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전거 여행기 #.16 몸살 기운을 뚫고 마침내 엔딩, 간사이 자전거 일주의 끝.

20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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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약 400km를 달려 마침내 오사카에 입성했다



대망의 그날이 왔지만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그동안 악과 깡만 믿고 달렸는데 마침내 피통이 싸그리 바닥났다. 남은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 머리는 깨질 듯하고 몸뚱아리는 마치 돌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코에서는 코맹맹이 소리가 가득하고 산발적으로 두통까지 찾아온다. 아주 전형적인 몸살 감기다.


침대에 누운 채로 30분 넘게 고민했다. 이대로라면 길바닥에서 쓰러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웬만하면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오사카까지는 불과 10km 남짓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느리게 기어가도 두 시간 안에는 닿을 수 있는 거리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심했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오사카로 달리는 게 나을 것 같다. 뜨거운 물로 몸을 깨우고 굳은 몸을 억지로 비틀어 본다. 심호흡 한 번을 크게 하고 결승점을 향해 안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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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과장 없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여정도 더는 무리다. 관절 마디마다 모래라도 낀 것처럼 움직이는 족족 삐걱대는 소리를 낸다. 독보적으로 느린 자전거가 됐음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 빠르게 걷는 사람을 따라잡는 것도 힘들다. 아무리 10km밖에 안 된다지만 정말로 두 시간 걸려서 갈 것 같은 기세다.



오사카까지 달리는 내내 이토록 뚱한 표정이었다. 억지로라도 웃고 싶지만 도무지 입꼬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갈수록 나빠지는 상태는 미간의 골을 더욱 깊어지게만 할 뿐, 나를 둘러싼 그 어떤 것도 긍정적인 신호를 전하는 것은 없다.


여행을 하는 건지 극기 훈련의 한가운데인지 헷갈린다. 뭐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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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저찌 입성했다. 마침내 오사카다. 눈물나게 기쁘지만 생각보다 무덤덤한 여정의 마무리였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풍경이 이토록 고요할 수가 있을까. 솔직히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이 없다.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지만 취한 것처럼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오사카시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간판이 나를 반기지만, 나는 반가워할 힘조차 없었다.



힘겹게 비틀거리는 궤적만이 당시의 고통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될 뿐이다. 나의 간사이 지방 자전거 일주는 이렇게 아픔과 괴로움 속에서 일단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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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빌딩숲을 다시 마주하니 돌아온 게 실감이 난다. 오사카에서 시작했던 나의 여정, 마침내 오사카에서 끝맺음을 하려 한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일단 점심부터 먹어야겠다. 오사카의 북쪽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번화가는 우메다역이다. 그 정도 번화가라면 당장에 쓰러져도 119에 신고할 사람이 한 명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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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으로 깡으로 버틴 끝에 우메다에 도착했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자전거 주차장을 찾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10분 넘게 동네를 돌아다니는 중이지만 주차장이 보이지 않는다. 몸이 아픈데 허기까지 더해지니 눈물이 날 것 같다. 다시 한 번 느낀다. 일본 자전거 여행은 생각보다 장애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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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자전거 주차장을 찾고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돈까스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맛집인지 아닌지, 내가 지금 뭘 먹고 싶은지는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배만 채울 수 있으면 뭐든지 좋았다. 그렇게 가장 먼저 눈에 띈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돈까스 집이었다. 다행이다. 나는 돈까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디였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고 무슨 맛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이때 내가 지었던 미소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야말로 눈물 젖은 돈까스 그 잡채. 정말 맛있었다. 살면서 먹어 본 돈까스 중에서 세 손가락안에 꼽아도 될 정도로 맛있었다.



기계가 작동하지 않아서 당황했다. 주차요금이 0에서 바뀌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계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워낙 용건만 간단히 하는 바람에 과금도 되기 전에 돌아와 버렸다. 덕분에 공짜로 자전거를 주차했다. 개꿀.



밥을 먹었더니 조금 정신이 돌아온다. 하지만 고장난 몸뚱아리가 고쳐진 건 아니다. 여전히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중이다. 앞사람과의 거리가 도무지 가까워질 생각을 않는다.


나는 이날 이렇게 본의 아니게 느긋한 속도로 오사카의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간만에 추억의 빵집에 들렀다. 내 생애 첫 일본 여행에서 가장 처음으로 들린 빵집이다. 정말 맛있었던 슈크림빵이 생각나서 들렀건만 안타깝게 그 빵은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대로 빼빼로와 크림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맛있었다. 이 집은 그냥 빵을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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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오사카성도 구경했다. 조금씩 상태가 돌아오니 바퀴를 구르는 발놀림에도 힘과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강을 따라 이곳저곳을 유람하다가 오사카성에 발걸음했다. 하지만 천수각은 올라가지 않았다. 2013년에 한 번 올라가 봤으니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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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해자에 그득하게 고인 물만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쩌다 보니 가로지르게 된 신세카이에도 사람이 많다. 너무나 불편하다. 얼른 벗어나야겠다.



부지런히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큰 문제가 생겼다.


아고다를 통해서 숙소를 예약했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하니 예약 명단에 내가 없단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예약 페이지를 확인해 보는데 내 이름이 버젓이 있다. 돈도 빠져나갔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할 말을 잃고 열심히 따졌지만 묵묵부답이다. 수기로 직접 작성한 예약 노트까지 보여주는데 거기에도 내 이름이 없다. 아고다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항의를 했더니 환불을 해주고 약간의 크레딧을 준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이날은 하필 일본 최대의 휴일 주간인 골드위크가 시작하는 찰나였다.



화가 나는 걸 떠나서 등골이 오싹했다. 이대로라면 오늘 밤은 길바닥에서 자야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무의식 중에 발현된 생존 본능이 나의 정신을 명료하게 만들었다. 내일의 체력도 급하게 끌어다 쓰기 시작했는지 온몸을 지배하던 고통이 어느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숙소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알고 있는 모든 숙소 앱을 받아서 검색하기 시작했고 네이버와 구글 검색도 미친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자리를 깔고 앉아 노트북을 폈다. 그렇게 30분 남짓 사투를 벌였을까, '나가이 유스 호스텔'이라는 이름의 숙소를 발견했다. 골든위크 주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25,000원 남짓의 비용으로 묵을 수 있는 저렴한 숙소였다.



축구장에 붙어 있는 희한한 숙소였다. 변변하게 간판도 없고 입구를 찾는 데에도 한세월이 걸렸다.


혹시 사기를 당한 건가 싶어서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그 순간 현수막을 발견했다. 울지 않으려 다짐했지만 눈물이 쏟아졌다. 잠시 오열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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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많이 걱정했지만 완벽하게 기우였다. 내가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묵은 숙소 중에서 가장 훌륭한 시설을 자랑하는 숙소였다.


축구장 복도 한 편을 모조리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덕분에 엄청나게 후한 공간 씀씀이를 자랑한다. 목욕탕도 있는데 탕이 무려 두 개나 있다. 근데 어째선지 손님이 없어서 목욕탕을 거의 혼자서 점유하다시피 했다.


오사카 시에서 지원을 많이 받는 숙소인 듯했는데, 오사카 시민들의 세금 덕분에 꽤나 평화롭고 포근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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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30일 오후 다섯 시의 일이다. 오사카에서 출발해서 나라와 교토를 거쳐 고베를 지나 히메지에서 다시 고베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사카. 나는 마침내 오사카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