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전거 여행기 #.11 마침내 반환점을 돌았다. 히메지를 떠나 다시 고베로.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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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일주의 후반전, 그 킥오프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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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히메지성 하나만을 바라고 고베에서 60km를 달려온 히메지였다. 방금 히메지성을 보고 왔으니 히메지의 유일한 일정이 끝났다.


이런 게 자전거 여행의 매력이다. 튼튼한 두 다리와 자전거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어디든 갈 수 있다. 갑자기 보고 싶은 게 생기면 고민할 필요 없이 안장에 오르면 된다. 쉬지 않고 페달을 밟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하니깐 말이다.


그렇게 달려온 히메지에서 나는 그토록 원하던 히메지성을 마주했다. 이제 남은 것은 고베로 향하는 일이다. 오늘도 60km를 달릴 것이다. 자전거 일주의 후반전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다.



나의 상쾌한 결의를 오늘도 어김없이 밥심으로 다져 본다.


후반전의 첫 끼는 마츠야가 수고해 주었다. 현해탄을 건넌 지 이제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요시노야는 벌써 질렸다. 간판만 봐도 신물이 날 정도다. 스키야도 지겹다. 그나마 신비감이 남아 있는 덮밥집은 오직 마츠야뿐이다.


친목 도모의 의미에서 통 크게 세트를 시켰다. 앞으로 잘 해보자는 의미에서 싹싹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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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는 여기까지다. 현 시간부로 나는 공식적으로 자전거 일주의 반환점을 돌게 되었다.


맑은 얼굴로 이별하진 않았지만 분명 다시 만날 날이 있을 테다. 그때는 자전거 말고 기차 타고 오겠습니다. 편한 얼굴로 다시 만납시다. 안녕히 계세요. 기체후 일향만강하십시오. 저는 고베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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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해야할 일이 있다. 전날에는 너무 힘들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자다가도 눈앞에 아른거려서 도저히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히메지를 벗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발걸음이 향한 곳은 '오카노'라는 간판이 걸린 빵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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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빵 공장이다. 이곳저곳에 납품을 하는 빵 공장. 그런데 특이하게도 직판장이 있다. 산지 직송 빵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공장에서 쉴 새 없이 공수해 오는 빵이 사방에 가득하다. 덕분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할 뿐 아니라 가격이 저렴한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내 손바닥보다 커다란 빵 두 덩이가 우리나라 돈으로 2천 원도 하지 않았다.



장충동에 있는 태극당에서 파는 모나카 아이스크림 같은 녀석도 샀다. 하나에 단돈 천 원. 역시 산지에서 먹는 건 뭐든지 맛있다. 이 녀석도 어김없이 맛있었다. 아이스크림이라면 죽고 못 사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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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아이스크림 먹었고 원하던 빵도 손에 넣었다. 이제 신나게 고베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시원하고 공기는 산뜻하다. 자전거를 타기에 더할 나위 없는 날이다. 완벽한 날씨 덕분에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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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똑같은 길을 따라갈 생각에 시작도 하기 전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구글 지도가 다른 길을 안내한다. 아무리 인공 지능이 발전한 시대라지만 요즘 컴퓨터는 사람 마음도 읽을 줄 아는 건가. 덕분에 지루하지 않은 여행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달음에 고베로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이미 나의 태곳적 힘까지 끌어다 쓴 속도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이 삐걱대는 통에 당장이라도 히메지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히메지로 돌아가는 길은 오직 오르막뿐이다.



느린 속도지만 꾸준히 페달을 밟았다. 배가 고파졌다. 잠시 쉬었다 가야지.


영 불쌍해 보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편의점에 들러 이온음료 한 병을 사서 공터에 대충 퍼질러 앉았다. 너무 많이 먹으면 옆구리가 아플테니 적당히 조절은 필수다. 한 덩어리만 조심스레 꺼내서 부지런히 우물거린다. 옴뇸뇸뇸뇸



비명소리가 절로 나오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미세하게나마 계속되던 내리막과 맑은 하늘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중 하나가 나를 배신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구름이 몰려오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배신당한 분노가 슬쩍 치밀어 오르지만 너무 힘이 들어서 생각보다 감정 동요가 없다. 약간씩 궁시렁거리기만 할 뿐 자전거는 이 순간에도 계속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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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달렸을까, 마침내 아카시대교가 눈앞에 나타났다. 불과 하루만에 다시 만나는 건데 왜 이렇게 반가운지 모르겠다. 약간 흐려진 하늘 아래에 높이 솟은 아카시 대교의 첨탑이 웅장한 위용을 뽐내며 다시 눈앞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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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별하면 언제 재회할 수 있을까 싶어서 열심히 사진을 남겼다.



마지막 남은 빵을 해치웠다. 잼이 들어있는 줄 알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크림치즈가 들었다. 이번에도 배신을 당했다. 오히려 좋아. 이런 배신이라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당할 수 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빈둥거렸다. 바닷바람을 쉴 새 없이 맞고 있으니 어느 틈에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떠날 시간이다. 기합 한 번 넣고 다시 자전거 안장에 오른다. 여기서 숙소까지는 16km 정도 떨어져 있다. 결코 먼 거리는 아니지만 삭신이 시원찮은 나에게는 꽤나 까마득한 느낌이다. 그래도 오늘 저녁의 맛있는 한 상을 상상하며 맷돌에 들어간 콩처럼 나의 무릎 연골을 갈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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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고대하던 고베와의 재회. 눈물이 앞을 가린다. 기쁜 덕분이기도 하지만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여행은 문제가 하루라도 안 생기면 문제가 생기나 보다. 오늘도 어김없이 문제가 발생했다. 신은 나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이렇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련을 주시는 걸까. 실존하는 분이라면 제 앞에 나타나 주십쇼. 저랑 맞짱 한 번 뜹시다.



여기서 숙소까지 안 쉬고 오르막이다. 믿을 수 없는 상황 앞에서 그저 망연자실, 자전거에서 내려 길바닥에 한참을 퍼질러 앉아 버렸다.


노래 두 곡 남짓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자전거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기 시작했지만 영 심상찮다. 오늘 저녁에는 어떤 식으로든 무슨 일이 날 것 같다.



어차피 내일은 쉬는 날이니깐 일단 숙소는 가서 퍼지자는 생각으로 페달을 밟았던 것 같다. 오르막이 시작된 이후로 8km 정도를 이동했는데 그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무사히 도착했다. 내일도 무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후반기의 막이 올랐다. 마침내 고베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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