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의 향기, 잔지바르 향신료 투어
잔지바르 능귀에서 보낸 3일은 꿈처럼 황홀했다. 살면서 이런 호사를 다시 또 누릴 수 있을까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누리는 와중에도 이별 후의 허전함을 생각하게 만드는 행복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호사, 잔지바르는 진정 천국이다.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는 법, 그토록 오지 않았으면 하던 작별의 순간은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어깨를 걸고 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능귀를 떠나 택시에 몸을 실은 우리는 한참을 달려 어느 이름 모를 향신료 농장에 멈춰 섰다.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다.
대항해시대로 일컬어지는 개척의 시대, 아프리카 동부 지방을 대표하는 무역항이었던 잔지바르다. 노예나 향신료 같은 온갖 종류의 돈 되는 것들이 잔지바르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 역시 그 역사의 흔적 중 하나다. 중개무역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일부 부지런한 사람들은 직접 농장을 세워 향신료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양념통에 담긴 것이나 보았고 게임에서나 보았던 온갖 향신료들을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입장료도 없고 그럴듯한 절차도 없이 시작된 향신료 투어는 한 그루의 생강 나무 앞에서 본격적인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내가 알고 있는 생각이 아닌 건가. 굴에서 캐오는 줄 알았는데 여기에서는 나무가 자라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분명히 진저라고 했다. 혹시 진저랑 생강은 다른 건가.
아
나무 옆에 소담하게 자란 풀쪼가리가 생강이었다. 그럼 그렇지.
영락없는 생강이다. 뿌리에서만 특유의 향이 나는 줄 알았는데 이파리에서도 생강의 알싸함이 진동을 한다. 이것만 우려도 차 한 잔은 뚝딱일 것 같다. 그 정도로 강한 향이 풍긴다.
이 녀석은 후추라는데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그 익숙한 향마저 없어서 배경지식 없이는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가이드께서 갑자기 칼질을 시작한다. 향을 맡게 하려는 것일 테다. 정체가 뭘까.
그건 바로 시나몬.
참으로 일관된 녀석이다. 향을 맡아도 시나몬, 맛을 봐도 시나몬, 생긴 것도 영락없는 시나몬이다.
갑자기 뿌리를 잘라내더니 적당히 흙을 털고 우리에게 건넨다. 입을 우물거리는 것을 보니 씹어보라는 뜻이다. 여전히 털지 않은 흙 때문에 딱히 내키지는 않지만 상대는 칼을 들고 있다. 군말 않고 입으로 가져간다.
반전의 묘미, 이 녀석에게서 은단의 맛과 향이 난다. 아주 약간의 단맛이 있는 후라보노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담배를 피운 뒤 냄새를 중화하는 용도로 많이 씹는다고 한다. 신기한 녀석이다.
꽤나 먼 길 걸음한 것 같은데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쿠나 마타타.
우리에게 익숙한 녀석이다. 하지만 생소하다. 이 녀석은 정체가 뭘까.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바닐라다.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잊고 살지만 아주 고급지고 비싼 녀석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바닐라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살아 있는 녀석에게서는 그 어떤 맛과 향도 느껴지지 않는다.
새삼스레 인간의 호기심에 경외를 표하게 된다. 말로만 들어도 열 단계는 족히 넘는 공정이다. 이 녀석으로 처음 향신료를 만든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시도를 한 것이며, 어떻게 만든 것일까. 슬그머니 들이치는 존경심에 절로 고개가 굽는다.
이 녀석은 육두구와 메이스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서양에서는 아주 흔한 향신료다.
씨앗처럼 생긴 녀석이 육두구, 겉을 두르고 있는 빨간 실오라기가 메이스다. 고기 누린내를 없애는 데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아는 이는 많이 없고 가격도 저렴하지 않다.
하지만 내 또래 사내 놈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녀석이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이라는 게임에서 아주 중요한 무역 자원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육두구와 메이스를 줄여서 '육메온라인'이라는 별명까지 있었을까. 나와 큰형들은 모두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즐긴 세대라서 그런지 이 녀석의 등장이 유난히 반가웠다.
다음으로 만난 것은 카다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향신료다. 잘 모를 때에는 입으로 가져가는 게 상책, 약간의 비누 향을 품고 있으며 씹자마자 화한 맛이 입안에 잔뜩 퍼진다.
중국 요리에 잔뜩 쓰일 것 같은 맛인데 인도에서 주로 쓴다고 한다. 카레에도 들어가고 음료나 빵을 만들 때도 쓴단다.
아는 것도 많고 재능도 많은 우리의 가이드, 갑자기 풀잎을 엮어 넥타이를 만들더니 우리에게 선물해 준다. 변변하게 드린 것도 없는데 받기만 하네요. 감사합니다.
파인애플이다. 살아있는 파인애플을 마주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길섶에 잡초처럼 자란 무언가를 한 움큼 뜯더니 슬쩍 비벼 우리에게 건넨다.
