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야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홍콩 가족 여행 1일차
맑은 하늘 아래를 시원스레 달린다. 이 열차의 종착은 인천 공항이다. 올해는 더 이상의 해외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중이다.
떠나는 이들의 설렘이 가득한 인천공항은 기분 좋은 소란으로 부산하다. 나 역시도 소소하게나마 번잡스러움 한 톨을 보태 본다.
엄마와 동생이 함께하는 홍콩 여행이다. 아빠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어김없이 이탈했다. 시골에 나무 심으러 갈 생각에 싱글벙글한 아빠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무리하지 않는다.
실로 간만의 가족 여행이다. 무려 4년 만이다. 2019년에 떠난 대만 여행 이후로 처음이니 말이다.
여자친구가 홍콩에서 대학을 나왔다. 덕분에 나는 홍콩 공항 입국심사대 문턱을 마르고 닳도록 들락거렸다. 그런 내게 영혼의 단짝과도 같은 녀석이다. 홍콩 익스프레스 역시 참으로 간만이다. 그간 기체후 일향만강하셨나이까.
꽤나 오랜 시간 만의 해후다. 하지만 딱히 변한 건 없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가장 빠른 비행편이 아니게 된 것 말고는 시선 닿는 모든 것이 기억 속 모습 그대로다.
설렘으로 가득한 여정의 시작이다. 마침내 날아올랐다. 드가자.
홍콩 역시 4년 반 만이다. 하지만 딱히 변한 것은 없는 듯 보인다. 형언하기 어려운 애매하게 흐린 하늘과 활주로를 가득 메운 캐세이 퍼시픽의 향연, 내가 기억하던 바로 그 홍콩이다.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심하다. 옥토퍼스 카드 하나를 수령하는 데에만 20분 가까이가 걸렸으니 말이다.
기가 맥히게 기둥 뒤에 숨어서 우리를 농락했다. 가족들이 단체로 귀신에 홀렸나 생각까지 했지만 알고 보니 기둥 뒤에 공간이 있는 것뿐이었다.
무수한 곡절 끝에 엄마와 동생은 새 옥토퍼스 카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홍콩 전문가의 상징을 자랑스럽게 꺼내 든다.
나와 10년째 함께하고 있는 녀석이다. 말 그대로 고인물의 증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 훡힝?
기계가 내 카드를 자꾸만 뱉어낸다. 유효하지 않은 카드란다.
..?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고자ㅇ라니.. 내가 고자ㅇ라니..!!!
응 다 방법이 있어.
역무원은 언제나 답을 알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잔액을 빠방하게 만들어 주셨다. 쓸모없는 기계 놈 같으니라고. 아직 인간에 대적하려면 멀었구나 우매한 자여.
한바탕 소동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심연보다 깊은 배고픔이 남았다. 세븐일레븐에 들러 급하게 두유 한 통과 메론빵 세 개를 샀다.
..?
내가 떠난 사이에 동생도 뭔가를 사다 놓았다. 덕분에 먹을 게 풍성해졌다.
아주 달달하고 촉촉한 소보로빵이다. 일본에서 먹는 메론빵보다 훨씬 맛있다. 원조를 이겨 먹는 짝퉁이라니. 이것 참 귀하군요.
언제나 버스만 탔기 때문에 공항철도 역시 참으로 간만이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 모험은 하지 않기로 한다.
딱히 변한 것 없는 풍경을 벗하며 시원스레 달린다. 우리 목적지는 공항철도의 중간 기착지인 칭이역이다. 20분 남짓을 달리면 만날 수 있다.
안 하던 짓을 많이 하는 여행이다.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택시를 영접하기로 한다.
숙소의 위치가 영 애매하다.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이 츤완역인데, 그나마도 3km가 떨어져 있다. 셔틀버스가 10분 간격으로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츤완역 가는 것도 일이다. 그러므로 택시를 타기로 한다.
담배 쩐내가 진동을 하는, 어릴 적 아빠가 몰았던 엑셀을 떠올리게 하는 도요타 크라운 택시다.
허름한 길섶의 풍경을 벗하며 달리고 있으니 80년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다. 묘하구만.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양치질을 한다. 적당히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곧바로 길을 나선다. 마침내 셔틀버스를 영접한다. 별 기대 안 했는데 생각보다 본격적이고 큼지막한 버스다.
혼자가 아닌 여행은 일정을 계획하는 것이 언제나 일이다. 하지만 홍콩은 누구보다 자신 있으므로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가 상상하는 가장 일반의 홍콩을 마주하기에 여기보다 적합한 장소는 없기 때문이다.
그간 기체후 일향만강하셨습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침사추이 선생님.
첫 번째 끼니 역시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부터 이 녀석을 만나는 순간만 기다렸다.
