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다. 벌써 잔지바르 능귀의 마지막 밤이라니
과연 기대하던 대로 즐거웠다. 음넴바섬에서 즐긴 스노클링은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을 벗하며 한참을 배를 타고 유랑했다. 그러다가 닻을 내렸다. 모두들 오리발을 신은 채로 푸른 바다에 몸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 둘 찰방거리는 기척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들의 꼬리를 좇아 나 역시도 그림 같은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바닷속 세상이었다. 바다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한참을 망연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생각보다 손해본 게 많은 인생이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알았지'
새삼스레 형들에게 감사했다. 형들이 나에게 탄자니아 여행을 제안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세렝게티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았을 테고, 잔지바르의 바다가 이토록 눈부시다는 것도 몰랐을 테다.
짧은 스노클링을 마치고 뭍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느새 오후의 볕은 중천을 지난 지 오래다.
고작 물놀이를 즐겼을 뿐이다. 하지만 하염없이 늘어진다. 볏짚으로 엮은 곶감 줄기처럼 말이다. 하지만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능귀 해변에서의 마지막날이다. 일 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쉽지 않다. 자꾸만 눈이 감긴다. 이 길의 끝에는 새로운 풍경 대신 익숙한 천정과 푹신한 침대의 따뜻한 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역시 예상은 틀리는 법이 없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숙소로 몸을 향했다. 방문을 열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건 가지런히 정렬한 술병의 먹음직스러운 자태다.
마지막 날인데 잠들기는 아깝지? 한 잔만 할까? 그 짧은 대화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각자의 침대로 향했다.
어떻게 잠에 들었는지 기억이 없다. 누군가의 알람이 적막을 거칠게 흔들었고, 눈이 떠진 건 그 다음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시곗바늘은 불과 한 시간 뒤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미처 피로가 풀리지 않아 몸뚱아리는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이대로 굴복할 수 없다.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서 사정없이 뺨따구를 후려친다. 그러고는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에 머리채를 들이민다.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다. 잠기운의 늪에서 조금씩 멀어져 간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금 길 위에 섰다. 어제 저녁을 먹은 식당을 향해 잰걸음을 재촉한다.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능귀 맛집, 아만 방갈로스가 우리의 마지막 저녁 한 상을 위해 오늘도 수고하시겠다.
동은 먼 곳에서부터 트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진다. 어스름은 먼바다를 발구름판 삼아 슬그머니 백사장에서 멀어져 간다.
오후가 떠나가는 색채는 붉다. 고단했던 하루의 가쁜 숨을 고르며 오늘 하루도 이렇게 멀어져 간다. 약간의 노란 기운이 감도는 불그스름함을 흔적으로 남긴 채 말이다.
어느새 능귀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열과 성을 다해 상차림에 만전을 기했다. 먹고 싶은 게 있을 때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녀석들이다.
망설임의 끝에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차라리 남겨서 아깝고 맛 없어서 실망하는 게 낫다.
이별의 순간이 가까워 온다. 볕의 줄기가 길어질수록 아쉬운 마음이 빚어내는 한숨도 길어진다. 매일이 오늘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더는 없다. 이런 호사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본격적으로 상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새우와 랍스터가 상 위에 오른다. 오징어 튀김과 문어 샐러드, 정체를 알 수 없는 파스타 한 접시와 이름 모를 튀김 요리 하나도 함께할 예정이다.
세 명이서 먹기에는 터무니없이 많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는 남는 음식을 두고 느끼는 아쉬움보다 먹지 못해 뒤늦게 찾아올 후회가 훨씬 무섭고 두렵다.
부지런히 부어라 마셔라 하다 보니 이별의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 형용할 수 없는 빛을 수평선 너머로 흩으며 검붉은 장막을 드리우는 잔지바르의 하늘을 두고 잠시 망연한다. 비로소 실감이 난다. 여정의 끝이구나.
정말로 끝이 가까웠구나.
안녕히 떠나가세요. 함께해서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날 테지요. 아니, 꼭 다시 만납시다. 안녕.
그러니깐 모두들 한잔합시다.
한창 유튜브에 몰두하던 시절이었다. 비록 쓸 만한 성과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남았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이토록 생생하게 돌이킬 수 있는 건 쉴 새 없이 돌아가던 나의 고프로 덕분이다. 지금은 아픈 데가 많아서 빌빌거리고 있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고마운 녀석이다. 그간 고생 많았고 앞으로도 조금만 더 고생합시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물담배 연기에 실린 어스름은 어디론가 무심하게 사라져 간다. 모든 소중한 순간의 기억을 재처럼 남긴 채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해변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충 퍼질러 앉아 고요하게 들이치는 파도를 보며 한참을 망연했다.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파도가 밀려들 듯이 아쉬움도 밀려온다. 정말로 마지막 밤이구나.
오늘 밤도 바람이 별에 스치운다. 청포도처럼 알알이 박힌 별에 스치운다. 그렇게 어디론가 흩어진다. 안녕히 가세요. 즐거웠습니다. 또 만납시다.
능귀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간다.
