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지배층의 목욕탕 '하맘니 배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여행이 어느새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영원히 머무를 것만 같았던 이곳에서의 일상은 오늘과 내일, 불과 이틀만을 남겨 두고 있다. 믿기지 않는 현실을 앞에 두고 이따금 망연한다. 익숙지 않은 공기의 빛깔은 내가 딛고 선 이곳이 명백하게 타향임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인천의 밤하늘을 생각하고는 한다.
정말로 끝이구나. 마지막이 오는구나.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노력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더욱 열과 성을 다해서 즐겨야 한다. 그래서 달달한 뭔가를 씹기로 했다.
대추야자로 만든 디저트다. 찹쌀떡과 약식을 반반 섞어 놓은 것 같은 이 녀석은 엄청나게 달고 고소하다. 쫄깃하게 씹는 맛이 좋아서 간식거리로는 더할 나위 없다. 어린 아이처럼 입안 가득 우물거리면서 생각한다. '정말로 끝이 가까웠구나'
지금부터 우울함이란 한국 땅을 밟을 때까지 함께하는 벗이다. 어깨 한 쪽을 적당히 내어주고는 다시금 여정을 이어간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거리의 부산함과 골목을 굽이치는 볕의 자락은 마주하면 힘이 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왜 이리 처연한지 모르겠다. 끝이 가까웠음을 깨달은 우리는, 그렇게 침묵 속에 잠겼다 부상하기를 반복하며 무거운 걸음을 애써 재촉한다.
수백 개도 더 지나쳤을 동네의 대문이 오늘 따라 특별해 보인다.
대부분 비슷한 재료를 사용한다. 하지만 문양의 생김새와 화려한 정도는 제각각이다. 비슷한 것처럼 보여도 똑같은 건 하나도 없다.
호스트가 이르기를, 대문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집주인의 부와 명예에 비례한다. 지금도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지어진 당시에는 그랬다고 한다. 물론 확인할 방법은 마땅찮다. 눈앞에 보이는 가옥들은 최소 4, 5백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손바뀜을 거쳤을지 생각해 보면, 설령 그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해도 그건 얻어 걸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 테다.
굉장히 오래간만에 만나는 팅가팅가 화풍의 그림. 가볍게 구경만 하고 지나친다. 이미 캐리어에 많다. 아루샤를 여행하면서 차고 넘치게 쟁였다.
재미난 것들이 지천에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장인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왜 그런가 했더니 우리는 지금 스톤타운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의 거리를 지나는 중이다. 아주 많은 작가들이 공방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그것을 팔아서 생계를 꾸려 간다.
좋은 가방 사진을 건지려는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노력만 열심히 했지만 말이다.
사진을 잘 찍을 줄 모르던 시절이다. 지금이라고 딱히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때는 참으로 변변찮았다. 다시 갈 수 있으면 좋은 사진 정말 많이 건져올 텐데. 이때 찍은 사진들은 볼 때마다 아쉽다.
동네 구경도 하고 결과물은 시원찮았으나 가방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그러니깐 잠시 카페에 들러 쉬어 가기로 한다.
언제나 천국처럼 아름다운 잔지바르의 서정을 만끽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단,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만 말이다.
직사각형으로 깎아지를 듯 높은 중정 주변으로는 적당히 얽은 계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사이로 쏟아지는 볕의 줄기를 가만히 마주하고 있노라면 여기가 천국으로 향하는 길목인가 싶다. 집주인이 부러워진다. 사는 동안 많이 벌었겠지. 실례가 안 된다면 메로나 하나만 사 주십시오.
형들은 연노랑 거품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커피와 과일 주스를 주문했다. 나는 콜드브루에 탄산수를 태운 음료를 시켰다.
처음 보는 녀석이다. 아주 신묘하다. 한국에 팔면 대박이 날 것 같다. 형들에게 진지하게 장사 제의를 했다. 곧바로 몇 년 전에 유행이 끝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방 장사나 열심히 해야겠다.
세 가지 음료 중에서 실패한 것은 하나밖에 없었으니 이만하면 꽤 높은 타율이다.
아마도 탄자니아 여행의 마지막 시련이 아니었나 싶다. 유일하게 실패한 음료는 불행히도 내가 고른 탄산수를 섞은 콜드브루였다. '아샷추'와 굉장히 비슷한 맛을 지녔으니 돌이켜 보면 굉장히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샷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음료는 별로였으나 공간은 마음에 들었다. 모두들 원기가 충천해서 다시금 길 위에 섰다.
