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 새겨진 홍콩의 흔적은 2년 하고도 3개월 전이 마지막이다. 가지 않을 이유나 피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간만에 찾은 홍콩이 그토록 반가웠던 이유다. 바뀐 것은 내 나이의 앞자리 숫자와 달력 뒷자리 말고는 없구나 싶었을 만큼 한결같은 모습에는 안도가, 한편으로는 나이만 먹는구나 싶었던 일곱 번째 홍콩 나들이. 2년 반 만의 홍콩에서 먹고 즐긴 것들이다.
1. 상하이 라오라오(Shanghai Lao Lao)
주소 / 지도 / 시간 : 체인점이므로 구글지도에 Shanghai Lao Lao 검색 후 참조
※ 홍콩섬 북부의 중심가(센트럴, 완차이, 코즈웨이베이)는 물론이고 침사추이, 샤틴 등 여행자가 갈 만한 곳이라면 이 녀석은 웬만하면 찾아볼 수 있다. 굳이 찾아가기 보다는 '마침 근처에 있으니 들러 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찾으면 딱 적절할 만한 장소
홍콩에는 유난히 상해에서 건너온 음식들이 많다. 비행기를 타고도 두 시간 넘는 시간이 필요하니, 결코 가까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번 여행 동안에는 바로 그 상해 지방의 음식과 인연이 많았다. 몸뚱아리는 엄연히 홍콩에 있었지만 나의 혓바닥은 홀로 동방명주를 벗하며 상해 어드메를 떠돌았다.
상해 음식으로 유명한 꽤나 많은 식당들이 본토에서 얻은 명성을 토대로 가세를 넓히는 와중에 홍콩과 인연을 맺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식당은 그렇지 않다. 조금 많이 뜬금없지만 '카페 데 코랄'이라고 하는, 홍콩의 김밥천국 혹은 요시노야 정도 되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계열 브랜드이다. 나름 장사가 괜찮게 되는지 홍콩 곳곳에서 활발히 전개가 되고 있다. 꽤 괜찮은 수준의 상해 음식을 선보이고 있나 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홍콩 현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샤틴으로 옮긴 발걸음, 그 친구 덕분에 상하이 라오라오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친구의 말로는 홍콩 현지인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는 상해 음식점이라고 한다.
합리적인 가격이 영업 전략인 '카페 데 코랄' 계열인 만큼 이곳 역시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이 매력이다. 두 명이서 3만 원 정도면 꽤나 배부르게 여러 종류의 음식을 경험할 수 있으니, 홍콩에서 이런 가격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다.
이곳을 요약하는 한 문장으로는 이것만큼 적절한 것이 없을 것 같다.
'네가 무슨 상해요리를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정말 다양한 종류의 요리를 맛 볼 수 있는데, 웬만한 요리들은 주문하고 숨 돌릴 새도 없이 식탁에 올라온다. 배가 고파서 숨이 껄덕거리는 와중에 자리에 앉더라도 그 가쁜 숨이 넘어갈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 같은 굉장한 속도. 그런데 가격까지 저렴하니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먹고, 즐기고 탕진하고 돌아오자는 일념으로 지갑을 꽤나 두툼하게 만들어서 갔지만 돈도 역시 써 본 놈이 쓸 줄 안다. 뭘 먹어야 보람 있게 돈을 쓰는 것인지 잘 모르는 탓에 식사시간이 가까워 올 때마다 고민 속에 머리를 쥐어뜯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구글 지도를 실행하였고, 결국 상하이 라오라오로 향하기를 두 번, 결국은 친구와 함께한 끼니를 포함하여 세 군데의 상하이 라오라오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나마도 매 끼니가 같은 음식이었으니, 적어도 이 풀쪼가리와 탄탄면 맛 하나 만큼은 눈 감고도 어느 지점인지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고 과장 조금 보태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노이에는 '꽌 안 응언'이라는 베트남 대중 음식점이 있다. 그곳에는 '수수'라는 이름의 채소를 볶은 풀쪼가리 음식이 있다. 그리고 꽤나 많은 '꽌 안 응언'을 가보았다는, 내 가방을 만들어 주시는 벤더의 형님께서는 같은 풀인데도 지점마다 맛이 판이하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고, 나는 그것이 정말일까 의문을 왕왕 가지고는 했었다.
