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여행기 #.25 여기가 현세에 강림한 천국, 잔지바르 능귀 해변의 첫날

2024-01-17
조회수 1272

잔지바르 제일의 휴양지, 천국이 따로 없는 능귀 해변



킬리만조로 공항을 날아오른 비행기는 한밤 중에 잔지바르에 안착했다. 호텔에서 봉고차 한 대가 우리를 마중 나왔다. 짐칸과의 경계조차 분명하지 않은 뒷자리에 몸을 구겨 넣는다.


칠흑보다 아주 약간 밝은 어둠을 뚫고 달리기를 한 시간 반 남짓, 어떻게 잠에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간밤의 기억 역시 존재할 리 만무하다. 눈 뜨니 아침, 능귀에서의 첫 날이 밝았다.



보석처럼 빛나는 능귀를 벗한 리조트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정갈하다. 해변에서 살짝 거리가 있는 덕분에 가격도 저렴했고 널찍하기까지 하다. 침대는 사람 수에 맞춰서 세 개가 있었는데, 두 명이서 잠을 청해도 거뜬할 것 같이 큼지막했다. 이따금 나타나는 바퀴벌레가 신경을 거슬리게 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손톱만 했기 때문에 아주 불편하지는 않았다.



껄렁거리면서 어디론가 걸음을 향한다. 전날 밤에 미처 다 하지 못한 체크인을 마무리하러 가는 길이다. 워낙에 시간이 늦었던 탓에 예약 정보만 확인하고 열쇠부터 건네 받았다. 서류 작업은 하나도 되지 않았으므로 그것부터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받아든 아침 밥상.



1박에 7만 원, 그것도 세 명 합쳐서. 그런 숙소의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호화스럽다. 꽤나 정성스레 요리한 아침 상을 받아들었다. 과일과 주스, 시리얼은 심지어 무한이고 말이다.



밥상에 정신을 팔고 있으니 체크인 할 때 만난 고양이가 어느새 우리 곁을 서성인다. 조금 전에는 아는 척도 안 하더니 아쉬운 게 생기자마자 친한 척을 한다. 괘씸한 녀석 같으니라고. 너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을 테다.


어차피 주고 싶어도 못 준다. 직원분께서 신신당부했다. 아무것도 주지 말라고.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선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조그마한 가방 하나씩을 품에 안은 채로.


살면서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인도양의 쪽빛 바다를 마주할 시간이다. 대체로 시큰둥하던 호스트마저 들떴다. 딛는 걸음마다 심장 박동이 격렬해짐을 느낀다. 누구 하나 재촉하는 이는 없지만 모두들 잰걸음을 부지런히 놀리는 중이다. 설렌다.



그 전에 선글라스 하나 집어 갑시다.


모른 채 하려고 했는데 그럴 만한 수준의 볕이 아니다. 선글라스가 없이는 눈을 뜨는 것조차 버겁다.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았지만 대안이 없다. 한국 돈으로 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가장 무난한 녀석으로 집어 들었다.



템빨까지 세웠으니 필요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어깨 너머로 인도양의 보석 같은 풍경이 슬그머니 펼쳐진다. 이미 환상적이다. 다시금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드가자. 얼른 드가자.



반갑습니다. 인도양의 보석, 잔지바르 능귀 해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꽤나 큰 섬이다. 서울의 네 배에 달하는 면적을 가졌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해안선의 길이도 엄청나고, 휴양지로 유명한 동네의 숫자 역시 적지 않다.



잔지바르에서 펼쳐지는 휴양지의 춘추 전국 시대는 절대 1강인 능귀를 필두로 파제와 몇 군데의 유명 휴양지들이 격렬하게 추격하는 형세를 하고 있다.



다른 곳을 가본 적이 없어서 비교는 어렵다. 잔지바르의 이곳저곳을 다녀본 호스트의 말에 따르면 저마다의 매력이 있지만 어쨌든 능귀 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 괜히 1강이 아니란다.



별로 안 중요하다. 1강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리. 이 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기쁘다. 생각 따위 집어치우고 만끽하는 데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온전히 전하지 못해 슬픕니다. 감상하시죠.



음머어어어어


니가 이 바닥 통이가. 마 한다이 할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배가 많이 고프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식당에서 만나는 풍경조차도 범상치 않다. 과연 잔지바르.



이게 바로 능귀입니다. 여러분의 신혼여행지로 잔지바르 어떠십니까.



그치만 밥은 여기서 먹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맛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쉽다. 우리나라보다 비싼 물가를 하고서 우리나라보다 못한 음식을 경험하기는 참으로 간만이었다. 10일 넘게 이어진 여행 동안 성공 경험의 연속이었지만 처음으로 실패를 마주했다.



괜찮다. 풍경 값이라고 생각하면 화가 나려고 하다가도 씻은 듯이 사라진다.



후식으로 먹은 아이스크림까지 완벽했으므로 기대에 못 미치는 음식은 아무렴 상관 없는 일이 되었다. 호스트가 강력하게 추천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차고 넘치는 녀석이었다. 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젤라또를 먹었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한동안 젤라또를 그리워하며 이따금 노래를 부르고는 했다.


잘 먹었습니다. 밥도 묵고 아이스크림도 묵고 다 했으니 본격적인 유람을 시작해 봅시다. 과연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는 마음 안고 가볍게 걸음을 옮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