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 살게 된다면 이곳에서. 스탠리

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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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으로 떠나는 3박 4일 남짓의 여정을 계획한다면 아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은 꼭 찾지 않을까 싶다. 홍콩섬 남쪽에 위치한 몇 군데의 해변이 바로 그것인데,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홍콩섬이지만 남쪽의 해변은 조금 다른 인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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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로 가는 방법은 꽤나 다양하다. 홍콩섬 북단 중심가에 위치한 애드미럴티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오션파크 역으로 이동한 후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 혹은 차이완 역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 그 어느 길을 택해도 스탠리에 닿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다. 덕분에 어디로 갈지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리펄스베이를 먼저 둘러 보고 싶다면 애드미럴티 역에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조금 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Ii95mLkYofgUySmgDAaeRtV7tGk.JPG광동어가 익숙하지 않다면 이용하는 게 조금은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홍콩섬의 북동부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지라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종점인 차이완역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지하철역을 나서니 기대하지 않은 이상으로 놀라우리만치 별 것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스탠리를 가기 위해서는 '16X'번 버스를 타야 한다. 2층 높이의 육중한 몸집을 이끌고 거리를 활보하는 대부분의 시내버스와는 다르다. 학원버스 같기도 하고 경기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마을버스를 닮기도 했다. 이 녀석은 우리를 차이완에서 스탠리까지 실어다 줄 것이다.


요금은 9달러, 한국 돈으로 1,400원 정도 한다. 이 미니버스는 안내가 친절하지도 않을 뿐더러 영어도 거의 통하지 않는다. 광동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탑승이 망설여질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6X 버스는 스탠리가 종점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되니 목적지를 잃을 염려는 전혀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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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인지, 농기계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투박한 엔진소리와 함께 버스는 스탠리를 향해 달린다. 출발하자마자 냅다 산으로 꽁무늬를 내빼기 시작하더니 길섶으로 공동묘지가 지천이다. 이 버스의 종착은 내가 누울 묏자리가 아닐까 조금 음산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별 수 없다. 스탠리에 닿기 위해서라면 감내해야 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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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을 지나면 저 멀리에 조금씩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상상만으로도 환상적인 전경이 그려지는 화폭의 한 켠에는 여지없이 고급스러운 호텔과 고층 아파트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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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더 달렸을까. 버스가 멈춰선 곳에는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탁 트이는 시원한 해변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잘 정돈되어 있었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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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꽤 강한 바닷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 온다. 윈드서핑 같은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아무리 홍콩의 겨울이 한국에 비해 따뜻하다지만 한기가 조금씩은 느껴지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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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뒤로 하고 관광객 무리를 따라 인도를 걷다 보니 작은 시장을 만나게 되었다. 기념품을 파는 매장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거진 그림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방이었다. 둥글게 말아서 지환통에 담아 준다는 것 같던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그림을 사서 한국까지 들고 가려고 할까. 지금도 상상이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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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생선가게 그냥 못 지나친다고, 재밌게 생긴 가방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선다. Cote & Ciel의 디자인을 그대로 본따서 만든 것 같은 출처와 국적이 불분명한 가방과 함께 다양한 색깔의 부엉이들이 벽에 잔뜩 걸려 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갈 때 짐이 늘어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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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발걸음을 옮겨 시장을 빠져 나오면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연 것처럼 사뭇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넓지 않은 만을 따라 형성된 작은 마을이 바로 그것인데, 이런 곳이라면 한 번쯤 살아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안락해 보였고, 공간을 둘러싼 모든 것이 즐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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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씩 옮긴 발걸음의 끝에서 만난 광장.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묵은 해를 떠나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이 가득했던 이 공간은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나는 그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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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 가는 곳이라 해서 내가 꼭 가야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항구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던 스탠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가 있다. 나는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