그 의문은 이번 홍콩 여행에서 비로소 해소될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세 군데의 지점에서 거의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그 맛이 조금씩 달랐다. 상당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맛을 보는 것만으로 어느 지점에서 만든 것인지 충분히 구분이 가능하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꽤나 신기한 일이다.
일단 중요한 것은 이 풀 요리는 정말 맛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메뉴판에는 친절하게도 이름과 사진이 동행하고 있으니 주문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을 세 번이나 찾게 한 또 다른 이유, 탄탄면이다.
대만에서 이미 한 번 경험 했다. 타이페이 101에 위치한 딘타이펑에서였다. 딱히 대단한 경험은 아니었다. 대만 사람들은 한국인 못지 않게 나트륨을 좋아하는 민족이구나 생각하면서 돌아온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이내 탄탄면은 원래 그런 음식이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생각을 조금은 고쳐먹게 되었다. 간이 과한 것이 부담스럽다면 이곳의 탄탄면은 꽤나 만족스러울 것이다. 무엇보다 상해의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한국의 향기가 상당하다. 이런 식당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에 홍콩 사람들이 무척 부러웠다. 그 부러움의 크기가 어느 정도냐면, 홍콩에서 한국으로 들여오고 싶은 것을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여기를 바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앞으로는 홍콩에 가서 무얼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요리왕 비룡의 한 장면처럼 음식을 입에 넣자마자 파도가 춤을 추고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감동은 뒤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만큼 무난한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한 끼를 새롭게 시도하는 과정에 큰 위안과 힘이 될 것 같다. 혹시 망하더라도 여기에 들러서 입가심 하면 되니깐 말이다. 이 식당이 집 앞에 있는 홍콩 사람들이 참 부럽다.
'완톤면'이 무얼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완탕면이란다. 그리 맛있어 보이는 생김새가 아니라서 그간 애써 외면하였던 음식, 일곱 번째 발걸음 만에 경험하게 되었다. 눈썰미가 있는 분들이라면 아마 기시감에 고개를 갸우뚱 할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한국 사람들에게 꽤나 유명한 완탕면 식당인 '침차키'의 바로 맞은편이다.
과연 1920년부터 이어져 온 기원이 정말일까 싶어 굳이 홈페이지까지 찾아가 보는 수고로움을 감수하였다. 시작은 1920년의 광저우부터였다고 하니, 홍콩에서 시작한 역사가 55년 가량이 되기는 하였지만 결국은 중국 본토의 음식인듯 하다.
어떤 음식인지는 알고 있었으니 대단한 기대를 갖지는 않았다. 아마 그런 덕분에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은근한 감기 기운에 이따금 떨리는 몸을 가누기가 쉽지 않았는데 완탕면은 꽤 괜찮은 처방전이 되었다. 빛깔은 맑지만 그 은근한 국물의 깊이에 한 번 놀랐고, 별 맛은 없는 것 같은데 끊임없이 들어가는 절묘함에 감탄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양이 적다. 아무리 콘지와 비슷하게 아침 대용으로 먹는 음식이라지만 양이 적어도 너무 적다. 아침이 아니라 식전에 디저트로 먹어야 하는 음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잘 쳐줘도 딱 두 젓가락 분량이다. 조금 무리하면 딱 한 번의 젓가락질로 그릇을 비워낼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양이 적다.
한 그릇 양이 적은데 두 명이서 이거 한 그릇 더 시켰다고 기별이 갈 리 만무하다. 새우와 돼지고기를 채워 만든 완탕도 맛있지만 당연히 양이 적다. 그래도 맛있으니 됐다. 맛있다는 장점은 많은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 모든 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맛있는 주전부리가 필요할 때는 언제고 환영이다.
홍콩을 여행한 사람들 중에 타이청 베이커리의 에그타르트를 먹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마약쿠키'로 불리는 제니 베이커리의 쿠키 한 통과 함께 홍콩 여행의 필수요소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정말 맛있는 에그타르트는 애드미럴티 A번 출구 앞에 있는 KFC에 있지만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다. 홍콩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면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당신은 결국 타이청 베이커리를 가게 될 것이다. 남들 다 간다는데 나 혼자 안 가기는 뭣하지 않은가. 아마도 그럴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겉바속촉' 그 자체인 만두를 맛볼 수 있는 이곳은 타이청 베이커리의 바로 맞은 편에 있다.
