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일주 여행 중에 만난 타이난, 그 도시의 첫 인상.

입국날까지 포함해서 딱 3일을 보낸 가오슝이다.
대만 제2의 도시라는 명성을 갖고 있어서 상당히 많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볼 건 많이 없는 느낌이다. '이렇게나 큰 도시에 볼 게 이거밖에 없다고?'라는 의심을 끊임없이 품어 보지만 정말로 더는 없는 듯하다.
분명히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면 뭔가 나타나긴 할 테다. 하지만 이번 대만 일주는 20일 남짓밖에 안되는 일정이기 때문에 은근히 빠듯하다. 우연을 바라면서 보물찾기 할 시간 같은 건 아쉽지만 허락되지 않는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가오슝은 여기까지다. 오늘은 타이난으로 떠날 것이다.

가오슝역으로 직행하려고 했지만 자꾸 눈에 밟히는 카페가 있었다. 주말에 가려고 했다가 문을 닫아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카페다.
이렇게 떠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을 것 같아서 많지 않은 시간이지만 잠시 짬을 냈다. 꽤나 맛있는 밀크티를 마실 수 있었고 빵은 맛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시원찮았나 보다. 중간만 했어도 어렴풋이나마 기억은 할 텐데, 심지어 사진을 보고도 나는 이때 먹은 빵이 뭐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가오슝역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냥 떠나려고 하니 영 아쉬워서 분식집으로 들어가 오뎅 한 그릇을 시켰다.
오뎅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이것저것 먹고 싶은 걸 고르면 육수에 잘 말아서 한 그릇 내어주는 집이었다. 적당히 먹고 떠나려고 했는데 이 녀석 생각보다 제법이다. 육수도 아니고 양념도 아닌, 간장인 듯 아닌 듯한 뭔가의 맛이 엄청나게 오묘하다. 단맛과 짠맛의 교대식이 혓바닥 위에서 쉴 새 없이 이뤄지는데 손에 쥔 젓가락도 덩달아 쉴 틈이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집은 이 시국의 포화를 피해가지 못했다. 할머님께서 친절하시고 맛도 좋은 집이었는데 너무나 아쉽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듯했다. 떠나가는 맛집의 마지막을 기억하려는 사람들로 이 집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한동안 문전성시를 이뤘다. 나 역시도 열심히 번역기를 돌려서 짧게나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왔다.

나는 망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가오슝역 앞에는 망고주스를 파는 집밖에 없다. 오호통재다. 상큼한 과일주스가 간절한데 망고밖에 없다니 말이다.
그냥 갈까 싶었지만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앞에서 마음이 편치 않다. 아쉬운 대로 망고주스 가게의 문을 두드린다.
나는 여태 망고를 맛없는 과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정의를 엄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싫어한 것은 망고가 아니라 맛없는 망고였다.
이 집 망고주스를 먹고 나서 망고가 이렇게 맛있는 과일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혹시 가오슝역을 들를 일이 있다면 역 앞에 있는 망고주스집에서 반드시 주스 한 잔을 시킬 수 있도록 하자.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오뎅도 푸지게 즐겼고 망고에 대한 편견도 버렸다. 보람 있는 하루의 시작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타이난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가오슝 빠염. 다음에 또 만납시다.

타이난은 가오슝에서 별로 멀지 않은 도시다. 기차로 30분 남짓이면 닿을 수 있으니, 서울과 수원만큼이나 가까운 도시다. 나는 오늘 고속철도를 제외하면 최상위 등급인 자강호를 타고 타이난으로 이동할 것이다. 우리로 치면 새마을호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낡은 열차다.
참고로 대만 열차는 세 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자강, 거강, 구간차. 다른 것도 있긴 하지만 크게 의미는 없다. 위의 세 가지만 기억하면 대만 열차 시간표의 95%는 해석이 가능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구간차 등급을 가장 선호한다. 완행이라서 아주 느리지만 실내가 그나마 가장 깨끗하다. 의자는 불편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깨끗하기 때문에 나는 구간차를 좋아한다.

반갑습니다. 불과 30분 만에 타이난에 도착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쓰읍. 첫 인사가 너무 격렬한 거 아닌가 모르겠다. 비소식은 예정에 없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걸로 언짢아하면 안 된다. 나만 힘들어지니깐 말이다. 비는 대만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한몸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존재다. 대만은 1년에 200일 비가 내리는 나라다.

