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만들다. 열여덟

황무지


크라우드 펀딩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사진 촬영과 영상 제작을 시작한 지 2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손에 쥔 결과물은 아무것도 없었고, 계획했던 펀딩의 시작일까지는 불과 일주일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과유불급이라, 내 역량이 닿지 못하는 영역의 일에 너무나 큰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닌가. 조금의 후회와 걱정이 밀려오기는 했지만 이미 모두가 휴가를 떠나게 되는 8월까지 펀딩 기간을 끌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무조건 일정에 맞춘다는 생각으로 심기일전 하기로 했다. 다행히 6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까지는 제품 스튜디오 사진 촬영을 완료할 수 있다는 사진 작가님의 확답을 받았다. 남은 것은 새로운 영상을 찍는 것과 야외 사진 촬영이었다.

'화이트월'이라고 부르는 하얀색의 스크린 장비가 있는 스튜디오가 필요했다. 다행히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장소가 한군데 있다. 항상 숭실대입구역에서 버스로 환승을 하는데, 지하철 역사 안에 '창업카페'가 있는 것을 상기했던 것이다. 그날의 여정에도 숭실대입구역은 빠지지 않았고, 바로 창업카페에 들러 토요일 오후의 스튜디오 사용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계획은 이러했다. 금요일 밤까지 사진 작가님께서 스튜디오 촬영을 하셔야 하기 때문에 가방은 토요일 아침에 받으러 간다. 숭실대입구역으로 바로 이동해서 오후에 동영상을 찍은 다음 일요일에는 선유도 공원에서 제품 야외 촬영을 하면 되는데, 비가 올 수도 있다는 일기 예보가 불안하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이후는 하늘에 맡기기로 한다.


개인적인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짧아 보이지는 않는다.


절반의 성공. 계획했던대로 토요일 오전에 작가님께 가방을 받을 수 있었고,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두번째 동영상을 촬영하였다. 일요일은 하늘이 나를 어엿비 녀기었는지 약간 흐리긴 했지만 천만 다행으로 비는 내리지 않았다. 덕분에 작가님과 함께 야외 촬영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내가 모델이라는 것이 꾸준히 미덥지 않았으나, 작가님이 심혈을 기울여 찍어주신 사진들 속의 내 모습은 그렇게 키가 작아보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방은 꽤나 사고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예쁜 모습으로 담겨 있었다. 펀딩의 시작까지 3일을 남겨두고 극적으로 사진 촬영을 완료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활을 걸다시피 했던 동영상은, 이번에도 나의 기대를 보란듯이 저버리고 말았다.

두번째 영상을 찍기 전 며칠동안 정말 많은 광고 영상들을 보면서 수없이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기나긴 고민 끝에 나는 홈쇼핑 호스트가 되어보려 했다. 가방의 기능들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재미를 줄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연출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품에 대해서 조금 더 호감을 갖고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럽게 재미가 없었고, 목소리도 잘 안들렸다.


나는 스스로가 공적인 자리에서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는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두번째 동영상을 찍으면서, 나라는 사람이 그런 자리에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는 말할것도 없고,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아서 당최 동영상에서 전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첫번째 동영상은 어떻게 부빌 언덕이라도 있었는데, 이거는 그나마 남은 언덕마저도 불도저로 싹 다 밀어버린 꼴이었다.

황무지가 된 들녘에도 봄은 올 것인가. 펀딩을 3일 앞둔 일요일 저녁이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