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전거 여행기 #.마지막화, 집으로

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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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간사이 지방 자전거 일주, 마침내 집으로



말년 병장의 심정으로 보낸 여행 마지막의 며칠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지울까 고민하는 매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밝았다. 길고 험했던 여정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나는 오늘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드디어 간다. 집으로 가자.



진로를 남쪽으로 향하기 위해 아베노 하루카스를 나침반 삼는다.


미리 알았더라면 구경도 하고 밥도 먹었을 텐데 하필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이 건물의 존재를 알게 됐다. 오사카에서 가장 높은 것은 물론이고 일본 전역을 통틀어서 가장 높은 상업 빌딩이다.


무려 300m. 고작? 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는 200m를 넘어가는 건물조차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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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처럼 흘러간 시간을 뒤로 하고 마지막으로 안장에 오른다.


이 길의 끝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다.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별 탈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쳤고, 60km 남짓의 여정만 마무리하면 나를 기다리는 행선지는 더 이상 없을 예정이다.



단박에 가자. 위 고 간사이 인터내쇼날 에어포트.



열심히 달리지만 사진도 부지런히 남긴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은 나의 작품 활동 시간이다.


오사카에 이런 노면 전차가 있는 줄 여태 모르고 있었다. 미리 알았으면 한 번 정도는 타 봤을 텐데.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게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나는 주변을 둘러싼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무심한 면이 있는 듯하다.



집에 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힘이 난다. 페달을 밟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도시의 풍경이 하나 둘 떠나가는 중이다. 조금만 더 달려나가면 나의 자전거는 이내 오사카 아닌 어딘가의 풍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 아마도 오사카의 남쪽 경계다. 눈앞에 등장한 다리를 지나면 오사카를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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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에는 그렇게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길섶의 풍경을 삽시간에 지나쳐 간다.


불과 3주 만에 자전거에 많이 익숙해진 듯하다. 작게나마 내리막이 계속되는 덕분이지만 능숙해진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10kg가 넘는 짐을 쑤셔 박은 가방의 무게만 조금 덜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일주를 한 번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세다.



얼마나 달렸을까, 첫날 마주했던 익숙한 풍경의 골목과 재회하게 되었다. 정말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얼마나 가열차게 달렸으면 목표했던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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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시간부터가 이미 계획보다 30분 가량을 당겨 잡은 것이었는데 그것보다도 30분을 더 단축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생각했던 도착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공항 문턱을 밟게 되었다.


아주 미묘한 내리막이 끝없이 이어진 덕분이긴 하지만 이렇게나 빨리 도착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몸과 마음이 모두 가볍다. 역시 사람은 배움의 동물이다. 불과 3주밖에 안 됐지만 그새 많이 성장한 듯하다.



린쿠타운역 앞에 있는 대형 쇼핑몰에서 간단하게 선물을 샀다. 더 많이 사고 싶었지만 전날에 챙긴 선물이 이미 가방 안에 한가득이다. 오늘은 최대한 간단하게 선물보따리를 꾸렸다.


누가 봐도 부담없는 수준의 단출한 짐이다. 하지만 나는 많이 지쳤다. 이것마저도 들고 갈 힘이 마땅찮아서 빌빌거렸다. 산 지 얼마나 됐다고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첫날의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는 공터를 지난다.


나는 여기에서 자전거를 조립한다고 30분을 낑낑거렸다. 포장 박스를 버릴 데가 없어서 헤맸던 기억, 안장을 조립하기 위한 랜치가 없어서 3km 넘게 떨어진 다이소까지 엉거주춤하게 자전거를 탔던 기억까지도 머릿속에 선연하다.



이 녀석과의 첫만남이 기억난다. 왠지 모르게 안 튼튼해 보여서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돌쇠보다 일 잘하고 든든한 파트너였다. 이번 여행의 당당한 일등 공신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펑크 한 번 나지 않고 사소한 말썽조차 부린 적이 없다. 거의 700km 가까운 거리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짧은 시간의 동고동락이었지만 그새 정이 많이 들었다. 부산으로 돌아가서 친구의 품에 안겨 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고마웠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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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마주하며 눈물이 흘렀는데 흐르는 눈물이 멈출 새가 없다. 마침내 재회한 간사이 공항을 바라보며 또 다시 눈물을 흘린다.


내 몸뚱아리보다 큰 자전거 박스를 끌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빵쪼가리를 뜯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700km의 사나이가 되어 돌아왔다.


이제는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더이상 안장에 올라야 할 일도 없고, 남은 것은 오직 자전거를 잘 포장해서 비행기에 실은 다음 내 몸뚱아리도 정해진 자리에 밀어넣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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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비행기에 싣기만 하면 되는데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아니, 사소하지 않다. 많이 큰 문제다. 망연자실할 만큼 큰 문제가 생겼다.



미리 수집한 정보 중에서 맞는 게 하나도 없었다. 오사카 공항은 자전거 포장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자전거를 포장할 수 있는 박스도 팔지 않는다. 이곳저곳을 뒤져서 알아낸 정보와는 달리 이 공항에는 자전거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대체 왜 마지막 날까지 이러시는 겁니까. 저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으신 거죠. 다시 봐도 어처구니가 없고 치가 떨린다. 자전거 한 대를 포장하기 위해서 하나에 800엔이나 하는 박스를 다섯 개나 사야 했다.



자전거를 위해서 만들어진 박스가 아니니 포장이 편할 리 만무하다. 테이프는 몇 통을 쓴 건지 모르겠다.



포장에만 5만 원이 들었고 무려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절대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 이유다. 한 번은 몰라서 했다지만 이걸 알고서 또 가는 건 떠나는 사람의 문제다. 나는 앞으로도 자전거 여행을 떠날 생각이 없다. 얼마나 질렸으면 이날 이후로 꿈에서조차 자전거 여행을 한 적이 없다.



콜라를 든 손이 벌벌 떨린다. 마지막까지도 이토록 화려한 마무리라니. 이렇게나 고생으로 시작해서 고생으로 끝난 여행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여곡절의 연속이다.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은 분명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정말 너무나 힘들었다.



수속 과정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수하물 부치는 비용도 미리 조사한 것보다 훨씬 비쌌다. 이래저래 다 따져 보니 자전거를 싣기 위해서 쓴 돈만 10만 원 가까이가 되어 버렸다. 이런 줄 알았으면 그냥 일본에 와서 중고 자전거를 타다가 다시 팔고 오는 게 나을 뻔했다.


내 자전거도 아닌 걸 들고 와서는 쓸 데 없는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모르면 맞아야지 별 수 있나.



고생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껌딱지처럼 의자에 늘어져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해가 뉘엿거리기 시작했고 활주로 위에 금빛의 잔영을 뿌리기 시작했다. 여행이 끝나가는 순간에 걸맞는, 꽤나 만족스러운 풍경이다.



이 녀석이다. 이 녀석에 몸을 싣기만 하면 나는 집으로 간다. 마침내. 드디어.



드디어 끝이다. 가자. 집으로 가자. 안녕 일본. 안녕 오사카. 안녕 자전거. 저는 고향으로 갑니다. 신세 많았습니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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