 실은 비행기는 악천후를 뚫고 날아올라야 한다. 비행기 타는 게 너무 싫은 나의 머릿속에는 차라리 취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지만 별 의미는 없는 후회, 비행기는 이미 김포공항 활주로 위에서 관제소의 이륙 허가만을 기다리고 있다. 비상구 좌석이 걸린 덕분에 두 다리가 편하고 A320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커다란 A321과 함께한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하늘로 날아오는 비행기는 힘 좋은 스윙 한번에 시원스레 하늘로 솟구치는 야구공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순식간에 제주 땅에 안착했다. 제주에서 김포로 향하는 비행기들이 무더기로 연착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제주의 하늘도 시원찮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기대 이상이다. 두 뺨을 사정없이 훑어대는 바닷바람이 서울보다 더 싸늘하게 식어 있는 것은 기대에도 없던 덤이다.



설상가상으로 제주도의 대중교통은 끔찍하리만치 엉망진창이다. 시외버스터미널을 제외하면 제주에서 가장 많은 버스가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 제주공항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전광판에 선명한 두자릿수의 도착예정시간은 두 눈을 의심케 한다.



애월항은 여기서 얼마 되지도 않는데 환승까지 해야한다. 을씨년스럽게 빛바랜 하늘에는 쉬지 않는 빗방울. 반려된 차량 대여 품의를 지금이라도 다시 올려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공항에 내려 버스만 두어 번 갈아탔을 뿐인데 어둠이 무겁게 내려 앉았다. 관광객들이 찾을 이유도 마땅히 없는 이곳의 밤하늘에 조금의 인기척을 보태고 있는 것은 생뚱맞게도 프랜차이즈 빵집의 간판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저녁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저녁 9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항구마을은 완벽히 어둠에 잠기었다.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기에 고민의 여지도 얼마 없다.



아무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제주에서 가장 음식이 만족스러웠던 곳이다. 매운탕과 물회는 물론이거니와 기본찬으로 식탁에 올라온 음식들마저 너무나 맛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제외해도 이곳의 음식은 충분히 훌륭했다.



요즈음은 전국 어디에서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한라산은 제주에서 만나야 한다.



말이 좋아 여행이지, 그야말로 사서 고생하려고 비행기까지 타버린 나의 결정을 후회하면서 KGB 한 병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내일은 더 춥다는데 대체 얼마나 걸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그렇게 고생하면 내가 필요한 사진을 몇 장이나 건질 수 있을까. 정말 다음날 아침이 밝아오지 않았으면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별 수 없다. 한숨 한 번 쉬고 오지 않는 잠을 애써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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