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노, '17.12.6(수) ~ '17.12.9(토)
출근길과 함께 맞이하는 주중의 나흘은 참 긴 시간인데 이방인에게는 너무나 짧디 짧다. 여행의 마지막 날, 나흘째의 아침이 밝았다. 그 아쉬움과 개운함이 교차하는 순간을 이번 여행에서는 도쿄에서 맞이하는 중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오후 두 시에 나리타 공항을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여행을 와서도 이렇게 부지런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는 했다만 일곱시 반에 일어난 나와 친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갈 채비를 하기에 바빴다.
아주 가깝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도쿄역과 긴자에서 걸어서 25분이면 찾아올 수 있는 오크 호스텔 캐빈. 대단히 훌륭하지는 않아도 위치나 가격 모두 충분히 합리적이다. 그 덕에 꽤나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한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는 아키하바라. 애니메이션이나 전자제품을 좋아하거나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쯤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드디어 발걸음하게 되었다.
지금 쓰고 있는 카메라가 일본에서 만든 것이니 일본에서 사면 조금 더 싸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요도바시 카메라를 꼭 들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 싶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귀여운 것과 귀여운 것이 만나 어마어마하게 귀여운 무언가를 연성했고 바로 옆 가판대에는 성인 잡지가 잔뜩 놓여 있다. 역시 범상치 않은 곳이다.
꽤 공기가 차가운 주말 아침이었다. 열 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유독 한 점포 앞에만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몇명이나 되는지 세어 보고 있으니 '여기부터 대기인원은 100명입니다.' 같은 표지판을 들고 있는 직원들이 중간 중간 눈에 띄었다. 그 직원들을 보자마자 숫자를 세는 건 포기했다. 그 대신 줄의 끝이 어디인지 따라가 보았지만 그나마도 나타날 생각을 않는다. 가게 안에 비트코인이라도 널부러져 있는 건지. 대체 뭐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흥분에 찬 모습으로 입장 시간을 기다리는 건지 너무나 궁금했다.
새로 게임기가 출시됐나, 유명한 게임의 신작이라도 발매된 건가. 나름 추리를 이어갔지만 모조리 틀렸다. 살짝 뜬금 없지만 이곳의 진짜 정체는 빠칭코 센터다. 아침잠을 이기고 먼길 달려온 사람들의 열정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지만 조금 난해한 광경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아키하바라를 찾은 것은 기념품을 사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 어디에서도 점포 셔터가 올라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와 친구는 스키야에서 식사부터 해결하기로 하였다.
장어도 맛있고 돼지고기도 맛있다. 장어 돼지고기 덮밥은 더 맛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원치 않게 깨닫고 말았지만 배움의 순간을 피할 방법은 애석하게도 없었다.
이미 지나간 아침밥에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다음 행선지를 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키하바라는 역시 애니메이션 아니겠는가. 딱히 즐기는 건 없지만 애니메이션 아니면 여기서 뭘 즐길 수 있겠는가. 친구와는 그 어떤 의견 교환도 필요치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게 문을 열어 젖힌다.
과연 선택은 옳았다. 완벽하게 옳았다. 만화를 전혀 즐기지 않음에도 사정없이 돌아가는 눈은 제자리를 찾을 생각을 않는다. 즐길거리가 차고 넘친다. 원피스 연재 분량이 이렇게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을 뿐더러 앞으로도 한참 남았다는 사실도 여기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나 좋은 것들도 많이 취급하고 있다. 역시나 선진국은 선진국이다. 선진국 맞다. 선진국.
두어 시간 정도 비행기가 연착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간절하게 품어 보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쉬운 발걸음을 일찌감치 돌리는 중이다. 안 그래도 무거운 양손이 더욱 무거워진 채로 나리타 공항으로 향할 채비를 서두른다.
도쿄역에서 나리타 익스프레스에 몸을 싣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나들이가 작별의 손을 들어 보이는 중이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원래대로라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나리타 익스프레스지만 예정 시간보다 20분이 넘게 늦어버렸다. 당연히 느긋하게 도착할 거라 생각했지만 카운터가 닫힐랑말랑하는 불편한 순간을 맞이하고 말았다.
정신없이 수속을 진행했다. 출국장에서 보안 검색까지 마치고 나서야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너무나 정신이 없었던 통에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양손 가득 짊어진 것들의 무게가 다시 느껴진 것도 정신줄을 붙잡고 난 다음의 일이다.
타지와의 작별에는 역시 술이 필요하다. 의자에 널부러져 한 모금 들이키고 나니 비로소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조만간 다시 뵙겠습니다. 나리타. 집으로 가즈아!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커다란 산봉우리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후지산이었으면 하고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지만 그 정체를 아직도 모른다. 도쿄에서 대구로 가는 비행기의 항적과 시간을 따져 보니 거의 확실하게 후지산인 듯하지만 누군가가 한 번 확인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시 돌아온 대구. 나와 친구 모두 너무나 지쳐버린 것인지,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향 사투리 속에 한참을 파묻히고 나서야 한국에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났다. 바야흐로 2017년의 마지막을 장식한 나가노 여행이 그 마지막을 알리는 순간이다.
