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도시 아루샤 다운 숙소
마침내 이별하였다. 여행을 시작한 유일한 이유였으며, 사실상 전부나 다름없었던 세렝게티와 말이다.
오늘은 여행이 시작된 지 5일째 되는 날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아직 일주일도 넘게 남았다. 그 말인즉슨, 아직 우리의 여정은 반환점조차 돌지 못했다는 뜻이다.
허나 세렝게티 하나만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시작한 여행인 탓일까, 내 마음은 이미 서해 앞바다 어드메를 날고 있는 중이다.
어이 박씨 개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방이나 챙겨.
예 알겠습니다. 작은 형의 인도를 받아 부지런히 꽁무니를 쫓는다. 아무 생각 없이 쫓다가 하늘을 날 뻔했지만 말이다. 바로 옆에 다리가 있는데 굳이 배수로를 뛰어 넘으려고 했다. 역시 Y염색체는 어쩔 수 없다. 사내 놈들은 나이를 먹든 말든 똑같다.
흙 터는 이 남자의 바이브, 예사롭지 않다.
우리의 호스트인 작은 형이 애용하는 곳이다. 아루샤에 올 때마다 묵는 숙소란다. 규모도 상당할 뿐더러 치안이 괜찮으며 뭣보다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다. 작은 형의 말에 따르면 가진 것은 오직 장점뿐, 단점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아주 바람직한 숙소다.
이것이 바로 경력직을 뽑는 이유 아니겠는가. 아주 익숙한 듯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 그 자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믿음직스럽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 하루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탄자니아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게스트하우스는 처음이다. 여행 첫날에는 작은 형의 숙소에서 잠을 청했고, 그 뒤로 이틀은 세렝게티의 짙푸른 벌판 위에서 얇은 천쪼가리 하나에 의지한 채 사내놈 셋이 옹기종기 모여서 잠을 청했다.
이런 여행 은근히 괜찮은 것 같다. 모든 걸 내 맘대로 해야지 직성이 풀리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프리카에서는 생각하는 것조차 머리가 아프다. 경력직의 인도를 받아 받아먹기만 하는 여행, 지루할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아주 즐겁다. 패키지 상품이 잘 팔리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순간이다.
웰컴 투 아루샤 백패커스 호텔. 호텔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상술했듯이 게스트하우스다. 시선을 옮기는 족족 진득하게 배어 있는 세월의 흔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상당한 업력을 가진 곳인 듯하다.
작은 형이 인증하였고 짙게 밴 역사의 흔적이 한 번 더 증명하니, 이 정도면 충분히 믿어도 될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작은 형 말을 듣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지만 말이다.
숙소 열쇠 하나 받는데 뭐 이리 오래 걸려. 뭐 때문인가 싶어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본다. 심각한 얘기를 하는가 싶었는데 그런 건 아니고 흥정하는 중이다.
예약을 안 했구나. 배짱 좋네. 일행이 셋인데.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프리카 숙소들은 일부 고급 호텔을 제외하면 예약 시스템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터넷 결제 인프라가 영 시원찮은 탓이다. 게다가 숙소가 너무나 많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예약하지 않아도 숙소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작은 형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전문가의 말이 그러하니 그러려니 한다.
10분 남짓의 시간이 지나 방 열쇠 하나를 받아든 작은 형, 보무도 당당하게 통로를 지나 어디론가 향한다.
얼마를 깎았는지는 알 수 없다. 기록으로 남긴 것이 없는데다가 형이 그런 걸 세세하게 기억하는 성격도 아니다. 훗날 물어봤지만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는 대답만 돌아왔다.
숙소는 엄청나게 거대하다. 층마다 방이 스무 개는 족히 넘을 듯하다. 허름한 외관 때문에 살짝 의심했지만 곧바로 반성했다. 발 닿는 곳마다 감탄하게 만드는 풍경의 연속이다.
우리 숙소는 이층 침대가 두 개 있었고 책상과 의자도 두 개가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꽤나 알찬 구색을 갖춘 방이었다. 이런 방 한 칸을 하룻밤에 2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빌릴 수 있다. 이 정도면 혼자서 방 한 칸을 빌려도 전혀 아깝지 않은 수준이다. 아주 훌륭하다.
