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전거 여행기 #.9 의외의 난관, 고베에서 히메지까지 가는 60km, 그리고 마침내 히메지성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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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일격, 자전거 일주 중 가장 힘들었던 고베에서 히메지 사이의 60km



생각보다 무난하게 교토에서 고베로 이동했다. 80km를 하루 만에 주파하는 건 처음이라 많이 걱정했지만 의외로 순탄했다.


교토 사케 박물관에서 공짜로 받은 사케를 마시면서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고생하고 마신 술이라 그런지 유독 달았다. 어 취한다.



오늘은 히메지로 가는 날이다. 60km 남짓을 달려야 하니 여기도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전날 이미 80km를 달려봤지 않은가. 구글 지도가 알려주는 정보에 따르면 고도 변화도 별로 크지 않고 대체로 평탄한 여정이 예정되어 있다. 게다가 길의 대부분이 바다를 끼고 있는 덕분에 달리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렇게 지겹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지만 몸뚱아리는 솔직하다. 나는 이제 하루라도 자전거에 몸을 싣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오늘의 무사와 평온을 바라면서 요시노야에서 아침을 먹는다.


어제는 치즈 토핑을 추가했지만 오늘은 20km 덜 달리기 때문에 토핑은 뺐다. 무난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 정도만 먹어도 충분할 것이다.



마침내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 계획대로라면 나는 이미 반환점을 돈 상황이어야 한다. 히메지까지 가는 건 예정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메지성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더 무리를 하게 되었다.


숙소를 빠져나와 신나게 달린 자전거는 어느 틈에 진로를 히메지로 향했다. 60km의 여정, 그 대장정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다.



세토 내해를 벗한 고베에는 나의 고향을 닮은 냄새가 있다. 그 익숙한 정취 덕분에 마음이 한결 푸근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페달을 밟는다. 공기는 산뜻하고 바람은 따뜻하다. 더할 나위 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예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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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지 않을 생각으로 자전거에 오르니 그저 만사가 즐겁다. 바다를 벗한 시골의 풍광을 바라보는 마음에도 여유가 잔뜩 깃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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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로 옆을 맹렬하게 스쳐가는 기차를 구경하는 것도 그저 즐겁고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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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강철 케이블을 길다랗게 늘어뜨린 웅장한 다리 하나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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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 대교. 고베에서 서쪽으로 15km 남짓 떨어진 아카시와 시코쿠 섬을 잇는 다리다. 현수교 중에서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가 가장 긴 다리였다.


내가 자전거 여행을 할 때만 해도 현재진행형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유하고 있던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2022년 3월에 완공된 터키의 다르다넬스 해협 대교에 그 자리를 내주고 콩라인이 되었다.


참고로 아카시 대교를 2등으로 밀어낸 다르다넬스 해협 대교를 건설한 회사는 우리나라의 SK와 대림건설이다. 펄-럭.


새로운 얘깃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경간 간격 최장 현수교라는 지위는 잃었지만 '스즈메의 문단속 배경'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주인공이 고베로 향하는 길목에 잠시 등장한다. '다이진'이라는 고양이가 다리 위를 얄밉게 뛰어다니는 장면의 배경이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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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많고 여유도 많다. 여기까지 온 김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날은 좋고 바람은 따뜻하다. 적당히 노곤한 몸뚱아리 덕분에 머리가 땅바닥에 닿기 무섭게 잠에 빠져 들었다. 잠시 연출만 하려고 했는데 5분 넘게 잠들어 버렸다. 치안이 시원찮은 나라였으면 몸뚱아리조차 건사하지 못했을텐데 이 동네는 다행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고프로도 무사하고 가방도 지갑도, 핸드폰도 모두 무사했다.


정지화면 아님. 날은 좋고 바람은 따뜻하고 적당히 노곤한 몸뚱아리. 머리가 땅바닥에 닿기가 무섭게 잠에 빠져들었다. 잠시 연출만 하려고 했는데 5분 넘게 잠들어 버렸다. 치안이 시원찮은 나라였으면 몸뚱아리조차 건사하지 못했을텐데 이 동네는 다행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고프로도 무사하고 가방도 지갑도 핸드폰도 모두 무사했다.    4. 다시 출발합니다.


잘 쉬었다 갑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무려 30분을 쉬었다. 덕분에 온몸에 의욕이 충만하다. 다시 안장에 올라 밟는 페달이 어느 때보다 가볍다.


이럴 때 더 열심히 달려야 된다. 어차피 곧 꺼질 풍선 같은 운명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뛸 수 있을 때 최대한 멀리 뛰어야 한다.



열심히 뛰는 중. 아주 훌륭하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허허허 오라질. 갑자기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바람도 싸늘하다.


내 마음도 덩달아 싸늘하게 식는다. 조짐이 좋지 않다. 우비를 미리 입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천지신명이시여 불쌍한 중생을 구재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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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은 듯하다. 한두 방울씩 얼굴을 빗방울이 때리는 위기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위기를 극복했다. 하늘은 푸른 속살을 내비쳐 보였고 어느 틈에 바람에 실린 공기에는 포근함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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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태까지는 예행 연습이었다. 진짜 난관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런 길 같지도 않은 자갈밭을 길이랍시고 당당하게 알려준 구글 지도 덕분에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가기는 글렀다.



무엇보다 자전거 바퀴의 안위가 걱정됐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바퀴에 탈이라도 생긴다면 그때는 망연자실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상황이 될 것이다. 부디 그런 참사는 마주하는 일이 없길 바라면서 조심스레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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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는 길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로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나 고생이 심했기에 이 사진을 찍는 순간에는 분명 엄청난 감동이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히메지의 초입으로 향하는 모든 길이 자갈밭 혹은 오르막이었다. 전날 80km를 달린 몸뚱아리가 만신창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혹사를 당했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면 신음소리밖에 없다.


여행 첫날 오사카에서 나라로 향하는 길에 넘었던 두 개의 산보다 히메지 초입에서 달린 야트막한 언덕이 체감상 배는 더 힘들었다. 그 정도로 내 몸뚱아리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상태였다.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맥도날드에 들러 급하게 햄버거를 밀어 넣었지만 전혀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사정없이 일그러지는 표정은 도무지가 막을 길이 없다.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힘겹게 여정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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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을까. 그토록 바라 마지 않던 순간을 마침내 조우하게 되었다.


얼마나 기쁘던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모든 여정을 통틀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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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목적을 이루었다. 이제는 아무렴 상관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여러모로 많은 의미가 깃든 날이다. 그토록 고대하던 히메지성을 만났고 마침내 자전거 일주의 반환점을 돌았다. 단언컨대 가장 힘든 순간을 무사히 극복했으며, 비록 내일도 달려야하지만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날이다.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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