딤섬이라고 하기에는 피가 두껍고, 만두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애매하다. 간판의 '상해생전포'라는 한자는 이 녀석이 만두임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소하다.
왜냐하면 이 만두는 쪄낸 다음 기름 속에 다시 한 번 입수하는 번거로움을 이겨낸 녀석이기 때문이다. 만두의 아래 부분이 갈색 빛깔을 발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가로쉬님은 센트럴 어느 거리의 조그마한 가게에서 빚고, 쪄낸 다음 튀겨내는 바로 이 만두를 매개로 하여 그 불멸의 재림을 오늘도 쉬지 않고 이뤄내고 계신다.
이미 한국의 여행객들에게는 꽤나 익숙하게 알려진 음식인 듯하다. 너무 간만에 홍콩을 찾은 덕분에 나는 무척 늦게 알게 되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무척 다행이다. 그 무엇 하나 맛있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트러플을 채워 넣은 이 만두는 정체 불명의 감탄사를 쉬지 않고 뱉어내게 만들었다. 바삭바삭한 외피를 조심스레 씹어 내부로 진입하는 순간 고여 있던 육즙이 입 안에 넘실거린다. 그와 동시에 만두가 품고 있던 향이 과장 조금 보태서 이비인후와 오장육부를 마구 넘나든다. 더이상 설명할 길이 없다. 그냥 먹어 봐야 한다.
이 거리에는 괜찮은 구경거리와 먹을거리들이 상당하다. 거리를 걷는 와중에 출출해진 배가 신호를 보내 온다면 이곳을 한 번 찾아보도록 하자. 여기는 절대 맛있는 곳이니깐 말이다.
4. 데낄라 온 데이비스(Tequila on Davis)
주소 : Shop 7, G/F & C/L., Grand Fortune Mansion, No. 1 Davis Street, Kennedy Town
홍콩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 번도 빼먹지 않았고 앞으로도 절대로 누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단언컨데 홍콩에서 가장 사랑해 마지 않는 식당, 이미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다시 한 번 더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손가락을 놀리게 만드는 곳, 케네디 타운의 숨겨진 보석 '데낄라 온 데이비스'이다.
그 어떤 말의 성찬을 늘어놓아도 과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온갖 과장과 미사여구는 감히 이곳을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바, 찬사를 어디까지 늘어놓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어느 순간부터 홍콩에 와서 데낄라 온 데이비스를 찾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참 다행인 것은 꽤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이곳을 찾았지만 한결같은 모습을 지금까지 지키고 그 자리에 있어 준다는 점이다. 간만에 케찹이 그리워 찾은 IFC의 버거집 'Big Fernand'가 위생 당국의 실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갑작스러운 폐업으로 종말을 맞이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여기는 뭘 시킬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뭘 시켜도 다 맛있기 때문이다. 그냥 먹고 싶은 걸 시키면 된다. 왜냐하면 다 맛있으니깐.
맛이며 분위기며, 혹 사진을 제대로 찍고 싶다 하는 분들을 위한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이곳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칵테일이 훌륭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곳은 아직까지도 아시아 지역에서 먹어본 중에 크로넨버그 블랑 생맥주가 가장 맛있는 곳이다.
홍콩섬 북부를 가로지르는 지하철인 '섬선'의 서쪽 끝에 있는 케네디타운에 자리하고 있어서 변방인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중심가인 센트럴에서 이 식당의 문턱을 넘기까지는 불과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홍콩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유쾌한 저녁을 보내고 싶다면 여러분은 적어도 하루는 해결한 것과 다름 없다. 여기까지 글을 읽음으로 하여 '데낄라 온 데이비스'라는 곳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참 간만에 찾은 홍콩이었지만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에 고마웠고, 그 어느 때보다 맛있는 음식이 함께였기에 유난히 즐거웠다. 언제 또 다시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부디 계속 자리를 지켜주세요. 이번에 함께한 수많은 식당 사장님들.
홍콩, '19.03.09(토) ~ '19.03.13(수)
2016년 12월.
