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만들다. 열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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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샵


거북이 등딱지를 엎어놓은 것 보다 조금 더 못생긴 두번째 가방을 완성시키는데까지 백만원이 들었다. 기능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은 하나의 위안거리가 되었지만, 못 생겨도 너무나 못 생긴 이 가방을 어떻게 하면 수렁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 나는 그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방을 책상 위에 얹어 두고 하루종일 고민해보았지만 묘안이 떠오르기는 커녕 그동안 허공에 팽개쳐버린 돈 생각이 우울함만 더할 뿐이었다. 차라리 호박에 줄을 그어 수박으로 만드는 것이 더 현실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참으로 절망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집단 지성의 힘을 빌어보기로 한다. 내가 속해있는 거의 모든 카카오톡 단체방에 가방의 사진을 잔뜩 올렸다.

'있는대로 까주세요. 대안이 없어도 됩니다. 생각 나는대로 마음껏 까주세요.'

예상과 달리 놀라우리만치 반응이 없었다. 이미 첫번째 가방으로 곤혹을 치른 그들에게 또 다시 찾아온, 그야말로 재앙과도 같았던 나의 두번째 가방은 아마 눈뜨고 보아넘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던 듯 하다. 가장 많이 본 글자가 '...'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이번 가방은 그들에게도 도저히 참기 힘든 고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애초에 없는 것이 명백해 보였으나 요행과 같이 바라본 묘수는 예상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가방을 예쁘게 만드는 것은 온전히 나만의 몫이 되었다. 남은 것은 나의 비루한 포토샵 실력을 믿어보는 것 뿐인데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비루하기라도 하면 다행이었을 것인데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포토샵이라는 것을 써본 적이 없었다.


가방의 길이를 얼마로 해야할지 ppt에 1cm씩 늘어놓아 보았다.


포토샵을 써본 적 없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삼일 밤낮으로 온갖 동영상 강의와 각종 블로그의 성은을 입어가며, 꺼져가는 가방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그야말로 별의 별 짓을 다하였다. 여담이지만, 애초에 기계와 컴퓨터에는 취미가 없기에 앞으로도 나와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포토샵은 3일간의 매우 지독한 수련 덕분에 지금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3일 쯤 지나자 포토샵으로 원하는 형태의 가방은 다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무수한 시행 착오를 거친 끝에 어설프게나마 몇가지 방법이 떠오르기는 했는데, 너무 간단한 변화라서 스스로도 영 미덥지가 못하다. 어딘가에 위치할 로고가 한가지 아쉬웠고, 대머리처럼 보이지 않게 할 지퍼선이 가방 앞면에 하나 있으면 좋겠다. 가방 색깔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 그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나지도 않았다.                              

실제로 가방에 옮겨진 느낌이 어떨지 매우 궁금했다. 급하게 신설동에서 지퍼 가닥 조금과 색이 다른 원단을 사와서는 이래저래 자르고 붙이고 해보았다.                      


무언가 예쁘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던 순간이다.


... 어? 괜찮다. 가방이 예뻐보였다. 여기를 살펴보고 저기를 살펴봐도 괜찮아 보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친구들에게도 평을 구하였는데, 웬일로 반응이 호의적이다. 아니 대꾸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드디어 기나긴 여정의 끝이 보이는 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