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여행기 #.26 잔지바르 능귀는 천국이다.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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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좋은 여기는 잔지바르 능귀



음식이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어쨌든 배는 채웠다. 호스트의 원픽인 젤라또가 덕분에 마무리는 완벽했으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한 끼였다. 식당에서의 볼일은 여기까지다. 기분 좋게 박수 한 번 치고 다음 여정을 계속한다. 쨍쨍한 하늘 아래에 바라만 보아도 미소가 절로 번지는 잔지바르의 오후, 기분 좋은 여정이 막 시작되련느 참이다.



눈으로 직접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 익숙한 빛깔의 하늘과 생경한 자태로 오묘하게 반짝이는 인도양의 조화는 아무리 봐도 질릴 생각을 않는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적당히 달아오른 모래밭을 이불 삼아 적당히 누워서, 나는 이 바다를 앞에 둔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 생각만으로도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이 풍경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도 좋을 테다. 얼마나 행복할까.



나와 큰형은 이 동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세렝게티 같은 경우는 조금이나마 공부라도 했지, 잔지바르 능귀가 이런 곳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남아도는 건 시간이고 낭비한다고 한들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몸뚱아리가 이끄는 대로 이리 흥청, 저리 망청거릴 뿐이다.


물론 해야할 것이 몇 가지 있기는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핸드폰 데이터를 충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일용할 양식보다 중요한 술을 쟁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찾은 이곳은 능귀 해변에서 두 곳밖에 없는 술 파는 가게 중 하나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생활하는 동네라서 술이 귀하다. 그나마도 여행객들이 찾는 덕분에 이런 가게라도 있지, 현지인들만 가득한 곳에 가면 술은 꿈도 못 꾸는 존재다.


그렇다고 여행객들에게 무조건적인 면죄부를 준다는 말은 아니다. 형사 처벌을 받는 건 아니지만 아무데서나 병나발을 불고 고성방가를 하는 건 삼가야 한다.



기억에 따르면 두 곳인데 찾아보니 그보다 적은 느낌이다. 뭐가 됐든 무진장 귀한 존재라는 건 확실하다.


나무로 얽은 허름한 선반 위에는 온갖 종류의 술이 빼곡하다. 고든스나 호세 꾸엘보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프리카 현지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생소한 것들이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결정이 쉽지 않다. 한참의 고민 끝에 집어든 것은 발리미라는 이름의 맥주 세 병과 꼬냐기 두 병이다. 맥주가 살짝 적은 감이 있지만 꼬냐기가 두 병 있으니 괜찮다. 뭐든지 과유불급이다. 모자라면 그때 사러 와도 늦지 않다.



어쩌다 보니 한 자리에서 모든 목적을 달성했다. 여행자를 위한 모든 것을 파는 가게였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던 핸드폰 데이터 충전 쿠폰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시계에 불과했던 나의 핸드폰이 비로소 본디의 쓰임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티고 패사'라는 이름을 가진 데이터 쿠폰이다. 상단에 써진 숫자만큼의 데이터를 충전할 수 있다. 10,000실링이니깐 한국 돈으로는 5천 원 남짓이고 5Gb 언저리의 데이터를 충전할 수 있는 쿠폰이다.


양이 너무 적어서 당황했지만 의외로 넉넉하다. 인터넷을 쓸 일이 생각보다 많이 없을 뿐더러, 그나마도 속도가 느려서 5Gb를 쓰는 것도 쉽지 않다. 아마 하루종일 핸드폰을 붙들고 있어도 며칠은 걸릴 테다.



유람을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났으니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탐방의 시간이다. 가볍게 걸음을 디디며 이곳저곳을 톺아보기 시작한다.



여유롭고 아름답도다.



더블트리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능귀 해변을 통틀어 가장 고급지고 값 나가는 리조트 중 하나일 테다. 힐튼 호텔 산하의 리조트인 더블트리에 도착했다. 우리가 여행할 당시에는 가장 저렴한 방이 1박에 28만 원 남짓이었고, 지금은 40만 원 가까이 한다. 과거에는 나름 저렴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강달러의 영향으로 그나마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정말로 비싼 리조트가 되었다.


어쨌든 다녀온 지인들의 평에 의하면 굉장히 좋은 리조트다. 힐튼답게 서비스 수준이 남다를 뿐 아니라 바다를 벗하며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도 더블트리 잔지바르의 굉장한 장점 중 하나란다.



이곳저곳을 거닐어 본다. 비싼 리조트답게 모래밭의 때깔조차 남다르다.



편하게 구경하고 가십시오. 여기가 바로 더블트리입니다.



돈 많이 벌고 싶어지는 풍경의 연속이다. 한 달에 일주일 남짓 이곳에서 돈 걱정 없이 머무르다 갈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사는 게 너무 재밌을 것 같다.



귀한 풍경을 만났으니 사진도 한 장 남겨주고



아쉽지만 우리는 여기까지입니다. 돈 많이 벌어서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기체후 일향만강하십시오.



물때가 되었다. 갑작스레 들이치는 거센 파도가 살짝 당황스럽다.



하지만 아직 여유가 있다. 급할 것 없으니 느긋하게 표류하면서 유유자적을 만끽한다.



협상 시작


사딸라. 사딸라!


우리는 일관되게 사딸라를 외쳤다. 13딸라와 사딸라의 극한 대립, 결과는 7딸라에서 합의하는 걸로.



어우 좋다.


간이 침대 두 개와 파라솔 하나를 합쳐서 단돈 7딸라. 심지어 시간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세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결코 나쁘지 않다.



그러니깐 한잔하십쇼. 짠.



코코넛도 두어 개 깠다.



결과는 모자이크 너머로 보이는 표정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나는 이날 이후로 코코넛을 입에 댄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느 틈에 수평선과 가까워진 늦은 오후의 볕이 인도양의 드넓은 품으로 찬연하게 흩어지는 중이다. 나무로 적당히 빚은 돛단배 위에서는 신명나게 춤판이 벌어졌다. 가만히 망연하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여기가 천국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