여권에 새겨진 홍콩의 흔적은 2년 하고도 3개월 전이 마지막이다. 가지 않을 이유나 피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간만에 찾은 홍콩이 그토록 반가웠던 이유다. 바뀐 것은 내 나이의 앞자리 숫자와 달력 뒷자리 말고는 없구나 싶었을 만큼 한결같은 모습에는 안도가, 한편으로는 나이만 먹는구나 싶었던 일곱 번째 홍콩 나들이. 2년 반 만의 홍콩에서 먹고 즐긴 것들이다.
1. 상하이 라오라오(Shanghai Lao Lao)
주소 / 지도 / 시간 : 체인점이므로 구글지도에 Shanghai Lao Lao 검색 후 참조
※ 홍콩섬 북부의 중심가(센트럴, 완차이, 코즈웨이베이)는 물론이고 침사추이, 샤틴 등 여행자가 갈 만한 곳이라면 이 녀석은 웬만하면 찾아볼 수 있다. 굳이 찾아가기 보다는 '마침 근처에 있으니 들러 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찾으면 딱 적절할 만한 장소
홍콩에는 유난히 상해에서 건너온 음식들이 많다. 비행기를 타고도 두 시간 넘는 시간이 필요하니, 결코 가까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번 여행 동안에는 바로 그 상해 지방의 음식과 인연이 많았다. 몸뚱아리는 엄연히 홍콩에 있었지만 나의 혓바닥은 홀로 동방명주를 벗하며 상해 어드메를 떠돌았다.
상해 음식으로 유명한 꽤나 많은 식당들이 본토에서 얻은 명성을 토대로 가세를 넓히는 와중에 홍콩과 인연을 맺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식당은 그렇지 않다. 조금 많이 뜬금없지만 '카페 데 코랄'이라고 하는, 홍콩의 김밥천국 혹은 요시노야 정도 되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계열 브랜드이다. 나름 장사가 괜찮게 되는지 홍콩 곳곳에서 활발히 전개가 되고 있다. 꽤 괜찮은 수준의 상해 음식을 선보이고 있나 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홍콩 현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샤틴으로 옮긴 발걸음, 그 친구 덕분에 상하이 라오라오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친구의 말로는 홍콩 현지인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는 상해 음식점이라고 한다.
합리적인 가격이 영업 전략인 '카페 데 코랄' 계열인 만큼 이곳 역시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이 매력이다. 두 명이서 3만 원 정도면 꽤나 배부르게 여러 종류의 음식을 경험할 수 있으니, 홍콩에서 이런 가격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다.
이곳을 요약하는 한 문장으로는 이것만큼 적절한 것이 없을 것 같다.
'네가 무슨 상해요리를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정말 다양한 종류의 요리를 맛 볼 수 있는데, 웬만한 요리들은 주문하고 숨 돌릴 새도 없이 식탁에 올라온다. 배가 고파서 숨이 껄덕거리는 와중에 자리에 앉더라도 그 가쁜 숨이 넘어갈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 같은 굉장한 속도. 그런데 가격까지 저렴하니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먹고, 즐기고 탕진하고 돌아오자는 일념으로 지갑을 꽤나 두툼하게 만들어서 갔지만 돈도 역시 써 본 놈이 쓸 줄 안다. 뭘 먹어야 보람 있게 돈을 쓰는 것인지 잘 모르는 탓에 식사시간이 가까워 올 때마다 고민 속에 머리를 쥐어뜯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구글 지도를 실행하였고, 결국 상하이 라오라오로 향하기를 두 번, 결국은 친구와 함께한 끼니를 포함하여 세 군데의 상하이 라오라오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나마도 매 끼니가 같은 음식이었으니, 적어도 이 풀쪼가리와 탄탄면 맛 하나 만큼은 눈 감고도 어느 지점인지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고 과장 조금 보태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노이에는 '꽌 안 응언'이라는 베트남 대중 음식점이 있다. 그곳에는 '수수'라는 이름의 채소를 볶은 풀쪼가리 음식이 있다. 그리고 꽤나 많은 '꽌 안 응언'을 가보았다는, 내 가방을 만들어 주시는 벤더의 형님께서는 같은 풀인데도 지점마다 맛이 판이하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고, 나는 그것이 정말일까 의문을 왕왕 가지고는 했었다.
그 의문은 이번 홍콩 여행에서 비로소 해소될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세 군데의 지점에서 거의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그 맛이 조금씩 달랐다. 상당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맛을 보는 것만으로 어느 지점에서 만든 것인지 충분히 구분이 가능하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꽤나 신기한 일이다.
