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힙한 공예품 천국, 아루샤 마사이 마켓
세렝게티에서 내일이 없을 것처럼 즐긴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런 채로 아루샤에서의 이틀째 아침을 맞이했다. 부디 오전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부지런한 호스트의 사전에 휴식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새벽이 밝아오기 무섭게 우리를 깨우더니 삼발이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5분 남짓의 유람 끝에 도착한 이곳은 마사이 마켓이다. 마사이족이 직접 만든 갖가지 예술품을 잔뜩 만날 수 있는 전통 시장이다.
입구부터 호객이 엄청나게 치열하다. 나처럼 어리숙한 사람이 생각 없이 걸음했다가는 호갱당하기 딱 좋은 곳이다.
그나마 스와힐리어를 할 줄 아는 베테랑 여행자인 이번 여행의 호스트, 작은 형이 우리 뒤에서 버티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큰 형과 나만 있었으면 시장 문턱을 밟기도 전에 지갑을 반쯤은 털리고 시작했을 것이다.
호갱 본능 어디 안 간다. 작은 형이 뒤에서 버티고 있지만 뭔가에 홀린 듯이 지갑을 여는 우리의 큰 형. 하지만 말릴 수 없다. 형수님 드릴 선물이란다. 본인이 만족하면 장땡이니 그러려니 한다. 내 앞가림 하기도 바쁜 판국에 누굴 신경 쓰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나도 살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하는 중이다. 당장에 여자친구 갖다 줄 선물이 필요한데 말이다.
형은 서너 개를 샀고, 나는 조금 더 고민하기로 했다. 5분 남짓 시간을 보낸 뒤 넘은 시장의 문턱, 역시나 예상하던 대로 입구부터 호객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믿음직한 작은 형이 있으니 말이다. 찬찬히 둘러보면서 마음에 드는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런저런 구경거리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던 와중에 나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은 것이 나타났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동물 조각인데 칠흑처럼 까맣고, 매끈한 윤기가 가득하다. 흑단 나무로 만든 것들이란다.
사실 잘 모른다. 흑단인지 뭔지 알 게 뭐람. 나는 흑단이라는 것을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거 사장님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갑다 하는 거지.
딱히 중요하지도 않다. 내 마음에 들면 장땡인데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것들 일색이다. 꽤 섬세하고, 아주 고풍스럽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색감과 미끈하게 잘 빠진 윤기의 조화는 내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하는 중이다.
별로 비싸지도 않다. 그런데도 아주 고급스럽다. 어쩔 수 없다. 앞으로 만날 가게가 백 군데도 넘지만, 나는 이제 고작 두 번째 가게지만 이건 사야 한다.
작은 형의 가이드를 받아 조심스레 흥정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18,000원 남짓이었는데 어느새 13,000원까지 내려갔다.
작은 형은 더 깎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사장님의 노고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도 가방을 만들어서 먹고 사는 사람인데 나름 동업자끼리 상부상조의 미덕을 갖추는 게 좋을 듯하다. 더 깎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 이쯤에서 기분 좋게 거래하기로 한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정말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지금도 우리 집에서 잘 살고 있다. 여태 여행하면서 우발적으로 지른 것 중에는 가장 마음에 드는 친구다. 아주 훌륭하다.
질 수 엄뜸. 우리의 큰 형도 기린 한 마리를 입양했다. 이 기린 녀석은 딸내미 책상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마수걸이를 하고 나니 용기가 생긴다. 한층 몸이 달아 시뻘개진 눈을 하고서는 다음 가게로 걸음을 옮긴다.
매우 진지하게 구매 직전까지 갔다. 10만 원에서 시작했지만 몇 번의 흥정 끝에 6만 원까지 합의를 끝낸 상황, 나만 동의하면 이건 내 것이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엄청나게 묵직했고 부피도 너무 컸던 탓이다. 하지만 아쉽다. 캐리어가 하나만 더 있었다면 분명 쟁였을 텐데, 다시 돌이켜 봐도 너무나 아쉽다.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다.