나가노, '17.12.6(수) ~ '17.12.9(토)
출근길과 함께 맞이하는 주중의 나흘은 참 긴 시간인데 이방인에게는 너무나 짧디 짧다. 여행의 마지막 날, 나흘째의 아침이 밝았다. 그 아쉬움과 개운함이 교차하는 순간을 이번 여행에서는 도쿄에서 맞이하는 중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오후 두 시에 나리타 공항을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여행을 와서도 이렇게 부지런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는 했다만 일곱시 반에 일어난 나와 친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갈 채비를 하기에 바빴다.
아주 가깝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도쿄역과 긴자에서 걸어서 25분이면 찾아올 수 있는 오크 호스텔 캐빈. 대단히 훌륭하지는 않아도 위치나 가격 모두 충분히 합리적이다. 그 덕에 꽤나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한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는 아키하바라. 애니메이션이나 전자제품을 좋아하거나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쯤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드디어 발걸음하게 되었다.
지금 쓰고 있는 카메라가 일본에서 만든 것이니 일본에서 사면 조금 더 싸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요도바시 카메라를 꼭 들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 싶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귀여운 것과 귀여운 것이 만나 어마어마하게 귀여운 무언가를 연성했고 바로 옆 가판대에는 성인 잡지가 잔뜩 놓여 있다. 역시 범상치 않은 곳이다.
꽤 공기가 차가운 주말 아침이었다. 열 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유독 한 점포 앞에만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몇명이나 되는지 세어 보고 있으니 '여기부터 대기인원은 100명입니다.' 같은 표지판을 들고 있는 직원들이 중간 중간 눈에 띄었다. 그 직원들을 보자마자 숫자를 세는 건 포기했다. 그 대신 줄의 끝이 어디인지 따라가 보았지만 그나마도 나타날 생각을 않는다. 가게 안에 비트코인이라도 널부러져 있는 건지. 대체 뭐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흥분에 찬 모습으로 입장 시간을 기다리는 건지 너무나 궁금했다.
새로 게임기가 출시됐나, 유명한 게임의 신작이라도 발매된 건가. 나름 추리를 이어갔지만 모조리 틀렸다. 살짝 뜬금 없지만 이곳의 진짜 정체는 빠칭코 센터다. 아침잠을 이기고 먼길 달려온 사람들의 열정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지만 조금 난해한 광경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아키하바라를 찾은 것은 기념품을 사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 어디에서도 점포 셔터가 올라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와 친구는 스키야에서 식사부터 해결하기로 하였다.
장어도 맛있고 돼지고기도 맛있다. 장어 돼지고기 덮밥은 더 맛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원치 않게 깨닫고 말았지만 배움의 순간을 피할 방법은 애석하게도 없었다.
이미 지나간 아침밥에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다음 행선지를 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키하바라는 역시 애니메이션 아니겠는가. 딱히 즐기는 건 없지만 애니메이션 아니면 여기서 뭘 즐길 수 있겠는가. 친구와는 그 어떤 의견 교환도 필요치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게 문을 열어 젖힌다.
과연 선택은 옳았다. 완벽하게 옳았다. 만화를 전혀 즐기지 않음에도 사정없이 돌아가는 눈은 제자리를 찾을 생각을 않는다. 즐길거리가 차고 넘친다. 원피스 연재 분량이 이렇게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을 뿐더러 앞으로도 한참 남았다는 사실도 여기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나 좋은 것들도 많이 취급하고 있다. 역시나 선진국은 선진국이다. 선진국 맞다. 선진국.
두어 시간 정도 비행기가 연착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간절하게 품어 보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쉬운 발걸음을 일찌감치 돌리는 중이다. 안 그래도 무거운 양손이 더욱 무거워진 채로 나리타 공항으로 향할 채비를 서두른다.
도쿄역에서 나리타 익스프레스에 몸을 싣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나들이가 작별의 손을 들어 보이는 중이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원래대로라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나리타 익스프레스지만 예정 시간보다 20분이 넘게 늦어버렸다. 당연히 느긋하게 도착할 거라 생각했지만 카운터가 닫힐랑말랑하는 불편한 순간을 맞이하고 말았다.
정신없이 수속을 진행했다. 출국장에서 보안 검색까지 마치고 나서야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너무나 정신이 없었던 통에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양손 가득 짊어진 것들의 무게가 다시 느껴진 것도 정신줄을 붙잡고 난 다음의 일이다.
타지와의 작별에는 역시 술이 필요하다. 의자에 널부러져 한 모금 들이키고 나니 비로소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조만간 다시 뵙겠습니다. 나리타. 집으로 가즈아!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커다란 산봉우리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후지산이었으면 하고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지만 그 정체를 아직도 모른다. 도쿄에서 대구로 가는 비행기의 항적과 시간을 따져 보니 거의 확실하게 후지산인 듯하지만 누군가가 한 번 확인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시 돌아온 대구. 나와 친구 모두 너무나 지쳐버린 것인지,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향 사투리 속에 한참을 파묻히고 나서야 한국에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났다. 바야흐로 2017년의 마지막을 장식한 나가노 여행이 그 마지막을 알리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