짐을 풀었으니 곧바로 숙소 구경을 시작한다. 오늘의 안내 직원은 우리의 작은 형 되시겠습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로비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숙소의 한가운데에 화장실이 자리한다. 세면대가 여섯 개 있고 양변기는 네 칸이 있었다. 변기 바로 옆에는 이렇게 샤워실이 있다. 커텐 하나로 간단하게 분리가 되어 있다. 용건만 간단히 하는 이런 단순명료함, 아주 마음에 든다.
...?
열쇠를 방에 놔두고 왔단다. 허허 정신 안 차리네 이 형.
내 방이지만 내가 한 거 아니다. 결자해지, 작은 형이 알아서 하겠지. 나와 큰 형은 옥상에 있는 라운지를 구경하러 간다.
계단이 많고 아주 가파르다. 자칫하면 천국으로 직행하기 딱 좋은 생김새의 계단이다.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면 싶은데 방 한 칸에 2만 원짜리 숙소에 그런 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편안한 소파를 잔뜩 두른 아주 넓고 편한 라운지다. 별것 아닌 풍경이지만 이역만리 타향이라서 그런지 괜스레 느낌 있어 보인다. 아주 마음에 든다. 이런 라운지, 저는 무조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탁 트인 풍경의 테라스도 갖추고 있다. 엄밀하게는 문이 없는 것뿐이지만.
인구 40만의 결코 작지 않은 도시다. 탄자니아 제1의 도시인 다르에스살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녀석만이 가진 독보적인 지위가 있다. 아루샤는 킬리만자로를 여행하는 자들을 위한 가장 번화하고 입지 좋은 베이스캠프다. 게다가 다른 여행지들도 멀지 않으므로, 아루샤는 그야말로 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숙소 구경을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삼발이에 몸을 싣는다. 이 동네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교사님께서 작은 형과 우리들을 초대하셨다. 이 동네에 잘하는 중국집이 있단다. 얼마나 맛있게요. 벌써부터 입에 침이 줄줄 흐른다.
세렝게티와는 완전히 이별하였다. 지금부터는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되려 한다. 아루샤에서 여는 탄자니아 여행의 2막,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루샤.
여행자의 도시 아루샤 다운 숙소
마침내 이별하였다. 여행을 시작한 유일한 이유였으며, 사실상 전부나 다름없었던 세렝게티와 말이다.
오늘은 여행이 시작된 지 5일째 되는 날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아직 일주일도 넘게 남았다. 그 말인즉슨, 아직 우리의 여정은 반환점조차 돌지 못했다는 뜻이다.
허나 세렝게티 하나만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시작한 여행인 탓일까, 내 마음은 이미 서해 앞바다 어드메를 날고 있는 중이다.
어이 박씨 개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방이나 챙겨.
예 알겠습니다. 작은 형의 인도를 받아 부지런히 꽁무니를 쫓는다. 아무 생각 없이 쫓다가 하늘을 날 뻔했지만 말이다. 바로 옆에 다리가 있는데 굳이 배수로를 뛰어 넘으려고 했다. 역시 Y염색체는 어쩔 수 없다. 사내 놈들은 나이를 먹든 말든 똑같다.
흙 터는 이 남자의 바이브, 예사롭지 않다.
우리의 호스트인 작은 형이 애용하는 곳이다. 아루샤에 올 때마다 묵는 숙소란다. 규모도 상당할 뿐더러 치안이 괜찮으며 뭣보다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다. 작은 형의 말에 따르면 가진 것은 오직 장점뿐, 단점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아주 바람직한 숙소다.
이것이 바로 경력직을 뽑는 이유 아니겠는가. 아주 익숙한 듯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 그 자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믿음직스럽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 하루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탄자니아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게스트하우스는 처음이다. 여행 첫날에는 작은 형의 숙소에서 잠을 청했고, 그 뒤로 이틀은 세렝게티의 짙푸른 벌판 위에서 얇은 천쪼가리 하나에 의지한 채 사내놈 셋이 옹기종기 모여서 잠을 청했다.
이런 여행 은근히 괜찮은 것 같다. 모든 걸 내 맘대로 해야지 직성이 풀리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프리카에서는 생각하는 것조차 머리가 아프다. 경력직의 인도를 받아 받아먹기만 하는 여행, 지루할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아주 즐겁다. 패키지 상품이 잘 팔리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순간이다.