일단 중요한 것은 이 풀 요리는 정말 맛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메뉴판에는 친절하게도 이름과 사진이 동행하고 있으니 주문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을 세 번이나 찾게 한 또 다른 이유, 탄탄면이다.
대만에서 이미 한 번 경험 했다. 타이페이 101에 위치한 딘타이펑에서였다. 딱히 대단한 경험은 아니었다. 대만 사람들은 한국인 못지 않게 나트륨을 좋아하는 민족이구나 생각하면서 돌아온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이내 탄탄면은 원래 그런 음식이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생각을 조금은 고쳐먹게 되었다. 간이 과한 것이 부담스럽다면 이곳의 탄탄면은 꽤나 만족스러울 것이다. 무엇보다 상해의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한국의 향기가 상당하다. 이런 식당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에 홍콩 사람들이 무척 부러웠다. 그 부러움의 크기가 어느 정도냐면, 홍콩에서 한국으로 들여오고 싶은 것을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여기를 바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앞으로는 홍콩에 가서 무얼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요리왕 비룡의 한 장면처럼 음식을 입에 넣자마자 파도가 춤을 추고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감동은 뒤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만큼 무난한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한 끼를 새롭게 시도하는 과정에 큰 위안과 힘이 될 것 같다. 혹시 망하더라도 여기에 들러서 입가심 하면 되니깐 말이다. 이 식당이 집 앞에 있는 홍콩 사람들이 참 부럽다.
2. 막스 누들(Mak's Noodle)
센트럴 본점
주소 : 77 Wellington St, Central
지도 : https://goo.gl/maps/sHcq4fsnAGD2
시간 : 11:00 ~ 21:00
'완톤면'이 무얼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완탕면이란다. 그리 맛있어 보이는 생김새가 아니라서 그간 애써 외면하였던 음식, 일곱 번째 발걸음 만에 경험하게 되었다. 눈썰미가 있는 분들이라면 아마 기시감에 고개를 갸우뚱 할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한국 사람들에게 꽤나 유명한 완탕면 식당인 '침차키'의 바로 맞은편이다.
과연 1920년부터 이어져 온 기원이 정말일까 싶어 굳이 홈페이지까지 찾아가 보는 수고로움을 감수하였다. 시작은 1920년의 광저우부터였다고 하니, 홍콩에서 시작한 역사가 55년 가량이 되기는 하였지만 결국은 중국 본토의 음식인듯 하다.
어떤 음식인지는 알고 있었으니 대단한 기대를 갖지는 않았다. 아마 그런 덕분에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은근한 감기 기운에 이따금 떨리는 몸을 가누기가 쉽지 않았는데 완탕면은 꽤 괜찮은 처방전이 되었다. 빛깔은 맑지만 그 은근한 국물의 깊이에 한 번 놀랐고, 별 맛은 없는 것 같은데 끊임없이 들어가는 절묘함에 감탄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양이 적다. 아무리 콘지와 비슷하게 아침 대용으로 먹는 음식이라지만 양이 적어도 너무 적다. 아침이 아니라 식전에 디저트로 먹어야 하는 음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잘 쳐줘도 딱 두 젓가락 분량이다. 조금 무리하면 딱 한 번의 젓가락질로 그릇을 비워낼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양이 적다.
한 그릇 양이 적은데 두 명이서 이거 한 그릇 더 시켰다고 기별이 갈 리 만무하다. 새우와 돼지고기를 채워 만든 완탕도 맛있지만 당연히 양이 적다. 그래도 맛있으니 됐다. 맛있다는 장점은 많은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 모든 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맛있는 주전부리가 필요할 때는 언제고 환영이다.
3. Cheung Hing Kee
주소 : 52 Lyndhurst Terrace, Central
지도 : https://goo.gl/maps/Et8BdXssboL2
시간 : 09:00 ~ 22:00
홍콩을 여행한 사람들 중에 타이청 베이커리의 에그타르트를 먹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마약쿠키'로 불리는 제니 베이커리의 쿠키 한 통과 함께 홍콩 여행의 필수요소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정말 맛있는 에그타르트는 애드미럴티 A번 출구 앞에 있는 KFC에 있지만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다. 홍콩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면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당신은 결국 타이청 베이커리를 가게 될 것이다. 남들 다 간다는데 나 혼자 안 가기는 뭣하지 않은가. 아마도 그럴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겉바속촉' 그 자체인 만두를 맛볼 수 있는 이곳은 타이청 베이커리의 바로 맞은 편에 있다.
