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세렝게티
마침내 종착이 가까웠다. 환영합니다. 여기는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입니다.
길섶을 스쳐가는 얼룩말들이 하나 같이 살 찐 모습이다. 사방 천지에 먹을 게 널리고 널린 덕분이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이 야생 동물들의 낙원이라면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야생 동물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꽤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응고롱고로다. 이곳에서 태어난 동물들은 평생을 분화구 안에서만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딱히 아쉬울 것 같지는 않다. 굳이 바깥 세상을 알아야 할까.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아도 여기 있는 녀석들은 굳이 떠나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분화구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부지런히 바퀴를 구른다. 그러던 중 앞에 멈춰선 차 한 대를 따라 덩달아 속도를 늦춘다. 뭔가 있다는 뜻이다. 선발대는 뭐 때문에 멈춘 것일까.
사자 선생님이 계셨다. 꽤나 깊은 권태의 늪에서 살고 있는 듯한 사자 선생님들이.
동물원에서 만난 녀석들도 이 녀석들보다는 사나워 보였다. 야생성을 완전히 상실한 듯하다. 먹을 게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나 여유가 만발했을까.
위엄과는 거리가 있다. 내가 알던 사자와도 거리가 상당하다. 이 모습도 나쁘진 않지만 당황스럽긴 하다. 백수의 왕은 어디 가고 덩치 큰 고양이 한 마리가 진흙탕을 뒹굴고 있다.
서비스가 좋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애교까지 부린다. 이런 것까지 바란 건 아닌데 보여 주신다면 감사히 즐기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운이 좋네요 허허.
그런 줄 알았다. 마냥 귀여운 줄만 알았다. 우리 옆을 스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백수의 왕이 맞고 내가 아는 사자 맞다. 누워 있을 때의 권태로움은 온데간데 없다. 살기로 번뜩이는 사자의 눈을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앞으로 안 깝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자 선생님. 기체후 일향만강하시옵고,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살펴 가십시오. 저희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와 형들의 심장을 멎게 할 뻔했던 사자 무리와 이별하고 다시금 길 위에 섰다. 한참을 달리다가 또 다시 차가 멈춰 선다. 아주 먼발치에 무언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사자들 주변으로 무언가 서성거리는 게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같은 사자라고 하기에는 체급 차이가 너무 난다.
대체 뭔가 싶어 큰 형의 캠코더를 이용해서 확대를 시켜 보았다. 그랬더니 처음 보는 동물들이 사자 옆을 두리번거리는 중이다.
누 한 마리가 사자의 먹이가 되어 생을 마감했다. 그 옆을 겁 없이 어슬렁거리는 잔챙이의 정체는 '자칼'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다. 이래 뵈도 엄연히 육식을 하는 동물이다.
좀 희한한 장면이 펼쳐진다. 암사자가 식사를 끝내든 말든 자칼들은 이미 축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자칼보다 힘도 세고 덩치도 큰 하이에나는 암사자의 눈치를 보며 주변을 어슬렁거릴 뿐이다.
모든 동물들의 식사 시간이 비슷하다. 밥을 먹고 나면 부른 배를 두들기며 하나둘 잠자리에 드는 것도 비슷하다. 갑자기 땅바닥으로 널브러지기 시작하는 동물들을 보면서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찾아온 평화에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번진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찾아온 귀하신 손님, 정말로 엄청나게 귀하신 분을 영접했다.
아마도 세렝게티를 통틀어 가장 귀하신 분이다. 응고롱고로에는 백 마리는커녕 열 마리도 안 계신다고 들었다. 그래도 평지밖에 없는 응고롱고로라서 어떻게든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분화구는 지름만 해도 20km다. 게다가 코뿔소는 귀가 엄청나게 밝고 예민한 친구다. 그래서 인기척을 느끼면 도망가기 일쑤라고 한다. 당장에 우리도 코뿔소 선생님으로부터 500m보다 가까워질 수 없었다.
코끼리가 워낙에 규격 외라서 그렇지 이 바닥 서열 2위인 코뿔소 선생님이다. 가진 체급이 결코 만만치 않다.
물웅덩이에서 얼룩말의 넓적다리를 물고 망중한을 즐기는 하이에나도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 2박 3일의 꿈 같았던 여정과 작별할 시간이다. 안녕 응고롱고로.
영원히 꿈처럼 머무를 것만 같던 시간이 그야말로 꿈처럼 흘렀다. 감사한 마음과 아쉬움을 함께 담아 살포시 손하트를 띄워 본다.
잠시 화장실에 들렀고,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는 마지막이 될 세렝게티 땅을 딛고 섰다. 요리사 친구에게 부탁해서 사진도 한 장 남겼다.
이 길의 끝에 세렝게티와의 작별이 기다린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가젤과도 인사를 나눈다.
잘 살고 있니. 보고 싶구나.
아쉬움으로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추적이기 시작한다.
이 너머에 일단락의 순간이 기다린다. 그토록 찬연했던 시간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안녕 세렝게티, 안녕 응고롱고로.
