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노, '17.12.6(수) ~ '17.12.9(토)
설렘과 긴장이 함께했던 올해가 불과 며칠 남지 않았다. 이제 곧 서른이 되는 친구들의 푸념에 소위 말하는 '빠른'년생인 나는 아직 일 년이 더 남았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는 해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시간을 가지고 돌이켜 봐야겠지만 유독 정신없이 지나간 한 해였다. 마음 편하게 여행을 떠난 기억도 마땅찮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해를 넘는 문턱에 한 번의 방점을 찍게 되었다.
'나가노'
아마 비슷한 또래와 이전 세대라면 기억할 것이다. 간발의 차로 쇼트트랙 금메달을 쟁취한 김동성 선수의 극적인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게 남아 있는 98년 동계올림픽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그 곳. 하지만 그것 말고는 마땅히 알려진 것은 없는 동네. 나가노는 우리의 기억 속에 딱 그만큼의 자리만을 내어 주고 있을 것이다.
조금 뜬금없이 떠나게 된 나가노다. 고향 친구 하나가 갑자기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하더니 일본인 펜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일본 여행을 같이 가자고 제안해 왔다. 별 생각 없이 응답했지만 추진력 좋은 친구 덕에 그 길로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본 적은 당연히 없고 목소리조차 들어본 적 없는 일본인 친구 '미노리'를 만나러 가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준비라는 것는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이지만 이번에는 마냥 그럴 수 없었다. 친구놈은 바다 건너 타국 땅을 밟는 것이 이번으로 두 번째다. 그런 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뭔가를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비행기표와 숙소, 나가노 지역의 JR 철도를 일정 기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JR 동일본 패스'를 예약하는 것으로 친구의 불안함을 달래보기로 하였다. 어디를 갈 것인지는 단 하나도 정하지 않았지만 그건 내 몫이 아니다. 흥분에 차서 구글 지도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친구놈이 뭐라도 하겠지.
비행기는 대구에서 오전 열한 시 즈음 나리타 공항을 향해 날아오를 예정이다. 포항에서 출발하는 나와 친구는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댔다. 눈을 보기가 어려운 동네에서 웬일로 거세게 몰아치는 중이다. 급한 마음에 긴장까지 더해진다. 쏟아지는 잠을 쫓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영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대구공항은 군용 공항이기 때문에 사진을 촬영할 수 없다. 대구 공군기지에서 부사관으로 3년 넘게 했던 복무했던 친구에게는 별로 의미 없는 규정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풍경이 익숙지 않은 나는 찍지 못하는 한 장의 사진이 못내 아쉽다. 격납고에 빼곡히 들어찬 전투기들은 마냥 신기하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서 많이 아쉽지만 눈으로라도 부지런히 담아 본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유럽여행을 했다. 여정의 마무리를 프랑스에서 했는데 샤를 드골 공항에서 날아오른 비행기가 기수를 향한 곳이 바로 여기, 나리타 공항이었다. 그 뒤로 10년 만이다. 당시에는 그나마도 환승구역에서 창밖 너머의 풍경만을 마주한 것이 전부였으니 공항의 문턱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은주가 아래로 곤두박질쳐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한 것이 민망할 정도로 도쿄는 따뜻하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한국에서 신청한 JR 동일본 패스를 수령하는 것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예상한 분들도 있겠지만 유레일 패스의 '셀렉트 패스'와 그 쓰임이 비슷하다. 구매일로부터 15일 동안 원하는 5일을 선택해서 JR 동일본의 기차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비록 나와 친구의 여정은 3일밖에 되지 않아서 아주 많은 비용을 아끼지는 못했지만(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비용을 아꼈다.) 신칸센과 각종 '특급' 열차들을 이용할 계획이 있다면 구매를 추천한다. 나가노와 도쿄를 기준으로 신칸센 왕복 비용만 해도 이 패스의 가격과 비슷하니 충분히 매력적이다. 더구나 이동에 필요한 비용을 '거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일본여행에서 엄청난 장점이다.
