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17.02.22(수) ~ '17.02.24(금)
'파도가.. 친다..' 몰아치는 파도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마땅히 없었다. 사진이고 나발이고 가방이 날려가지나 않으면 다행인 현실 앞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달리 응답할 방법이 없었다.
어느 솜씨 좋은 장인의 흔적일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낡은 콘크리트 건물의 담벼락에는 뜻 모를 그래피티만이 남아 적막을 달래고 있다. 잠시 서서 즐겨 보려 했으나 어림 없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에 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 같다.
얼마를 걸었을까.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구엄리 돌염전이 그야말로 목전이다. 하지만 매섭게 몰아치는 바닷바람의 차디찬 기운을 이기지 못한 동생은 끝내 실성하고 말았다.
제주의 바닷바람은 견딜 만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17년 02월 23일 13시 58분. '구엄리 돌염전'
투박하기 그지 없는 명조체로 쓰여진, 구엄리 돌염전에 당도하였음을 알리는 소박하나 위엄이 가득한 비석 하나. 나는 한 순간의 희열을 위해 온갖 방해를 뚫고 모진 발걸음을 옮겼나 보다. 일순간 차오르는 기쁨은 1492년 아프리카의 끝에서 희망봉을 발견한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1498년 서역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가 캘리컷에 당도하였을 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터질듯이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을 애써 진정시킨 채 조심스레 오늘의 목적지인 돌염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괜히 옮겼다.
부서지는 파도 속으로 찬연히 쏟아지는 햇살이 돌염전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나 가방의 멋스러움을 한결 더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긴 것이었다. 그런 사진이 뷰파인더에 담길 가능성은 단 하나도 없어 보였다. 단언컨데 이곳에서 내가 건질 수 있는 사진은 단 한가지 밖에 없었다.
'4대보험이라고는 꿈도 꿀 수 없으며, 상습적인 폭행과 임금 체불은 예사에 바닷바람 향 그득한 천일염으로 맛을 낸 주먹밥이 일용할 양식의 전부인, 노동환경과 인권 그 모든 것의 사각지대에서 도망치려는 어느 노예의 긴박한 탈출의 순간.'
나의 넋은 이미 나간 지 오래고 동생도 뒤를 따르는 중이다. 엄동설한에 벌벌 떨며 걸은 것이 분했는지 얼마 남지 않았던 의식의 끈을 마침내 놓고야 말았다.
오전 내도록 걸었는데 제대로 건진 것이 없었다. 두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바닷물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나는 이대로 서울로 올라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는 것인가.
뭐라도 건져야 하는데. 빗방울과 눈물을 허공에 뿌리며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 갔다. 휘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저 망연자실하여 공허한 울음만 꺼이 꺼이 울어댔다.
그나마 이것마저 건지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한서린 원귀가 되어 제주도의 구천을 떠돌았을지도 모른다.
아직 해는 중천이고 머리는 조금 더 걸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하지만 몸은 자연스레 버스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네이버 지도가 가르쳐준 길은 조금 의심스럽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추위에 떨다 지쳐 영양 부족으로 사경을 헤맬 위기에 봉착한 나와 동생이다.
신경을 조금은 썼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덮어두고 걷다 보니 강바닥으로 향하는 수풀만이 우리를 반겨준다. 하지만 여기서 돌아설 수 없다. 강행하지 않는다면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것은 반나마 진토된 백골일 것이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큰길에 당도하였다. 제주에서 나는 유난히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저 자동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을 뿐인데 짭짤한 눈물 한 방울이 나의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제주 시내에 도착한 나와 동생은 고대하던 고기국수를 영접하기로 했다. 꽤나 이름이 알려진 곳이 있다 해서 찾아갔는데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이름이 알려진 것 같다. 국수 한 그릇 먹자고 줄을 섰다가는 제삿상을 받게 될 것 같아서 그 옆 가게의 문을 두드렸다.
기대하던대로 고기국수는 무척 훌륭했다. 진한 육수 한 모금은 단단하게 얼고 차갑게 식은 사지를 노곤하게 녹여낸다. 오전에 겪은 갖은 수모가 씻은 듯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집마다 귤나무가 있냐고 묻는 것은 굉장히 실례다. 근데 집집마다 귤나무가 있다. 그러니깐 묻지 말자.
너무나 식어버린 몸을 녹이기 위해 온천에 몸을 담그었다. 밖을 나오니 이미 어둑해져버린 하늘. 용두암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발걸음을 바다로 향해 본다. 여전히 매섭게 몰아치는 파도 사이로 우뚝 솟아 있는 용두암은 그야말로 공포, 호러 그 자체였다. 얼마나 무섭던지.
제주의 마지막 밤은 회 한 접시와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지갑이 열릴 수준의 가격이 아니다. 알탕과 오분작 뚝배기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본다. 이 식당의 사장님은 재료 본연의 맛을 꽤나 사랑하는 분인 듯하다.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데에는 삼십 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미 기분이 좋아진 나와 동생에게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곗바늘이 22:00을 가리키기 전까지는 말이다.
꽤나 이른 아침 비행기라서 공항에서 밤을 새려고 했는데 아홉시 반쯤 되니 공항 직원 분이 나와 동생에게 다가오신다. 제주공항은 24시간 운영하는 공항이 아니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나와 동생은 공항에서 쫓겨났다. 제주의 마지막 밤은 유난히도 을씨년스러웠다.
출장을 빙자한 제주도 여행기. 끝.