눈물 나게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죠?
꽤나 많은 게 바뀌어서 적잖이 당황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내가 얼 타면 여러모로 피곤해진다는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필사적이었다.
여러분이 상상하던 바로 그 홍콩,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큰맘 먹고 푸짐하게 주문한다. 탄탄면에다가 초이삼, 소룡포와 구수계는 기본이고 오늘은 마파두부에다가 밥도 한 공기 더한다. 남겨도 괜찮으니 푸지게 드십시오. 제가 다 삽니다.
한국에는 잘 안 알려진 집이다. 홍콩 현지인 맛집이기 때문이다.
나와 여자친구가 가장 사랑하는 홍콩의 맛집이다. 바로 이 녀석, 탄탄면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여행 전날 엄마와 동생이 대구에 있는 크리스탈 제이드에서 이 녀석을 먹었다고 한다. 의도치 않게 서열정리를 하게 되었지만 결말은 너무나도 싱거웠다. '뭐 이런 맛이 다 있노'라는 엄마와 동생의 평으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역시나 나와 여자친구는 환장하는 녀석이지만 마라 때문에 살짝 호불호가 갈릴 거라 생각했다.
역시나. 오히려 좋아. 혼자서 잘 먹었다.
내 입맛에만 감동적인 구수계만 빼면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다시 봐도 감동적이다. 눈물 조금 닦고 오겠습니다.
아어 잘 먹었다.
부른 배를 두들기며 다시금 길을 나선다. 깊어진 어스름을 따라 거리를 유람하다가 현란한 빛무리를 마주하였고, 모두들 뭔가에 홀린 듯이 날아들었다.
한때 해양 경찰서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지금은 홍콩을 대표하는 소비 공간 중 하나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반갑습니다 1881 헤리티지.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 마지않던 홍콩의 밤을 마주한다.
언제 즐겨도 명불허전이다. 홍콩 야경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홍콩의 많은 것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딱 하나 여전한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화려하게 네온사인이 명멸하는 홍콩의 밤일 테다.
홍콩의 쇼핑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신생 명소, K11 뮤지아를 지난다. 구경하고 싶은데 시간이 많이 늦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걸로.
기억 속의 반가운 풍경을 벗하며 아련함 속으로 빠져든다. 가족과 함께하는 홍콩의 첫 번째 밤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
홍콩의 야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홍콩 가족 여행 1일차
맑은 하늘 아래를 시원스레 달린다. 이 열차의 종착은 인천 공항이다. 올해는 더 이상의 해외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중이다.
떠나는 이들의 설렘이 가득한 인천공항은 기분 좋은 소란으로 부산하다. 나 역시도 소소하게나마 번잡스러움 한 톨을 보태 본다.
엄마와 동생이 함께하는 홍콩 여행이다. 아빠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어김없이 이탈했다. 시골에 나무 심으러 갈 생각에 싱글벙글한 아빠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무리하지 않는다.
실로 간만의 가족 여행이다. 무려 4년 만이다. 2019년에 떠난 대만 여행 이후로 처음이니 말이다.
여자친구가 홍콩에서 대학을 나왔다. 덕분에 나는 홍콩 공항 입국심사대 문턱을 마르고 닳도록 들락거렸다. 그런 내게 영혼의 단짝과도 같은 녀석이다. 홍콩 익스프레스 역시 참으로 간만이다. 그간 기체후 일향만강하셨나이까.
꽤나 오랜 시간 만의 해후다. 하지만 딱히 변한 건 없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가장 빠른 비행편이 아니게 된 것 말고는 시선 닿는 모든 것이 기억 속 모습 그대로다.
설렘으로 가득한 여정의 시작이다. 마침내 날아올랐다. 드가자.
홍콩 역시 4년 반 만이다. 하지만 딱히 변한 것은 없는 듯 보인다. 형언하기 어려운 애매하게 흐린 하늘과 활주로를 가득 메운 캐세이 퍼시픽의 향연, 내가 기억하던 바로 그 홍콩이다.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심하다. 옥토퍼스 카드 하나를 수령하는 데에만 20분 가까이가 걸렸으니 말이다.
기가 맥히게 기둥 뒤에 숨어서 우리를 농락했다. 가족들이 단체로 귀신에 홀렸나 생각까지 했지만 알고 보니 기둥 뒤에 공간이 있는 것뿐이었다.
무수한 곡절 끝에 엄마와 동생은 새 옥토퍼스 카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홍콩 전문가의 상징을 자랑스럽게 꺼내 든다.
나와 10년째 함께하고 있는 녀석이다. 말 그대로 고인물의 증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 훡힝?
기계가 내 카드를 자꾸만 뱉어낸다. 유효하지 않은 카드란다.
