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여행기 #.32 마침내 잔지바르 스톤타운, 굉장한 숙소에 도착했다

2024-01-18
조회수 419

무려 500년의 역사를 가진 잔지바르 스톤타운 다우 팔라스 호텔



큰 기대 없이 걸음했지만 예상 외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시작 전까지만 해도 귀찮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의 연속이었다. 말도 안 되게 달고 상큼한 과일은 한 시간 남짓 진행된 투어의 화룡점정이었다. 게으름을 핑계로 그냥 지나쳤으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뻔했다.



하루의 반 가까이를 길바닥 위에서 보낸 것 같다. 어느새 늦은 오후의 볕이 작별 인사를 고하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오늘은 조금 유난한 느낌이다. 유리창 너머로 슬그머니 들이치는 빛은 낡은 사진의 빛바랜 색채를 닮아 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웰컴 투 스톤타운.


탄자니아 여행도 끝을 향해 간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가 될 스톤타운에 마침내 도착했다. 새삼스럽게 시간의 무상함을 느낀다. 인천공항에서 수속을 하면서 호들갑을 떨어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종착이 가까웠다.



퀸의 전설적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나고 자란 동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동네 곳곳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살았음을 '주장하는' 집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말인즉슨, 이곳 말고도 그의 생가로 알려진 곳이 몇 군데 더 있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곳은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말이다. 그리고 진실은 영원히 미궁 속일 공산이 크다. 프레디 머큐리는 본인이 잔지바르에서 태어났음을 탐탁치 않아 했다고 한다.



잔지바르의 구시가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스톤타운은 한때 잔지바르의 가장 번화한 지역이었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 없었던 중개무역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아주 오랜 도시다. 이미 500년 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하니 말이다. 사소한 소동이 없지는 않았으나 도시의 명운을 가르는 변고는 거의 없었고, 덕분에 도시는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간직하고 있다. 우리 눈앞에 놓인 거의 모든 것들이 5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도시 전체가 역사 박물관이라고 해도 무방할 테다.



우리네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할 숙소에 마침내 도착했다. 이름하야 '다우 팔라스 호텔'. 이름답게 범상치 않은 외관의 대문이 우리를 반긴다.



중동의 호화로움이 가득한 중정을 지나 천정이 높은 계단을 오른다. 잔뜩 회칠을 한 벽면을 따라 시선을 위로 향하니 돌출된 통나무의 가지런히 정렬한 모습이 시선을 끈다. 이 동네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인가 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집기, 아마도 유물이라고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러운 것들이 시선 닿는 곳마다 무심하게 자리한다. 얼마나 오랜 세월 이곳에서 망중한을 읊었을까. 짐작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다.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구글신의 가호를 받아 잠시 지식의 외연을 확장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 공식 홈페이지의 친절함 덕분에 호텔의 역사와 내막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믿기 힘든 사실이 많아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500년이 다 되어 가는 집이다. 1559년에 지어졌다. 중동 출신의 어느 갑부가 지었다고 한다. 300년 동안은 가문이 대대손손 살았고, 이후로 주인이 몇 번 바뀌었으며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1987년의 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도 전에 지어진 집이다. 1559년이면 심지어 선조가 즉위하기도 전이다. 이토록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집이라면 으레 문화재로 보호 받을 법 하지만 이 동네에서는 흔한 일이다. 이런 호텔이 아주 많다. 여기 대체 뭐 하는 동네지.



이 바닥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한 장이다. 세계 3대 노예 무역항 중 하나였던 잔지바르다. 노예 무역을 했던 이들 대부분은 당연히 막대한 부를 후대까지 전했고, 후손들 중 상당수는 지금까지도 지역 유지로 살고 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친일파의 현재가 겹쳤다. 씁쓸한 웃음을 지울 수가 없다.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인데 구경하느라 시간을 잔뜩 뺏겼다. 체크인을 마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의 숙소를 만나게 되었다.



단돈 90달러, 그렇다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쾌적하고 널찍하다. 고급스러운 느낌은 딱히 없지만 세월의 누적만이 줄 수 있는 기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오직 잔지바르에만 있는 진귀하지만 평범한 광경이다.



기다랗게 그림자를 드리운 늦은 오후의 볕은 불그스름한 기척을 흩으며 조용히 떠나고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그 아래에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라니. 나도 모르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왕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이토록 호화로운 침소라니.



아어 좋다. 즐길 수 있을 때 푸지게 즐겨야 된다.



하나둘 짐을 풀기 시작했다. 노곤한 몸뚱아리를 가만히 침대에 뉘인다. 천정의 선풍기 날개는 한가로이 돌아간다. 여기가 천국이다. 능귀 해변만 천국인 줄 알았는데 여기도 천국이다. 문득 생각했다.


잔지바르는 가는 곳마다 천국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