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여행기 #.7 타이난 역사박물관 탐방기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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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덕후라면 반드시 가봐야 할 타이난의 여행 명소, 타이난 역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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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라면 오늘은 타이중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 날이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생각했다. '나가리네.'


간만에 혼자가 아니라 같이 마신 술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전날의 과음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아고다 앱을 켜서 같은 숙소를 하루 더 연장했다. 그것만으로 이미 지쳐버린 나는 다시 침대에 몸을 털썩 뉘인다.


침대를 중심으로 온 세상은 빙빙 돌고, 들숨에는 입냄새가 날숨에는 술냄새가 진동을 한다. 근처에 거울은 없지만 얼마나 볼 만한 몰골을 하고 있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오늘 하루, 무사히 시작할 수 있을까.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멀고도 험하다. 이토록 멀게 느껴질 일인가 싶을 정도로 멀다. 한참을 기어가다시피 해서 신발을 벗고 샤워장에 발을 딛는다. 수도꼭지 앞에 주저앉아서는 10분 넘게 뜨거운 물 세례를 받고 나니 조금씩 정신이 돌아온다. 나는 이렇게 타이난에서 하루를 더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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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살아났지만 온전치는 않다. 온갖 술에 잔뜩 절여진 소화기관들이 여전히 신음하는 중이다.


뭐라도 집어넣어야지 진정이 될 것 같아서 보이는 대로 아무 집에나 들어간다. 구글 지도의 인도로 발걸음이 향한 곳에서 마주한 것은 냉면 이름을 달고 소면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국수 한 그릇이다.


땅콩이 들어가서 고소했고 삶을 닭고기를 잔뜩 얹어서 씹는 맛이 좋았다. 겨자가 푸짐하게 들어가서 술에 취한 정신을 깨우는 데에는 제격이었고 새콤한 맛의 국물은 식욕을 돋우는 데에 직빵이었다. 살짝 애매하게 시원한 것이 아쉬웠지만 아무렴 상관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정말로 맛있는 국수라서 쉴 새 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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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집이다.


내가 먹었던 지점은 이 시국의 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망한 지 오래다. 그래도 체인점이라서 다른 동네에 가면 만날 수 있다. 타이난에는 한 군데도 남은 데가 없지만 가오슝에 몇 군데 지점이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 궁금하신 분들은 구글 지도에 涼粉涼麵(량분량면)을 검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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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게 맛있는 냉면을 먹고 났더니 여행을 재개할 힘이 생겼다. 구글 지도를 켜고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려 본다.


약간의 탐색 끝에 간택된 오늘의 첫 번째 행선지는 타이난 역사 박물관이다. 식당에서 10km가 떨어져 있었기에 웬만하면 버스나 택시를 타는 것이 옳았을 테다. 하지만 술기운을 완전히 쫓아내기 위해서 나는 두 다리에 몸뚱아리를 의탁했다.


그렇게 두 시간 만에 닿은 박물관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말끔했다. 지방에 있는 박물관이라서 적당히 만들고 적당히 운영하고 있을 줄 알았더니, 나의 아주 잘못된 편견이었다.



나는 여행하는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타이난 역사 박물관은 그런 나에게 아주 훌륭한 여행지다.


중화민국의 사상 기반 위에 세워진 박물관이 대부분인 이 땅에 몇 안 되는, 타이완섬의 역사를 주제로 한 박물관이다. 이 섬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기 좋다.



겉에서 봤을 때만 큰 게 아니라 내부도 무진장 크다. 에어컨까지 빠방하게 틀어주기 때문에 힘들 때 멍하니 앉아서 시간 때우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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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이야기가 잠시 이어지고 삽시간에 1600년대로 시간 이동을 시전한다. 왜 1600년으로 왔냐면 세계사 무대에 타이완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라서 그렇다.


이 섬을 가장 먼저 발견한 유럽인은 포르투갈 출신의 선원들이었다. 그들은 이 섬의 아름다운 자연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섬'을 뜻하는 '일랴 포르모사'라는 별명을 타이완 섬에 붙여 주었다.


하지만 타이완섬을 본격적인 교류의 대상으로 생각한 이들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동인도 회사 소속의 네덜란드인들이었다. 그들은 타이난에 상륙해서 요새를 지었고, 주거지를 만들었으며 상업지구도 세웠다. 항구에는 서양의 배들이 하나 둘 정박하기 시작했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배의 선창 안을 타이완섬에서 나는 특산물들로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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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 나열한 역사가 따분하고 재미없다면 시청각 자료만 즐겨도 충분하다. 타이완 섬 사람들의 생활사를 재현한 볼거리가 지천에 가득하다.



이렇게 농사 짓는 소도 있고



대만의 일제강점기도 아주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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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우리나라보다 일제강점기가 길었던 나라다. 한일병합조약이 발효된 시점을 일제강점기로 보는 우리와 달리 대만의 일제강점기는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일본과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부터 시작된다.


한일병합조약은 1910년에 체결되었고 시모노세키 조약은 1895년에 발효되었으니, 대만은 우리보다 일제강점기를 15년이나 더 일찍 맞이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못지 않게 이를 갈면서 당시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정적인 활동이나 박물관 구경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그저 따분한 공간일 듯하다. 하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대만 여행에서 손에 꼽게 만족스러운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당장 내가 그랬다. 타이난에서는 안평수옥에 이어서 두 번째로 좋았던 장소였고 전체로 봐도 열 손가락 안에는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이드 선생님의 안내 덕분에 아주 만족스러운 관람을 즐길 수 있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기체후 일향만강하시옵고,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