해발 고도 5,895m의 킬리만자로 정상을 정복하기 힘들다면? 마시면 됩니다.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산이지만 탄자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르지 못하면 마셔라'는 이 동네에서 가장 흔한 말장난 중 하나다.
조각도 있고 티샤쓰도 있고 이쁜 그림들도 아주 많다.
탄자니아 태생의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라는 화가에 의해서 탄생한 화풍이다. 그는 아주 화려한 색감과 과장된 선의 사용을 기반으로 탄자니아의 자연을 주로 그렸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탄자니아를 대표하는 그림의 한 줄기가 되었다.
그래서 결국 몇 점 집어 들었다. 역시나 상당히 저렴했다. 다섯 점에 15,000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네 점은 선물했고 한 점은 집에 모셔두었는데, 이사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는지 지금은 찾지를 못하겠다.
여자친구를 위한 선물 수집에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탄자니아의 자연을 품은 다이어리다. 여자친구는 다이어리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도 분명 좋아할 테다.
고양이가 어물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가방 장사꾼이 가방 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커다란 코끼리를 수놓은 가방도 여자친구 선물로 당첨.
딱이다. 주전부리 몇 가지와 그림 한 점을 더하니 상당히 푸짐한 선물 세트가 되었다. 다행히 그것을 받아든 여자친구는 꽤나 만족한 눈치였다.
별 기대 없이 찾은 시장이었다. 하지만 엄청나게 재밌는 것이 많았고 건진 것도 많았다. 손재주 좋은 마사이족 사람들 덕분에 즐거운 구경도 많이 하고 예쁜 것도 많이 샀다. 다음에도 탄자니아 여행을 갈 일이 있다면 그때는 반드시 성사 직전에 놓아주어야 했던 대빵 코끼리를 모셔올 테다.
그때를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건넨다. 다음으로 향할 곳은 어디일까. 부푼 마음 안고 우리는 삼발이에 몸을 싣는다.
세상 힙한 공예품 천국, 아루샤 마사이 마켓
세렝게티에서 내일이 없을 것처럼 즐긴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런 채로 아루샤에서의 이틀째 아침을 맞이했다. 부디 오전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부지런한 호스트의 사전에 휴식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새벽이 밝아오기 무섭게 우리를 깨우더니 삼발이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5분 남짓의 유람 끝에 도착한 이곳은 마사이 마켓이다. 마사이족이 직접 만든 갖가지 예술품을 잔뜩 만날 수 있는 전통 시장이다.
입구부터 호객이 엄청나게 치열하다. 나처럼 어리숙한 사람이 생각 없이 걸음했다가는 호갱당하기 딱 좋은 곳이다.
그나마 스와힐리어를 할 줄 아는 베테랑 여행자인 이번 여행의 호스트, 작은 형이 우리 뒤에서 버티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큰 형과 나만 있었으면 시장 문턱을 밟기도 전에 지갑을 반쯤은 털리고 시작했을 것이다.
호갱 본능 어디 안 간다. 작은 형이 뒤에서 버티고 있지만 뭔가에 홀린 듯이 지갑을 여는 우리의 큰 형. 하지만 말릴 수 없다. 형수님 드릴 선물이란다. 본인이 만족하면 장땡이니 그러려니 한다. 내 앞가림 하기도 바쁜 판국에 누굴 신경 쓰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나도 살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하는 중이다. 당장에 여자친구 갖다 줄 선물이 필요한데 말이다.
형은 서너 개를 샀고, 나는 조금 더 고민하기로 했다. 5분 남짓 시간을 보낸 뒤 넘은 시장의 문턱, 역시나 예상하던 대로 입구부터 호객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믿음직한 작은 형이 있으니 말이다. 찬찬히 둘러보면서 마음에 드는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런저런 구경거리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던 와중에 나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은 것이 나타났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동물 조각인데 칠흑처럼 까맣고, 매끈한 윤기가 가득하다. 흑단 나무로 만든 것들이란다.