차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생김새만 보고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녀석의 정체는 레몬의 맛과 향을 품은 레몬그라스다.
향신료 농장 구경은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수금의 시간이다. 여기부터 농장을 벗어나는 순간까지는 오로지 돈 쓰는 일만이 남았다. 제일 먼저 우리의 눈앞에 등장한 것은 향신료로 만든 비누와 향수다.
하나에 2,500원. 딱히 저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싸지도 않다.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잔지바르 믹스와 일랑일랑. 쓰기 아까워서 지금도 집에 잘 모셔두고 있다. 글을 쓰다 말고 생각이 나서 뚜껑을 열어 봤는데 다행히 양은 줄지 않았고 향도 그대로다.
잘 익은 바나나가 열린 나무를 지나 다음 좌판으로 향한다.
재주가 정말 좋은 친구다. 혼자서 뭔가를 부지런히 엮더니 그 짧은 시간 만에 왕관을 세 개나 만들었다.
덕분에 좋은 추억 만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정의 끝을 향해 가는 중이다. 투어의 대미를 장식할 과일 가게를 만났다. 분명 산지 직송한 과일들이다.
인심이 좋다. 자리에 앉자마자 과일 하나를 통으로 자르더니 맛을 보라고 우리에게 건넨다.
파인애플도 통째로 썰어 준다.
동남아에 다녀온 사람들이 3년 동안 과일 타령을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그건 과일 잘하는 집을 못 가 봐서 하는 말이다.
앞으로 누군가 동남아 과일 타령을 하면 아프리카 파인애플 얘기로 기선 제압을 해 주자. 살면서 먹어 본 가장 맛있는 과일은 모조리 아프리카에 있었고, 그중에서도 파인애플은 단연 압권이었다.
파인애플 두 통에 자몽 하나를 얹는다. 모두 합쳐 7천 원. 현지 물가를 생각하면 저렴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입장료라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지불한다. 넥타이랑 왕관도 받고 파인애플까지 공짜로 한 통 얻어 먹었으니 되려 저렴한 편이다.
재밌는 구경도 잔뜩 했고 맛있는 과일도 먹었다. 오감이 만족스러운 시간은 여기까지, 다시금 택시에 오른다.
지금부터 남은 것은 스톤타운으로 향하는 일이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잔지바르의 오랜 유산, 스톤타운이 눈앞이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갑니다. 트윈데(갑시다)!
대항해시대의 향기, 잔지바르 향신료 투어
잔지바르 능귀에서 보낸 3일은 꿈처럼 황홀했다. 살면서 이런 호사를 다시 또 누릴 수 있을까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누리는 와중에도 이별 후의 허전함을 생각하게 만드는 행복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호사, 잔지바르는 진정 천국이다.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는 법, 그토록 오지 않았으면 하던 작별의 순간은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어깨를 걸고 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능귀를 떠나 택시에 몸을 실은 우리는 한참을 달려 어느 이름 모를 향신료 농장에 멈춰 섰다.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다.
대항해시대로 일컬어지는 개척의 시대, 아프리카 동부 지방을 대표하는 무역항이었던 잔지바르다. 노예나 향신료 같은 온갖 종류의 돈 되는 것들이 잔지바르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 역시 그 역사의 흔적 중 하나다. 중개무역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일부 부지런한 사람들은 직접 농장을 세워 향신료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양념통에 담긴 것이나 보았고 게임에서나 보았던 온갖 향신료들을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입장료도 없고 그럴듯한 절차도 없이 시작된 향신료 투어는 한 그루의 생강 나무 앞에서 본격적인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내가 알고 있는 생각이 아닌 건가. 굴에서 캐오는 줄 알았는데 여기에서는 나무가 자라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분명히 진저라고 했다. 혹시 진저랑 생강은 다른 건가.
아
나무 옆에 소담하게 자란 풀쪼가리가 생강이었다. 그럼 그렇지.
영락없는 생강이다. 뿌리에서만 특유의 향이 나는 줄 알았는데 이파리에서도 생강의 알싸함이 진동을 한다. 이것만 우려도 차 한 잔은 뚝딱일 것 같다. 그 정도로 강한 향이 풍긴다.
이 녀석은 후추라는데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그 익숙한 향마저 없어서 배경지식 없이는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가이드께서 갑자기 칼질을 시작한다. 향을 맡게 하려는 것일 테다. 정체가 뭘까.
그건 바로 시나몬.
참으로 일관된 녀석이다. 향을 맡아도 시나몬, 맛을 봐도 시나몬, 생긴 것도 영락없는 시나몬이다.
갑자기 뿌리를 잘라내더니 적당히 흙을 털고 우리에게 건넨다. 입을 우물거리는 것을 보니 씹어보라는 뜻이다. 여전히 털지 않은 흙 때문에 딱히 내키지는 않지만 상대는 칼을 들고 있다. 군말 않고 입으로 가져간다.