안녕 세렝게티
마침내 종착이 가까웠다. 환영합니다. 여기는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입니다.
길섶을 스쳐가는 얼룩말들이 하나 같이 살 찐 모습이다. 사방 천지에 먹을 게 널리고 널린 덕분이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이 야생 동물들의 낙원이라면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야생 동물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꽤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응고롱고로다. 이곳에서 태어난 동물들은 평생을 분화구 안에서만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딱히 아쉬울 것 같지는 않다. 굳이 바깥 세상을 알아야 할까.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아도 여기 있는 녀석들은 굳이 떠나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분화구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부지런히 바퀴를 구른다. 그러던 중 앞에 멈춰선 차 한 대를 따라 덩달아 속도를 늦춘다. 뭔가 있다는 뜻이다. 선발대는 뭐 때문에 멈춘 것일까.
사자 선생님이 계셨다. 꽤나 깊은 권태의 늪에서 살고 있는 듯한 사자 선생님들이.
동물원에서 만난 녀석들도 이 녀석들보다는 사나워 보였다. 야생성을 완전히 상실한 듯하다. 먹을 게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나 여유가 만발했을까.
위엄과는 거리가 있다. 내가 알던 사자와도 거리가 상당하다. 이 모습도 나쁘진 않지만 당황스럽긴 하다. 백수의 왕은 어디 가고 덩치 큰 고양이 한 마리가 진흙탕을 뒹굴고 있다.
서비스가 좋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애교까지 부린다. 이런 것까지 바란 건 아닌데 보여 주신다면 감사히 즐기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운이 좋네요 허허.
그런 줄 알았다. 마냥 귀여운 줄만 알았다. 우리 옆을 스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백수의 왕이 맞고 내가 아는 사자 맞다. 누워 있을 때의 권태로움은 온데간데 없다. 살기로 번뜩이는 사자의 눈을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앞으로 안 깝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자 선생님. 기체후 일향만강하시옵고,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살펴 가십시오. 저희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와 형들의 심장을 멎게 할 뻔했던 사자 무리와 이별하고 다시금 길 위에 섰다. 한참을 달리다가 또 다시 차가 멈춰 선다. 아주 먼발치에 무언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사자들 주변으로 무언가 서성거리는 게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같은 사자라고 하기에는 체급 차이가 너무 난다.
대체 뭔가 싶어 큰 형의 캠코더를 이용해서 확대를 시켜 보았다. 그랬더니 처음 보는 동물들이 사자 옆을 두리번거리는 중이다.
누 한 마리가 사자의 먹이가 되어 생을 마감했다. 그 옆을 겁 없이 어슬렁거리는 잔챙이의 정체는 '자칼'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다. 이래 뵈도 엄연히 육식을 하는 동물이다.
좀 희한한 장면이 펼쳐진다. 암사자가 식사를 끝내든 말든 자칼들은 이미 축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자칼보다 힘도 세고 덩치도 큰 하이에나는 암사자의 눈치를 보며 주변을 어슬렁거릴 뿐이다.
모든 동물들의 식사 시간이 비슷하다. 밥을 먹고 나면 부른 배를 두들기며 하나둘 잠자리에 드는 것도 비슷하다. 갑자기 땅바닥으로 널브러지기 시작하는 동물들을 보면서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찾아온 평화에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번진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찾아온 귀하신 손님, 정말로 엄청나게 귀하신 분을 영접했다.
아마도 세렝게티를 통틀어 가장 귀하신 분이다. 응고롱고로에는 백 마리는커녕 열 마리도 안 계신다고 들었다. 그래도 평지밖에 없는 응고롱고로라서 어떻게든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분화구는 지름만 해도 20km다. 게다가 코뿔소는 귀가 엄청나게 밝고 예민한 친구다. 그래서 인기척을 느끼면 도망가기 일쑤라고 한다. 당장에 우리도 코뿔소 선생님으로부터 500m보다 가까워질 수 없었다.
코끼리가 워낙에 규격 외라서 그렇지 이 바닥 서열 2위인 코뿔소 선생님이다. 가진 체급이 결코 만만치 않다.
물웅덩이에서 얼룩말의 넓적다리를 물고 망중한을 즐기는 하이에나도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 2박 3일의 꿈 같았던 여정과 작별할 시간이다. 안녕 응고롱고로.
영원히 꿈처럼 머무를 것만 같던 시간이 그야말로 꿈처럼 흘렀다. 감사한 마음과 아쉬움을 함께 담아 살포시 손하트를 띄워 본다.
잠시 화장실에 들렀고,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는 마지막이 될 세렝게티 땅을 딛고 섰다. 요리사 친구에게 부탁해서 사진도 한 장 남겼다.
이 길의 끝에 세렝게티와의 작별이 기다린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가젤과도 인사를 나눈다.
잘 살고 있니. 보고 싶구나.
아쉬움으로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추적이기 시작한다.
이 너머에 일단락의 순간이 기다린다. 그토록 찬연했던 시간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안녕 세렝게티, 안녕 응고롱고로.
탄자니아 여행기 #.16 세렝게티는 여기까지, 우리는 아루샤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