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세렝게티 여행의 마지막 날
버팔로와 함께 잠자리에 든 세렝게티의 둘째 날도 생각보다 무탈하게 지나갔다. 첫날 밤 내내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하이에나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체급부터가 워낙에 남다른 버팔로다.
재미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듯이, 버팔로의 별생각 없는 뒷걸음질에도 우리는 비명횡사할 수 있다. 한 장의 천쪼가리에 불과한 텐트 너머에서 사각거리는 버팔로의 풀 뜯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우리의 머리털은 쭈뼛거렸다. 다행히 별 일은 없었고,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마지막 아침을 맞이했다.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이역만리 한국에서 날아든 주문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새삼스레 기술의 진보를 체감하는 순간이다. 모뎀보다 조금 빠른 속도이긴 하지만 세렝게티 한복판에서 인터넷이 터지고, 나는 손가락 몇 번 딸깍거리는 것만으로 고객님들께 가방을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바야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줄 알았다. 남들보다 앞선 방식의 삶을 사는 것 같아서 어깨가 잔뜩 올라가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부끄럽지만, 코시국으로 서열 정리 당하기 전까지는 이렇게나 건방진 생각을 하며 고개를 쳐 들고 다녔다.
2mb 남짓의 주문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위해 30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씻고 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뜨거운 물로 몸뚱아리를 녹이며 간밤의 피로를 털어냈다. 그러고는 송장 처리를 완료하였고,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세렝게티의 아침을 마주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전날 아침과 완벽하게 동일한 구성이다. 전병과 토스트, 소로 만든 소세지와 이런저런 주전부리의 향연, 간단하게나마 과일도 있다.
동그랗게 말린 전병이 매일 아침의 숨은 MVP였다. 슴슴하니 별것 없는데 계속 들어간다. 상당히 간이 센 음머-세지와의 궁합이 굉장히 좋다. 대체 이걸 왜 먹는 거지 싶은데 정신을 차려 보면 빈 접시만 남아 있다.
우리와 간밤을 공유했던 다른 팀들은 애저녁에 떠나고 없다. 사냥에 나선 사자를 구경하겠다고 진즉에 떠났다.
오히려 좋아. 캠핑장의 모든 것을 내 것처럼 누리는 중이다. 샤워실에 뜨거운 물이 안 나올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고 식당도 조용하다. 무소유의 정신이 가져다 준 행복이다. 사자의 사냥하는 모습을 향한 집착을 버리니 모든 것이 이렇게 여유롭고 행복하다.
이상 게으름 피우다가 아침 일정을 싸그리 말아 먹은 인간의 변론을 마치겠습니다.
어차피 늦은 김에 확실히 늦기로 했다. 사진도 찍고 형들이랑 수다도 실컷 떨다가 느긋하게 출발했다. 마침내 응고롱고로 분화구로 향할 시간이다.
응고롱고로는 화산 활동에 의해서 생긴 분화구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 가장 거대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평균 지름이 무려 20km에 달한다. 분화구 중심의 칼데라 호를 중심으로 온갖 야생 동물들이 평화롭게 살아간다.
야생 동물 못지않게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마사이족의 전통 가옥이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마사이족이 이곳에서 전통 방식의 생활 양식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유네스코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고롱고로에 살고 있는 마사이족만 해도 6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웬만한 군 단위 지방자치단체 하나는 꾸릴 수 있는 만큼이 된다.
꽤나 긴 시간을 달려 분화구로 향하는 초입에 닿았다. 너무나 거대한 나머지 분화구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 산에 올라서 분지 지형의 너른 대지를 마주하는 느낌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고 말이다.
형들과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떨다가 다시금 차에 올랐다. 지금부터는 비탈길을 따라 응고롱고로까지 한달음에 닿을 것이다.
곳곳에 돌이 굴러 떨어진 흔적이 많다. 아주 많다.
다행히 돌이 굴러 떨어지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600m 남짓의 표고차를 극복하고 비탈길에 들어선 지 20분 만에 분화구의 너른 대지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응고롱고로 분화구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너른 초원에서 생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 녀석들에 비하면 팔자가 좋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살이 오르고 때깔도 좋다.
마침내 여정의 막바지를 향하는 중이다. 우리의 앞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쉬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공기의 묘한 흐름을 느끼며 본격적인 유람을 시작한다.
