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여행기 #.16 세렝게티는 여기까지, 우리는 아루샤로 갑니다

202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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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도시, 아루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또 만납시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저는 꼭 돌아옵니다. 기다려 주세요!


그야말로 꿈 같은 3일이 바람처럼 흘렀다. 세렝게티 하나만 보고 30시간을 날아온 아프리카였다. 그런데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 목표를 이루었다.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내 곁을 떠날 줄이야. 아직도 이별하던 순간이 실감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오랜 꿈이었던 세렝게티는 이렇게 추적이는 빗물과 함께 평온히 떠나갔다.



세렝게티의 모든 것이 아직도 꿈처럼 아련하다. 평생의 버킷리스트였는데 그토록 갑자기 현실이 될 줄도 몰랐고,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면서도 믿기지 않았고,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실감나지 않았다. 그 여행의 끝이 오랜 코시국의 시작이 될 거라는 것 역시 꿈에도 생각 못 했고 말이다.


정말로 세렝게티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계속된다. 즐거웠습니다. 고마웠어요 세렝게티! 여전히 그리우니 머지 않은 미래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안녕!



'국지적'이라는 단어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탄자니아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정신없이 쏟아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간 하늘이 비치는 걸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감탄이 새어 나온다. 참으로 신기한 동네가 아닐 수 없다.



세렝게티를 벗어나 한 시간 남짓을 달렸을까. 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멈춰 섰다.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요리사 에드워드 덕분에 세렝게티를 여행하는 내내 식사 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해 주는 밥도 이제 더는 없다. 믿기지 않는다. 혹시 이거 꿈인가요.



이틀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고생 많았다. 산도, 들도, 물도 타고 오만 데를 다 다녔다. 말 그대로 나무 빼고는 다 탔다.


하지만 생각보다 상태가 양호하다. 과연 랜드크루저다. 엄청나게 튼튼하고 말도 잘 듣고 힘도 좋고 빠릿빠릿하다. 세렝게티에서 이 녀석 아닌 차를 찾아보기 힘든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마지막이라 아련한 것은 우리의 사정일 뿐이다. 오늘이라고 딱히 특별한 건 없다. 여느 때처럼 도시락이고, 형이 꺼내든 것을 보아하니 어제와 내용물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샌드위치 대신 밥이 들어간 빵이 들어갔다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똑같다. 밥을 넣은 빵이라니. 이거 흡사 감자 볶음을 반찬으로 쌀밥 먹는 우리네 밥상을 떠올리게 하는 탄수화물 폭탄이다.


맛은 아주 정직하다. 빵은 빵 맛이고 밥은 밥 맛이다. 조금 많이 차갑고, 살짝 케찹 맛이 난다. 아주 맛있다는 뜻이다. 탄수화물은 언제나 맛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점심을 먹고 있는 이곳은 사파리랜드라는 이름을 가진 장소다. 세렝게티 여행 상품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곳인 듯하다. 우리뿐만 아니라 세렝게티를 다녀온 차량들이 아주 많이 늘어서 있다. 여행하면서 캠핑장에서 만난 사람들도 더러 보이고 말이다.



살짝 어이를 상실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어느 틈에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모든 것을 쓸어갈 것처럼 빗줄기를 뿌리기 시작한다. 밥을 먹고 바로 출발하려고 했지만 그 짧은 거리를 이동할 엄두가 나지 않아 모두들 실내에 묶인 몸이 되었다.


슬쩍 시도해 보려고 했지만 3초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버렸다. 바지가 완전히 젖었고, 렌즈에도 물기가 한가득이다.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우므로 사파리랜드를 구경하기로 한다. 박물관이라 이름 지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뭔가를 팔기 위해서 만든 곳이다. 여기에서는 탄자나이트라는 이름의 보석을 팔고 있다.


탄자니아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아직도 탄자니아 밖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는 보석이다. 덕분에 상당히 희귀하다고 여겨지는 친구이지만 의외로 비싸지 않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매장량이 적은 보석 중 하나라고 한다) 물론 한때 직장인의 미래를 구원할 것처럼 여겨지던 비트코인의 상승 그래프처럼 연일 천장을 찍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혹 궁금하신 분들은 탄자나이트 유통업자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상당히 미래가 전도유망한 보석임은 틀림없으니 말이다. (이 말 할 시간에 내가 직접 했으면 지금 강남에 아파트가 두 채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보석도 푸지게 구경하고, 메이드 인 차이나 딱지가 붙어 있는 탄자니아 토속 기념품도 차고 넘치게 즐겼다. 그러던 중에 비구름이 물러갔고, 언제 다시 쏟아질 지 모르니 우리는 전속력으로 우리의 붕붕이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남은 것은 아루샤까지 무사히 귀환하는 것뿐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뭉게구름을 벗하며 유유자적하는 시간은 어째서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 길의 끝에 정말로 세렝게티의 마지막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데 정말일까. 아직은 믿기지 않는다.



탄자니아에서는 이런 구름을 아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점점 아열대 기후로 바뀌어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예쁜 구름을 만날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탄자니아에서 만난 것에 비견될 바는 아닌 듯하다.



이 동네에서는 상당히 보기 드문 쾌적하게 잘 닦인 길이다. 하지만 제한속도가 50km에 불과하다. 꽤나 어처구니 없지만 모두들 이 제한을 아주 충실하게 지킨다. CCTV 같은 것도 없는데, 이동식 카메라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데 모두들 50km를 지키며 거북이 운행을 한다.


준법 정신이 아주 투철한 탄자니아 사람들이다. 솔직히 많이 놀랐다. 당장에 내가 핸들을 잡는다면 이 속도는 절대로 지키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구름에 파묻힌 거대한 산봉우리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혹시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거대한 녀석이다. 1등이 아니면 딱히 의미 없는 세상이라, 이 녀석도 굉장히 높고 커다랗지만 아무런 인지도가 없는 녀석이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만큼은 영험함과 신성함의 상징이며, 아주 오랜 추앙의 대상이었다.


아마도 메루산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메루산이 맞는다면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4등도 충분히 잘한 거지만 1등이 아니라 서럽다. 흑흑



그리고 10분 남짓을 달려 마침내 도심 끝자락에 진입했다. 정말로 여정의 끝이 멀지 않았다.



이 골목만 돌아나가면 정말로 기약 없는 이별의 순간이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바로 지금.



아산떼 사나.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들. 덕분에 즐겁게 여행했습니다.


우리가 인연이라면 또 만나는 날이 있겠지요. 코시국이 녹록지 않았을 테지만 잘 지내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웃는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안녕!



다섯이서 복작거리던 시간은 여기까지다. 지금부터는 다시 세 명의 여정이 시작된다. 여행의 2막이 눈앞에 다가왔다.


우리네 앞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시원섭섭함이 드리운 사이로 슬그머니 홀가분함이 들이치고, 묘하게 설렘도 차오르는 듯하다. 다시 힘차게 걸음을 디딜 시간이다. 나아갑시다. 힘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