JR 동일본 패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사이트를 참조하자.
http://www.jreast.co.jp/kr/eastpass_n/index.html
웬만하면 우리나라에서 미리 결제를 해서 가자. 현지에서 구매하는 것 보다 1,000엔 더 싸다. 나리타, 하네다 공항 어디를 가든 JR 동일본 여행객 센터에서 쉽게 패스를 수령할 수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미리 사서 가는 것을 추천한다.
하네다 공항에서 도쿄 시내까지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일이기 때문에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리타 공항에서는 도쿄 입성부터가 일이다. 그런고로 JR동일본패스를 수령하자마자 덕을 보기로 한다.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도쿄로 이동했다.
'익스프레스'라는 이름값을 한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까운 것도 아닌데 도쿄가지 가는 데에는 50분 남짓한 시간만이 필요하다. 바삭한 공기를 가르며 부지런히 바퀴를 구르는 열차. 덕분에 시시각각 변하는 유리창 너머의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스카이트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곧 도쿄역에 도착을 하려나보다. 출장을 위해 하네다 공항에 내리고 나면, 어둑해진 밤을 뚫고 시나가와를 지나 긴자로 이동하는 것이 마치 밀린 숙제를 하는 것처럼 여겨지고는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열차에 몸을 싣고 있으면 바깥 풍경이 눈에 제대로 들어올 리 만무한데, 여행을 나선 이방인이 되어 바라본 도쿄의 모습은 괜스레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나가노로 향하는 신칸센이 출발하기까지는 한 시간 가량의 시간이 남았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밥 생각이 간절했다.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밥집들이 모여있는 도쿄역 근처의 굴다리로 이동해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무얼 먹어도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오야꼬동을 시켰는데 400엔이 조금 안 됐다. 시장이 반찬이니 맛이 없었을 리는 만무하고, 양이 생각보다 적어서 아쉬울 뿐이었다.
밥을 먹고 잠시 둘러본 도쿄역의 모습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항상 히가시긴자 근처에 숙소가 있었고, 택시를 타고 움직이면 내리는 곳은 언제나 도쿄역 뒤편이었다. 도쿄역 앞에 이렇게 넓은 광장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만둔 지 2년이 가까워 오는 회사였지만 나도 모르게 조금씩 흩어진 기억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별로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
나와 친구를 나가노로 실어다줄 신칸센이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일본의 열차는 배차간격이 너무나 촘촘한 탓에 언제나 지하철을 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가격은 그렇지 못하지만 말이다.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 하루종일 움직이던 찰나에 기차에서 얻은 두시간 가량의 쉬는 시간은 그야말로 천금 같았다. 눈을 감았다 떴는데 나가노역 플랫폼에서 속도를 줄이고 있는 열차. 여섯 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가노의 하늘은 벌써 한밤을 지나는 듯했다.
한국으로 치면 '대전'쯤 되는 이름이려나 싶다. 큰 들판을 의미하는 '장야'가 나가노의 뜻인데, 이름답게 낮은 구릉지대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나가노 역의 밤거리. 영등포역 뒷편을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에 괜히 친근한 마음이 일었다. 피곤에 지치기는 했지만 드디어 도착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마음은 설레고 있었다.
숙소 바로 앞을 지나는 지하차도는 꼭 대전역에서 대동 방향으로 지나는 어귀의 풍경을 닮아 있었다. 익숙한 풍경의 연속. 그 덕분에 나가노는 도착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낯설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은 동네가 되어버렸다.
원래는 '너의 이름은'에서 미츠하가 살던 고향 마을의 배경이 된 '가미스와'라는 곳을 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후일을 기약하기로 하고 저녁부터 먹기로 했다. 찾은 곳은 미소라멘으로 유명한 나가노역 앞의 어느 라멘집.
이런 표현 너무 상투적이지만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일본 라면을 별로 먹어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먹어본 일본 라면'중 가장 맛있었다. 진득한 육즙이 한번에 터져나오는 차슈는 따로 시켜서 먹고 싶을만큼 환상 그 자체였다. 힘든 여정의 마무리를 이 라멘과 맥주 한잔으로 할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었던, 그런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만드는 정말 맛있는 라면이었다. 꼭 가족들과 함께 다시 와서 이 라면을 먹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곧 그러할 수 있기를 바란다.