..?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고자ㅇ라니.. 내가 고자ㅇ라니..!!!
응 다 방법이 있어.
역무원은 언제나 답을 알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잔액을 빠방하게 만들어 주셨다. 쓸모없는 기계 놈 같으니라고. 아직 인간에 대적하려면 멀었구나 우매한 자여.
한바탕 소동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심연보다 깊은 배고픔이 남았다. 세븐일레븐에 들러 급하게 두유 한 통과 메론빵 세 개를 샀다.
..?
내가 떠난 사이에 동생도 뭔가를 사다 놓았다. 덕분에 먹을 게 풍성해졌다.
아주 달달하고 촉촉한 소보로빵이다. 일본에서 먹는 메론빵보다 훨씬 맛있다. 원조를 이겨 먹는 짝퉁이라니. 이것 참 귀하군요.
언제나 버스만 탔기 때문에 공항철도 역시 참으로 간만이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 모험은 하지 않기로 한다.
딱히 변한 것 없는 풍경을 벗하며 시원스레 달린다. 우리 목적지는 공항철도의 중간 기착지인 칭이역이다. 20분 남짓을 달리면 만날 수 있다.
안 하던 짓을 많이 하는 여행이다.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택시를 영접하기로 한다.
숙소의 위치가 영 애매하다.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이 츤완역인데, 그나마도 3km가 떨어져 있다. 셔틀버스가 10분 간격으로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츤완역 가는 것도 일이다. 그러므로 택시를 타기로 한다.
담배 쩐내가 진동을 하는, 어릴 적 아빠가 몰았던 엑셀을 떠올리게 하는 도요타 크라운 택시다.
허름한 길섶의 풍경을 벗하며 달리고 있으니 80년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다. 묘하구만.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양치질을 한다. 적당히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곧바로 길을 나선다. 마침내 셔틀버스를 영접한다. 별 기대 안 했는데 생각보다 본격적이고 큼지막한 버스다.
혼자가 아닌 여행은 일정을 계획하는 것이 언제나 일이다. 하지만 홍콩은 누구보다 자신 있으므로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가 상상하는 가장 일반의 홍콩을 마주하기에 여기보다 적합한 장소는 없기 때문이다.
그간 기체후 일향만강하셨습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침사추이 선생님.
첫 번째 끼니 역시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부터 이 녀석을 만나는 순간만 기다렸다.
눈물 나게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죠?
꽤나 많은 게 바뀌어서 적잖이 당황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내가 얼 타면 여러모로 피곤해진다는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필사적이었다.
여러분이 상상하던 바로 그 홍콩,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큰맘 먹고 푸짐하게 주문한다. 탄탄면에다가 초이삼, 소룡포와 구수계는 기본이고 오늘은 마파두부에다가 밥도 한 공기 더한다. 남겨도 괜찮으니 푸지게 드십시오. 제가 다 삽니다.
한국에는 잘 안 알려진 집이다. 홍콩 현지인 맛집이기 때문이다.
나와 여자친구가 가장 사랑하는 홍콩의 맛집이다. 바로 이 녀석, 탄탄면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여행 전날 엄마와 동생이 대구에 있는 크리스탈 제이드에서 이 녀석을 먹었다고 한다. 의도치 않게 서열정리를 하게 되었지만 결말은 너무나도 싱거웠다. '뭐 이런 맛이 다 있노'라는 엄마와 동생의 평으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역시나 나와 여자친구는 환장하는 녀석이지만 마라 때문에 살짝 호불호가 갈릴 거라 생각했다.
역시나. 오히려 좋아. 혼자서 잘 먹었다.
내 입맛에만 감동적인 구수계만 빼면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다시 봐도 감동적이다. 눈물 조금 닦고 오겠습니다.
아어 잘 먹었다.
부른 배를 두들기며 다시금 길을 나선다. 깊어진 어스름을 따라 거리를 유람하다가 현란한 빛무리를 마주하였고, 모두들 뭔가에 홀린 듯이 날아들었다.
한때 해양 경찰서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지금은 홍콩을 대표하는 소비 공간 중 하나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반갑습니다 1881 헤리티지.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 마지않던 홍콩의 밤을 마주한다.
언제 즐겨도 명불허전이다. 홍콩 야경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홍콩의 많은 것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딱 하나 여전한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화려하게 네온사인이 명멸하는 홍콩의 밤일 테다.
홍콩의 쇼핑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신생 명소, K11 뮤지아를 지난다. 구경하고 싶은데 시간이 많이 늦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걸로.
기억 속의 반가운 풍경을 벗하며 아련함 속으로 빠져든다. 가족과 함께하는 홍콩의 첫 번째 밤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