반전의 묘미, 이 녀석에게서 은단의 맛과 향이 난다. 아주 약간의 단맛이 있는 후라보노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담배를 피운 뒤 냄새를 중화하는 용도로 많이 씹는다고 한다. 신기한 녀석이다.
꽤나 먼 길 걸음한 것 같은데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쿠나 마타타.
우리에게 익숙한 녀석이다. 하지만 생소하다. 이 녀석은 정체가 뭘까.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바닐라다.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잊고 살지만 아주 고급지고 비싼 녀석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바닐라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살아 있는 녀석에게서는 그 어떤 맛과 향도 느껴지지 않는다.
새삼스레 인간의 호기심에 경외를 표하게 된다. 말로만 들어도 열 단계는 족히 넘는 공정이다. 이 녀석으로 처음 향신료를 만든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시도를 한 것이며, 어떻게 만든 것일까. 슬그머니 들이치는 존경심에 절로 고개가 굽는다.
이 녀석은 육두구와 메이스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서양에서는 아주 흔한 향신료다.
씨앗처럼 생긴 녀석이 육두구, 겉을 두르고 있는 빨간 실오라기가 메이스다. 고기 누린내를 없애는 데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아는 이는 많이 없고 가격도 저렴하지 않다.
하지만 내 또래 사내 놈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녀석이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이라는 게임에서 아주 중요한 무역 자원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육두구와 메이스를 줄여서 '육메온라인'이라는 별명까지 있었을까. 나와 큰형들은 모두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즐긴 세대라서 그런지 이 녀석의 등장이 유난히 반가웠다.
다음으로 만난 것은 카다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향신료다. 잘 모를 때에는 입으로 가져가는 게 상책, 약간의 비누 향을 품고 있으며 씹자마자 화한 맛이 입안에 잔뜩 퍼진다.
중국 요리에 잔뜩 쓰일 것 같은 맛인데 인도에서 주로 쓴다고 한다. 카레에도 들어가고 음료나 빵을 만들 때도 쓴단다.
아는 것도 많고 재능도 많은 우리의 가이드, 갑자기 풀잎을 엮어 넥타이를 만들더니 우리에게 선물해 준다. 변변하게 드린 것도 없는데 받기만 하네요. 감사합니다.
파인애플이다. 살아있는 파인애플을 마주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길섶에 잡초처럼 자란 무언가를 한 움큼 뜯더니 슬쩍 비벼 우리에게 건넨다.
차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생김새만 보고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녀석의 정체는 레몬의 맛과 향을 품은 레몬그라스다.
향신료 농장 구경은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수금의 시간이다. 여기부터 농장을 벗어나는 순간까지는 오로지 돈 쓰는 일만이 남았다. 제일 먼저 우리의 눈앞에 등장한 것은 향신료로 만든 비누와 향수다.
하나에 2,500원. 딱히 저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싸지도 않다.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잔지바르 믹스와 일랑일랑. 쓰기 아까워서 지금도 집에 잘 모셔두고 있다. 글을 쓰다 말고 생각이 나서 뚜껑을 열어 봤는데 다행히 양은 줄지 않았고 향도 그대로다.
잘 익은 바나나가 열린 나무를 지나 다음 좌판으로 향한다.
재주가 정말 좋은 친구다. 혼자서 뭔가를 부지런히 엮더니 그 짧은 시간 만에 왕관을 세 개나 만들었다.
덕분에 좋은 추억 만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정의 끝을 향해 가는 중이다. 투어의 대미를 장식할 과일 가게를 만났다. 분명 산지 직송한 과일들이다.
인심이 좋다. 자리에 앉자마자 과일 하나를 통으로 자르더니 맛을 보라고 우리에게 건넨다.
파인애플도 통째로 썰어 준다.
동남아에 다녀온 사람들이 3년 동안 과일 타령을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그건 과일 잘하는 집을 못 가 봐서 하는 말이다.
앞으로 누군가 동남아 과일 타령을 하면 아프리카 파인애플 얘기로 기선 제압을 해 주자. 살면서 먹어 본 가장 맛있는 과일은 모조리 아프리카에 있었고, 그중에서도 파인애플은 단연 압권이었다.
파인애플 두 통에 자몽 하나를 얹는다. 모두 합쳐 7천 원. 현지 물가를 생각하면 저렴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입장료라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지불한다. 넥타이랑 왕관도 받고 파인애플까지 공짜로 한 통 얻어 먹었으니 되려 저렴한 편이다.
재밌는 구경도 잔뜩 했고 맛있는 과일도 먹었다. 오감이 만족스러운 시간은 여기까지, 다시금 택시에 오른다.
지금부터 남은 것은 스톤타운으로 향하는 일이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잔지바르의 오랜 유산, 스톤타운이 눈앞이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갑니다. 트윈데(갑시다)!
탄자니아 여행기 #.32 마침내 잔지바르 스톤타운, 굉장한 숙소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