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여행기 #.28 잔지바르 음넴바섬(a.k.a 빌게이츠섬)에서 즐긴 스노클링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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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씨 참 부럽네요. 잔지바르 빌게이츠섬에서 즐긴 스노클링



바쁘다 바빠. 이른 아침부터 마음이 급하다. 대충 수영복만 걸치고는 떡진 머리를 한 채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잔지바르에서는 일 분 일 초가 아깝다. 씻는 시간도 아깝고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즐길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즐겨야 한다. 짧은 간밤을 보내고 또 다른 여정을 앞둔 청년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면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려는 참이다.



실화냐.


이름 모를 가로수길에도 낭만이 가득 깃들었다. 이 동네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대체 어디까지 예쁠 생각입니까. 이건 반칙 아닙니까.



전날 예약한 스노클링 투어의 출발 시간이 꽤나 이르다. 꼭두새벽부터 부산을 떨어댄 이유다.


전날 밤에는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우리의 호스트가 벼룩에 발가락을 물린 것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벼룩의 무서움에 대해서 경험하기는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나와 큰형이었다. 그런 탓에 우리는 그 흔한 관심의 눈길조차도 건네지 않았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머리털이 쭈뼛 서고 잠기운이 사라질 만한 사건인데 말이다.



출석 체크를 마치고 장비를 챙긴다. 오리발과 수경을 지급 받았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스노클링에다가 착용해 본 적 없는 장비까지, 모든 것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즐길 일만 남았다. 드가자.



시작도 하기 전인데 적잖이 당황스럽다. 생각보다 배가 먼바다에 떠 있다. 어째 해야 하나. 힘겹게 신은 오리발을 벗어 들었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발목을 적시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허리춤까지 물이 들이친다. 카메라와 고프로에 핸드폰까지. 나는 온몸을 전자기기로 두른 인간이다. 넘어지는 순간 나의 전재산은 저세상으로 먼 여행을 떠나게 된다. 딛는 걸음이 너무나 힘겹다.



다행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사히 배에 올랐고, 우리 배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항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꽤나 긴 여정이 될 것이다. 40분 넘게 달려야 하니 말이다. 잔지바르 북서쪽의 능귀에서 출발한 배는 북쪽 해안을 따라 동쪽 끝자락까지 쉼 없이 달려 음넴바 섬에서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멈출 예정이다.



드가자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선원들의 아침이 지금과 같았을까. 잔잔하게 부서지는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경쾌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중세 시대의 모험가가 된 것만 같다. 딱히 하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엔진 소리가 잦아들더니 갑판 위가 부산스럽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기는 한데, 사람들의 목소리가 밝은 걸 보니 나쁜 일은 아닌 듯하다.



이 동네에서는 흔하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여유롭게 유유자적하는 돌고래 떼를 만났다. 다섯 마리 남짓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이라서 절로 웃음이 만면했다. 이런 뜻밖의 사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



눈앞에 보이는 섬이 바로 음넴바 섬, 소유주는 그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선생님 되시겠습니다.



믿을 수 없이 영롱한 빛깔의 풍경 속에 갇힌 우리는 행복에 겨운 감탄을 내지르기 바빴다.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풍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답다. 그런데 지금 내가 두 눈으로 마주하고 있다. 이 또한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스노클링을 즐기는 쪽배들로 가득한 바다를 벗하며 한동안 망연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이런 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할 뿐이다.



하지만 물에 들어가면 조금 더 좋겠지요. 뽀글뽀글



4m 남짓 깊이의 바다는 생각보다 깊어서 당황스럽다. 보급 받은 스노클링용 수경은 생각보다 편하지 않아서 당황스럽다. 간신히 들어온 바다 속에는 물고기가 별로 없어서 또 당황스럽다. 여러모로 당황스럽다.



깊이는 허우적거리다 보니 익숙해진다. 스노클링용 수경은 찬밥 신세가 되었다. 한국에서 들고 온 수경을 쓰고 숨을 참기로 했으므로.


마지막으로 물고기가 없는 건 딱히 문제가 아니다. 나타날 때까지 찾아다니면 되니깐.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즐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작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너무나 아쉽지만 여기까지다. 멀어지는 음넴바 섬을 향해 애절한 작별 인사를 건네며 우리는 그렇게 멀어져 갔다.



밥 먹고 갑시다.


25,000원의 가격 치고는 서비스가 꽤나 훌륭하다. 스노클링도 할 수 있고 돌고래 구경도 시켜 주고 밥까지 준다.



딱히 맛은 없다.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정도다.



그래도 부지런히 먹는다. 시장을 반찬 삼아 깨끗하게 비웠다.



여정의 막바지를 향해 간다. 다시 배에 오르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귀환뿐이다.



돛을 올린다. 떠날 시간이 되었다.



순풍에 돛 단 듯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를 알게 된 순간이다. 순풍을 타고 나아가는 배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힘이 좋고 빠르다.



열심히 놀아재낀 탓에 모두들 지쳤다. 지금 이 순간 느낄 수 있는 기척이라고는 쉴 새 없이 일하는 엔진의 배기음과 이따금 부서지는 파도의 출렁임이 전부다.



찬연하게 빛나는 옥빛 바다를 벗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띄운다. 어깨는 슬며시 늘어지고, 고개는 가눌 길을 잃는다. 반쯤 액체가 된 것처럼 흐느적거리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여기가 천국이구나.



이렇게 둘째 날의 반나절이 작별을 고한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과연 우리의 오후는 어떤 이야기들로 채워지게 될까. 육지가 가까워 올수록 나와 형들의 눈빛은 반짝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