아마도 저녁을 먹기 전 마지막 여정, 하맘니 배스를 구경할 시간이다.
19세기 후반에 이 동네를 통치하던 술탄의 명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현역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스톤타운의 고오급 목욕탕이다.
매표소 직원분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우리의 호스트, 갑자기 가이드를 자처한다.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가이드가 출장 가고 없단다.
...? 출장을 갈 일이 있나..? 살짝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러려니 한다.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임시 가이드님.
술탄이 지었다고 하니 황제만이 점유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귀족 한정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위치가 되는 지배 계급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상당히 본격적이고 제대로 만든 목욕탕이다. 탕은 당연히 있고 때 밀 수 있는 공간, 매점, 화장실도 있다.
살짝 많이 낡았다는 걸 제외하면 요즘 시대의 목욕탕과 거의 다르지 않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한낮에도 어두컴컴하다는 것만 빼면 있을 건 다 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사이에 출장을 떠났던 가이드 복귀.
별도의 상수도를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목욕물의 원천은 하늘이었다. 엄청나게 깊고 커다란 굴을 파서 부지런히 빗물을 받았다.
적절한 시기에 복귀한 가이드님 덕분에 옥상도 구경할 수 있었다.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도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면 올라가 보는 게 인지상정. 생각보다 높고 무섭다.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런 줄 알았으면 안 올라 오는 건데.
목욕탕 구경을 마치고 오전에 마주친 적 있는 광장을 지난다. 뭐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로 바글거리나 했더니 축구 중계가 한창이다. 매의 눈으로 주시한 결과 레스터 시티와 첼시의 EPL 경기가 열리는 중이다. 사람 사는 모습 어딜 가나 비슷하다.
어느 틈에 어스름이 한가득 드리웠다. 밥 먹을 시간이다. 식사하러 갑시다.
부지런히 마시고 즐겼다.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었다. 얼마 남지 않은 잔지바르의 밤이 저물어 간다.
여기는 잔지바르 스톤타운이다. 돌이키고 또 돌이켜도, 그저 아름다운 찰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현세의 천국이다.
잔지바르 지배층의 목욕탕 '하맘니 배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여행이 어느새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영원히 머무를 것만 같았던 이곳에서의 일상은 오늘과 내일, 불과 이틀만을 남겨 두고 있다. 믿기지 않는 현실을 앞에 두고 이따금 망연한다. 익숙지 않은 공기의 빛깔은 내가 딛고 선 이곳이 명백하게 타향임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인천의 밤하늘을 생각하고는 한다.
정말로 끝이구나. 마지막이 오는구나.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노력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더욱 열과 성을 다해서 즐겨야 한다. 그래서 달달한 뭔가를 씹기로 했다.
대추야자로 만든 디저트다. 찹쌀떡과 약식을 반반 섞어 놓은 것 같은 이 녀석은 엄청나게 달고 고소하다. 쫄깃하게 씹는 맛이 좋아서 간식거리로는 더할 나위 없다. 어린 아이처럼 입안 가득 우물거리면서 생각한다. '정말로 끝이 가까웠구나'
지금부터 우울함이란 한국 땅을 밟을 때까지 함께하는 벗이다. 어깨 한 쪽을 적당히 내어주고는 다시금 여정을 이어간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거리의 부산함과 골목을 굽이치는 볕의 자락은 마주하면 힘이 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왜 이리 처연한지 모르겠다. 끝이 가까웠음을 깨달은 우리는, 그렇게 침묵 속에 잠겼다 부상하기를 반복하며 무거운 걸음을 애써 재촉한다.
수백 개도 더 지나쳤을 동네의 대문이 오늘 따라 특별해 보인다.
대부분 비슷한 재료를 사용한다. 하지만 문양의 생김새와 화려한 정도는 제각각이다. 비슷한 것처럼 보여도 똑같은 건 하나도 없다.
호스트가 이르기를, 대문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집주인의 부와 명예에 비례한다. 지금도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지어진 당시에는 그랬다고 한다. 물론 확인할 방법은 마땅찮다. 눈앞에 보이는 가옥들은 최소 4, 5백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손바뀜을 거쳤을지 생각해 보면, 설령 그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해도 그건 얻어 걸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 테다.
굉장히 오래간만에 만나는 팅가팅가 화풍의 그림. 가볍게 구경만 하고 지나친다. 이미 캐리어에 많다. 아루샤를 여행하면서 차고 넘치게 쟁였다.
