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여행기 #.13 세렝게티 캠핑 이틀째. 오늘은 어떤 동물과 함께 잠자리에 들까나.

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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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의 진짜 재미는 아마도 캠핑에 있다



살짝 미지근한 느낌이 있지만 세렝게티 국립공원은 이제 더 이상 없다. 풍경이 바뀐다거나 하는 건 하나도 없기에 체감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어쨌든 세렝게티는 여기까지다. 우리는 이곳에서 세렝게티와 공식적으로 작별했다.



드라이버 형님께서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 찍을 시간을 주셨다. 드넓은 대지의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부지런히 추억을 남겨 본다.



역시 이런 건 막내의 몫이다. 살짝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와중이었지만 슬그머니 땀이 흐를 정도로 부지런히 뛰고 또 뛰었다.



가방 사진을 남기는 것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세렝게티까지 함께했는데 그 순간을 남기지 않는다면 그건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세렝게티를 처음 만난 어제처럼 이별하는 순간에도 함께한다. 큼지막한 돌로 만든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표지석은 절대 빼먹으면 안 되는 배경 중 하나다.



함께해서 너무나 즐거웠고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부디 다시 만나는 날이 있길 바라며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안녕히 계세요. 또 만납시다!



비로소 막을 내린다. 더 이상의 세렝게티는 없다. 물론 달라진 것은 없다. 한 시간 전에 그러했듯이 우리는 지금도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 위를 부지런히 달린다. 한 시간 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응고롱고로 분화구로 이어지는 길다란 경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달리고 또 달리고 계속 달릴 것이다.



어찌나 흔하던지 자다가도 꿈에 나올 것처럼 사방천지에 누와 얼룩말뿐이었다. 참으로 간만에 누와 얼룩말 아닌 동물을 만났다. 괜스레 반가운 마음에 두 팔 벌려 있는 힘껏 반가운 마음을 전해 본다.



그리고 이내 만났다. 여기는 인류의 발상지라고 여겨지는 올두바이 협곡이다. 전혀 협곡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협곡이다. 엄청나게 거대한 규모 탓에 티가 안 날 뿐이다.



인류의 발상지라는 말이 별것 아닌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상상 이상으로 인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올두바이 협곡이다. 여기는 인류 역사의 모든 자취를 품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나게 다양한 인간 화석이 발견된 곳이다.


그중에서도 인류의 초기 진화 양상을 알 수 있는 화석이 특히 많이 발굴되었다. 그 덕분에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그 어디보다 중요한 보물 창고라고 알려져 있다.



가장 오래된 인류가 밟았던 땅을 현대 인류가 창조한 기계 문명이 질주하고 있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순간이다. 공교롭게도 함께 여행 온 모두가 공돌이다. 괜스레 가슴 한 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눈가에는 무언가 흐르는 듯도 하다. 이게 바로 공돌이의 로망,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지피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조금 더 달렸더니 마사이족 마을이 나타났다. 마사이족이 아주 많이 살고 있는 동네다. 마사이족 사람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동물들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했다고 한다.



참으로 그림 같은 순간이다. 언제나처럼 평안하소서.



갑자기 엄청나게 거대한 소 떼가 나타났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나라였다면 재벌 소리 들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엄청나게 수가 많은 소 떼다. 대충 훑어봐도 수백 마리는 족히 될 듯하다. 마사이족 사람들 속세와 담 쌓고 안분지족하는 삶 사는 줄 알았더니 모조리 기만자다.



갑자기 안개가 들이쳤다가 비가 쏟아졌다가 해가 떴다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를 헤치고 부지런히 달려 마침내 도착했다. 오늘 밤을 책임질 캠핑장,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벗하고 있는 '심바' 캠핑장이다.



캠핑장의 이름인 심바는 스와힐리어로 '사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 간담 서늘한 이름과 달리 이곳은 온갖 초식동물들의 천국이다. 하필 성질 더러운 얼룩말의 천국이라서 살짝 난감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주 마음에 든다. 어제의 캠핑장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곳은 궁중 대궐이라도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널찍하고 조명도 넉넉하고 심지어 콘센트까지 있다. 게다가 아주 느리긴 하지만 와이파이까지 구비하고 있다. 지구상 가장 오지에서 만나는 문명의 향기. 어째 기대하던 것과 살짝 달라서 실망스러울 리 없고 너무 좋다. 나는 진정 이런 걸 원했다.



화장실은 더 좋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던 어제의 캠핑장과 달리 이곳은 시설이 아주 깔끔한 건 물론이고 뜨거운 물까지 콸콸 쏟아진다. 웬만한 게스트하우스 화장실만큼이나 관리를 잘해 놓았다. 상상도 못 했던 풍경 앞에 나와 형들의 잔뜩 벌어진 입은 닫길 생각을 않는다.



역시 성질머리 드러운 놈들. 어딜 가나 치고받기 바쁘다. 사람이 있든 말든 근처에 버팔로가 살든 말든 아랑곳 않고 혈투를 벌인다. 어찌 이렇게 한결같이 성질이 드러운지 모르겠다. 인간이 얼룩말을 가축화 하지 못한 이유라는데, 아무 생각 없이 보고만 있어도 이해가 된다.



어스름이 찾아오고, 얼룩말이 떠나간 자리는 어느새 버팔로가 채우기 시작한다.



이 녀석들이 하는 거라고는 한가롭게 풀을 뜯는 게 전부지만 가진 체급이 워낙에 남다르다. 사람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특급 요리사 에드워드가 차려준 근사한 저녁상과 함께 세렝게티의 마지막 밤이 저문다.



밴드 TOTO의 노래 'Africa'를 배경 음악 삼아 큰형이 캠코더로 담아온 것들을 돌이켜 본다. 여기에 술 한 잔을 곁들이니 가만히 있어도 절로 미소가 만면한다. 낭만이 별 건가, 이게 바로 낭만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해가 지면 할 것 없기는 매한가지다. 양치를 하고 화장실에 다녀온 뒤 곧장 텐트로 향한다. 우리는 그렇게 한가로이 풀을 뜯는 버팔로를 친구 삼아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세렝게티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