らぁめんみそ家(Suehirochō-1362 Minaminagano, Nagano-shi, Nagano-ken 380-0825)
영업시간 : 11:00 ~ 다음날 01:00
가격 : 600 ~ 900엔 사이 (생맥주는 없지만 아사히 병맥주가 있다. 그리고 현금만 받는다)
구글 지도에 가게 리뷰가 121개나 있는데, 전체 평점이 4.0이 넘는 것을 보면 괜찮은 라면을 먹은 것이 맞는 듯하다. 대부분의 리뷰가 일본어로 작성되어 있으니 아마 현지 일본인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집인 듯하다. 다른 종류의 된장 라면을 먹어본 적이 없지만 맛이 아주 강한 편이 아니기에 초심자도 부담없이 도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혹시 나가노에 갈 일이 생긴다면 한 번 먹어 보자.
석양..은 이미 졌고, 텅빈 하늘을 만월이 부족함 없이 채우는 밤이었다. 맛있는 저녁으로 기분이 좋아진 나와 친구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고요하게 빛나는 밤하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첫날이니 만큼 동네의 이곳 저곳을 걸어보기로 하였다. 흡사 고양이 인형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는, 나의 코트를 받아든 다음 조용히 주문을 받을 것 같이 생긴 아늑한 분위기의 식당. 언젠가 여자친구와 나가노에 오게 된다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되지 않을까.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노의 거리는 한산하다. 옷깃을 여미고는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과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만이 조용한 거리의 적막을 깨울 뿐이다.
걷다보니 '젠코우지'라는 사찰을 만난다. 1400년대에 건립된 사찰로, 종파가 없기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참배와 관광을 목적으로 찾는 곳이라고 한다. '나가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는데 한밤 중에 찾은 이곳은 짙게 깔린 어둠과 적막만이 나직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하늘을 유유히 흐르는 구름 무리와, 그 사이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는 달 한조각이 있음으로 해서 시간이 흐르고 있구나 가만히 헤아릴 수 있을 뿐이었다.
여행의 첫째 날은 젠코우지에서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마무리하였다. 밤하늘에 꽉 찬 달빛만큼이나 마음도 푸근해진 나가노의 첫날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
나가노, '17.12.6(수) ~ '17.12.9(토)
설렘과 긴장이 함께했던 올해가 불과 며칠 남지 않았다. 이제 곧 서른이 되는 친구들의 푸념에 소위 말하는 '빠른'년생인 나는 아직 일 년이 더 남았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는 해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시간을 가지고 돌이켜 봐야겠지만 유독 정신없이 지나간 한 해였다. 마음 편하게 여행을 떠난 기억도 마땅찮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해를 넘는 문턱에 한 번의 방점을 찍게 되었다.
'나가노'
아마 비슷한 또래와 이전 세대라면 기억할 것이다. 간발의 차로 쇼트트랙 금메달을 쟁취한 김동성 선수의 극적인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게 남아 있는 98년 동계올림픽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그 곳. 하지만 그것 말고는 마땅히 알려진 것은 없는 동네. 나가노는 우리의 기억 속에 딱 그만큼의 자리만을 내어 주고 있을 것이다.
조금 뜬금없이 떠나게 된 나가노다. 고향 친구 하나가 갑자기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하더니 일본인 펜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일본 여행을 같이 가자고 제안해 왔다. 별 생각 없이 응답했지만 추진력 좋은 친구 덕에 그 길로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본 적은 당연히 없고 목소리조차 들어본 적 없는 일본인 친구 '미노리'를 만나러 가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준비라는 것는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이지만 이번에는 마냥 그럴 수 없었다. 친구놈은 바다 건너 타국 땅을 밟는 것이 이번으로 두 번째다. 그런 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뭔가를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비행기표와 숙소, 나가노 지역의 JR 철도를 일정 기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JR 동일본 패스'를 예약하는 것으로 친구의 불안함을 달래보기로 하였다. 어디를 갈 것인지는 단 하나도 정하지 않았지만 그건 내 몫이 아니다. 흥분에 차서 구글 지도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친구놈이 뭐라도 하겠지.
