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하이에나와 함께 밤을 보낸 것 같다
세렝게티에 입성한 지는 한참이 지났지만 대지의 숨결을 느끼는 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데나 차를 세우고 땅을 밟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 사자 밥이 되기 싫고 코끼리 장난감이 되기 싫으면 알아서 조심하게 된다.
여기는 캠핑장이다. 우리의 첫날 밤을 책임질 캠핑장. 입구부터 야생의 감성이 충만하다. 비로소 대자연의 일부가 된 듯하다.
세렝게티 여행 상품은 2박 3일로 구성된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렝게티에서 첫날 오후와 둘째날 오전을 보낸 뒤 오후에는 응고롱고로 분화구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난 뒤 마지막 날 오전에 분화구를 둘러본 다음 여행을 마무리하는 여정이 가장 흔하다.
밥도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해결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잠자리다. 세렝게티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롯지'라는 이름의 별장 비스무리한 숙소를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캠핑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비용 차이가 난다. 그것도 많이 난다. 경상남도와 북도를 합친 것보다 커다란 땅덩어리에 숙소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니 얼마나 비싸겠는가. 숙소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 두 배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나름의 장단이 있다. 상술했듯이 저렴한 가격이 첫 번째 장점이고 생동감 넘치는 세렝게티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장점이다. 나와 외부를 단절하는 것은 얇은 원단 한 장이 전부다. 한국에 돌아가서 세렝게티 다녀온 티 좀 내고 싶다면 캠핑은 아주 훌륭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에 반해 단점도 만만찮다. 가장 큰 단점은 화장실이다. 캠핑장마다 워낙에 천차만별이라서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밤새도록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시설도 청결도 아주 훌륭한 화장실을 갖춘 캠핑장이 있는 반면에 물이 나온다는 데에 의의를 두는 화장실도 적지 않다. 야생이 익숙지 않은 분들이라면 꽤나 스트레스 받을 만한 부분이다.
물론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풀밭에 대충 싸고 흙으로 덮어도 상관없는 사람이다. 물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세렝게티 남쪽 게이트 부근에 위치한 'Pimbi'라는 이름을 가진 공용 캠핑장에서 첫날 밤을 보냈다. 근방에 캠핑장이 꽤나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이었는데, 구글 평점으로 줄을 세워 보면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캠핑장이었다.
적당히 여독을 풀고 밍기적거리고 있으니 드라이버 형님과 요리사 친구가 우리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고만 있으려니 민망하다. 도움의 손길을 보태기로 한다.
하지만 우리의 손길은 하찮기 그지없다. 어째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거절하긴 뭣하고, 속앓이가 심한 듯 드라이버 형님의 표정이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우리도 눈치가 있지, 이쯤에서 빠지는 게 맞는 듯하다.
우리의 잠자리가 완성되길 기다리며 멀지 않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어느새 어스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세렝게티의 광활한 평원을 배경으로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12월의 어느 평일 저녁.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한한 감동 속에서 한참을 망연하며 허우적거린다.
모이십쇼. 사진 한 장 찍읍시다요.
세렝게티에서의 첫 번째 저녁 밥상을 받아 들었다. 요리사 친구가 준비한 만찬과 이번 여행의 호스트가 직접 담근 막걸리가 함께하는 근사한 밥상이다. 무려 두 병이나 있다. 놔두면 식초가 될 테니 부지런히 마셔 없애야 한다. 한 잔 따라 주십쇼.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잠시 망중한을 즐긴 뒤 곧장 텐트 속으로 직행한다. 조금이라도 늦게 잠들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차고 넘치지만 그럴 수 없다. 뭔가를 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형편이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밤의 세렝게티, 우리는 잠을 청하기 위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새벽 다섯 시를 조금 지난 시간이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던 간밤이 지나고, 마침내 어스름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하이에나 무리들이 서성거렸다. 우리 텐트를 이따금 건드리기도 했다. 화장실은 가고 싶고 하이에나는 무섭고 그야말로 진퇴양난, 아마도 살면서 이보다 더한 공포는 없었을 것이다.
살았다는 안도가 우리 몸을 감싸고, 다리에 스르륵 힘이 풀린다. 전날 요리를 위해 피운 불씨의 온기를 벗하며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추스려 본다.
살았다는 기쁨과 환희를 가득 담아 기분 좋게 아침 칵테일 한 잔을 말아 본다.
한 마디로 '탄자니아 소주'라고 할 수 있는 꼬냐기에 환타 패션후르츠를 섞은 칵테일과 함께 아침을 연다. 이게 바로 여행하는 재미, 여기가 바로 현세에 강림한 주지육림이다.
오늘의 아침은 과일 한 접시와 소로 만든 소세지, 토스트와 난 비스무리한 무언가다. 단출하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우리에게는 미슐랭 3성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다.
밥을 먹고 짐을 꾸리고 간단히 샤워를 한다. 요란한 엔진 소리가 고요한 허공을 가르기 시작한다. 세렝게티의 두 번째 아침이 밝았다.