재미난 것들이 지천에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장인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왜 그런가 했더니 우리는 지금 스톤타운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의 거리를 지나는 중이다. 아주 많은 작가들이 공방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그것을 팔아서 생계를 꾸려 간다.
좋은 가방 사진을 건지려는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노력만 열심히 했지만 말이다.
사진을 잘 찍을 줄 모르던 시절이다. 지금이라고 딱히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때는 참으로 변변찮았다. 다시 갈 수 있으면 좋은 사진 정말 많이 건져올 텐데. 이때 찍은 사진들은 볼 때마다 아쉽다.
동네 구경도 하고 결과물은 시원찮았으나 가방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그러니깐 잠시 카페에 들러 쉬어 가기로 한다.
언제나 천국처럼 아름다운 잔지바르의 서정을 만끽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단,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만 말이다.
직사각형으로 깎아지를 듯 높은 중정 주변으로는 적당히 얽은 계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사이로 쏟아지는 볕의 줄기를 가만히 마주하고 있노라면 여기가 천국으로 향하는 길목인가 싶다. 집주인이 부러워진다. 사는 동안 많이 벌었겠지. 실례가 안 된다면 메로나 하나만 사 주십시오.
형들은 연노랑 거품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커피와 과일 주스를 주문했다. 나는 콜드브루에 탄산수를 태운 음료를 시켰다.
처음 보는 녀석이다. 아주 신묘하다. 한국에 팔면 대박이 날 것 같다. 형들에게 진지하게 장사 제의를 했다. 곧바로 몇 년 전에 유행이 끝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방 장사나 열심히 해야겠다.
세 가지 음료 중에서 실패한 것은 하나밖에 없었으니 이만하면 꽤 높은 타율이다.
아마도 탄자니아 여행의 마지막 시련이 아니었나 싶다. 유일하게 실패한 음료는 불행히도 내가 고른 탄산수를 섞은 콜드브루였다. '아샷추'와 굉장히 비슷한 맛을 지녔으니 돌이켜 보면 굉장히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샷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음료는 별로였으나 공간은 마음에 들었다. 모두들 원기가 충천해서 다시금 길 위에 섰다.
아마도 저녁을 먹기 전 마지막 여정, 하맘니 배스를 구경할 시간이다.
19세기 후반에 이 동네를 통치하던 술탄의 명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현역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스톤타운의 고오급 목욕탕이다.
매표소 직원분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우리의 호스트, 갑자기 가이드를 자처한다.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가이드가 출장 가고 없단다.
...? 출장을 갈 일이 있나..? 살짝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러려니 한다.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임시 가이드님.
술탄이 지었다고 하니 황제만이 점유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귀족 한정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위치가 되는 지배 계급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상당히 본격적이고 제대로 만든 목욕탕이다. 탕은 당연히 있고 때 밀 수 있는 공간, 매점, 화장실도 있다.
살짝 많이 낡았다는 걸 제외하면 요즘 시대의 목욕탕과 거의 다르지 않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한낮에도 어두컴컴하다는 것만 빼면 있을 건 다 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사이에 출장을 떠났던 가이드 복귀.
별도의 상수도를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목욕물의 원천은 하늘이었다. 엄청나게 깊고 커다란 굴을 파서 부지런히 빗물을 받았다.
적절한 시기에 복귀한 가이드님 덕분에 옥상도 구경할 수 있었다.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도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면 올라가 보는 게 인지상정. 생각보다 높고 무섭다.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런 줄 알았으면 안 올라 오는 건데.
목욕탕 구경을 마치고 오전에 마주친 적 있는 광장을 지난다. 뭐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로 바글거리나 했더니 축구 중계가 한창이다. 매의 눈으로 주시한 결과 레스터 시티와 첼시의 EPL 경기가 열리는 중이다. 사람 사는 모습 어딜 가나 비슷하다.
어느 틈에 어스름이 한가득 드리웠다. 밥 먹을 시간이다. 식사하러 갑시다.
부지런히 마시고 즐겼다.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었다. 얼마 남지 않은 잔지바르의 밤이 저물어 간다.
여기는 잔지바르 스톤타운이다. 돌이키고 또 돌이켜도, 그저 아름다운 찰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현세의 천국이다.
탄자니아 여행기 #.37 어느새 마지막날, 잔지바르 스톤타운 골목 탐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