제주도 '17.02.22(수) ~ '17.02.24(금)
'파도가.. 친다..' 몰아치는 파도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마땅히 없었다. 사진이고 나발이고 가방이 날려가지나 않으면 다행인 현실 앞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달리 응답할 방법이 없었다.
어느 솜씨 좋은 장인의 흔적일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낡은 콘크리트 건물의 담벼락에는 뜻 모를 그래피티만이 남아 적막을 달래고 있다. 잠시 서서 즐겨 보려 했으나 어림 없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에 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 같다.
얼마를 걸었을까.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구엄리 돌염전이 그야말로 목전이다. 하지만 매섭게 몰아치는 바닷바람의 차디찬 기운을 이기지 못한 동생은 끝내 실성하고 말았다.
제주의 바닷바람은 견딜 만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17년 02월 23일 13시 58분. '구엄리 돌염전'
투박하기 그지 없는 명조체로 쓰여진, 구엄리 돌염전에 당도하였음을 알리는 소박하나 위엄이 가득한 비석 하나. 나는 한 순간의 희열을 위해 온갖 방해를 뚫고 모진 발걸음을 옮겼나 보다. 일순간 차오르는 기쁨은 1492년 아프리카의 끝에서 희망봉을 발견한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1498년 서역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가 캘리컷에 당도하였을 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터질듯이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을 애써 진정시킨 채 조심스레 오늘의 목적지인 돌염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괜히 옮겼다.
부서지는 파도 속으로 찬연히 쏟아지는 햇살이 돌염전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나 가방의 멋스러움을 한결 더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긴 것이었다. 그런 사진이 뷰파인더에 담길 가능성은 단 하나도 없어 보였다. 단언컨데 이곳에서 내가 건질 수 있는 사진은 단 한가지 밖에 없었다.
'4대보험이라고는 꿈도 꿀 수 없으며, 상습적인 폭행과 임금 체불은 예사에 바닷바람 향 그득한 천일염으로 맛을 낸 주먹밥이 일용할 양식의 전부인, 노동환경과 인권 그 모든 것의 사각지대에서 도망치려는 어느 노예의 긴박한 탈출의 순간.'
나의 넋은 이미 나간 지 오래고 동생도 뒤를 따르는 중이다. 엄동설한에 벌벌 떨며 걸은 것이 분했는지 얼마 남지 않았던 의식의 끈을 마침내 놓고야 말았다.
오전 내도록 걸었는데 제대로 건진 것이 없었다. 두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바닷물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나는 이대로 서울로 올라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는 것인가.
뭐라도 건져야 하는데. 빗방울과 눈물을 허공에 뿌리며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 갔다. 휘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저 망연자실하여 공허한 울음만 꺼이 꺼이 울어댔다.
그나마 이것마저 건지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한서린 원귀가 되어 제주도의 구천을 떠돌았을지도 모른다.
아직 해는 중천이고 머리는 조금 더 걸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하지만 몸은 자연스레 버스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네이버 지도가 가르쳐준 길은 조금 의심스럽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추위에 떨다 지쳐 영양 부족으로 사경을 헤맬 위기에 봉착한 나와 동생이다.
신경을 조금은 썼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덮어두고 걷다 보니 강바닥으로 향하는 수풀만이 우리를 반겨준다. 하지만 여기서 돌아설 수 없다. 강행하지 않는다면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것은 반나마 진토된 백골일 것이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큰길에 당도하였다. 제주에서 나는 유난히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저 자동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을 뿐인데 짭짤한 눈물 한 방울이 나의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제주 시내에 도착한 나와 동생은 고대하던 고기국수를 영접하기로 했다. 꽤나 이름이 알려진 곳이 있다 해서 찾아갔는데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이름이 알려진 것 같다. 국수 한 그릇 먹자고 줄을 섰다가는 제삿상을 받게 될 것 같아서 그 옆 가게의 문을 두드렸다.
기대하던대로 고기국수는 무척 훌륭했다. 진한 육수 한 모금은 단단하게 얼고 차갑게 식은 사지를 노곤하게 녹여낸다. 오전에 겪은 갖은 수모가 씻은 듯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집마다 귤나무가 있냐고 묻는 것은 굉장히 실례다. 근데 집집마다 귤나무가 있다. 그러니깐 묻지 말자.
너무나 식어버린 몸을 녹이기 위해 온천에 몸을 담그었다. 밖을 나오니 이미 어둑해져버린 하늘. 용두암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발걸음을 바다로 향해 본다. 여전히 매섭게 몰아치는 파도 사이로 우뚝 솟아 있는 용두암은 그야말로 공포, 호러 그 자체였다. 얼마나 무섭던지.
제주의 마지막 밤은 회 한 접시와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지갑이 열릴 수준의 가격이 아니다. 알탕과 오분작 뚝배기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본다. 이 식당의 사장님은 재료 본연의 맛을 꽤나 사랑하는 분인 듯하다.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데에는 삼십 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미 기분이 좋아진 나와 동생에게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곗바늘이 22:00을 가리키기 전까지는 말이다.
꽤나 이른 아침 비행기라서 공항에서 밤을 새려고 했는데 아홉시 반쯤 되니 공항 직원 분이 나와 동생에게 다가오신다. 제주공항은 24시간 운영하는 공항이 아니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나와 동생은 공항에서 쫓겨났다. 제주의 마지막 밤은 유난히도 을씨년스러웠다.
출장을 빙자한 제주도 여행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