처마를 따라 요리조리 비를 피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평소에도 비가 워낙에 많이 오는 나라라서 그런지 우산을 안 써도 돌아다니는 데에 큰 문제가 없도록 건물들이 잘 설계되어 있다. 아열대 기후대에 진입한 듯한 우리나라에서도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하는 문물이 아닌가 싶다.

목적지 없이 이곳저곳을 유람하다가 예쁜 카페를 발견했다. 이름은 티파니, 공자묘에서 별로 멀지 않다.

잔잔하게 음악이 흐르는 예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분위기도 좋고 사장님께서 아기자기하게 꾸민 것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카페에서 만족스런 시간을 보내고 나왔더니 그새 비가 그쳤다. 하지만 나는 비가 당연히 그칠 거라 굳게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비가 그칠 때까지 카페 안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방긋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하야시 백화점을 지나는 중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이 지었다. 일제강점기에 생긴 백화점이지만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대만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것 말고도 남다른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대만 최초의 엘리베이터가 이곳에 설치되었다. 그 엘리베이터는 놀랍게도 여전히 현역이다. 구동부는 당연히 개보수를 많이 거쳤겠지만 외형은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딱 이 정도로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백화점 곳곳을 오갈 수 있다.


옥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높은 건물이라고 하기에 살짝 애매해진 지금은 전망이라고 즐길 만한 것이 딱히 없다. 그래도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따뜻한 풍경이 곳곳에 자리한다.

하야시 백화점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하지만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장님이 어딘가로 떠나고 없다. 나를 위한 메모 한 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이름 모를 아저씨 한 분이 열심히 게임을 하고 계셨다. 그 아저씨는 내가 타이난에 머무르는 내도록 숙소 로비를 떠날 생각을 않았다. 그 분의 정체는 대체 뭐였을까.

