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여행기 #.1 가오슝부터 화롄까지 떠난 대만 일주, 여행의 시작.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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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간의 대만 일주, 시작은 가오슝부터. 



일본으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 직후의 이야기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대만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거진 한 달 간의 일정이다. 지난 여행처럼 자전거를 들고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내 고이 접어 나빌레라. 대만의 더위는 동아시아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괜한 객기 때문에 약관의 나이에 비명횡사하고 싶지 않다.


나는 대만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일단 음식이 맛있다. 그리고 자연이 예쁘다. 게다가 한국에서 가깝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비행기표도 별로 안 비싸다. 저렴한 물가 역시 대만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비행기를 아무리 타도 이 순간은 공포스럽다.


여행 가방을 만들고 여행기를 쓰고 여행 유튜브를 하는 놈치고는, 게다가 유체역학에서 A를 받은 공대 나온 놈치고는 공포가 과한 게 아닌가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무서운 걸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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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 회귀하는 여행이 아니라서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도시와 항공사가 다르다.


가오슝으로 들어가는 여정은 감귤 항공의 신세를 지기로 했다. 상당히 간만에 만나는 감귤 항공이다. 딱히 피하는 건 아닌데 희한하게 별로 인연이 없는 항공사다. 그래도 간만에 방긋 웃는 모습을 마주하니 기분 좋다. 반갑습니다. 가오슝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두 시간 남짓을 날았다. 타이완 섬의 서쪽 해안을 따라 부지런히 내려간 우리 비행기는 착륙을 앞두고 가오슝의 창연한 하늘 위를 날고 있다. 그토록 고대하던 여행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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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죠?


초면이다. 대만 여행을 많이 다녀본 것 같은데 가오슝과는 초면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타이중 밑으로는 내려온 적이 없다. 대만의 남쪽 동네는 처음인 것이다.



당연히 가오슝 공항도 처음이다. 타이페이 다음 가는 도시치고는 꽤나 작고 아담한 공항이다. 꽤나 쾌적하고 이동 동선이 짧다. 아주 마음에 든다.



살짝 투박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있을 건 다 있고 무엇보다 조용하다. 사람 많은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공항답지 않은 이곳의 한적함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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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으으으읍 하아아아아아. 개덥다.


대만의 더위에는 웬만큼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자만이고 오산이었다. 내가 알던 대만의 더위는 가볍게 '따위'로 만드는, 엄청나게 습하고 찌는 더위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이 흐른다. 도착한 지 20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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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서 호다닥 지하철역으로 들어왔다. 예전에 쓰던 대만의 교통카드를 들고 왔지만 새 카드를 장만했다. 편의점에서 만난 블랙 위도우 누님이 너무나 시선을 강탈했기 때문이다.


정작 집에서 들고 간 교통카드는 잃어버렸다. 지금 나의 집에 남아 있는 건 블랙 위도우뿐이다.


참고로 대만의 교통카드는 'ipass(아이패스)'와 'easycard(이지카드)' 두 종류가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카드마다 사용 가능한 지역이 달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없다. 이제는 뭘 사도 상관없다. 그러니깐 마음에 드는 걸로 아무거나 골라잡자.



대만의 지하철이다. 홍콩과 비슷하게 좁고 생김새도 비슷하다. 쾌적하고 깨끗하며 냉방에 진심이다. 아주 시원하다. 마음에 든다.



30분 남짓을 달려 가오슝역에 도착했다. 과연 제2의 도시답다. 크고 아름다운 역사가 나를 반긴다. 얼마 전에 지었는지 깨끗할 뿐더러 시설도 아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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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슝을 처음 만난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덥다'. 진짜 말도 안 되게 덥다. 이렇게 더울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덥다.


불현듯 베트남으로 처음 출장을 갔던 때가 떠올랐다. 생전 처음 겪는 적도 인근의 더위는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비행기를 나서자마자 헉 소리를 내면서 주저앉아 버렸는데 가오슝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말도 안 되게 덥고 정신 나갈 듯이 습하다. 청천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당황을 넘어 황당함까지 느끼게 만든다.



숙소가 아닌 줄 알고 한참을 서성였다. 주소 상으로는 분명 여기가 맞는데 도저히 숙소의 생김새가 아니다. 변변한 간판 하나가 없고 안내 문구조차도 없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잠시 혼란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여기는 숙소가 맞다. 더위에 당황하고 숙소에 당황하고, 여행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당황스러운 경험을 많이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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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 짐을 풀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와 가장 먼저 걸음이 향한 곳은 야시장이다.


대만하면 야시장, 야시장하면 대만 아니겠는가. 마침 숙소에서 도보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여행객들의 성지라고 일컬어지는 리우허 야시장이 있다. 동네 구경도 하고 끼니도 떼워볼 심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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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왔으니 밀크티를 마시는 것이 인지상정. 뭉근하게 끓고 있는 타피오카를 그자리에서 한 국자 시원하게 퍼담아 주는 대만의 밀크티는 맛도 향도 양도 가격도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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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쪙



이곳저곳을 헤매다 보니 어느새 밥때가 되었다. 딱히 봐둔 곳은 없었으니 아무데나 들어가서 오늘의 운을 시험해 보기로 한다.


시험해야 할 운이 많다. 음식을 잘 하는 집인지도 시험해야 하고 마음에 드는 음식이 나올지도 시험해야 한다. 영어로 된 메뉴판 따위는 없기 때문에 사실상 랜덤박스다. 달걀, 생선, 돼지, 소 같은 단어들은 읽을 수 있으니 재료가 뭔지는 알 수 있지만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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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육면은 제대로 읽을 줄 안다. 대만의 우육면은 언제 어디서 먹어도 맛있다. 그렇기 때문에 야시장에서 먹는 이 녀석도 어김없이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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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랜덤박스는 고기 튀김에 당첨됐다. 나쁘지 않은 결과다. 꽤나 맛있는 고기 튀김이다. 내가 싫어하는 카레가 발린 것만 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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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갑니다. 잘 놀다 갑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 리우허 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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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는 어딘지 모르게 아쉽다. 소화도 시킬 겸 가오슝의 밤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가오슝 현지인들이 가장 사랑해 마지 않는 루이펑 야시장에 닿게 되었다.


여기는 체급이 아예 다른 야시장이다. 리우허 야시장도 사람이 꽤나 많다고 생각했는데 루이펑 야시장에 비하면 불황 수준이다.



사람 많은 걸 싫어한다면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지인들과 부대끼면서 진정한 로컬의 향기를 느끼고 싶다면 가오슝에서는 루이펑 야시장만 한 데가 없다. 동네 주민들의 사람 사는 냄새가 지천에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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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려도역은 미려하다. 마침 숙소가 미려도역 근처였다. 딱히 생각하고 온 건 아니었는데 집에 가려고 지하철 로비로 올라오니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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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600년 전 즈음의 일이다. 처음 발을 딛은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곳을 아름다운 섬이라 하여 '포모사'라고 불렀다. 그 명성에 걸맞는 아름다운 역이다. 과연 미려도. 아름다운 인공의 풍경과 함께 대망의 여행 첫날이 저물어 간다.