어느새 세렝게티 여행의 마지막 날
버팔로와 함께 잠자리에 든 세렝게티의 둘째 날도 생각보다 무탈하게 지나갔다. 첫날 밤 내내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하이에나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체급부터가 워낙에 남다른 버팔로다.
재미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듯이, 버팔로의 별생각 없는 뒷걸음질에도 우리는 비명횡사할 수 있다. 한 장의 천쪼가리에 불과한 텐트 너머에서 사각거리는 버팔로의 풀 뜯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우리의 머리털은 쭈뼛거렸다. 다행히 별 일은 없었고,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마지막 아침을 맞이했다.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이역만리 한국에서 날아든 주문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새삼스레 기술의 진보를 체감하는 순간이다. 모뎀보다 조금 빠른 속도이긴 하지만 세렝게티 한복판에서 인터넷이 터지고, 나는 손가락 몇 번 딸깍거리는 것만으로 고객님들께 가방을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바야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줄 알았다. 남들보다 앞선 방식의 삶을 사는 것 같아서 어깨가 잔뜩 올라가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부끄럽지만, 코시국으로 서열 정리 당하기 전까지는 이렇게나 건방진 생각을 하며 고개를 쳐 들고 다녔다.
2mb 남짓의 주문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위해 30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씻고 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뜨거운 물로 몸뚱아리를 녹이며 간밤의 피로를 털어냈다. 그러고는 송장 처리를 완료하였고,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세렝게티의 아침을 마주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전날 아침과 완벽하게 동일한 구성이다. 전병과 토스트, 소로 만든 소세지와 이런저런 주전부리의 향연, 간단하게나마 과일도 있다.
동그랗게 말린 전병이 매일 아침의 숨은 MVP였다. 슴슴하니 별것 없는데 계속 들어간다. 상당히 간이 센 음머-세지와의 궁합이 굉장히 좋다. 대체 이걸 왜 먹는 거지 싶은데 정신을 차려 보면 빈 접시만 남아 있다.
우리와 간밤을 공유했던 다른 팀들은 애저녁에 떠나고 없다. 사냥에 나선 사자를 구경하겠다고 진즉에 떠났다.
오히려 좋아. 캠핑장의 모든 것을 내 것처럼 누리는 중이다. 샤워실에 뜨거운 물이 안 나올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고 식당도 조용하다. 무소유의 정신이 가져다 준 행복이다. 사자의 사냥하는 모습을 향한 집착을 버리니 모든 것이 이렇게 여유롭고 행복하다.
이상 게으름 피우다가 아침 일정을 싸그리 말아 먹은 인간의 변론을 마치겠습니다.
어차피 늦은 김에 확실히 늦기로 했다. 사진도 찍고 형들이랑 수다도 실컷 떨다가 느긋하게 출발했다. 마침내 응고롱고로 분화구로 향할 시간이다.
응고롱고로는 화산 활동에 의해서 생긴 분화구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 가장 거대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평균 지름이 무려 20km에 달한다. 분화구 중심의 칼데라 호를 중심으로 온갖 야생 동물들이 평화롭게 살아간다.
야생 동물 못지않게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마사이족의 전통 가옥이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마사이족이 이곳에서 전통 방식의 생활 양식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유네스코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고롱고로에 살고 있는 마사이족만 해도 6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웬만한 군 단위 지방자치단체 하나는 꾸릴 수 있는 만큼이 된다.
꽤나 긴 시간을 달려 분화구로 향하는 초입에 닿았다. 너무나 거대한 나머지 분화구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 산에 올라서 분지 지형의 너른 대지를 마주하는 느낌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고 말이다.
형들과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떨다가 다시금 차에 올랐다. 지금부터는 비탈길을 따라 응고롱고로까지 한달음에 닿을 것이다.
곳곳에 돌이 굴러 떨어진 흔적이 많다. 아주 많다.
다행히 돌이 굴러 떨어지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600m 남짓의 표고차를 극복하고 비탈길에 들어선 지 20분 만에 분화구의 너른 대지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응고롱고로 분화구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너른 초원에서 생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 녀석들에 비하면 팔자가 좋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살이 오르고 때깔도 좋다.
마침내 여정의 막바지를 향하는 중이다. 우리의 앞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쉬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공기의 묘한 흐름을 느끼며 본격적인 유람을 시작한다.
탄자니아 여행기 #.15 세렝게티 여행의 대미, 응고롱고로 분화구 탐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