믿을 수 없다. 벌써 잔지바르 능귀의 마지막 밤이라니
과연 기대하던 대로 즐거웠다. 음넴바섬에서 즐긴 스노클링은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을 벗하며 한참을 배를 타고 유랑했다. 그러다가 닻을 내렸다. 모두들 오리발을 신은 채로 푸른 바다에 몸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 둘 찰방거리는 기척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들의 꼬리를 좇아 나 역시도 그림 같은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바닷속 세상이었다. 바다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한참을 망연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생각보다 손해본 게 많은 인생이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알았지'
새삼스레 형들에게 감사했다. 형들이 나에게 탄자니아 여행을 제안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세렝게티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았을 테고, 잔지바르의 바다가 이토록 눈부시다는 것도 몰랐을 테다.
짧은 스노클링을 마치고 뭍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느새 오후의 볕은 중천을 지난 지 오래다.
고작 물놀이를 즐겼을 뿐이다. 하지만 하염없이 늘어진다. 볏짚으로 엮은 곶감 줄기처럼 말이다. 하지만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능귀 해변에서의 마지막날이다. 일 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쉽지 않다. 자꾸만 눈이 감긴다. 이 길의 끝에는 새로운 풍경 대신 익숙한 천정과 푹신한 침대의 따뜻한 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역시 예상은 틀리는 법이 없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숙소로 몸을 향했다. 방문을 열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건 가지런히 정렬한 술병의 먹음직스러운 자태다.
마지막 날인데 잠들기는 아깝지? 한 잔만 할까? 그 짧은 대화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각자의 침대로 향했다.
어떻게 잠에 들었는지 기억이 없다. 누군가의 알람이 적막을 거칠게 흔들었고, 눈이 떠진 건 그 다음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시곗바늘은 불과 한 시간 뒤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미처 피로가 풀리지 않아 몸뚱아리는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이대로 굴복할 수 없다.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서 사정없이 뺨따구를 후려친다. 그러고는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에 머리채를 들이민다.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다. 잠기운의 늪에서 조금씩 멀어져 간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금 길 위에 섰다. 어제 저녁을 먹은 식당을 향해 잰걸음을 재촉한다.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능귀 맛집, 아만 방갈로스가 우리의 마지막 저녁 한 상을 위해 오늘도 수고하시겠다.
동은 먼 곳에서부터 트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진다. 어스름은 먼바다를 발구름판 삼아 슬그머니 백사장에서 멀어져 간다.
오후가 떠나가는 색채는 붉다. 고단했던 하루의 가쁜 숨을 고르며 오늘 하루도 이렇게 멀어져 간다. 약간의 노란 기운이 감도는 불그스름함을 흔적으로 남긴 채 말이다.
어느새 능귀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열과 성을 다해 상차림에 만전을 기했다. 먹고 싶은 게 있을 때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녀석들이다.
망설임의 끝에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차라리 남겨서 아깝고 맛 없어서 실망하는 게 낫다.
이별의 순간이 가까워 온다. 볕의 줄기가 길어질수록 아쉬운 마음이 빚어내는 한숨도 길어진다. 매일이 오늘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더는 없다. 이런 호사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본격적으로 상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새우와 랍스터가 상 위에 오른다. 오징어 튀김과 문어 샐러드, 정체를 알 수 없는 파스타 한 접시와 이름 모를 튀김 요리 하나도 함께할 예정이다.
세 명이서 먹기에는 터무니없이 많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는 남는 음식을 두고 느끼는 아쉬움보다 먹지 못해 뒤늦게 찾아올 후회가 훨씬 무섭고 두렵다.
부지런히 부어라 마셔라 하다 보니 이별의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 형용할 수 없는 빛을 수평선 너머로 흩으며 검붉은 장막을 드리우는 잔지바르의 하늘을 두고 잠시 망연한다. 비로소 실감이 난다. 여정의 끝이구나.
정말로 끝이 가까웠구나.
안녕히 떠나가세요. 함께해서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날 테지요. 아니, 꼭 다시 만납시다. 안녕.
그러니깐 모두들 한잔합시다.
한창 유튜브에 몰두하던 시절이었다. 비록 쓸 만한 성과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남았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이토록 생생하게 돌이킬 수 있는 건 쉴 새 없이 돌아가던 나의 고프로 덕분이다. 지금은 아픈 데가 많아서 빌빌거리고 있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고마운 녀석이다. 그간 고생 많았고 앞으로도 조금만 더 고생합시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물담배 연기에 실린 어스름은 어디론가 무심하게 사라져 간다. 모든 소중한 순간의 기억을 재처럼 남긴 채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해변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충 퍼질러 앉아 고요하게 들이치는 파도를 보며 한참을 망연했다.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파도가 밀려들 듯이 아쉬움도 밀려온다. 정말로 마지막 밤이구나.
오늘 밤도 바람이 별에 스치운다. 청포도처럼 알알이 박힌 별에 스치운다. 그렇게 어디론가 흩어진다. 안녕히 가세요. 즐거웠습니다. 또 만납시다.
능귀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간다.
탄자니아 여행기 #.30 잔지바르 능귀는 여기까지, 이 여정은 스톤타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