비행기는 대구에서 오전 열한 시 즈음 나리타 공항을 향해 날아오를 예정이다. 포항에서 출발하는 나와 친구는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댔다. 눈을 보기가 어려운 동네에서 웬일로 거세게 몰아치는 중이다. 급한 마음에 긴장까지 더해진다. 쏟아지는 잠을 쫓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영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대구공항은 군용 공항이기 때문에 사진을 촬영할 수 없다. 대구 공군기지에서 부사관으로 3년 넘게 했던 복무했던 친구에게는 별로 의미 없는 규정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풍경이 익숙지 않은 나는 찍지 못하는 한 장의 사진이 못내 아쉽다. 격납고에 빼곡히 들어찬 전투기들은 마냥 신기하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서 많이 아쉽지만 눈으로라도 부지런히 담아 본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유럽여행을 했다. 여정의 마무리를 프랑스에서 했는데 샤를 드골 공항에서 날아오른 비행기가 기수를 향한 곳이 바로 여기, 나리타 공항이었다. 그 뒤로 10년 만이다. 당시에는 그나마도 환승구역에서 창밖 너머의 풍경만을 마주한 것이 전부였으니 공항의 문턱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은주가 아래로 곤두박질쳐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한 것이 민망할 정도로 도쿄는 따뜻하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한국에서 신청한 JR 동일본 패스를 수령하는 것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예상한 분들도 있겠지만 유레일 패스의 '셀렉트 패스'와 그 쓰임이 비슷하다. 구매일로부터 15일 동안 원하는 5일을 선택해서 JR 동일본의 기차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비록 나와 친구의 여정은 3일밖에 되지 않아서 아주 많은 비용을 아끼지는 못했지만(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비용을 아꼈다.) 신칸센과 각종 '특급' 열차들을 이용할 계획이 있다면 구매를 추천한다. 나가노와 도쿄를 기준으로 신칸센 왕복 비용만 해도 이 패스의 가격과 비슷하니 충분히 매력적이다. 더구나 이동에 필요한 비용을 '거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일본여행에서 엄청난 장점이다.
JR 동일본 패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사이트를 참조하자.
http://www.jreast.co.jp/kr/eastpass_n/index.html
웬만하면 우리나라에서 미리 결제를 해서 가자. 현지에서 구매하는 것 보다 1,000엔 더 싸다. 나리타, 하네다 공항 어디를 가든 JR 동일본 여행객 센터에서 쉽게 패스를 수령할 수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미리 사서 가는 것을 추천한다.
하네다 공항에서 도쿄 시내까지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일이기 때문에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리타 공항에서는 도쿄 입성부터가 일이다. 그런고로 JR동일본패스를 수령하자마자 덕을 보기로 한다.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도쿄로 이동했다.
'익스프레스'라는 이름값을 한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까운 것도 아닌데 도쿄가지 가는 데에는 50분 남짓한 시간만이 필요하다. 바삭한 공기를 가르며 부지런히 바퀴를 구르는 열차. 덕분에 시시각각 변하는 유리창 너머의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스카이트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곧 도쿄역에 도착을 하려나보다. 출장을 위해 하네다 공항에 내리고 나면, 어둑해진 밤을 뚫고 시나가와를 지나 긴자로 이동하는 것이 마치 밀린 숙제를 하는 것처럼 여겨지고는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열차에 몸을 싣고 있으면 바깥 풍경이 눈에 제대로 들어올 리 만무한데, 여행을 나선 이방인이 되어 바라본 도쿄의 모습은 괜스레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나가노로 향하는 신칸센이 출발하기까지는 한 시간 가량의 시간이 남았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밥 생각이 간절했다.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밥집들이 모여있는 도쿄역 근처의 굴다리로 이동해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무얼 먹어도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오야꼬동을 시켰는데 400엔이 조금 안 됐다. 시장이 반찬이니 맛이 없었을 리는 만무하고, 양이 생각보다 적어서 아쉬울 뿐이었다.