사실 잘 모른다. 흑단인지 뭔지 알 게 뭐람. 나는 흑단이라는 것을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거 사장님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갑다 하는 거지.
딱히 중요하지도 않다. 내 마음에 들면 장땡인데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것들 일색이다. 꽤 섬세하고, 아주 고풍스럽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색감과 미끈하게 잘 빠진 윤기의 조화는 내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하는 중이다.
별로 비싸지도 않다. 그런데도 아주 고급스럽다. 어쩔 수 없다. 앞으로 만날 가게가 백 군데도 넘지만, 나는 이제 고작 두 번째 가게지만 이건 사야 한다.
작은 형의 가이드를 받아 조심스레 흥정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18,000원 남짓이었는데 어느새 13,000원까지 내려갔다.
작은 형은 더 깎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사장님의 노고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도 가방을 만들어서 먹고 사는 사람인데 나름 동업자끼리 상부상조의 미덕을 갖추는 게 좋을 듯하다. 더 깎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 이쯤에서 기분 좋게 거래하기로 한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정말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지금도 우리 집에서 잘 살고 있다. 여태 여행하면서 우발적으로 지른 것 중에는 가장 마음에 드는 친구다. 아주 훌륭하다.
질 수 엄뜸. 우리의 큰 형도 기린 한 마리를 입양했다. 이 기린 녀석은 딸내미 책상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마수걸이를 하고 나니 용기가 생긴다. 한층 몸이 달아 시뻘개진 눈을 하고서는 다음 가게로 걸음을 옮긴다.
매우 진지하게 구매 직전까지 갔다. 10만 원에서 시작했지만 몇 번의 흥정 끝에 6만 원까지 합의를 끝낸 상황, 나만 동의하면 이건 내 것이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엄청나게 묵직했고 부피도 너무 컸던 탓이다. 하지만 아쉽다. 캐리어가 하나만 더 있었다면 분명 쟁였을 텐데, 다시 돌이켜 봐도 너무나 아쉽다.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다.
해발 고도 5,895m의 킬리만자로 정상을 정복하기 힘들다면? 마시면 됩니다.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산이지만 탄자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르지 못하면 마셔라'는 이 동네에서 가장 흔한 말장난 중 하나다.
조각도 있고 티샤쓰도 있고 이쁜 그림들도 아주 많다.
탄자니아 태생의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라는 화가에 의해서 탄생한 화풍이다. 그는 아주 화려한 색감과 과장된 선의 사용을 기반으로 탄자니아의 자연을 주로 그렸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탄자니아를 대표하는 그림의 한 줄기가 되었다.
그래서 결국 몇 점 집어 들었다. 역시나 상당히 저렴했다. 다섯 점에 15,000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네 점은 선물했고 한 점은 집에 모셔두었는데, 이사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는지 지금은 찾지를 못하겠다.
여자친구를 위한 선물 수집에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탄자니아의 자연을 품은 다이어리다. 여자친구는 다이어리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도 분명 좋아할 테다.
고양이가 어물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가방 장사꾼이 가방 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커다란 코끼리를 수놓은 가방도 여자친구 선물로 당첨.
딱이다. 주전부리 몇 가지와 그림 한 점을 더하니 상당히 푸짐한 선물 세트가 되었다. 다행히 그것을 받아든 여자친구는 꽤나 만족한 눈치였다.
별 기대 없이 찾은 시장이었다. 하지만 엄청나게 재밌는 것이 많았고 건진 것도 많았다. 손재주 좋은 마사이족 사람들 덕분에 즐거운 구경도 많이 하고 예쁜 것도 많이 샀다. 다음에도 탄자니아 여행을 갈 일이 있다면 그때는 반드시 성사 직전에 놓아주어야 했던 대빵 코끼리를 모셔올 테다.
그때를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건넨다. 다음으로 향할 곳은 어디일까. 부푼 마음 안고 우리는 삼발이에 몸을 싣는다.
탄자니아 여행기 #.20 탄자니아 모시 챔챔 온천 탐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