딤섬이라고 하기에는 피가 두껍고, 만두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애매하다. 간판의 '상해생전포'라는 한자는 이 녀석이 만두임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소하다.
왜냐하면 이 만두는 쪄낸 다음 기름 속에 다시 한 번 입수하는 번거로움을 이겨낸 녀석이기 때문이다. 만두의 아래 부분이 갈색 빛깔을 발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가로쉬님은 센트럴 어느 거리의 조그마한 가게에서 빚고, 쪄낸 다음 튀겨내는 바로 이 만두를 매개로 하여 그 불멸의 재림을 오늘도 쉬지 않고 이뤄내고 계신다.
이미 한국의 여행객들에게는 꽤나 익숙하게 알려진 음식인 듯하다. 너무 간만에 홍콩을 찾은 덕분에 나는 무척 늦게 알게 되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무척 다행이다. 그 무엇 하나 맛있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트러플을 채워 넣은 이 만두는 정체 불명의 감탄사를 쉬지 않고 뱉어내게 만들었다. 바삭바삭한 외피를 조심스레 씹어 내부로 진입하는 순간 고여 있던 육즙이 입 안에 넘실거린다. 그와 동시에 만두가 품고 있던 향이 과장 조금 보태서 이비인후와 오장육부를 마구 넘나든다. 더이상 설명할 길이 없다. 그냥 먹어 봐야 한다.
이 거리에는 괜찮은 구경거리와 먹을거리들이 상당하다. 거리를 걷는 와중에 출출해진 배가 신호를 보내 온다면 이곳을 한 번 찾아보도록 하자. 여기는 절대 맛있는 곳이니깐 말이다.
4. 데낄라 온 데이비스(Tequila on Davis)
주소 : Shop 7, G/F & C/L., Grand Fortune Mansion, No. 1 Davis Street, Kennedy Town
지도 : https://goo.gl/maps/Ehdf6qTP5Uo
시간 : 17:00 ~ 익일 02:00 (화요일은 자정까지)
홍콩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 번도 빼먹지 않았고 앞으로도 절대로 누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단언컨데 홍콩에서 가장 사랑해 마지 않는 식당, 이미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다시 한 번 더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손가락을 놀리게 만드는 곳, 케네디 타운의 숨겨진 보석 '데낄라 온 데이비스'이다.
그 어떤 말의 성찬을 늘어놓아도 과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온갖 과장과 미사여구는 감히 이곳을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바, 찬사를 어디까지 늘어놓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어느 순간부터 홍콩에 와서 데낄라 온 데이비스를 찾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참 다행인 것은 꽤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이곳을 찾았지만 한결같은 모습을 지금까지 지키고 그 자리에 있어 준다는 점이다. 간만에 케찹이 그리워 찾은 IFC의 버거집 'Big Fernand'가 위생 당국의 실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갑작스러운 폐업으로 종말을 맞이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여기는 뭘 시킬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뭘 시켜도 다 맛있기 때문이다. 그냥 먹고 싶은 걸 시키면 된다. 왜냐하면 다 맛있으니깐.
맛이며 분위기며, 혹 사진을 제대로 찍고 싶다 하는 분들을 위한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이곳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칵테일이 훌륭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곳은 아직까지도 아시아 지역에서 먹어본 중에 크로넨버그 블랑 생맥주가 가장 맛있는 곳이다.
홍콩섬 북부를 가로지르는 지하철인 '섬선'의 서쪽 끝에 있는 케네디타운에 자리하고 있어서 변방인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중심가인 센트럴에서 이 식당의 문턱을 넘기까지는 불과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홍콩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유쾌한 저녁을 보내고 싶다면 여러분은 적어도 하루는 해결한 것과 다름 없다. 여기까지 글을 읽음으로 하여 '데낄라 온 데이비스'라는 곳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참 간만에 찾은 홍콩이었지만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에 고마웠고, 그 어느 때보다 맛있는 음식이 함께였기에 유난히 즐거웠다. 언제 또 다시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부디 계속 자리를 지켜주세요. 이번에 함께한 수많은 식당 사장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