밥을 먹고 잠시 둘러본 도쿄역의 모습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항상 히가시긴자 근처에 숙소가 있었고, 택시를 타고 움직이면 내리는 곳은 언제나 도쿄역 뒤편이었다. 도쿄역 앞에 이렇게 넓은 광장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만둔 지 2년이 가까워 오는 회사였지만 나도 모르게 조금씩 흩어진 기억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별로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
나와 친구를 나가노로 실어다줄 신칸센이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일본의 열차는 배차간격이 너무나 촘촘한 탓에 언제나 지하철을 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가격은 그렇지 못하지만 말이다.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 하루종일 움직이던 찰나에 기차에서 얻은 두시간 가량의 쉬는 시간은 그야말로 천금 같았다. 눈을 감았다 떴는데 나가노역 플랫폼에서 속도를 줄이고 있는 열차. 여섯 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가노의 하늘은 벌써 한밤을 지나는 듯했다.
한국으로 치면 '대전'쯤 되는 이름이려나 싶다. 큰 들판을 의미하는 '장야'가 나가노의 뜻인데, 이름답게 낮은 구릉지대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나가노 역의 밤거리. 영등포역 뒷편을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에 괜히 친근한 마음이 일었다. 피곤에 지치기는 했지만 드디어 도착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마음은 설레고 있었다.
숙소 바로 앞을 지나는 지하차도는 꼭 대전역에서 대동 방향으로 지나는 어귀의 풍경을 닮아 있었다. 익숙한 풍경의 연속. 그 덕분에 나가노는 도착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낯설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은 동네가 되어버렸다.
원래는 '너의 이름은'에서 미츠하가 살던 고향 마을의 배경이 된 '가미스와'라는 곳을 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후일을 기약하기로 하고 저녁부터 먹기로 했다. 찾은 곳은 미소라멘으로 유명한 나가노역 앞의 어느 라멘집.
이런 표현 너무 상투적이지만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일본 라면을 별로 먹어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먹어본 일본 라면'중 가장 맛있었다. 진득한 육즙이 한번에 터져나오는 차슈는 따로 시켜서 먹고 싶을만큼 환상 그 자체였다. 힘든 여정의 마무리를 이 라멘과 맥주 한잔으로 할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었던, 그런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만드는 정말 맛있는 라면이었다. 꼭 가족들과 함께 다시 와서 이 라면을 먹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곧 그러할 수 있기를 바란다.
らぁめんみそ家(Suehirochō-1362 Minaminagano, Nagano-shi, Nagano-ken 380-0825)
영업시간 : 11:00 ~ 다음날 01:00
가격 : 600 ~ 900엔 사이 (생맥주는 없지만 아사히 병맥주가 있다. 그리고 현금만 받는다)
구글 지도에 가게 리뷰가 121개나 있는데, 전체 평점이 4.0이 넘는 것을 보면 괜찮은 라면을 먹은 것이 맞는 듯하다. 대부분의 리뷰가 일본어로 작성되어 있으니 아마 현지 일본인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집인 듯하다. 다른 종류의 된장 라면을 먹어본 적이 없지만 맛이 아주 강한 편이 아니기에 초심자도 부담없이 도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혹시 나가노에 갈 일이 생긴다면 한 번 먹어 보자.
석양..은 이미 졌고, 텅빈 하늘을 만월이 부족함 없이 채우는 밤이었다. 맛있는 저녁으로 기분이 좋아진 나와 친구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고요하게 빛나는 밤하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첫날이니 만큼 동네의 이곳 저곳을 걸어보기로 하였다. 흡사 고양이 인형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는, 나의 코트를 받아든 다음 조용히 주문을 받을 것 같이 생긴 아늑한 분위기의 식당. 언젠가 여자친구와 나가노에 오게 된다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되지 않을까.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노의 거리는 한산하다. 옷깃을 여미고는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과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만이 조용한 거리의 적막을 깨울 뿐이다.
걷다보니 '젠코우지'라는 사찰을 만난다. 1400년대에 건립된 사찰로, 종파가 없기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참배와 관광을 목적으로 찾는 곳이라고 한다. '나가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는데 한밤 중에 찾은 이곳은 짙게 깔린 어둠과 적막만이 나직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하늘을 유유히 흐르는 구름 무리와, 그 사이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는 달 한조각이 있음으로 해서 시간이 흐르고 있구나 가만히 헤아릴 수 있을 뿐이었다.
여행의 첫째 날은 젠코우지에서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마무리하였다. 밤하늘에 꽉 찬 달빛만큼이나 마음도 푸근해진 나가노의 첫날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