타이난에 무사히 도착한 회포는 치킨과 맥주 한 잔으로 풀었다. 아주 훌륭한 하루의 마무리다. 더할 나위가 없다. 내일은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대만 일주의 네 번째 밤이 저물어 간다. 타이난에서의 첫날과도 이렇게 작별이다.
대만 일주 여행기 (네이버 블로그)
대만 일주 여행 중에 만난 타이난, 그 도시의 첫 인상.
입국날까지 포함해서 딱 3일을 보낸 가오슝이다.
대만 제2의 도시라는 명성을 갖고 있어서 상당히 많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볼 건 많이 없는 느낌이다. '이렇게나 큰 도시에 볼 게 이거밖에 없다고?'라는 의심을 끊임없이 품어 보지만 정말로 더는 없는 듯하다.
분명히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면 뭔가 나타나긴 할 테다. 하지만 이번 대만 일주는 20일 남짓밖에 안되는 일정이기 때문에 은근히 빠듯하다. 우연을 바라면서 보물찾기 할 시간 같은 건 아쉽지만 허락되지 않는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가오슝은 여기까지다. 오늘은 타이난으로 떠날 것이다.
가오슝역으로 직행하려고 했지만 자꾸 눈에 밟히는 카페가 있었다. 주말에 가려고 했다가 문을 닫아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카페다.
이렇게 떠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을 것 같아서 많지 않은 시간이지만 잠시 짬을 냈다. 꽤나 맛있는 밀크티를 마실 수 있었고 빵은 맛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시원찮았나 보다. 중간만 했어도 어렴풋이나마 기억은 할 텐데, 심지어 사진을 보고도 나는 이때 먹은 빵이 뭐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가오슝역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냥 떠나려고 하니 영 아쉬워서 분식집으로 들어가 오뎅 한 그릇을 시켰다.
오뎅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이것저것 먹고 싶은 걸 고르면 육수에 잘 말아서 한 그릇 내어주는 집이었다. 적당히 먹고 떠나려고 했는데 이 녀석 생각보다 제법이다. 육수도 아니고 양념도 아닌, 간장인 듯 아닌 듯한 뭔가의 맛이 엄청나게 오묘하다. 단맛과 짠맛의 교대식이 혓바닥 위에서 쉴 새 없이 이뤄지는데 손에 쥔 젓가락도 덩달아 쉴 틈이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집은 이 시국의 포화를 피해가지 못했다. 할머님께서 친절하시고 맛도 좋은 집이었는데 너무나 아쉽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듯했다. 떠나가는 맛집의 마지막을 기억하려는 사람들로 이 집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한동안 문전성시를 이뤘다. 나 역시도 열심히 번역기를 돌려서 짧게나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왔다.
나는 망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가오슝역 앞에는 망고주스를 파는 집밖에 없다. 오호통재다. 상큼한 과일주스가 간절한데 망고밖에 없다니 말이다.
그냥 갈까 싶었지만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앞에서 마음이 편치 않다. 아쉬운 대로 망고주스 가게의 문을 두드린다.
나는 여태 망고를 맛없는 과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정의를 엄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싫어한 것은 망고가 아니라 맛없는 망고였다.
이 집 망고주스를 먹고 나서 망고가 이렇게 맛있는 과일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혹시 가오슝역을 들를 일이 있다면 역 앞에 있는 망고주스집에서 반드시 주스 한 잔을 시킬 수 있도록 하자.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오뎅도 푸지게 즐겼고 망고에 대한 편견도 버렸다. 보람 있는 하루의 시작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타이난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가오슝 빠염. 다음에 또 만납시다.
타이난은 가오슝에서 별로 멀지 않은 도시다. 기차로 30분 남짓이면 닿을 수 있으니, 서울과 수원만큼이나 가까운 도시다. 나는 오늘 고속철도를 제외하면 최상위 등급인 자강호를 타고 타이난으로 이동할 것이다. 우리로 치면 새마을호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낡은 열차다.
참고로 대만 열차는 세 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자강, 거강, 구간차. 다른 것도 있긴 하지만 크게 의미는 없다. 위의 세 가지만 기억하면 대만 열차 시간표의 95%는 해석이 가능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구간차 등급을 가장 선호한다. 완행이라서 아주 느리지만 실내가 그나마 가장 깨끗하다. 의자는 불편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깨끗하기 때문에 나는 구간차를 좋아한다.
반갑습니다. 불과 30분 만에 타이난에 도착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쓰읍. 첫 인사가 너무 격렬한 거 아닌가 모르겠다. 비소식은 예정에 없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걸로 언짢아하면 안 된다. 나만 힘들어지니깐 말이다. 비는 대만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한몸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존재다. 대만은 1년에 200일 비가 내리는 나라다.
처마를 따라 요리조리 비를 피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평소에도 비가 워낙에 많이 오는 나라라서 그런지 우산을 안 써도 돌아다니는 데에 큰 문제가 없도록 건물들이 잘 설계되어 있다. 아열대 기후대에 진입한 듯한 우리나라에서도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하는 문물이 아닌가 싶다.
목적지 없이 이곳저곳을 유람하다가 예쁜 카페를 발견했다. 이름은 티파니, 공자묘에서 별로 멀지 않다.
잔잔하게 음악이 흐르는 예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분위기도 좋고 사장님께서 아기자기하게 꾸민 것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카페에서 만족스런 시간을 보내고 나왔더니 그새 비가 그쳤다. 하지만 나는 비가 당연히 그칠 거라 굳게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비가 그칠 때까지 카페 안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방긋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하야시 백화점을 지나는 중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이 지었다. 일제강점기에 생긴 백화점이지만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대만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것 말고도 남다른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대만 최초의 엘리베이터가 이곳에 설치되었다. 그 엘리베이터는 놀랍게도 여전히 현역이다. 구동부는 당연히 개보수를 많이 거쳤겠지만 외형은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딱 이 정도로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백화점 곳곳을 오갈 수 있다.
옥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높은 건물이라고 하기에 살짝 애매해진 지금은 전망이라고 즐길 만한 것이 딱히 없다. 그래도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따뜻한 풍경이 곳곳에 자리한다.
하야시 백화점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하지만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장님이 어딘가로 떠나고 없다. 나를 위한 메모 한 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이름 모를 아저씨 한 분이 열심히 게임을 하고 계셨다. 그 아저씨는 내가 타이난에 머무르는 내도록 숙소 로비를 떠날 생각을 않았다. 그 분의 정체는 대체 뭐였을까.
타이난에 무사히 도착한 회포는 치킨과 맥주 한 잔으로 풀었다. 아주 훌륭한 하루의 마무리다. 더할 나위가 없다. 내일은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대만 일주의 네 번째 밤이 저물어 간다. 타이난에서의 첫날과도 이렇게 작별이다.
대만 일주 여행기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