웰컴 투 아루샤 백패커스 호텔. 호텔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상술했듯이 게스트하우스다. 시선을 옮기는 족족 진득하게 배어 있는 세월의 흔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상당한 업력을 가진 곳인 듯하다.
작은 형이 인증하였고 짙게 밴 역사의 흔적이 한 번 더 증명하니, 이 정도면 충분히 믿어도 될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작은 형 말을 듣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지만 말이다.
숙소 열쇠 하나 받는데 뭐 이리 오래 걸려. 뭐 때문인가 싶어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본다. 심각한 얘기를 하는가 싶었는데 그런 건 아니고 흥정하는 중이다.
예약을 안 했구나. 배짱 좋네. 일행이 셋인데.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프리카 숙소들은 일부 고급 호텔을 제외하면 예약 시스템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터넷 결제 인프라가 영 시원찮은 탓이다. 게다가 숙소가 너무나 많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예약하지 않아도 숙소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작은 형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전문가의 말이 그러하니 그러려니 한다.
10분 남짓의 시간이 지나 방 열쇠 하나를 받아든 작은 형, 보무도 당당하게 통로를 지나 어디론가 향한다.
얼마를 깎았는지는 알 수 없다. 기록으로 남긴 것이 없는데다가 형이 그런 걸 세세하게 기억하는 성격도 아니다. 훗날 물어봤지만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는 대답만 돌아왔다.
숙소는 엄청나게 거대하다. 층마다 방이 스무 개는 족히 넘을 듯하다. 허름한 외관 때문에 살짝 의심했지만 곧바로 반성했다. 발 닿는 곳마다 감탄하게 만드는 풍경의 연속이다.
우리 숙소는 이층 침대가 두 개 있었고 책상과 의자도 두 개가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꽤나 알찬 구색을 갖춘 방이었다. 이런 방 한 칸을 하룻밤에 2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빌릴 수 있다. 이 정도면 혼자서 방 한 칸을 빌려도 전혀 아깝지 않은 수준이다. 아주 훌륭하다.
짐을 풀었으니 곧바로 숙소 구경을 시작한다. 오늘의 안내 직원은 우리의 작은 형 되시겠습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로비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숙소의 한가운데에 화장실이 자리한다. 세면대가 여섯 개 있고 양변기는 네 칸이 있었다. 변기 바로 옆에는 이렇게 샤워실이 있다. 커텐 하나로 간단하게 분리가 되어 있다. 용건만 간단히 하는 이런 단순명료함, 아주 마음에 든다.
...?
열쇠를 방에 놔두고 왔단다. 허허 정신 안 차리네 이 형.
내 방이지만 내가 한 거 아니다. 결자해지, 작은 형이 알아서 하겠지. 나와 큰 형은 옥상에 있는 라운지를 구경하러 간다.
계단이 많고 아주 가파르다. 자칫하면 천국으로 직행하기 딱 좋은 생김새의 계단이다.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면 싶은데 방 한 칸에 2만 원짜리 숙소에 그런 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편안한 소파를 잔뜩 두른 아주 넓고 편한 라운지다. 별것 아닌 풍경이지만 이역만리 타향이라서 그런지 괜스레 느낌 있어 보인다. 아주 마음에 든다. 이런 라운지, 저는 무조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탁 트인 풍경의 테라스도 갖추고 있다. 엄밀하게는 문이 없는 것뿐이지만.
인구 40만의 결코 작지 않은 도시다. 탄자니아 제1의 도시인 다르에스살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녀석만이 가진 독보적인 지위가 있다. 아루샤는 킬리만자로를 여행하는 자들을 위한 가장 번화하고 입지 좋은 베이스캠프다. 게다가 다른 여행지들도 멀지 않으므로, 아루샤는 그야말로 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숙소 구경을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삼발이에 몸을 싣는다. 이 동네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교사님께서 작은 형과 우리들을 초대하셨다. 이 동네에 잘하는 중국집이 있단다. 얼마나 맛있게요. 벌써부터 입에 침이 줄줄 흐른다.
세렝게티와는 완전히 이별하였다. 지금부터는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되려 한다. 아루샤에서 여는 탄자니아 여행의 2막,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루샤.
탄자니아 여행기 #.18 탄자니아 아루샤 대형 마트 탐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