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만들다. 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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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


드디어 예쁘고 쓸만한 가방이 세상에 나왔다. 세번째 가방이 나온 날, 서울의 어느 장례식장에서 간만에 만나게 된 회사 동기들 역시 직접 본 가방에 대한 후한 평을 처음으로 아끼지 않았다. 가방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지 않을까 고민하는 일은 없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가방을 만들기만 하면'

양산 공장을 찾는 것은 샘플 업체를 찾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샘플을 제작하는 것은 시세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하나만 만들면 되기 때문에 나는 실력이 좋으신 분을 찾아서 샘플의 생산이 제대로 됐는지 살펴보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양산 공장을 찾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고민이었다. 되도록 저렴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공장을 찾는 것은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사실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수많은 고민거리 중 하나일 뿐이다. 얼마나 꼼꼼하고 튼튼하게 잘 만들어줄 수 있는가, 내가 원하는 납기 내에 가방의 생산이 가능한가, 믿을 수 있는 곳인가. 추후 결품이 생겼을 때 A/S 대응은 확실한가 등등, 좋은 공장을 찾기 위해 확인해야 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은 나로 하여금 발품을 팔지 아니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간곡하게 네이버의 성은을 빌어본다. 직접 여기저기 전화도 해보고, 여러 곳의 견적 게시판에 몇 장의 사진을 첨부한 글도 썼다. 부천, 신월동, 신설동 할 것 없이 밤낮으로 부지런히 공장들을 다녀보고, 사장님들을 만나 생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새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시간은 그다지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슬슬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생산 비용은 공장을 한 곳이라도 더 찾아가게 되면 당연하게 낮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부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수십군데를 돌아보는 동안 내 가방은 이미 임계치에 가깝게 생산 견적이 낮아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공장들을 둘러보면서도 과연 믿을 만한 공장인가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업체 사장님들을 만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얻어내는 지극히 한정된 정보만으로는 그 업체를 제대로 판단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기사를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지금까지 찾아본 공장들 중에 한군데 적당히 찾아가서 만들까.'

태아 시절부터 꾸준하게 부족했던 나의 끈기 덕분에 공장을 찾기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귀찮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태함이 슬슬 자리하기 시작할 즈음 우연하게 보게된 '양천가방협동조합'이라는 곳에 관한 기사. 처음에는 큰 호기심조차 갖지 않았다.

그런데 찬찬히 읽다보니 그게 아니다. 가방 생산 경력은 말할 것도 없고, 생산하시는 가방의 브랜드들 역시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만한 유명한 것들이었다. 국내 가방 기술을 지켜나가고, 자생하기 위해서 노력하고자 하시는 협동조합 분들의 좋은 뜻 역시 가슴에 닿았다. 겨우 위치만 찾아내고는, 전화번호는 찾을 수가 없어서 연락 한 통 드리지 못한 채 무턱대고 찾아가보기로 하였다.

다음날 아침, 하필 찾아간 시간도 점심시간이었는데 사무실로 통하는 통로가 어두컴컴하다. 아무도 안계신가 싶어서 발걸음을 돌리려 했지만, 혹시나 싶어 문을 열어본다.

아마 그 문고리를 돌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내 가방은 아직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