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여행기 #.5 현지에서 즐기는 베트남 국가 대표팀 축구 경기

20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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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님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 대표팀 경기 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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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음식을 파는 버드모에서 받아든 한상은 푸짐하고 훌륭했다. 신선한 재료가 아낌없이 들어가는 꼬치구이는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하노이를 여행 할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데려가고 싶다.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다. 호안끼엠을 향해 옮기는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다.



오늘은 2019년 아시안컵 지역 예선이 있는 날이다. 이라크와 베트남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평소라면 절대로 관심가질 일 없을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두가 알다시피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지도자는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미스터 팍', 박항서 감독님이다.


2019년의 나는 유튜브에 미쳐 있었다. 미친 것에 비해서 결과는 시원찮았으나, 어찌됐든 눈 돌아가서 덤빈 덕분에 지금도 5,500명 남짓의 구독자를 유지하는 채널을 갖게 되었다. 유튜버에게 '어그로'는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다. 거기에 '국뽕'까지 더해지면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박항서 감독님이 이끄는 베트남 국가 대표팀 경기를 베트남에서 보는 여행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은 지금에서야 시큰둥하지만 당시만 해도 '각이다'를 외치며 영상을 뽑아낼 생각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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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상각을 노리며 신나게 발걸음을 옮긴 나를 맞아주는 것은 텅 빈 광장의 황량함뿐이다.


한국에서 뉴스로 봤을 때는 매 경기마다 거리에 사람들이 빼곡하더니 이게 무슨 일이람. 북적거리는 사람들만 찍어도 각이 될 것 같아서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경기가 시작된 하노이에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 여간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다.



허탈함과 망연자실함을 감추지 못한 채 길을 걷던 중에 누군가 말을 걸어 왔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왔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듯하다. '꼬레아?'라고 말을 걸어온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에는 여지없이 축구 중계가 흘러나오는 중이다. 박항서 감독님 덕분에 한국 사람을 친숙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하더니, 과연 거짓은 아닌 듯했다.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이것 저것 물어오는데 그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까지 좋아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모든 물음에 호의가 가득했다. 새삼스레 박항서 감독님께 감사함을 느꼈다.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친구에게도 당연히 감사함을 느꼈고 말이다.



베트남 국가 대표팀의 무운을 빌며 짧은 만남은 끝이 났다. 함께 축구를 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알아낸 사실이 있다. 호안끼엠에 왜 이렇게 사람이 없냐고 물었는데, 뜻밖에도 모두가 축구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사실 모두가 축구를 본다. 단지 거리 응원을 하지 않을 뿐이다. 거리 응원은 웬만큼 중요한 경기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숱한 성공 경험 끝에 얻은 여유인 듯하다. 이제 예선 경기 쯤은 집에서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느낌이다. 아시안컵 첫 번째 경기 정도면 충분히 거리로 나올 법한데, 박항서 감독님이 베트남 사람들의 축구 보는 눈을 많이 높여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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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각은 완전히 소멸했고, 보던 축구나 계속 볼 요량으로 자주 찾는 맥주집을 찾았다. '서울식당'이라는 한식당이 자리하는 건물의 2층에 위치한 맥주집 '레전드 비어'에서 남은 경기를 마저 즐겨볼까 한다. 호안끼엠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아니 위치해 있었으며 맥주는 싸고 맛있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에서 예상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체인점이라서 영영 볼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호안끼엠 지점은 없어졌다. 언제나 여행객이 넘쳐나는 집이었는데 여기가 폐업한 건 충격이다. 내가 알고 있는 맥주집 중에서 가장 손님이 많고 장사가 잘되는 집이었다.


새삼스레 느껴진다. 코시국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맥주집 문을 열어젖히기가 무섭게 장내에는 환호성과 탄식 사이의 애매한 소음이 터져 나온다. 정신없이 들뜨지 않는 걸로 봐서는 탄식에 가까운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새 골을 먹혀서 동점이 됐다. 그래도 아직은 할 만하다. 현재 스코어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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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줄 알았다. 생각보다 기세가 좋았으니 동점골을 먹혀도 금방 다시 역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베트남 축구 국가 대표팀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체력이 어김없이 발목을 잡았다.


누가 봐도 지쳤음이 명백한 선수들은 이라크 선수들의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불안한 장면이 쉴 새 없이 이어지더니 결국은 통한의 역전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 기세 좋게 시작했던 경기라서 유난히 아쉬움이 컸다.


내가 봐서 진 걸까. 나는 아마도 패배 요정인 걸까. 유튜브 각도 망했고 경기도 망했다. 어김없이 맛있는 맥주가 나의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있지만 어째선지 나사가 두 개쯤 빠진 것 같은 하루의 마무리다. 여행의 둘째 날 밤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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