아마도 하이에나와 함께 밤을 보낸 것 같다
세렝게티에 입성한 지는 한참이 지났지만 대지의 숨결을 느끼는 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데나 차를 세우고 땅을 밟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 사자 밥이 되기 싫고 코끼리 장난감이 되기 싫으면 알아서 조심하게 된다.
여기는 캠핑장이다. 우리의 첫날 밤을 책임질 캠핑장. 입구부터 야생의 감성이 충만하다. 비로소 대자연의 일부가 된 듯하다.
세렝게티 여행 상품은 2박 3일로 구성된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렝게티에서 첫날 오후와 둘째날 오전을 보낸 뒤 오후에는 응고롱고로 분화구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난 뒤 마지막 날 오전에 분화구를 둘러본 다음 여행을 마무리하는 여정이 가장 흔하다.
밥도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해결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잠자리다. 세렝게티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롯지'라는 이름의 별장 비스무리한 숙소를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캠핑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비용 차이가 난다. 그것도 많이 난다. 경상남도와 북도를 합친 것보다 커다란 땅덩어리에 숙소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니 얼마나 비싸겠는가. 숙소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 두 배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나름의 장단이 있다. 상술했듯이 저렴한 가격이 첫 번째 장점이고 생동감 넘치는 세렝게티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장점이다. 나와 외부를 단절하는 것은 얇은 원단 한 장이 전부다. 한국에 돌아가서 세렝게티 다녀온 티 좀 내고 싶다면 캠핑은 아주 훌륭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에 반해 단점도 만만찮다. 가장 큰 단점은 화장실이다. 캠핑장마다 워낙에 천차만별이라서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밤새도록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시설도 청결도 아주 훌륭한 화장실을 갖춘 캠핑장이 있는 반면에 물이 나온다는 데에 의의를 두는 화장실도 적지 않다. 야생이 익숙지 않은 분들이라면 꽤나 스트레스 받을 만한 부분이다.
물론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풀밭에 대충 싸고 흙으로 덮어도 상관없는 사람이다. 물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세렝게티 남쪽 게이트 부근에 위치한 'Pimbi'라는 이름을 가진 공용 캠핑장에서 첫날 밤을 보냈다. 근방에 캠핑장이 꽤나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이었는데, 구글 평점으로 줄을 세워 보면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캠핑장이었다.
적당히 여독을 풀고 밍기적거리고 있으니 드라이버 형님과 요리사 친구가 우리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고만 있으려니 민망하다. 도움의 손길을 보태기로 한다.
하지만 우리의 손길은 하찮기 그지없다. 어째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거절하긴 뭣하고, 속앓이가 심한 듯 드라이버 형님의 표정이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우리도 눈치가 있지, 이쯤에서 빠지는 게 맞는 듯하다.
우리의 잠자리가 완성되길 기다리며 멀지 않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어느새 어스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세렝게티의 광활한 평원을 배경으로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12월의 어느 평일 저녁.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한한 감동 속에서 한참을 망연하며 허우적거린다.
모이십쇼. 사진 한 장 찍읍시다요.
세렝게티에서의 첫 번째 저녁 밥상을 받아 들었다. 요리사 친구가 준비한 만찬과 이번 여행의 호스트가 직접 담근 막걸리가 함께하는 근사한 밥상이다. 무려 두 병이나 있다. 놔두면 식초가 될 테니 부지런히 마셔 없애야 한다. 한 잔 따라 주십쇼.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잠시 망중한을 즐긴 뒤 곧장 텐트 속으로 직행한다. 조금이라도 늦게 잠들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차고 넘치지만 그럴 수 없다. 뭔가를 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형편이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밤의 세렝게티, 우리는 잠을 청하기 위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새벽 다섯 시를 조금 지난 시간이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던 간밤이 지나고, 마침내 어스름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하이에나 무리들이 서성거렸다. 우리 텐트를 이따금 건드리기도 했다. 화장실은 가고 싶고 하이에나는 무섭고 그야말로 진퇴양난, 아마도 살면서 이보다 더한 공포는 없었을 것이다.
살았다는 안도가 우리 몸을 감싸고, 다리에 스르륵 힘이 풀린다. 전날 요리를 위해 피운 불씨의 온기를 벗하며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추스려 본다.
살았다는 기쁨과 환희를 가득 담아 기분 좋게 아침 칵테일 한 잔을 말아 본다.
한 마디로 '탄자니아 소주'라고 할 수 있는 꼬냐기에 환타 패션후르츠를 섞은 칵테일과 함께 아침을 연다. 이게 바로 여행하는 재미, 여기가 바로 현세에 강림한 주지육림이다.
오늘의 아침은 과일 한 접시와 소로 만든 소세지, 토스트와 난 비스무리한 무언가다. 단출하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우리에게는 미슐랭 3성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다.
밥을 먹고 짐을 꾸리고 간단히 샤워를 한다. 요란한 엔진 소리가 고요한 허공을 가르기 시작한다. 세렝게티의 두 번째 아침이 밝았다.
탄자니아 여행기 #.12 세렝게티 이틀째, 오늘은 나무 타는 사자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