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여행기 #.37 어느새 마지막날, 잔지바르 스톤타운 골목 탐험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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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야 말았다. 탄자니아 여행의 마지막날



믿을 수 없다. 결국 그날이 오고 말았다. 어느새 여행의 마지막..은 아니고 전날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하루가 남아 있으니 아주 슬퍼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슬프다.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설레는 마음을 한가득 품고 아디스아바바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게 엊그제 같다. 그렇게 꿈만 같았던 여정이 내일이면 작별을 고한다. 꿈처럼 달콤했던 지난 여정은 어느새 나와 형들의 등 뒤에서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다. 입에 머금은 솜사탕처럼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다.


사실상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공항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할 테다.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다. 찌뿌둥한 마음을 애써 떨쳐내고 경쾌하게 걸음을 디뎌보지만 천근보다 무거운 몸뚱아리는 어쩔 도리가 없다. 쉬이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선물거리는 틈 날 때마다 부지런히 사 모았다. 하지만 아무리 쟁여도 모자란 것이 선물이다. 내일은 집에 간다고 정신이 없을 테니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사실상 지금이 유일하다. 그렇게 우리는 숙소를 나서자 마자 집 근처의 기념품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탄자니아 전역을 통틀어도 손에 꼽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동네다. 그런 만큼 시선 닿는 곳마다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갖춘 구색은 변변찮다. 이 동네는 자급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직접 재배한 향신료나 작가들이 손수 만든 작품 말고는 이곳만의 기념품이라고 부를 만한 게 마땅찮다.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으나 부실한 공업 기반 탓이니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우리가 들른 가게는 사정이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동네에서 가장 큰 기념품 가게답게 탄자니아 전역에서 모인 갖가지 기념품이 가득하다. 질 좋은 커피 원두도 잔뜩이고 향신료나 실로 엮은 전통 공예품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 그래서 규모의 프리미엄을 받고 있다.


...?


다른 집보다 유별나게 비쌌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돈보다 더 귀한 때다. 다른 데를 들를 시간에 하나라도 더 집어 드는 게 낫다. 그렇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간 워낙에 전투적으로 탐방했던 탓이다. 구경할 만한 것이라고 남은 게 많지 않다. 우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골목을 유람하기로 한다. 떠나가는 마당에 뭐가 중요하겠는가. 특별한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일상의 사소한 조각마저도 소중하고 귀하다. 건물을 헐고 남은 잔해마저도 말이다.



올려다 본 하늘은 파랗고 깨끗하다. 미소가 슬그머니 만면한다. 울적함을 날려 버리자. 좁은 골목 위 청량한 하늘에 훌훌 털어 버리자.



한참을 걸었다. 좁다랗고 부산한 골목을 벗어났다. 그런 우리의 걸음이 항구에 닿았다. 역시나 부산하다. 점심 시간이 한창인 탓이다.



다르에스살람으로 향하는 배 표를 사러 왔다. 잔지바르에서 곧바로 고향으로 향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에 대한민국은 너무나 머나먼 땅이다.



그렇게 우리의 여정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외국인은 배표를 사기 위해 여권이 필요하단다. 무거운 적막이 우리를 일시에 짓누른다. 나와 큰형의 여권은 지금 숙소에서 단잠을 즐기는 중이다.


딱히 일정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급할 건 없다. 하지만 살짝 애매하다.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여권을 가지러 가기 위해 3륜 오토바이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잘 풀리지 않는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감지한 기사들이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임무를 분담한다. 우리의 여권을 찾는 일은 호스트의 몫이 되었다. 큰 형과 나는 호스트의 지령을 받아 식당으로 걸음을 향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탓이다. 누구 하나 내색하는 이는 없지만 모두의 발걸음이 무겁다.



오히려 좋아. 덕분에 팔자에도 없던 지극히 평범한 동네 사람들의 밥상을 받아 들게 되었다.


여행 내도록 진수성찬과 함께 부어라 마셔라 했던 우리들이었다. 잠시나마 쉬어갈 시간이 필요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인가 보다.



투박하지만 정겨웠다. '아따 재밌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카레를 제외하면 모든 음식이 정갈하고 괜찮았다. 여행 말미에 만나는 집밥이라니, 오히려 좋아.



뜻밖에 괜찮은 점심도 즐겼고 내일의 배편도 무사히 손에 넣었다. 숙제를 끝내고 나니 모두들 표정이 밝다.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잔지바르의 광활한 수평선을 벗하며 한가로이 망중한을 읊는다.



과연 천국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 잔지바르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다.



이곳저곳을 유람하다가 협상에 돌입했다. 거북이가 살고 있는 섬으로 가는 배를 수배하기 위함이다.



협상은 순조로웠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호스트의 말에 따르면 시세보다 저렴했다. 간만의 승전고. 덕분에 호스트의 어깨는 승천하기 직전이다.



이틀 만이네요 주마. 잘 지냈어요?


멀리서부터 우리를 알아봤다고 한다. 인사를 건네기 위해서 부지런히 달려온 주마. 아마도 마지막이 될 인사를 건넨다. 잘 지내고 있죠 주마? 많이 보고 싶네요.



조그마한 통통배에 몸을 싣는다. 이 녀석은 15분 남짓 파도를 해치고 우리를 어느 외딴 섬에 데려다 줄 것이다. 그 섬의 이름은 노예섬. 뭐 그런 이름이 다 있나 싶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진 섬이다.



경박한 엔진 소음과 함께 부지런히 물살을 가르기 시작한다. 체급이 작아서 그런지 순식간에 속도를 붙인다. 생긴 것과 다르게 꽤나 빠르다. 몸뚱아리를 스치는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경쾌하다. 절로 미소가 번진다.



달리고 또 달린다.



열심히 달렸다. 도착 5분 전. 우리 배 곧 노예섬에 상륙하겠습니다. 하선 준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