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만들다. 끝맺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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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십삼년 여름.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 생활비를 벌 요량으로 전국을 전전하던 나는 대구에서 열리는 어느 학회의 진행요원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외할아버지 댁에 잠시 묵은 적이 있다. 5일 남짓이었던 것 같은데, 매일 변변찮은 가방 하나 없이 출근길에 나서는 손주놈이 안쓰러웠던지 외할머니께서는 나의 손을 잡아끌고 마트로 향하셨다. 내 가방이 생긴 지금은 방 한켠에 고이 모셔두었지만, 이미 해지고 닳아서 볼품이 없어진 그 가방을 나는 불과 첫번째 크라우드 펀딩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참 열심히도 메고 다녔다. 외할머니께서 사주신 가방인 탓도 있겠지만 사실 그만큼 나는 내가 입고, 메고, 신는 모든 것에 관심이 없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 서울로 갖 올라온 때를 가끔 떠올린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가방에 애착이 많고 관심도 많은 사람이 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가방은 나의 업을 세우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내 스스로의 일을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생각이 꽤나 간절하였기에 가방에 쏟는 관심은 단지 그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며칠 전 한 친구가 물어왔다. 너는 가방을 만들고 싶은 것이냐고. 일에 치여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변명을 핑계삼아 관심의 변경으로 미루어 두었던 고민을 그제서야 해보았다.


아마 계속 가방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Traveler's High'라는 이름을 지으면서 다짐했던 것처럼 앞으로 내가 만들어 낼 모든 것들은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다른 무엇보다 탁월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여행’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엮인 다양한 고민들을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그 수단과 방법이 비단 가방에만 국한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여행 준비는 저기에만 가면 다 돼’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런 브랜드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출발이 썩 괜찮았고, 앞으로 더 괜찮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함께 보았기에 결코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먼 훗날의 모습을 그리고 차근히 나아가고 싶지만, 사실 아직은 먹고 살기 바쁘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한걸음씩 내딛다보면 언젠가는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 와있지 않을까.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 잠자리에 드는 이천십육년의 여름을 보내는 마음이 꽤나 즐겁다.


가방을 만들다.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